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글“동우형.”
“어,어.”
“형.”
“어, 듣고 있어.”
“듣고 있긴 뭘 듣고 있어, 내가 방금까지 무슨 얘기 했는지 기억이나 나요?”
“에? 어..그게, 그러니까..음, 아! 우리 오늘 무대..”
“오늘 무대가 아니고 끝나고 데이트 어디서 할 거냐고요. 도대체 누구랑 뭘 하길래 이렇게 집중력이 분산돼?”
“아니야아. 뭐 안 해. 게임 좀 하느라.. 오늘 끝나고 나 친구랑 약속 있어, 호원아. 데이트는 나중에 하자!”
게임은 무슨, 메신저 창 뜨는 거 다 봤는데. 대기실 소파에 길게 드러누운 호원이 히죽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동우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장동우, 대체 뭘 어쩌자는 건지.
“야동커플 대기해 주세요!”
“형, 우리 무대 할 차례야. 나가자.”
“아, 그래? 응.”
호원아. 오늘 첫방이야. 막 두근댄다. 팔을 휘적거리며 걸어가는 동우를 홱 낚아챈 호원이 약간 허리를 굽혀 동우의 눈을 마주했다.
“형, 솔직히 말해봐요. 누구에요?”
“응? 뭐가.”
“요즘 누구랑 그렇게 연락하느라고 나한테 신경을 안 써요, 네?”
“내가 언제 너한테 신경을 안 썼어. 호원아, 요즘 좀 예민하네?”
싱긋 웃은 동우가 호원의 입술에 부드럽게 자신의 입술을 꾹 누르고는 떨어졌다. 호원아, 뭐가 그렇게 불안해. 난 니꺼라며? 싱긋 웃은 동우가 멍하니 굳어버린 호원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안 가? 늦겠다.
“동우야!”
“누구..어? 기광아! 니가 여긴 왠일이야?”
“오늘 너 첫방이라며. 친구 된 도리로써 방문 해 주는 게 예의 아니겠어?”
“오, 이기광. 니가 그렇게 매너가 좋았던가?”
“섭한 소리 하네. 아, 안녕하세요 호원씨. 근데 긴장하신건가? 왜 저렇게 얼어 계셔?”
“글쎄다. 긴장했나보지. 흐- 호야. 가자. 진짜 늦겠어. 야, 이기광. 형님 무대 잘 봐라.”
“형님은 무슨. 나보다 후배면서. 이 형님이 모니터링 잘 해주지.”
킥킥 웃고있는 동우의 목을 조르듯이 감싸안은 기광이 살살 녹는다는 그 눈웃음을 치며 멀어져갔다. 뭐야, 동우형이 저 사람이랑 언제부터 저렇게 친했대.
“형, 이기광씨랑도 친했어?”
“어, 뭐.. 성규형이 두준씨랑 친하잖아. 그래서 어쩌다 보니.. 나랑 동갑이기도 하고, 흠.”
“아아, 그래?”
*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호원과 동우는 대기실 소파에 앉아서 헤실 웃고 있는 기광을 마주했다. 어? 기광아, 안 갔어?
“우리 동우 칭찬 좀 해주려고 안 갔지. 우쭈쭈, 내 새끼. 무대에서 노래랑 춤 잘 하더라?”
“그럼 내가 누군데. 잘 하지이,”
크흠, 동우형. 친구랑 약속 있다면서요. 동우의 턱을 간질이는 기광의 손이 상당히 거슬렸던 호원은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으며 기광과 동우를 번갈아 바라봤다. 하, 기분 참.
“어? 동우, 약속있었어? 내가 오늘 끝나면 맛있는 것 좀 사주려고 했더니.”
“맛있는 거? 뭐? 뭐 사줄건데?”
“아, 몰라. 약속 있다며. 안 사줄거니까 말도 안 해줄래.”
“에에? 아냐아냐, 나 친구랑 안 만나도 돼. 이따 끝나고 꼭 사주기! 알겠지?”
“프흐- 그래. 사줄게.”
시발. 욕을 내뱉으며 팍 일어난 호원에 토끼눈이 된 동우가 호원의 얼굴을 마주했다. 형, 잠시 나 좀 볼까요?
“뭐야, 호원아. 왜.”
“약속 있다면서. 친구랑. 그것 때문에 나랑 데이트까지 취소해 놓고 이기광이 맛있는 거 사준대니까 금새 약속을 취소해? 넌 내가 중요해, 이기광이 중요해?”
“기광이랑 나랑 너보다 형이야. 호칭 함부로 하지마.”
“허어? 넌 지금 이 상황에서도 호칭이 그렇게 중요해?”
“어, 중요해. 호원아. 너 요즘 많이 예민하다? 별 일도 아닌 것 가지고 왜 그래?”
“별 일도 아니라고? 넌 내가 친구랑 약속했다고 니 데이트 신청 거절했는데 다른 사람이 뭐 사준다고 홀랑 따라가면 기분이 어떻겠는데. 어? 별 일 아닐 것 같냐?”
“별 일 아닐 것 같아, 호원아. 넌 그런 적 많잖아. 안 그래? 새삼스럽긴.”
내가? 내가 그랬던가. 혼란스러움에 빠져있는 호원을 지나친 동우가 호원의 등 뒤에서 소리없이 웃었다. 호원아, 이제 시작인데, 벌써 그러면 안 돼. 그리고 말이야 호원아, 넌 이것 말고도 다른 전과가 많잖아. 이게 끝은 아닐 것 같지, 안 그래?
*
“기광아, 나 저거저거.”
“쓰읍, 안 돼. 저런 불량식품 먹으면 너 몸 금방 망가진다?”
“아아아. 사 줘어. 응? 기광아아-”
“떽. 대신 내가 더 좋은 거 사줄게. 가자, 동우야.”
힝. 투덜거리며 돌아서는 동우의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호원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오늘따라 저 형 왜 저렇게 애교가 넘치는데. 한 시간 전, 팔을 달랑거리며 기광을 따라 나서던 동우가 자꾸 눈에 밟혀 결국 따라와버린 호원이었다. 아 시발, 내가 이런 찌질한 일을 하게 될 줄이야.
“으아, 기광아. 나 너무 추워.”
“추워? 저기 까페라도 들어갈까?”
“그래그래, 가는 김에 나 커피도 사 줄꺼지?”
푸핫- 오늘은 이 형님이 다 쏘기로 했으니 사 주지. 자연스럽게 동우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까페로 들어가는 기광의 모습에 호원은 점점 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까페는 들어가서 또 뭐 하게. 저 까페는 뭐 이리 분위기가 좋아! 애꿎은 까페 탓을 하며 궁시렁대던 호원은 둘이 까페로 들어가 자리 잡는 것을 확인한 뒤 슬금슬금 들어가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뭔 이야기 하나 들어나 보자.
“동우야, 넌 초코라떼지?”
“응응. 초코라떼. 기억하네?”
“내가 너랑 커피를 몇 번째 마시러 오는데 그것도 기억 못 할까봐. 잠시만, 주문하고 올게.”
동우 형이 초코라떼를 좋아했던가. 새삼 자신이 동우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느낀 호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기광을 기다리며 손장난을 치고 있는 동우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금 무슨 생각일까, 저 형은.
“주문하신 초코라떼 나왔습니다, 장동우씨- 와플은 장동우씨가 너무 귀여워서 드리는 서비스에요.”
“흐핳, 뭐야아. 맛있겠다. 잘 먹을게 기광아.”
“응, 얼른 먹어.”
동우의 뒷모습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호원은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기광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아, 이런 젠장. 나 지금 얼마나 찌질해 보일까.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이는 호원을 본 기광은 동우를 한 번 번갈아 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계획이 더 재미있어지겠네?
“동우야, 묻히고 먹으면 어떡해. 여기 봐. 와플 시럽이 다 묻었잖아.”
“응? 어디? 여기?”
“아니, 이리 와 봐.”
위/아래글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