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인. 내 말부터. "
" 싫어. 무슨 말을 해도 다 변명이야. 그 여자랑..씨발. "
말끔하게 정돈한 침실에 엉망진창이다. 깨진 액자와 커피잔. 바닥에 나뒹구는 전등과 책, 의자. 무슨 장면을 보고 왜 화가 났는지 모르는 게 아니다. 입술을 깨물고 씩씩 대는 김종인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 털을 세운 고양이 꼴이다. 아주 날카롭고 아픈 발톱을 가진.
" 이리 와서 얘기해. "
" 필요 없다잖아! "
닥치는대로 옆에 있던 테이블에서 만년필을 집어 내던진다. 아무런 악의도 없는 물건이 흉기가 되어 날아왔고 결국 손에 흠집을 내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필 보스에게서 받은 만년필을. 촉 끝에 피가 묻은 상태로 구른 만년필 위로 내 피가 뚝뚝 떨어진다. 아, 밴드가 어디 있던가. 다루기 힘든 미성년자. 어떻게 달래야 고분고분 말을 들을까.
" 아저씨.. 피 나? '
" 이건 됐고, 내 얘기나.. "
" 미안해. 어디 좀 봐. 내가 피 닦을게. "
털을 잔뜩 세우다가도 내 피 몇 방울에 사색이 된 얼굴로 달려 오는 이 미성년자를 어떻게 미워할까. 눈썹을 푹 내리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 손을 작은 두 손 가득 쥔다. 꽤 깊은 상처 위로 뜨거운 혀가 닿았고 가만히 피를 핥는 미성년자가 아름다워 그렇게 두었다. 이미 변명은 필요 없었다. 그저 머리에 묻은 먼지를 떼었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충분하겠지.
" 아저씨 내가 미안해.. "
오늘도 예쁜, 내 미성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