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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 Rainbow

착하게 살고 싶었는데…우리 왜 이렇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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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Han byeol

 

 

 

 

 

 

 

 

 

 

 

 

 

 

 

 

 

 

 

 

 

 

<다음 세상엔 더 나은 세상에서 태어나자. 난 행복해.>

 


1

 

“…….”

 

재중은 그대로 손에 들려있던 우편물을 발 아래로 떨어뜨렸다. 혼자 사는 집 안의 차가운 공기가 더 차가워졌고, 우편물이 발 아래 떨어지는 것 처럼 재중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까만 머리카락이 하얀얼굴에 어울려 백설공주같다는 말을 해주던 그 사람. 언제나 우등생이였던 그 사람. 바보같이 왕따였던 날 지켜주었던 그 사람. 그러고보니 벌써 14년 전 이야기였다. 남녀공학에선 그를 모르는 여학생이 없을 정도로 그는 인기가 많았으며, 인기가 많은 만큼 성적도 좋았다.운동장에서 아침조회를 할 때면 언제나 교장선생님에게 불려가 상장을 받아 올 정도였으니까. 14년 전의 기억이 머릿속을 맴돌며 재중을 괴롭혔다.

 

재중의 발 아래엔 청접장이 여전히 자리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교실에 들어서면 받는 따가운 눈총길.재중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가 앉았다.왕따.재중의 이름 뒤에 언제나 꼬릿말 처럼 붙는 수식어.남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하얀 피부색깔과 깡마른 몸에 성적도 좋지않고 집안도 좋지 못한 탓에 재중은 남학생들이며 여학생들이며 언제나 무시를 당하며 그렇게 학교를 다녔다. 재중의 처지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조금의 도움을 줄 줄 알았던 담임선생님마져 재중을 외면했다. 학비도 겨우 내고 있는터라 언제나 교무실에 불려갔다가 행정실로 갔다가….그게 재중의 학교 일상이였다. 점심시간에는 아예 밥을 먹지 않기로하고 급식신청 조차 하지 않았다. 항상 교실, 자신의 자리에만 앉아있는게 전부였다.


「김 재중.」
「…네?」
「선생님 좀 보자.」


운동장에서 아침 조회를 듣고 이제 막 들어온 재중을 붙잡은 담임선생님은 그대로 재중을 데리고 교무실로 향했다. 혹시나 했던 건 당연히 역시나 가 되었다. 선생님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번 달 학비를 내야할 시기가 지났다면서 재중을 타박했다. 그저 재중은 아빠한테 말해볼께요….하고 터무니 없는 소릴 하는게 전부였다.


「힘들어도 내일모레까진 입금시키도록하자. 응?」
「……네.」


그럼 나가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재중은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문을 닫기 직전, 선생님의 깊고 긴 한숨소리가 듣기 싫었음에도 들려왔다. 탁ㅡ.문이 닫히고 재중도 똑같이 깊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교무실 문 앞에서 교실로 돌아가지 않고 서성이던 재중은 이번엔 조금 다른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안 들어갈꺼면 나와봐.」
「…어?……아,미안.」


아침 조회 때 보았던 그 아이였다. 마이에 박힌 명찰색깔을 보아하니 같은 학년이겠거니 한 재중은 미안하다는 짤막한 대답을 하고 얼른 교무실 문 앞에서 떨어져나왔다. 멀리서 봤을 때도 키가 참 크구나 싶었는데 가까이서보니 정말 키가 크기는 컸다. 잠시였지만 마주친 얼굴은 굉장히 잘 생기기도 하였다. 학업우수상을 받은 걸 보면 공부도 잘 하는 것 같은데…. 부럽다. 재중은 명찰에 있던 ‘정윤호’란 이름을 되내이며 천천히 교실로 가려 발걸음을 옮겼다.


「어,야! 잠깐만!」


그 목소리에 재중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재중은 겨우 눈물을 다 닦고 주저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머리가 조금 아파왔지만 견딜만했다. 까만머리가 좋다던 그의 말에 따라 살면서 한 번도 염색 같은 걸 하지 않았는데…. 일어서자마자 보이는 전신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재중은 다시 또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시선만 돌리면 온통 그가 떠오르는 것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전부가 자신이긴 했어도 자꾸만 보이는 모든 것에 윤호가 겹쳤다. 이런 우편이 올 것이라고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였다. 한달 전. 갑작스럽게 술에 떡이된 채 집에 찾아와 울던 윤호는 힘겹게 재중을 안으며 계속 미안하다고만 말할 뿐 이였다. 한 기업회사에서 일하던 윤호에게 윤호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연애 한 번 하지않고 결혼 할 생각이 없는 듯해 보이는 자신의 아들에게 적당한 학벌력을 가진 여자를 소개시켜주었다. 칼만 안들었지 무서운 제 아비의 교제를 하란 반협박에 윤호는 어쩔 수 없이 좋아하지도 않은 여자를 만나야했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자 쪽 집안에서 좋다는 말이 나오자 마자 약혼이 잡혔고 약혼 날짜가 점점 가까워질 수록 본의 아니게 결혼 날짜까지 잡혀버렸다.

 

그 모든 이야기를 하며 윤호는 연신 울었다. 재중은 그런 윤호를 그저 토닥여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고. 괜찮아….하며 마음에도 없는 괜찮단 말을 내뱉던 재중의 그날 밤은. 윤호의 울음 섞인 포옹에 나름 따뜻하지만 씁쓸한 밤이 되어버렸다. 잊을 수 없는데 잊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재중은 지난 날의 아픈 기억에 다시 또 휩싸이며 그렇게 거울 앞에서 울었다. 한달 전. 제가 사랑하는 윤호처럼.

 

 

 

 


 

 

 

 

 

 

 

 

 

 

 

 

 

 

 

 

 

아직 가지 않은 재중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한 윤호가 천천히 뒤를 도는 재중에게 미안한 부탁을했다. 반에서 반장까지 맡은 윤호가 반 애들에게 나누어줄 프린트물을 들고가게 되었는데 상당한 양에 이제 막 가려는 재중을 급히 잡았다. 조용조용해보이는 말투며 행동에, 너무 마른 몸. 짙은 쌍카플이 진 큰 눈에 하얀 피부가 처음엔 그저 바지를 입은 여학생이겠거니…했던 윤호는 여자애 이름 같지 않은 명찰 속 이름을 보며 남자라고 생각했다. 재중은 말없이 윤호 곁으로 와서 윤호가 들고 있던 프린트물 중 반을 대충 눈대중으로 가늠하고 들었다. 너무 많이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며 미안한 어조로 윤호가 말해도 재중은 그냥 고개를 조금 저을 뿐. 그대로 윤호를 따라 교실로 향했다.


「진짜 고맙다. 너 몇 반이야?」
「……4반.」


도착한 6반 앞에서 윤호는 재중에게 들고있던 프린트물을 다시 자기가 들고있던 뭉치들 위에 올려달라 말했다. 조곤조곤 대답도 해가면서 프린트물을 다시 올려주었더니 순간 가해져오는 무게에 윤호는 끙끙대며 재중이 올려준 프린트물을 들었다. 그 모습에 재중은 도로 제가 들었던 만큼 다시 들었다. 재중의 행동에 윤호가 왜 그러냐는 듯 반은 당황한 채로 물으니, 재중이 교실 안까지 가져다 주겠다 대답했다.


「괜찮은데….」
「……되게 무겁게 드니까…….」
「들어주면 뭐…나야 고맙지.」


윤호가 발로 교실 앞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몇 몇의 학생들이 재중을 알아보고는 왕따와 학교의 제일 잘 나가는 엘리트의 조화에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성격까지 착한 윤호가 그저 재중에게 동정심으로 대했다고 생각하며 넘어가는 반 아이들의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후에 둘은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기에.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놀던 윤호를 스텐드에 앉아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그런 재중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고, 집방향이 조금 같은 길임을 알았을 때에는 같이 하교하는 날이 잦았으며 조금 지나자 항상 헤어지던 곳에서 만나 아침에 학교에 같이 등교하기도 하였다. 그런 나날들이 지속되가자 어느 덧 둘은 중학교 3학년이란 졸업반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야,재중아. 너 이번달 급식신청했어?」
「…어? ……아니,안 했는데….」
「또? 왜 안 했어…. 같이 먹자니까.」


친해지긴 했어도 집안사정까지 이야기 할 필요나, 그런 용기는 없던 터라 재중은 쉽게 급식비까지 낼 수가 없단 소리를 삼켜야만 했다. 그런 재중을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윤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아마도 이 때 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에이….그럼 나도 그냥 급식신청 안 해야겠다.」
「어? 왜? 」
「너 안 먹는데 나라고 속 편히 먹을 수 있겠냐. 대신 도시락 싸와서 먹지 뭐. 그건 괜찮지?」
「…….」


재중이 윤호를 좋아하게 된 것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란 것도 알게되었고, 주변사람들의 말에도 흔들리지않고 계속 친구로 남아주는 이 착한 마음씨도 알았다. 재중과 같이 밥을 먹어주겠다는 그 소리에 확신이 선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전부터 일 수도 있겠지만 그 마음이. 진심이 담긴 그 마음이 너무나도 고맙고 벅찼기에. 재중은 그 후로 계속 윤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게되고, 조금 더 애잔한 마음을 표했다.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그래도 재중에겐 살면서 처음으로 좋아한다는 감정을 들게 해준 사람이였기에, 재중은 쉽사리 마음을 접지 못했다. 단순한 사춘기의 호기심이라던지 잠깐의 바람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윤호를 좋아하게 되었다.

 

 

 

 


 

 

 

 

 

 

 

 

 

 

 

 

 

 

 

 

 

일주일. 청접장을 한 번 더 보고나니 현실로 다가온 윤호의 결혼이 재중은 너무나도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아팠다. 일주일 후면 그는 더 이상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있을 수 없게 되는 그런 현실. 순간 재중은 어쩌면 자신 하나 때문에 윤호가 그렇게 울지 않았나 싶다. 제가 굳이 고백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멍청이처럼 남자를 좋아해서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든 것 같았다.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이렇게 될 걸 알았으면서…세상 밖에 버려지게 될 일이란 걸 알고 있으면서….


“……보고싶다…윤호야….”


이 순간, 니가 너무 보고싶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였다. 그 내려진 결정을 굳게 다 잡고 자려고 할 땐, 잠도 오지 않았다. 좁은 방안의 공기가 답답했다. 재중은 새벽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있었다. 허공을 바라보니 역시나 생각나는 건 윤호 뿐이였다. 점점 중학교에 있을 기간이, 시간이 짧아져만 갔다. 처음부터 공부를 못 했던 재중인지라 지금 당장부터 공부를 시작한다고 해도 이미 그 지역안에서 제일 좋은 고등학교를 가게 될 윤호와 같은 학교를 간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였다. 연락하면서 지낼 수 있을 시간이 많지 않음에 재중은 결국 제 마음을 표하기로 했다.뜬 눈으로 지샌 새벽 후의 아침은 매일 맞이하는 아침과는 달랐다.똑같은 일상이 시작되는 평범한 아침이였지만 재중은 그냥 심장이 마구 뛰었다.


「오, 일찍 왔네?」


언제나 헤어지던 그 지점에서 아침에 만난 윤호가 오늘따라 더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냥 평소보다 그가 더 좋았다. 두 손으로 가방끈을 세게 쥐었다가 윤호를 한 번 쳐다보았다. 저에게 닿는 시선에 똑같이 눈을 마주쳐 주었더니 재중이 수줍게 웃는 모습에 윤호도 그냥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학교에 도착하고, 다른 반이기에 서로 다른 교실로 들어서는 그 순간까지. 재중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제어할 수 없었다. 3교시.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재중은 조심스레 윤호네 반으로 향했다. 까치발을 들어 도착한 윤호의 반 앞 창문 너머로 교실을 보니 전 수업이 재미없었던건지 아이들은 거의 얼굴을 책상에 박고 잠을 자고있었다. 몇 몇 깨어있는 학생들 중 윤호가 속해있는걸 보고 재중은 웃으며 교실로 들어서려다가, 윤호와 웃으면서 얘기를 하는 여자를 보는 순간. 재중은 망설였다. 잘 하는 짓일까. 하고.


「왔으면 부르지 뭐해?」


어느 새 먼저 창문 앞으로 다가온 윤호가 창문을 열고 재중에게 한 말이였다. 왔으면 부르지…하는 그 말이 너무나도 좋았다. 이 곳에 오면 저를 찾을 자신을 알아준다는 것 같아서 또 가슴이 뛰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웃는 듯한 재중이 좋아 윤호도 같이 웃어주었더니, 그 미소에 힘을 얻고 재중은 윤호를 교실 밖으로 불러냈다. 10분밖에 없는 쉬는시간임을 알기에 재중은 조금 걸음을 빨리해서 운동장 끝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왜 그러느냐며 재중의 옆에 윤호가 앉자마자 재중은 크게 숨을 들이 마셨다.


「유,윤호…야….」
「왜 재중아.」


니 목소리가 너무 좋아…니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게 너무 좋아….날 그렇게 봐주는 눈빛도 좋고……그냥 다 좋아. 너라서.


「…….」
「불러놓고 왜 말을 안 해. 나오고 싶었어?」
「나……그니까…」
「말해.뭔데 그래?」
「지,지금 내가 할 말……장난 아니라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래. 알겠어. 궁금하니까 얼른 말해 봐.」


내 말을 들어주는 니가 좋아. 아무도 다가와주지 않았던 나에게 서스럼없이 대해주었던 착한 마음도 좋았다…?


「……윤호야 나…」
「응.」


다 나를 싫어했는데 너만은 나를 가까이 지내줘서……행복하고 좋았어.


「너……윤호…그니까! 좋아……해.」
「나 좋아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되 받아치는게 이상하기도하고 뭔가 예상 밖의 대답이라 재중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만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표정에 당황한건 재중이였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도 있었다.그 와중에 저 얇고 긴 손가락이 맘에들어 정신 못차리던 재중에게 윤호가 먼저 말했다. 나도 너 좋아.


「으,응…?」
「나도 너 좋은데. 너 안 싫어해.」
「…그…!」


그게 아닌데….


「나도 알고있어, 임마. 재중이 너 나 좋아하잖아? 나도 너 좋…,」
「말고 진짜로. 진심으로 좋아한다…구….」
「…….」
「…….」
「친구 말고?」


재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넓은 운동장 안에서 메아리를 치며 돌고 돌았다.

 

 

 

 

 

 

 

 

 

 

 

 

 

 

 

 

 

 

 

 

 

2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받지 않았다. 그렇게 울고 저를 안아주던 윤호는 그 후로 연락이 잘 닿지 않았는데, 어렵사리 전화를 걸었음에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긴…사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과의 결혼소식을 알려줘놓고 전화를 받는건 역시나 무리인 듯 싶었다. 기계음이 들리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재중은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지 듯 누웠다. 스물 아홉의 김 재중은 변하지 않았다. 정 윤호를 향한 마음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윤호도 변하지 않았을거라고 믿었다. 아니, 변하지 않았다. 그 역시 변하지 않는다. 김 재중이 정 윤호를 사랑하는 이상. 그도 나를 사랑한다. 삼일 밖에 남지 않은 윤호의 결혼 날짜를 계산하며 재중은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원룸안이 재중의 한숨으로 가득 찼다.

 

 

 

 


 

 

 

 

 

 

 

 

 

 

 

 

 

 

 

 

 

수업종이 쳤으니 들어가자는 말이 마지막이였다. 창피한 마음에 재중은 4교시 후 찾아온 점심시간엔 윤호에게 가지 않았다. 같이 먹을려고 싸왔던 도시락에 손도 대지 않았다. 윤호도 재중의 반으로 찾아가지 않았다. 또 다시 혼자 남게된 교실 안. 재중은 누구도 들어오지 않을것을 생각하며 책상 위로 엎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울었다. 눈물이 책상 위에 고여서 올려놓은 팔을 축축히 적셔도 재중은 계속 울었다. 역시나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앞으로 윤호는 이제 어떻게 봐야할지 고민이였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학교내에 소문이라도 날까 겁도 났다. 그렇게 된다면 저를 쳐다보게 될 무서운 시선들에 후회를 했다. 큰 눈인 만큼 나오는 눈물의 양도 많았다. 한참을 울고, 재중은 교실 뒤 쪽 사물함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마른걸레를 집어들고 책상 위를 대충 닦았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저도 세수를 했다. 물기를 대충 털고 복도에 서있는 수많은 학생들 사이를 피해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여전히 혼자였다.


「재중아.」
「…….」


하굣길에 재중은 윤호의 반을 지나쳐 그대로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신발을 신고 신발 앞코를 톡톡ㅡ땅에 대고 몇 번 쳐주고 정문 밖으로 나갔다. 여러 학생들 사이에 섞인 재중을 찾아 불러낸 건 역시나 윤호였다. 교실로 갔더니 이미 가방이 없는 책상과 신발 없는 신발장을 보고 얼른 뛰어나온 윤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걷는 재중을 발견했다. 놀란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있는 재중에게 윤호는 입꼬리를 올려 웃어주었다.


「먼저 가면 어떻게 하냐. 같이 가야지.」


재중은 그대로 왈칵 눈물을 쏟을 뻔 했다. 이렇게도 착한 니가 좋아 윤호야……. 어쩌지. 포기 못할 것 같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눈물에 재중은 고개를 숙였다. 그런 재중의 손목을 큰 손으로 잡아주며 윤호는 재중을 데리고 후문으로 향했다. 정문으로 나가는 학생이 많아서 후문에는 서너명의 학생 밖에 없었다. 후문 바로 아래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까지 윤호는 재중을 잡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선 재중은 윤호가 저를 잡고 가는대로 저도 그저 따라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휴관일이라 열지 않은 도서실건물 앞이였다.


「어라,너 우냐?」
「…….」


넌 내가 그런 징그러운 말을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니…? 굳게 닫힌 줄 알았던 도서실의 문 한 쪽을 밀자 자연스레 열렸다. 관계자 아저씨가 나가라고 말했지만 급하니 화장실 좀 쓰겠다고 윤호는 양해를 구하고 그대로 재중을 데리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왜 울고그래. 세수 해, 얼른.」
「…….」
「얼른.」


세면대에 물을 틀어주며 윤호는 재중에게 세수하라 일렀다. 재중은 어느 새 울어서 눈물 범벅이 된 볼을 손으로 슥 문질렀다. 그런 재중을 보고 윤호가 손에 물을 묻히고는 재중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웃어주었다. 아무렇지 않게. 닦아줘도 닦아준 만큼 다시 울어대는 재중을 윤호는 계속 닦아주다, 결국 안아주었다. 갑자기 퍼져오는 따스한 온기에 재중은 잠시 놀랐다가 곧 다시 울어버렸다. 토닥여주는 그 손길이 좋아서. 결국엔 또 좋다는 마음밖에 들지않아서…울고 또 울었다.

 

 

 

 


 

 

 

 

 

 

 

 

 

 

 

 

 

 

 

 

 

하루 앞으로 다가 온 결혼날짜를 보며 재중은 다시 윤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기계음으로 넘어가버렸다. 보고싶은데….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 나날들을 뒤로하고, 널 보고싶은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리 듯 재중은 핸드폰을 던졌다.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자, 찾아 올 사람은 윤호밖에 없는 집안으로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찾아올 사람은 윤호밖에……없는데….


“…윤호야…?”
“…….”
“들어와….”


그래. 내 집에 찾아올 사람은…윤호 너 밖에 없어.

 

 

 

 

 

 

 

 

 

 

 

 

 

 

 

 

 

 

 

 

 

 

학교는 남학교야. 원래 공부 좀 하는 애들은 거의 남학교나 여학교로 가잖아. 그런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나 여자애들한테 고백같은거 받을 일 없으니까. 나 말고 너 걱정해야겠다. 너 그거 알아? 머리는 완전 새까맣지, 얼굴은 엄청 하얗지. 너 완전 백설공주같아.아, 남자한테 백설공주는 좀 그런가? 그래도 어쩌냐. 너 이뻐. 무지.

 

재중은 읽고 있던 편지지로 입을 가린 채 웃었다. 어찌나 간지럽던지 자꾸만 보면 볼 수록 웃음이 났다. 고등학교가 정해지고, 졸업식을 한 후에 고등학교 입학 전에 만난 윤호가 내민 건 직접 쓴 편지였다.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다는 걸 윤호와 지내면서 근 2년만에 처음 알았다. 편지가 원래 접혀있던 대로 곱게 접어 그대로 책상의 첫 번째 서랍에 넣어두었다. 다른 학교지만 주말마다 만나기로했고, 시험기간이라면 같이 공부를 하는 핑계로 만날 생각이였다. 2년이 지났고, 그렇게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다시 겨울이 오기 전의 가을이 되었다. 낙엽이 떨어져서 걸을 때 마다 밟혀 바스락 소리가 나는 걸 재중은 좋아했다. 그런 재중을 윤호도 좋아했고. 순탄하기만 한 그런 나날들이였다. 고 3이라는 수험생 타이틀 속에서 인문계 고등학교의 윤호는 공부를 하느라 조금 바빴고, 실업계인 재중은 취업을 위해 따야하는 자격증 공부때문에 조금 바빴다. 그렇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도는 낮아지지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언제나.


「재중이. 너 이게 뭐냐.」


집에 들어왔더니 아버지가 내민 종이를 보기 전까진. 확실히 좋았다.


「……네?」
「이거 준게 사내새끼 같은데.」


재중은 긴장했다. 윤호가 처음 주었던 편지가 아버지의 손에 들려있었다. 자신의 방에 잘 들어가지도 않은 사람인데 어째서 저 편지가 아버지의 손에 들려있는지. 재중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심각함이 묻은 공기가 두 사람 사이를 배회했다.


「맞냐.」
「…….」
「이거 남자가 준거 맞냐고.」
「…….」
「남자새끼가 지금 같은 거 달린 남자한테 이런 거 받은게 맞느냐고 묻잖아!!!」


그대로 편지가 바닥에 내팽겨쳐졌다. 재중은 표정을 조금 구겼다.


「니 방에 처음 들어갔다. 찾을 게 있어서 들어가서 찾았는데 니 방 서랍에서 이런게 나오더라?」
「……왜,왜 물건만 찾지, 왜….」
「시끄러.입 다물어!! 이게 뭔지에 대해서 얘기할거 아니라면 입 열지마.」


왜 그게 아버지 손에 들려있는지 알게되었다는 사실보다 지금 이 현재의 상황에 재중은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대답 없는 재중을 보다가 재중의 아버지는 그대로 내팽겨 친 편지를 다시 줏어 들었다. 그리고 소리나게 찢어버렸다. 사정없이 찢긴 종이들을 재중의 얼굴에 뿌리며 그대로 재중을 지나친 재중의 아버지가 이번엔 소리나게 문을 열고 닫으며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보나마나 술 먹으러 가겠지 하는 생각 말고, 윤호가 준 편지가 찢겼다는 사실에 재중은 실로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이게 어떤건데…이 편지가 어떤건데….

 

 

 

 

 

 

 

 

 

 

 

 

 

 

 

 

 

 

 

 

 

 

윤호는 들어오란 재중의 말에 따라 조용히 재중의 집 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앞에 있는 재중을 품에 안았다. 갑작스럽지만 이해한다는 손길로 재중은 토닥토닥. 윤호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리고 금새 젖어드는 어깨를 느꼈다. 우리 윤호…또 우는구나.


“울지마, 윤호야….”
“……재중아…너무 힘들다….”
“왜 울고 그래…윤호…세수 할래?”


그 날 처럼. 재중은 품에서 윤호를 떼어놓으며 눈물 범벅 된 윤호의 뺨을 손으로 슥 문질렀다. 꽤나 긴 속눈썹이 젖어든것이 아름다웠다. 뺨을 어루만지다 재중은 윤호를 욕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세면대의 물을 틀고…손에 물을 묻힌 다음 윤호의 뺨을 다시 한 번 문질렀다. 또 물을 묻히고 뺨을 문지르고…그렇게 반복하다가 저도 똑같이 그 날의 윤호가 저를 안아주었던 것처럼 윤호를 안아주었다. 이번엔 반대 쪽 어깨가 젖어들었다.

 

 

 

 


 

 

 

 

 

 

 

 

 

 

 

 

 

 

 

 

 

「걔 이름이 뭐냐.」
「…….」
「어디 학교야. 같은 학교냐?」
「…….」
「만나봐야겠다. 이름이 뭐냐고 물었어. 대답 해, 빨리.」
「…….」
「니가 입병신이냐?! 왜 대답을 못해?! 왜!」


재중의 아버지는 금방이라도 재중을 때릴 듯 손을 들었다. 그치만, 곧 손을 내리며 화가 섞인 숨을 내쉬었다. 길고 긴 그 숨에 술냄새와 담배냄새가 섞였다. 재중은 찢겨진 종이를 손에 꽉 쥐고 그대로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원래 편지가 있었던 그 자리에 도로 찢겨진 종이들을 놓았다. 문이 벌컥 열리며 아버지의 욕설이 들려왔다. 하지만 재중은 아랑곳하지않고 서랍을 닫았다.


「빨리 말 안해? 너 진짜 죽어볼꺼야? 어?!」
「…이건 그냥 친구가 장난으로 쓴…」
「이 씨발놈이 진짜! 이젠 지 아비를 개로 아나? 거짓말을 치려면 똑바로 쳐!」
「…….」
「생긴건 지 어미마냥 어? 마담년같이 생겨서 안 그래도 기분나쁜데. 어디서 남자를 꼬셔, 남자를!!」


꼬신거 아니에요. 엄마가 나 버리고 간거 나도 알아. 사진으로 볼 때마다 나랑 많이 닮으셨었다는 것도 아주 잘 알구요. 남자같이 안 생겨서 기분 나쁠거라는 것도 진작에 알고있었어요. 그치만 윤호를 꼬신게 아니에요. 난 윤호를 좋아하는거에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과 눈물때문에 목이 아파왔다. 누군가가 짓누르는 것 처럼. 얼굴이 벌게져서는 여전히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저 아버지를 보면서 재중은 방에서 나서려고 아버지 옆을 나쳤다. 순간, 짝ㅡ소리가 나면서 재중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얼얼했다.


「씨발. 야, 김 재중. 너 진짜 내가 니 개로보여? 어?!」
「…….」
「좋게 말할 때, 이름 대라. 학교랑 이름 대.」
「싫어요.」
「뭐야?!」


맞은 곳을 한 번 더 맞으니 당연히 더 아플 수 밖에 없었다. 재중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새 부어오른 빨간 뺨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치만 재중의 아버지는 때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제 에미를 쏙 빼닮은 아들 같지않은 아들이 미웠다. 새 남자를 꼬셔 집안을 뒤로하고 도망간 자신의 아내마냥 남자가 되서 남자를 불러들인 요망한 것 처럼 비춘 제 아들의 모습을 그렇게 때리고 또 때렸다. 자신의 손이 아파도 계속 때렸다. 손이 아파서 쓸 수 없을 정도면 발을 사용했다. 발로 야윈 재중의 등이며 배며 무조건 걷어차댔다. 그렇게 하면 말할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
「재수 없는 새끼. 니가 내 자식이라는게 수치다, 새끼야.」
「…….」
「한 번만 더 저런 편지 받아오면 넌 진짜 죽는다.」
「…….」
「알았어?!」


재중은 그렇게 맞고 아픈 몸을 끌고 집을 나왔다. 어딜 가느냐고 소리를 지르는 제 아버지를 뒤로한 채, 그냥 집을 나왔다. 그리고 윤호네 근처에있는 놀이터로 가서 그네에 앉았다. 가을 바람 치고 꽤나 차가운 바람이 맞았던 뺨을 스치고 지나갈 때 마다 쓰라렸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다가 재중은 윤호네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누구냐는 윤호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호 친구요…하고 짧게 대답하자 곧 윤호가 문을 열고 나왔다. 여기저기 맞아서 부어오른 얼굴에, 그새 터져 피로 물든 입술에. 재중의 몰골을 본 윤호가 놀라 그대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재,재중아!」
「…윤호야…나……아파….」
「왜 이래. 왜 그런거야. 무슨 일 있어? 응?」
「도망 가고싶다…….」
「재중아, 말해 봐. 무슨 일인데. 응?」
「너랑 둘이…도망 가고싶어…….」


허락될 수 없는 사랑을 시작한 너와 나. 이 차갑고 냉정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잠든 윤호의 옆에 앉아 재중은 윤호의 머리를 쓸어넘겨주었다. 젖어버린 옷을 벗고 하얀색 니트로 갈아입고 재중은 그렇게 한참을 윤호의 옆에 있었다. 뒤척이는 모습도, 찡그린 표정도, 슬픔과 고통이 묻어나는 저 잠결에 새어나온 신음소리까지…. 다 담아두었다. 오늘 하루가 지나면 윤호는 더 이상 볼 수 없을테니까. 마지막 이라는 타이틀 아래 재중은 한 껏 윤호를 담았다.


“재중아…….”
“어, 깼어? 미안….”
“…사랑하는 우리 재중이…….”
“…….”


그대로 제 목을 감싸고 끌어당김에 재중은 윤호의 입술 위에 조용히 제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그동안 그 많은 세월 내 입맞춤을 많이 했다지만, 이토록 달지만 쓴 입맞춤은 처음이였다. 언제나 달게만 느껴지는 입술이 조금 더 깊게 파고들자 쓴 맛이 났다. 지금의 마음처럼.

 

 

 

 


 

 

 

 

 

 

 

 

 

 

 

 

 

 

 

 

 

운동 때문에 학교 근처에 하숙집에서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재중을 며칠 데려다놓고는 윤호는 재중의 집에 찾아갔다. 집에있던 재중의 아버지에게 재중의 친구라 말을 하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던 재중의 아버지는 그대로 윤호도 재중을 때린 것 처럼 똑같이 대했다. 이 매운 손에 맞았을 재중을 생각하니 윤호는 미칠 것만 같았다. 재중과 지내면서 처음만난 사람이지만, 너무나도 지독한 사람이라는 걸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니 새끼가 우리 재중이한테 이상한 편지 준 놈이냐?어?」
「…재중이가 아파요. 집에 데려다 주려고했는데 안 간다고 하길래 일단은 제 아는 친구…」
「어쩐지 집에 안겨들어온다 했지…야 이새끼야, 요즘 애새끼들은 그러고 논다냐?」
「…….」
「그런 편지 주고 받을꺼면 친구고 뭐고 하지마라.」
「…….」
「그 새끼가 좀 곱상하게 생겼거니 해서 니들이 순간 헷가닥 한거다.」
「그런거 아닌데요.」


단호한 윤호의 목소리에 재중의 아버지는 뭐? 하고 되물었다. 윤호는 굳은 의지로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거 아니에요. 곱상하게 생겨서 호기심에 그런거 아니에요. 순간 다시 한 번 손이 날라왔지만 윤호는 그걸 잽싸게 피했다. 재중이가 아저씨한테 맞아서 지금 온 몸에 멍이 들었어요.그건 알고 계세요? 하고 묻는 윤호에게 그새 몸까지 봤느냐며 이번엔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물건을 윤호를 향해 던졌다.


「학생시절에 갖는 단순한 마음이 아니에요.」
「…이 씨발놈들이 진짜…! 아이고, 아이고!!」


그대로 윤호는 재중의 집에서 나왔다. 며칠 집에 들어가지 않음과 동시에 학교도 빠진 재중이 결국 자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학교에 가면서 윤호가 준 사복을 입고 그대로 학교에 갔다. 재중을 보자마자 재중의 담임선생님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재중의 몰골에 한 번 놀라고, 복장에 또 한 번 놀라고. 그리고 자퇴를 하겠다는 이야기에 충격이 더 가해졌다. 학부모 상담을 해야하니 부모님을 모셔오라는 소리에, 담임선생님은 곧 잘못 말했다는 걸 알고 얼른 아버지를 모셔오라 고쳐말했다.


「…아빠가 편찮으세요.」
「아…그러니?」
「네.」


그래도 자퇴를 하려면 상담을 해야하고, 학부모님 도장도 받아야하고 좀 복잡해 재중아….하며 저가 자퇴하는 걸 막는 듯한 그 행동에 재중은 괜찮다며 도장을 가져오겠다 말하고 윤호의 친구 집이 아닌 다시 윤호네 근처 놀이터를 찾아갔다. 대학때문에 야자까지 하느라 윤호가 늦게 온다는 걸 알면서도 낮부터 계속 윤호를 기다린 재중이 깜깜해진 밤 사이로 걸어오는 윤호를 단 번에 알아차려 보고 얼른 달려가 안겼다.


「재중이?」
「윤호야…춥다….」
「왜 여깄어…몸은 왜 이리 차. 나 기다렸어?」
「응….」


그래도 일단은 다시 돌아가자며 윤호는 바로 앞에 도착했던 집에서 재중을 데리고 다시 자신의 친구네로 향했다. 운동을 하느라 혼자 살던 윤호의 친구도, 심심하지 않아 괜찮다며 재중이 집에 오는 걸 싫어하진 않았다. 오히려 반기는 편이였다. 윤호가 밤늦게 와서 재중을 데려다 놓고 다시 가려고 하자, 재중은 다급히 윤호를 잡고 자퇴를 하겠다 말했다. 잠시 당황했지만, 곧 윤호는 따뜻하게 재중을 안아주며 내일 보자 일렀다.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야자 하기 전에 잠깐 볼 수 있어. 하고 친구의 눈치를 조금 보더니 이마에 입을 맞춰주는 것도 잊지 않는 윤호였다.

 

 

 

 

 


 

 

 

 

 

 

 

 

 

 

 

 

 

 

 

3

 


술을 마시고 싶다는 윤호의 말에 재중은 작은 냉장고를 열었다. 소주 네 병이 그 작은 냉장고 안을 채우고 있었다. 한 병을 꺼내들고는 잔 두 개를 윤호에게 넘기고 뭐 만들어줄까? 하면서 가스레인지 앞에 서는 재중에게 윤호는 그냥 아무거나. 하고 대답했다. 얼마 남지 않은 계란을 풀어 재중은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윤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였다. 재중이 어떤 음식을 하건 다 좋아했지만 그래도 특히나 재중이 해준 계란말이를 좋아하는 윤호였다.계란말이 특유의 냄새가 집안을 진동하며 퍼졌고, 뜨거운 걸 호호ㅡ불어가며 재중은 그릇에 예쁘게 담았다. 작은 테이블 위에 그릇을 내려놓자, 윤호가 앉아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그릇이 놓여진 테이블 위에 들고있던 술과 잔을 내려놓았다.


“이거 마시면 잊혀질까…?”
“응?”
“……벗어나고싶다.”


슬픈 두 눈에 울컥한 마음에 재중은 조용히 윤호의 뺨을 쓰다듬었다. 눈물로 범벅되지 않은 뺨이 보송보송하다.


“윤호야…….”
“왜 이렇게 힘드냐.”
“우리 윤호…”
“나한테는 너뿐인데…”
“잘 살아야되? ……행복하게…잘….”


순간 윤호의 손이 재중의 가냘픈 팔목을 휘어잡았다. 해줄 수 있는 말이 고작 그거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니 윤호야. 잡은 팔목을 이끌어 윤호는 재중을 있는 힘껏 꽉 껴안았다. 계란말이 식어…니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윤호를 품에서 떼어놓으며 재중은 슬프게 웃었다. 억지로 올린 입꼬리가 다 아파왔다.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콕 찍어 윤호 앞에 들이대줬더니 윤호는 떨리는 입술로 잘도 받아먹었다.안주만 먹으면 맛없잖아. 재중이 이번엔 술잔에 술을 쪼르르ㅡ따라주었다. 울고 또 울며 서로는 그렇게 술에 취해갔다.


“…….”


머리가 아파 올 정도로 술을 마셨더니, 둘의 상태는 말이 아니였다. 눈 앞에 보이는 재중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취한 윤호가 실수로 술병을 테이블 아래로 떨어뜨려버렸다.바닥에 떨어진 술병이 커다란 소음을 내며 깨졌다. 작은 유리파편조각이 어느 새 찾아온 새벽의 달빛을 비추고 있었다. 아무 생각이 없는 재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윤호의 목을 감쌌다. 밀어내지 않고 윤호도 서있는 재중의 허리를 껴안았다. 우리…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어디로 가? 이대로 헤어져야하는거니? 그래? 아픈 마음을 파편이 찌르 듯 더 아팠다.


“곧 있으면……”
“…….”
“우리 윤호 결혼하겠네.”
“…재중아…”
“키스해주라.”
“…….”
“마지막이니까.”
“…….”
“그리고 안아줘.”
“…….”
“그거 또한 마지막이니까.”


그대로 재중은 윤호의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사랑이라는게 왜 이리도 간절하고 목을 메게 되는지…그 아픈 마음이 눈물로 쏟아지며 윤호는 미약하게 떨고있는 재중의 손에 깍지를 끼웠다. 술에 취했다지만 마지막이 될 밤을 위해서 둘은 사랑에 충실했다. 니트 안으로 집어넣은 윤호의 손 온기가 따뜻했다. 차갑지 않아 다행이였다. 길고 긴 입맞춤은 재중이 숨이 막히다는 듯한 신음에 멈췄다. 뜨거운 숨결을 내쉬는 재중의 눈가도 어느 새 젖어있었다.


“……흣….”
“진짜 사랑해…재중아….”
“나도……사랑해,윤호야……으읏.”


깊게 파고드는 윤호의 마음이 재중은 편안히 눈을 감고 그를 음미했다. 진짜 내가 없어질지 몰라도, 너만은 변하지 마라. 내가 사랑하는 건 너니까.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건 김 재중 너니까. 깊어져 가는 새벽의 달빛처럼 서로의 마음은 끝도 없이 깊어져갔다. 내일의 진짜 나는 없어. 가짜야. 너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재중아. 슬픈만큼 야릇한 신음이 공기사이를 비집고 배회했다. 현실을 믿기 싫었다. 이대로 자신이 보는 앞에서 사랑하는 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게 죽을만큼 싫었다.

죽을만큼….


“…흑…흐윽…읍.”
“…….”
“……싫다…너 보내기 싫어……흐읏…”
“나도 너 없이 못 살거같다…김 재중 없이 정윤호가 어떻게 살아.”
“그냥 이대로 …사라졌으면 좋겠어…”
“…….”


조금만 아프면 그 후로는 다 괜찮잖아. 차라리 너랑 나랑 이대로 모든 걸 뒤로하고 우리 둘만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가고싶어.19살의 김 재중이 정 윤호한테 도망가고싶다고 외쳤던 그날 어두웠던 밤처럼.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어. 여전히 우리의 사랑은 혐오스럽기 그지없게 취급당하고, 나는 오히려 너에게 있어서 좋지 못한 존재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여겨왔어. 차라리 이대로 어둠이 우리 둘을 삼켰으면 좋겠다. 이 길고 긴 입맞춤이 영원히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고 조금만 손을 뻗어도 너를 만질 수 있을만큼 가까운 거리에 너와 함께 영원히 있고싶어…. 달님, 저와 윤호를 이대로 어둠 속으로 떨어뜨려주세요…….


“…재중아.”
“……응,윤호야….”
“우리……그냥 니 말대로…”
“…….”


재중의 다리 사이에서 나온 윤호가 젖은 눈으로 재중을 쳐다보았다. 재중이 손을 뻗어서 윤호의 두 뺨을 조심스레 감쌌다. 말하지 않고도 그의 마음을 읽은 재중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윤호의 잘생긴 어깨너머로 깨진 유리파편들이 보였다.

 

여전히 파편들은 베란다 유리창 너머로 새어들어오는 달빛을 비추고 있었다.


“…다음 세상엔…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그런 세상에서 태어나자.”
“…….”
“좀 더 나은 그런 세상에서…떳떳하게 살아가자.”
“…….”
“사랑해, 재중아….”


잠깐의 고통이 서로에게 똑같이 퍼졌다. 아름답고 슬픈 붉은 빛이 바닥을 적셨다. 그렇게 붉은 빛은 흐르고 흘러, 남은 파편이 있는 곳까지 닿았다. 다음 세상에서 태어날 둘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태어날 것이다. 희미하게 머금은 둘의 입가에 묻은 미소가 그렇게 말해주고있었다. 조용한 방 안에서 다 먹지않은 계란말이가 더욱 차게 식어가고,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조금 더 나은 다음 세상을 기약했다.

 


- END .

 

-

dㅓ..음...

한동안 활동하ㅓㄴ 글쓰는 카페에서 몇년전에 쓴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잌ㅋ부끄럽기그지없네옄..

아실분들은 아시겟지만 모티브는 IF 님의 Rainbow 임당

한때 가시연 주제곡으로도 이름날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다시봐도 부끄럽기그지없으니까

전이만(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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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하...........아 아련해...............아............. 여운이 남는다 진짜.............
12년 전
한 별
어머언니소중한첫댓글너무고마워ㅠㅠ!
12년 전
독자2
선댓!
12년 전
독자3
아련해..................아주 많이 아련해.............................슬프다.............여운이 남아.........................
12년 전
한 별
소중한두번째댓글!언니너무너무고마워ㅠㅠ!
12년 전
독자4
아냐 ㅠㅠ 이런 소중한 글 써줘서 내가 더 고맙다...ㅠㅠㅠㅠㅠㅠㅠㅠ글쓴이 짱! 내가 이런 거 좋아하는데
은근히 사람들은 이런 아련한 거 잘 안 쓰더라고...고마워...간만에 아련하게 여운 남는 글 하나 읽었네
한동안 또 이 글에서 못빠져나오겠다!ㅠㅠ...

12년 전
한 별
ㅠㅠ와몇년전에쓴거라짱짱부끄러운글인데..ㅠㅠ그렇게말해줘서지짜고마워!좋은새벽되길바래:)
12년 전
독자5
헐 헐 헐허러헐ㄹ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와 진짜 대작이다 진짜 아련해진짜 와 ㅠㅠㅠㅠㅠㅠ 자까님 쩌르다... 진짜 좋다 윤재라고해서 바로 들어왔는데 이런 엄청난 글이 있을줄은 ㅠㅠ 뭐라고 말을 못하겠네요 어후 ㅠㅠㅠㅠ
12년 전
한 별
엄청난글..!이라니ㅠㅠ부족한글좋게봐줘서정말고마우이ㅠㅠ
12년 전
독자6
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좋아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련돋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역시 별님들은 문학천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거 새드맞아여??
12년 전
한 별
음..죽은걸새드로쳐야할지같은곳을보고같이가면서웃는걸해피로쳐야할지..읽는사람들에따라서다를수잇다고생각해!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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