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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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문제를 풀다 문득 돌린 그곳에 김종인이 있었다. 무엇을 하는 건지 입술을 꼭 깨물며 인상을 찡그린 너의 미간을 보다 내 시선을 느낀 건지 날 바라보는 시선에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과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에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다시 널 바라보니 특유의 시원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살짝 손을 흔들어주는 너에게 나 또한 살짝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연필을 집었다. 이미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다시 본 문제집 구석구석 베여있는 너의 모습에 결국 한숨을 쉬며 책상에 고개를 묻었다.
“야, 오세훈!”“…….”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고 남은 건 우리 둘뿐인지 옆자리에 앉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네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으니 내가 아프다고 생각한 건지 날 콕콕 찔러오며 어디 아파? 하고 걱정해주는 네 음성에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종인이에게 나는 항상 동생 같은 존재였다. 숫기도 없고 말수도 적어서 그런지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나를 유일하게 챙겨준 게 너라서 그런 걸까, 너는 항상 나를 과잉보호했고 그건 2년이란 시간이 지나 20살을 앞둔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었다.
“오세훈 아프냐니까? 세훈아!”“안 아파, 그냥 잠들었나 봐.”
내 말에 꿀밤을 놓는 너를 밉지 않게 흘겨보니 푸스스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예쁘게 접히는 눈꼬리에 나도 웃음이 터져 그렇게 웃다 문득 들어온 너의 입술에 고개를 숙였다. 붉은 너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에 아까 전보다 훨씬 붉어져 있을게 뻔한 두 볼에 눈을 질끈 감으니 낮은 목소리로 웃음을 흘리는 너의 목소리에 더욱 거세게 뛰는 심장.
“야, 왜그래― 고개 좀 들어봐.”“안돼, 잠깐만. 응?”
내 부탁에도 압력으로 내 고개를 들어 올린 너의 미간이 구겨진다. 눈치채버린 거겠지, 내가 널 좋아한다는 걸. 그리고 넌 이제 나에게 뭐라 말할까. 더럽다며 욕을 할까, 그냥 이 공간을 나가버릴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들에 애꿎은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내 손을 덮어오는 너의 따뜻하고 큰 손과 맞물려오는 너의 입술에 당황해 손을 빼 너를 잡기도 전에 빠르게 내 손목을 잡는 너의 손에 마음이 혼란스럽다. 이걸 무슨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미안….”“뭐가 미안한데?”“다, 미안해.”
연신 저 말만 반복하는 김종인이 우스워졌다. 그리고 내가 비참해졌다. 너에게 사과받으려고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닌데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반항해보고 널 밀쳐도 보고 욕도 해줄걸 그랬다. 목까지 차오르는 울컥함은 곧 눈물이 되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교복소매로 스며둔 눈물 자국에 마음이 묵직해져 왔다. 널 사랑한 대가는 눈물이구나, 말이라도 해볼걸. 널 좋아한다고 소리라도 쳐볼걸.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후회되어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다.
“종인아.”“…….”“미안해하지 마. 나야말로 미안해.”
사랑해서 미안해. 끝내 뱉지 못한 말을 뒤로한 채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왔다. 몸을 휘감고 지나가는 겨울바람에 머리가 아파져 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을 즈음 내 앞으로 뛰어와 가쁜 숨을 몰아쉬던 김종인이 오세훈에게 말했다.
“좋아해, 오세훈.”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자세히 보지 않아도 예쁘다. 오래 보지 않아도 사랑스럽다. 오세훈, 너는 그렇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릴레이픽으로 글잡에 입성한 엑so 입니다.
부족한 제 글 봐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리고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다른 글로 찾아뵐게요.
2013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