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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조 전체글ll조회 480l 2

 

 

 

 

 

 

 

77시간동안

 

 

 

 

 

아프다, 나. 나 자신도 모르던 사실. 그것은 내가 환자라는 것. 그것도 아주 중한.

 

목이 아팠다. 목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침은 없었다. 그저 목감기일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목의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목소리도 더욱 거칠어졌다. 참으로 독한 감기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주일이 지났다. 증상은 호전되기는커녕 악화되었다. 성대가 부은 것일까, 내 목에서 무언가 잡히는 것 같기도 했다. 가족들의 재촉에 못 이겨 병원에 갔다. 난생 처음 보는 기계들이 내 몸에 달라붙었다. 무언가를 검사하고 또 검사했다. 그리고 의사가 입원을 권유했다. 나는 독한 감기임이 분명하다고. 그렇기에 이러한 검사는 쓸데없는 검사였으며 입원은 그보다 더욱 쓸모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입원은커녕 나는 진저리를 치며 병원을 나왔다. 건강해 잔병치레를 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병원은 무척이나 낯설고 있어서는 안 될 공간으로 여겨졌다.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왠지 모를 불길함이 내게 다가왔다. 덜덜 떨려오는 발에 애써 힘을 줘 집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3일 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 속히 입원하셔야 합니다. 역형성 갑상선암입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수화기를 그대로 귀 옆에 댄 채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렇기에 반문해보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역형성 갑상선암입니다.> 내 반응이 심상찮았는지 어머니가 침을 삼키시며 내 손에서 수화기를 빼내고 직접 전화 받으셨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귀에 퍼진다. 들리지 않는다. 역형성 갑상선암. …암. 내 머릿속에는 온통 병원에서 건네준 말로 가득 찼다. 툭. 어머니의 손에서 수화기가 떨어졌다. 나는 그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천천히 어머니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이 거세게 흔들린다.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차오른다. 그리고 투둑, 떨어진다. 나는 손을 들어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드렸다. 그리고 작게 미소 지었다.

 

 

 

 

 

 

_

“이호원…입니다.”

 

 

 

결국 나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시 올 때 입원준비를 해오라던 병원 측의 말은 무시한 채 나는 맨몸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독한 감기일거라고 당당히 말하며 병원을 나온 지 4일만이었다. 카운터에서 내 이름을 말하니 미리 나에 대한 말을 들었는지 안됐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런 눈, 하지 마. 독한 감기인데 분명 검사 결과가 잘못 나왔을 거잖아. 잘못 말했다, 미안하다 그렇게 말할 거잖아. 나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병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무엇인가가 나를 옭아맨다. <Dr. 김성규> 간호사가 문을 열었다. 무겁고 칙칙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간호사는 나만을 방안에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는 방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거운 공기가 나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온갖 망상이 머릿속에 자리 잡던 차에 문이 열리고 하얀 가운의 사내가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 Dr. 김성규, 그 이리라. 그가 책상 너머,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그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부드러운 선. 젊은 사람이다. 그가 가만히 앞에 놓인 컴퓨터를 들여다보았다. 그도, 나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무겁던 공기가 점점 더 무거워져갔다.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그가 입을 열었다.

 

 

 

“입원이…시급합니다.”

“…….”

“여기 보이는 이 덩어리가,”

 

 

 

눈앞이 챙 - 하는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부서졌다. 결국 하늘은 내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내 손을 내팽개친 것으로도 모자라 잘근잘근 짓밟았다. 내 손은 짓뭉개졌고 피가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내 손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가만히 바라만 보기 - 이것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호원씨.”

“…….”

 

 

 

그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그의 목소리에 나는 짓뭉개진 내 손에서 시선을 떼 그를 바라보았다. 다시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 농담을 건넨 것이라고. 사실 저 덩어리는 가래였으며 자기는 그것을 암이라 잘못 읽었다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안타깝다는 그의 눈빛이 바뀌어있기를 기대했으나 그의 눈빛은 그대로였다.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를 질식시킬 듯한 무거운 공기도.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하늘은 내 손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주지 않았다.

 

 

 

 

 

 

_

3동 306호실.

한동안 비워져있던 병실에 사람이 들어갔다. 나, 이호원이다. 하얀 시트, 하얀 벽, 하얀 바닥. 다른 색은 침범할 수 없다는 듯 온통 하얀색이다. 거칠게 병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몰려 들어왔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 동생이 내 품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비틀거리며 다가와 내 등을 껴안으신다. 등이 축축해져오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도 울고 계시는 듯 했다. 아버지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셨다. 짧은 헛기침과 함께 빠르게 창가로 다가가셨다. 얼핏 창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아버지 또한 울고 계시는 듯 했다. 이곳에서 울지 않는 것은 나 혼자였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울 필요를, 나는 느끼지 못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가족들이 어느 정도 진정된 듯하자 나는 조심히 동생을 품에서 밀어냈고 몸을 틀어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났다. 내 기척을 느꼈는지 아버지가 뒤로 고개를 돌리셨다. 눈 밑이 발갛게 변해 있었다.

 

 

 

“…호,…호원아….”

“…오빠.”

 

 

 

새하얀 병원 복을 입은 나를 보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다시 내게 안겨들었다. 아버지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셨다. 그렇게 가족들은 온종일 울다가 돌아갔다. 아니, 안가겠다고 버티는 그들을 강제로 돌려보냈다. 간호사도, 의사도 찾아오지 않았다. 입원 첫날, 온전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라는 배려 같았다. 그러나 내게는 쓸데없는 배려였다. 가만히 침대에 앉아있으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띠링. 하늘에 걸린 하얀 달을 바라보고 있던 차에 핸드폰이 울렸다. 그리 바깥세상과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민하다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오늘 약속 잊었냐?>

<아니>

<그럼 왜 안 나와!!!!!! 안 달려올래!!!!!!!!>

 

 

 

친구였다. 이틀 전 오늘 이 시간,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기로 약속했었다. 첫 번째로 아프지 않던 내가 이주일 동안 목감기를 앓고 있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두 번째로 프러포즈에 성공, 이제 결혼을 준비한다는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서. 모이기로 한 장소는 Blue.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에 있었고 Blue는 이곳과 반대쪽에 있었다.

 

 

 

<병원>

 

 

 

천천히, 조금은 손끝에 힘을 줘 핸드폰 화면을 눌렀다. 야밤에 병원에 있다는 문자에 놀랐는지 발송완료가 뜨자마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받고 싶지 않다. 전화를 받으면 필히 입을 열어 대답을 해야 할 것. 내 병명을 알아버린 지금 나는 내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전화가 끊겼다. 그러나 잠시 뒤 다른 전화가 왔다. 다른 친구였다. 쉴 새 없이 핸드폰은 다른 친구들의 이름을 내보이며 밝게 빛났다. 나는 짧은 한숨과 함께 수신거부를 누르고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마>

<어디야>

<오지마>

 

 

 

평소 느릿느릿 답장하던 녀석이라 문자 보낸 것이었는데 보내자마자 답장이 날아왔다. 아마 그곳의 분위기는 내 문자 하나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으리라. 핸드폰을 끄고 서랍 아무데나 던져 넣었다. 켜놓으면 분명 날이 새도록 전화할 이들이었다.

 

 

 

 

 

 

_

멍하니 달을 보다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가족들은 내 옆에 서있었다. 시계를 보니 8시 14분쯤. 10시까지 잠자는 것이 일상인 가족이었는데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 있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는지 눈 밑이 퀭했다. 편하게 잘 것이지. 나를 걱정하며 뜬 눈으로 밤을 새운다 해서 내 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여기를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를 걱정하는 것 대신 자기 몸을 챙겨야 했다. 한명 한명과 시선이 닿았다. 그들의 눈 밑에 다시 눈물이 고여 왔다. 나는 가족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울먹이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작은 손이 내 손을 붙잡는다. 동생이다.

 

 

 

“오빠, …밥 먹자.”

“…….”

 

 

 

반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동생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기도, 고개를 돌리기도 그리고 밥을 먹기도 나는 귀찮았다. 밥을 먹으나, 먹지 않으나. 내가 도착해야할 종점은 하나였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 변할 수 없는 것. 어머니가 가방에서 보온통을 꺼내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죽이다. 내 손에 수저를 쥐어주신다. 달칵, 문이 열리고 흰 가운을 입은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성규, 그였다. 그가 가족들에게 빙긋 웃으며 인사하고 내게 다가온다. 가족들이 황급히 자리를 비켜주었고 어느새 병실에는 나와 그, 둘만 남아있었다.

 

 

 

“담당의 김성규에요, 이호원씨.”

“…….”

“밥 많이 드셔야 해요. 모든 병의 치료는 그리 쉬운 게 아니거든요. 많이 먹어야 힘내죠.”

“…….”

 

 

 

그가 점점 식어가는 죽을 바라보며 그러면 안 된다는 어조로 말한다. 치료가 힘들다는 것은, 많이 먹어야 힘을 내 치료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치료를 받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통용되는 것. 그러나 나는.

 

 

 

“불편하시면 언제든지 이거 누르세요. 그러면 바로 올 테니까.”

“…….”

“오후에 다시 올게요.”

“…….”

 

 

 

끝내 나는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내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기색이었으나 작은 미소를 띠고 미련 없이 병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 다시 가족들이 들어왔다. 내가 그와 몇 마디 나누었던 그 짧은 시간동안 울었는지 눈 밑이 발갛게 변해있었다. 내려놓았던 수저를 다시 손에 쥐어준다. 하아. 짧은 한숨과 함께 죽을 떠먹는다. 보온병을 깨끗하게 비우자 어머니께서 그제야 웃으신다. 눈초리에 눈물이 매달려 있다. 다 먹은 보온병을 주섬주섬 챙기시는 어머니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돌연 동생이 손뼉을 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어제 오빠 친구들 우리 집 와서 난리쳤는데. 이호원 어디다 빼돌렸냐, 당장 불어라, 찾아오겠다.”

 

 

 

오빠 가출설도 말하더라. 동생이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도 난동 피우 길래 오빠 여기 있다고 말해줬어.”

“…….”

 

 

 

나는 그 소리에 인상을 쓰며 동생을 바라보았다. 평소 이렇게 바라보면 배시시, 미소 지으며 도망가기 바빴던 동생이었는데 오늘은 외려 웃으며 내 앞으로 얼굴을 내민다.

 

 

 

“조심해. 여기 와서 어제처럼 난동피울 것 같으니까.”

“…….”

 

 

 

아니, 그보다 더 심할려나? 라며 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들이 어젯밤 늦게 집에 찾아가서 무슨 행동을 했을지 눈에 선했다. 술에 반쯤 취해서 꼬이는 다리를 억지로 이끌고 무작정 문을 두드렸겠지. 나와, …나오세요오! 그러다 문이 열리면 문을 연 사람은 보지도 않고 일단 허리를 붙잡고 늘어졌을 거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꼬부려지는 혀를 열심히 굴려 말했을 거다. 이호원, 이호원 이 새끼 어디 갔어요. 병원이라는데, 아 미치겠네. 걔가 거기 갈 얘도 아니고. 어디로 날랐어요. 그 새끼 분명 가출했을 거야. 잡아와야지. 어디 갔데? 그러다 누군가의 입에서 <병원> 이라는 말이 나오면 친구들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을 거다. 술에 취해 잘못들은 거라고. 애써 걸던 최면이 단번에 풀렸을 거다. 그리고 생각하겠지. 몇 년 전 내가 그들에게 했던 말을. 내가 병원에 오래 다니거나 입원하면 내가 죽을 때가 됐다는 뜻이다. 알았냐, 인마? 건강해서 잔병치레 한번 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그때 했던 말은 순전히 농담이었다. 그들 또한 내 말이 농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때의 내 말에 농담으로 대답했었다. 그래 인마. 너 입원했다는 소리 들리면 장례 준비 완벽히 끝내놓고 문병 가마. 그 순간, 누가 알았을까. 실없이 주고받던 농담이 사실이 되어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을. 이때를 떠올린 그들은 넋을 놓은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자책했을 거다. 그때 그 말이 아닌 별 미친 소리를 하고 있다고, 너 아파서 병원 갈 일은 죽을 때까지 없을 거라고 대답해야 했다고. 심약한 몇 명은 눈물을 떨어뜨렸을 테고 다혈질인 누군가는 당장이라도 병원에 찾아갈 듯 난동을 피웠을 거다. 그러면 그 옆에 있던 녀석들이 간신히 힘으로 제압해 진정시켰을 테지. 그래, …그랬을 테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녀석을 말리는 일은 내 몫이었을 텐데.

 

 

 

“야, 이 새꺄!”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음침한 사내들이 주르륵 들어온다. 온통 하얀색이던 병실에, 슬픔으로 채워져 가던 병실에 검은 오로라가 피어났다. 순식간에 공기가 혼탁해졌다. 가족들이 잠시 당황하더니 내 친구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밖으로 나갔다. 보온병을 두고 나가려던 어머니의 손에 보온병을 들려주었다. 집으로 가라는 뜻이었다. 가족들이 나가고 병실에는 나와 그들만 남았다. 꽉 찬 것만 같은 느낌에 답답해져와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을 열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공기에 숨통이 트이는 듯 했다.

 

 

 

“말 좀 해, 이호원!”

 

 

 

다시 침대로 돌아가려던 나를 친구가 붙잡았다. 그들의 얼굴 전부가 붉게 물들어있었다. 입원하면서 아무 말 없었다는 것 에서 그들은 화난 듯 했다. 나는 그들의 팔을 뿌리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호원.”

“…….”

“이호원.”

“…….”

 

 

 

나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내가 대답할 때 까지 나를 부를 생각인지 지치지 않고 나를 불렀다. 결국 내가 지쳐 입을 열어 대답했다. 어, 라고.

 

 

 

“직접 말해.”

“……”

 

 

 

또다시 현실을 부정하려는 친구들이 귀찮아져 시선을 돌렸다. 그들이 부정하려는 것처럼 나 또한 이를 부정하고 부정했다. 다시 눈을 뜨면 이 모습이 깨어져 있기를 수백 번 빌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올 때면 왜 여기에 있냐고 집에 가라고 말해주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하늘은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고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이 몇 일간 나는 처절하게 깨달았다. 이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피식, 웃음을 흘렸다. 친구들이 달려들어 내 멱살을 잡는다. 기분이 나빠져 거칠게 친구의 손을 쳐냈다.

 

 

 

“이호원.”

“…어.”

“오늘 만우절 아니거든?”

“어.”

“…하, …그럼, 너….”

“…….”

 

 

 

친구들이 이곳저곳에 주저앉는다. 믿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이제야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깊은 한숨을 몇 번 내쉬더니 다시 나를 바라본다. 다행이 눈 밑이 발갛게 변해있지는 않았다. 누가 내 앞에서 우는 건 이제 지겨웠다.

 

 

 

“야야, 뭐냐 이 새끼 병?”

“역…형성 갑상선…암.”

 

 

 

나를 보며 물었으나 대답은 내가 아닌 다른 친구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내게 물어본 친구는 개의치 않고 여전히 나를 보며 물었다.

 

 

 

“그거 무슨 명이냐.”

“…….”

“야, 이호원아.”

“죽어.”

 

 

 

죽어. 결국 입 밖으로 내뱉었다. 가족 누구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고 심지어 의사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었으나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나는 죽는다. 흔들림 없이 내가 가야할 종착지이자 변하지 않는, 변할 수 없는 그 곳. 죽음. 이 병이 나를 인도할 그곳. 친구들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나 나는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다른 말을 원하는 그들에게 이 말 외에 해줄 말이 없었다. 다시 내 옷깃을 휘잡는다. 그리고 마구 흔든다. 절박함이 옷깃을 타고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현실을 받아드리리라. 현실은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늪처럼 더욱 옭아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살아. 너 안 죽어.”

“죽어.”

“산다고. 너, 안 죽는다고.”

“죽어.”

“입원은 곧 네가 죽는다는 뜻이라고 했던 말, 안 지켜도 된다고.”

“지켜.”

“병문안 올 때 장례 준비 완벽히 끝내고 오겠다던 약속…우리 안 지켰다고. 그러니까, 너!”

살라고. 중얼거리며 털썩 주저앉는다. 꽉 쥐어진 친구의 손이 잘게 흔들렸다.

 

 

 

 

 

 

_

모두 돌아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 내쫓았다. 현실을 외면하고 애써 웃음으로 눈물을 가리고. 뒤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고.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달칵,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온다. 성규, 그다. 그가 몇 명의 간호사들과 함께 내 옆에 서서 차트를 둘러보더니 손을 내 이마에 얹는다. 서늘한 손에서 풍겨오는 향에 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점심은 많이 먹었어요? 병원 밥 맛 어때요?”

“…….”

 

 

 

그러나 내 미소는 그가 내 얼굴을 보며 걱정스럽게 묻는 순간 지워졌다. 그가 내 미소를 보지 못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앞, 지나다니면서 보니까 되게 많은 사람이 다녀가던데. 호원씨 인기 많은 사람이네요.”

“…….”

“내일부터 치료 들어갈 거예요. 걱정하지 말구요. 다 잘 될 거니까.”

“…….”

 

 

 

대답 없는 나를 잠시 바라보던 그가 서늘한 손으로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병실을 나갔다. 그의 손에서 희미하게 나던 냄새가 내 머리로 살짝 스며든 듯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릴 때 마다 그에게서 나던 냄새가 풍겨오는 듯 했다.

 

 

 

 

 

 

_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제와 똑같은 태양이 뜨고, 병원 밥이 내 앞에 놓이고. 여전히 나를 보면 눈물이 고이는 가족들이 찾아오고, 여기서 안 나오면 병으로 죽기 전 자신들이 죽여 버리겠다고 펄펄 날뛰는 친구들이 찾아오고. 처음 또는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리고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병실을 나가 검사하고, 치료받고. 하고 또 해도 아직 검사할 것이 남았는지 나는 매일 각종 검사에 시달렸다. 그리고 내가 치료를 마치고 나올 때면 언제나 문 밖에는 김성규, 그가 서있었다. 그리고 매일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넨다. 오늘 날씨 좋아요. 병원 밥 맛있던데, 어땠어요? 소소한 일상을 몇 마디 풀어놓고 사라졌다. 우연찮게 매번 그 시간에 여기를 지나가는 건지 끝이 정해진 환자에게 작은 호의를 보이는 건지. 지금 이 시간이면 또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오리라. 달칵,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온다. 그리고 나를 데려간다. 그러나 오늘은 걷는 길이 조금 다르다. 평소보다 병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어딘가 조금은 눈에 익숙한 길이다. <Dr. 김성규>라 쓰인 문 앞에서 멈췄다. 간호사는 문을 열더니 내 등을 가볍게 밀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호원씨, 어서 와요. 306호에서 여기는 너무 먼 것 같지 않아요?”

“…아.”

 

 

 

나 그 먼 거리를 열심히 다녔으니까 잘했다 한마디만 해줘요, 라는 시선으로 나를 보는 그를 가볍게 무시하고 안으로 한발자국 더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잎에서는 저절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처음의 그 어둡고 무겁던 공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밝고 화사한 공기가 자리 잡았다. 굳게 내려져 있던 커튼은 제 뒤에 숨어있던 창문을 보여주었고, 그 앞에는 작은 선인장 두개가 놓여있었다. 온통 하얀색이었던 방 곳곳에 다른 색이 스며들어있었다. 내가 방의 변화에 놀라 가만히 서있자 그가 성큼성큼 다가와 내 팔을 잡고 의자에 앉혔다.

 

 

 

“제가 호원씨에게 가야하는데 여기 바뀐 거 보여주고 싶어서 여기로 모셔오라고 했어요. 어때요? 괜찮아요? 마음에 들어요?”

“…….”

 

 

 

나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그는 방금 전 내가 흘린 작은 탄성을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얼굴로 알 수 없는 곡조를 흥얼거리며 한쪽에 쌓인 종이를 뒤적거린다. 찾는 것이 보이지 않는지 살짝 인상을 쓰더니 이내 찾았는지 환히 웃으며 내 앞에 종이를 내민다. 나는 별 관심 없다는 눈으로 종이를 쓱 훑어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단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그러나 이 한 마디만큼은 내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호원씨 수술 날짜,”

 

 

 

<이호원, 수술>

미처 내가 듣지 못한 그의 뒷말은 날짜가 잡혔다는 말 일거다. 그리고 그가 내게 하고자 했던 말은 수술 동의서에 서명해달라는 거겠지. 그게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사무적인 이유로만 나를 불렀다는 게 서운하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알 수 없는 서운함을 몰아내고 싶었다.

 

 

 

“잘 될 거예요. 아니, 잘 되요. 나 이래보여도 유능한 의산데. 나름 이 업계에서 알아준 다구요, 나.”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쉬는 내 모습이 수술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그가 주절주절 자신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한다. 자신이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 이 방면에 대해 얼마만큼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자기를 데려가겠다고 얼마나 많은 병원에서 손을 내밀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집도한 경험이 얼마나 되는지. 나는 돌연 저렇게 열심히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그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식, 하고 짧게 웃음을 흘리며 눈을 뜨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웃었죠? 웃은 거죠, 호원씨?”

“…….”

“웃으니까 멋있는데. 좀 웃어요, 이젠!”

 

 

 

그가 몸을 앞으로 굽혀 내 입 꼬리를 위로 올린다. 그가 보기에 내 표정이 괴상했는지 입가를 부들부들 떨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린다. 괜히 기분이 나빠져 인상을 쓰고 그를 바라보자 끅끅거리며 웃음을 멈추려 한다. 그러나 웃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그는 계속 웃음을 흘리며 내 눈치를 본다. 실없는 웃음을 흘리는 그를 보고 있으니 더 이상 그가 내게 할 말은 없는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걱정 마요. 멋지게 수술 성공할 거니까.”

 

 

 

막 방을 나가려던 내 뒤로 그가 크게 외쳤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방문을 닫았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작은 미소를 띄웠다.

 

 

 

 

 

 

_

수술 날이 잡혔다는 소리에 친척들이 하나 둘, 병실로 찾아왔다. 그들 모두 숨죽여 수술의 성공을 빌었다. 누군가는 십자가를 붙잡고, 누군가는 불상을 붙잡고, 누군가는 내 담당의를 붙잡고. 모인 이들 전부가 내 눈치를 봤다. 조금이라도 내 기분이 안 좋을까, 불편해할까. 신경 쓰고 신경 썼다. 그들은 최대한 나를 배려한다고 조심히 행동하는 듯 했으나 나는 오히려 그들의 행동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내 신경을 거슬리지 않고자 내 눈치를 보는 그들이 나는 더욱 신경 쓰였다. 나는 그들이 돌아가 주기를 바랐으나 그들의 발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불편한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법이건만 수술날은 빠르게 다가왔고 어느새 오늘이 되었다. 날을 나눠 나를 찾아오던 가족들, 일가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이 모두 병실에 모였다. 그리 좁지 않았던 병실이 그들로 인해 가득 찼다. 무거운 공기가 흐른다. 어머니께서 내 오른쪽 손을 붙잡고 우신다. 아버지는 어머니 뒤에서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다독이신다. 동생은 아버지의 허리를 껴안고 눈물을 참는다. 내 왼손은 할머니께서 붙잡으셨다. 그리 건강이 좋지 못하셔서 그간 내 소식을 들으시지 못하시다가 이번 내 수술소식을 들으신 할머니는 건강하던 장손이 병실에 있다는 것을 믿으실 수 없으셨는지 <사실이 아닐 게야>만 연신 중얼거리고 계신다. 간호사가 사람들 사이를 힘겹게 뚫고 내게 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물리치고 내 침대를 이끌기 시작한다. 어머니께서 내 손을 놓지 않으시고 나를 따라온다. 할머니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지 못했다. 내 뒤로 사람들이 줄줄이 뒤따른다. 얼마 가지 않아 담당의, 성규 그가 내게 다가왔다. 가족들이 그를 붙잡고 애원한다. 선생님, 우리 호원이좀…호원이좀…. 그는 가족들을 향해 싱긋 웃는다. 가족들은 그 모습에 나름의 위안을 얻었는지 안색이 조금씩 밝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나는 천천히 그들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수술실 앞, 수술실 문이 열리고 나는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이 내 침대에 매달려 나를 애타게 부른다. 다시 나를 부르지 못할 것처럼.

 

 

 

“호원씨, 기분 어때요?”

“…….”

 

 

 

수술실 조명 아래 누워있다. 김성규, 그가 수술복을 차려입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기분? 그저 그렇다. 수술의 결말과 상관없이 내가 걸어갈 종점을 알기 때문일까. 내가 생각해도 놀랍도록 지금 내 기분은 담담했다. 성공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내 기분을 어림짐작한 듯 이런저런 말을 내뱉는다.

 

 

 

“오늘 저 컨디션 되게 좋아요. 오늘 호원씨 수술 잘된다고 장담할 수 있을 만큼.”

“…….”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취가 시작되었는지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눈꺼풀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중얼중얼 거리는 그의 목소리를 자장가삼아 나는 저 수면 너머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_

뿌옇게 흐려졌던 의식이 점차 돌아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까맣던 눈앞에 조금씩 빛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 보이는 것은 까만 어둠뿐이었다. 무엇인가 웅성웅성 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하얀 천장이 흐릿하지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살아있었다. 그리고 내 의식은 다시 뿌옇게 흐려졌다.

 

 

 

 

 

 

_

다시 내가 눈을 떴을 때에는 한밤중이었다. 손이 답답해 옆을 보니 어머니께서 내 손을 붙잡고 불편하게 잠들어계셨다. 그 옆에 아버지께서 누워계셨다. 살짝 몸을 뒤척이자 어머니께서 내 손을 꽉 붙잡아 오신다. 차마 손을 빼내지 못하고 몸을 바로 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5분.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했다. 막 일어나 뒤척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_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얼핏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갑자기 어머니께서 털썩 주저앉으신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의사가 예상한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눈을 뜨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괜찮다, 기다리면 눈을 뜰 거다, 라고 말하는 그들의 말이 거짓인줄 알았다고 한다. 영영 이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이곳저곳에 전화를 거신다. 내가 깨어났음을 알리는 전화일 것이다. 동생이 엉엉 울며 내게 안겨온다. 내가 눈을 뜨자 밖으로 나갔던 간호사 한명이 의사를 데리고 다시 들어왔다. 그, 김성규. 어머니가 그를 붙잡고 감사하다 인사한다. 그가 난처한 웃음을 띠며 당연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이었다고 답한다. 그가 조심히 어머니를 지나쳐 내게 다가온다.

 

 

 

“괜찮아요?”

“…….”

 

 

 

그가 내 이마에 손을 대었다. 처음 느꼈던 서늘한 느낌 그대로였다. 몽롱한 가운데에도 어렴풋이 느꼈던 느낌이었다. 꿈속을 헤맬 때에도 그는 나를 찾아왔던 것일까. 아니면 이 느낌을 그리워했던 내가 만들어낸 사념일까.

 

 

 

“어디 아픈데 있어요?”

“…….”

 

 

 

그가 방긋 웃으며 간호사에게 뭐라 잔뜩 지시를 내렸다. 간호사는 그것을 부지런히 받아 적더니 이내 병실을 나갔다. 그가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막 일어나서 피곤하겠지만 검사해야할 게 있어서 그러니 피곤하더라도 부탁할게요.”

“…….”

 

 

 

그가 생긋 웃고는 병실을 나갔다. 그를 기다리는 또 다른 환자에게 가는 것일 거다. 가지 않았으면, 여기 내 옆에 서서 서늘한 손으로 내 이마를 짚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이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가 그렇게 해준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기에. 내가 그에게 바랄 이유는 없었기에.

 

 

 

 

 

 

_

수술 후 나는 점차 피폐해져갔다. 그가 내 수술결과가 좋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차 나락으로 빠져만 갔다. 미처 없애지 못한 종양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방사선 치료에 들어갔다. 날이 지날수록 방사선 치료는 길어졌고 먹는 약은 독해졌다.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피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죽도 먹기 힘들어졌다. 때로는 가만히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눈앞에 영원한 나락이 찾아왔음을 나는 느꼈다. 조금씩 나락에 발을 내딛고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머지않아, 곧.

 

 

 

“호원아. 이것 좀 먹어보자꾸나.”

“…….”

“호원아.”

“…….”

 

 

 

자꾸 나락으로 빠져가는 내가 보기 안쓰러웠는지 어머니는 계속 무언가를 구해오셨다. 이게 몸에 좋다더구나. 이거 먹고 어떤 사람은 완치했다더구나. 이거 네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 몇 번은 힘들게 구해오신 어머니의 성의를 생각해 조금씩 받아먹었으나 나는 이내 먹기를 그만두었다. 귀찮았다. 나를 위한 어머니의 그 마음을 알고 있었으나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리 애써보고 발버둥 쳐봐도 나락은 그 언저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나락을 향한 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칭칭, 내 발을 이 길 위에 묶어놓은 사슬을 나는 풀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풀어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혹시’라는 헛된 희망으로 끝없이 내 사슬을 잘라내고자 노력하셨다. 싫다. ‘혹시’라는 헛된 희망도, 헛된 희망을 잡고 놓지 않는 어머니의 노력도.

 

 

 

“푹 쉬고, …어디 아프면 바로 의사선생님 부르고.”

“…….”

“엄마 갈께, 내일 …보자.”

“…….”

 

 

 

나는 끝까지 어머니가 내민 수저를 받아들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모든 것을 옆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더 이곳에 있고 싶어 하시는 기색이셨으나 나는 어머니께 더 계시라 말하지 않았다. 이 이 상 병실에 있으면 내가 짜증낸다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계셨기에 옅은 눈물과 한숨을 남기시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고요가 찾아왔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죽이 없었더라면 미동 없는 그림이라 착각할 모습이리라.

 

 

 

“호원씨.”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성규, 그가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 작은 미소를 띠고 있던 그였는데 오늘은 어떠한 미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의 기색을 읽어 내려가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힘들게 미소를 띄웠다. 그러나 그의 미소는 불안정했고 그의 불안함을 완전히 가리지 못했다.

 

 

 

“한 번 더…수술할 생각이에요.”

“…….”

“…호원씨.”

“…….”

 

 

 

한 번 더 수술한다는 그의 말에도, 조금은 굳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그의 말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그에게서 시선을 떨어뜨렸다.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는 태도로 창 너머의 푸른 하늘만 바라보았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의 시선을 나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창 너머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며 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저런 날이 있었는데. 이런 날은 공부하는 게 아니라고 외치며 학교를 뛰쳐나오다 붙잡혀 교실로 끌려가던 때가, 친구들과 툭툭 건들며 거리를 활보하던 그런 때가.

 

 

 

“호원씨.”

“…….”

 

 

 

그가 한 번 더 나를 불렀고 나는 그에 상념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아무리 과거를 생각하고 생각한들 나는 지금 여기에 있었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나락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수술, 할거죠?”

“…아니.”

“…호원씨?“

“…….”

 

 

 

뒤에서 당황한 그의 기색이 느껴졌다. 하아, 그가 한숨을 내뱉는 소리도 들려왔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재수술. 이미 나락을 눈에 담기 시작한 내게 있어서 결코 의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두어 발 정도로 뒤로 물러나게 만들 수 있을 뿐, 결코 눈앞의 나락을 지워내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다시 과거에 빠져들었다.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나락에 온전히 몸을 내맡기기 전 오래전에 느꼈던 것들을 하나씩 되새겨보고 싶었다.

 

 

 

“나, 매일 물어볼 거예요. 호원씨 재수술, 나 하도록 만들 거니까.”

“…….”

“그러니까 내 물음이 귀찮으면 빨리 그래, 라고 대답해줘요.”

“…….”

 

 

 

아프면 저 부르고, 생각이 바뀌면 꼭 저 부르구요, 라고 말하며 그가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병실을 나갔다. <아니>라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음을 그는 발소리로 표현했다. 그러나 내 대답은 이것이 최선이었다. 방사선 치료를, 화학 치료를 거부하지 않는 것이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의 최선이었다. 한다고 해서, 안한다고 해서 내가 걸어갈 길이 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에. 재수술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그 외의 다른 치료 여부와 상관없이 내가 가야할 길은 하나이기에.

 

 

 

 

 

 

_

정말 그는 매일 나를 찾아왔고 내게 재수술 여부를 물었다. 물어볼 때의 그의 눈빛은 내가 긍정의 대답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었으나 내 대답은 언제나 그의 바람과 달랐다. 목은 더 아파오고 더욱 독해진 방사선 치료와 화학 치료는 내게 재수술이 시급함을 알려왔으나 나는 오기로 버텼다. 하루 빨리 종점에 도착하기를 바랐다. 그가 말했다. 이렇게 있다가는 정말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고. 그러면 돌이킬 수 없다고. 그가 말한 위험한 순간은 그리 늦지 않게 찾아왔다. 유난히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날 밤,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졸라 병실로 찾아오셨다고 한다. 병원에 들어오던 순간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에 급히 달려 306호의 문을 여니 내 숨이 금방이라도 끊길 것 같았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셨고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내 침대 옆의 호출 버튼을 누르셨다. 한 번도 눌러진 적 없던 호출 버튼에 간호사는 급히 병실로 달려왔고 상황의 위급함을 인식한 간호사는 급히 내 담당의인 그를 호출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렇게 숨 쉬고 있을 수 있었다고. 위급했던 그날 밤 이후, 그는 시시때때로 나를 찾아와 물었다. 호원씨, 수술 -

 

 

 

“…….”

 

 

 

그러면 나는 이처럼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버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러면 그는 낮은 한숨과 함께 한마디의 인사를 남기고 병실을 나갔다. 그러나 오늘 그는 낮은 한숨 대신 내 이름을 불렀다.

 

 

 

“호원씨.”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호원.”

“…….”

 

 

 

그가 더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제야 나는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얼굴이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바뀐 시야에 나는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번에 깨닫지 못했다. 왼쪽 볼이 조금씩 뜨거워진다. 선생님! 간호사들이 놀라 외치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듯 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왼쪽 볼을 감쌌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화끈거림에 내 정신은 점차 현실로 돌아왔다.

 

 

 

“왜, 치료를 거부해? 죽고 싶어, 그렇게?”

“…….”

“너, 그러다 아무도 모르게 죽어. 며칠 전, 기억 안나?”

“…….”

“그러고 싶어? 응? 그러면 좋겠어? 죽을 뻔 한 널 보면서 널 살려라, 목이 터져라 외치시는 부모님을 보고 싶어? 자기 오빠 보겠다고 학교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오는 동생한테 미안하지 않아? 약속 따위 개나 주라면서 너보고 살라 소리치는 네 친구들은? 장손이니까 다 나아 병원을 나올 거라고 믿고 계시는 네 할머님은? 네 친척들은?”

“…….”

“그분들한테 죄송하지 않아? 살아보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네 모습이. 그저 나 죽을 거니까 다 필요 없어, 라는 태도로 여기 있기엔 죄송하지 않아?”

“……아.”

 

 

 

그가 거칠게 머리를 위로 쓸어 올렸다. 매번 환하게 웃던 모습만 봐와서 그런지 지금 내 앞에서 화내는 그의 모습이 낯설었다. 이는 간호사들도 마찬가지 인 듯 그의 옆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고만 있었다.

 

 

 

“나는? 널 살리겠다고 애를 쓰는 나는? 네 눈에, 난, 안보여?”

“……아.”

 

 

 

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오열하는 부모님. 내 앞에서 애써 웃는 동생. 언제나 같은 태도로 날 대하는 친구들. 모든 것이 파노라마처럼 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넌 죽으면 편할 것 같지? 응, 넌 편할지도 모르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

“재수술 거부하다 너 죽으면 부모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내가 못나서 치료도 못 받고 - 그 생각으로! 네가 거부한 치료! 그거 너 죽은 것도 마음 아프실 분들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버리는 거야. 알아?”

“…….”

“…그리고, 너 그렇게 가면, …나는, ……나는?”

“……아.”

 

 

 

그가 뒤돌아서서 거칠게 문으로 향했다. 그가 문고리를 잡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냥, 너 ……나가.”

 

 

 

그가 병실 문을 쾅, 하고 닫고 나갔다. 간호사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발을 동동 구르더니 그가 나를 너무 걱정해서 그런 거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 말하며 그를 쫓아 나갔다. 그가 나가던 순간,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기던 순간 그에게서 반쯤의 눈물을 본 것 같다면 그건 내 착각 일려나. 내가 뭐라고 그는 내 모습에 눈물을 보이는 걸까. 전부 눈물을 보이는 걸까. 울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을 텐데. 어떠한 치료도, 재수술도 소용없다는 것을 그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나도 잘 알고 있는데. 왜 나는 네 외침에, 눈물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살고,”

 

 

 

싶다. 차마 내 입으로 끝까지 내뱉지 못할 생각. 온전히 이 말을 입에 담을 수 없는. 내가 가져서는 안 되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완전히 끝맺어버리는 순간 간절히 바라게 될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이 생각을, 너는 내게 들게 만드는 걸까. 이 현실을 벗어나겠다 발버둥 치고 싶지 않은데 왜 그는 내가 발버둥 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다는 걸까. 그도, 가족들도, 친구들도. 내가 그러기를 바라는 걸까.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남아보겠다 발버둥치고, 소리치고. 현실과 맞서 싸우기를 바라는 걸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삐.

 

호출 버튼 위에서 머뭇거리던 내 손을 끝내 버튼을 눌렀다. 허겁지겁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전에 버튼을 눌렀을 때 내가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어서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간호사는 내가 멀쩡히 침대에 앉아 있는 것을 보더니 숨을 고르며 내게 다가왔다.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있으세요?”

“…….”

“그러면 왜?”

“……성규.”

 

 

 

나는 머뭇거리다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선생님 불러드려요?”

“…….”

“호원씨?”

“…수술.”

 

 

 

간호사가 환히 웃으며 날 껴안았다. 그가 이겼다. 살려고 발버둥치지 않겠다던 내 의지를 그가 꺾었다. 발버둥 쳐 보겠다. 그가 바라는 대로 수술 받고 한번 살아보겠다, 발버둥 쳐 보겠다. 그러면 그가 더 이상 울지 않을까. 가족들도, 친구들도. 울지 않을까. 잘 생각하셨다고 큰 소리로 외치며 간호사가 급히 밖으로 달려 나간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다시 후회한다. 왜 그가 나를 이기도록 내버려두었을까. 왜 나는 그의 말에 다시 내 의지를 불태우지 않았을까. 그의 외침에 살고 싶다고 생각 했을까. 내가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성규, 그가 함박웃음을 띄우며 내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방금 전 언제 화내며 병실을 나갔느냐는 표정이었다. 그가 나를 껴안고 고맙다, 잘 생각했다, 라고 중얼거렸다. 방금 전 간호사가 나를 껴안았을 때와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지금 그가 웃으며 나를 껴안으니 어딘가 간질간질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_

재수술날은 저번과 같이 빠르게 다가왔다. 나는 다시 가족들, 친구들에게 휩싸여 간호사들이 이끄는 침대위에 누워 수술실로 향한다. 어머니는 내 손을 쥔 채 눈물바람으로 나를 쫓아오신다. ‘재수술’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지난 수술에 괜찮다고, 잘 될 거라고 어머니를 다독이시던 아버지도 눈물과 함께 그에게 매달렸다. 잘 부탁드린다. 부디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수술을 끝내 달라. 내 동생은 울다 지쳐 내 친구에게 몸을 기대고 있다. 친구들이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나오지 않으면 저승으로 쫓아간다는 형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가 이번 수술도 지난 수술처럼 괜찮다고, 성공한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다독였다. 그러나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 누구도 쉽게 그에게 알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진정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이번 수술의 의미를, 내 상태를 느끼고 있음이었다. 그도 내게 말하지 않았으나 이번 수술은 단 며칠을 연장하기 위한 수술이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해준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가 내게 이번 수술에 대해 말할 때의 그의 표정을 보았다. 어딘가 굳어지고 부자연스러운. 그리고 내 시선을 회피하는. 쉬운 수술이 아니었다. 그가 쉽게 권할 만한 수술도 아니었다. 조금만 잘못 되면 남은 내 길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믿었다. 성규, 그를. 비록 그가 날 종착지로 가고 있는 길 위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을 지라도 두어 발 정도는 뒤로 물러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결코 내 등을 밀어 날 앞으로 가게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수술실 앞, 간호사들이 사람들을 내 침대에서 물린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내게서 손을 떼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내게 좋다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구해오신 어머니, 힘드실 텐데도 묵묵히 중심을 지켜주신 아버지, 아픈 오빠 대신 집에 웃음을 피워준 동생. 그리고 변함없는 태도로 나를 대해준 친구들. 한명 한명을 눈에 담았다. 어쩌면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못 보게 될지도 몰랐다. 성규, 그를 믿기는 하였으나 내가 걷고 있는 길은 믿음으로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작은 어긋남에도 순식간에 밑으로 떨어질 수 있는 외길이었다. 수술실의 문이 닫히고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을 때 까지 나는 그들을 눈에 담았다. 수술실의 조명이 켜지고 수술복을 갖춰 입은 그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눈웃음으로 그가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말한다.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살리겠다고. 기필코 성공 시킨다고. 단호한 그의 눈에 나는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의식이 몽롱하게 수면 너머로 사라져간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제일 처음 보는 얼굴이 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 의식은 완전히 수면으로 가라앉았다.

 

 

 

 

 

 

_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내가 서있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내 손끝조차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나는 무작정 발을 움직였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앞으로 걷고 있는 건지. 아니, 내가 움직이고 있는 건지조차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무작정 나는 움직였다. 어쩌면 움직였다고 믿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한참의 방황 끝에 희끄무레한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어쩌면 그것이 내게 다가오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희끄무레한 것은 사람들의 형체였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 즐겁게 뛰어 노는 아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들의 얼굴을 보며 무작정 발을 옮겼다. 어디로 가는지, 왜 걷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그들 사이를 헤쳐 가며 걸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그들 사이를 헤쳐 가며 걸었다. 내 눈은 그들을 담았으나 그들은 나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존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자신만이 존재한다는 듯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만 몰두했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게 홀린 듯 무작정 앞으로 걸어갔다. 더 이상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떠한 것도 없었다. 그저 앞으로 걷고, 또 걸었다. 걷다 보면 나 또한 저들처럼 이 일에만 몰두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걷는 것에 반쯤 몰두해 있던 차에 어디선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떠한 소리도 존재하지 않던 이곳이었기에 그것은 유일한 소리였고 희미했지만 귀에 담기에 충분했다. 그 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무슨 소리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고민했다. 계속 걸어야 하느냐 그 소리를 귀에 담아야 하느냐. 내 몸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지만 내 머리는 내게 말했다. 저 소리를 따르라고. 나는 힘겹게 발을 뒤로 돌렸다. 지금까지 하염없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걷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던 희끄무레한 사람들이 내 발을 붙잡았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나를 붙잡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내 발은 무거워졌고 종래에는 내 발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앞으로 넘어졌다. 그들은 내 발을 붙잡는 것을 넘어 내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움직여지지 않는다.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고자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몸에서 점차 힘이 빠져나갔다. <호원아!> 체념하고 온 몸에서 힘을 빼고 그들에게 몸을 맡기려던 찰나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누구를 부르는 건지조차 몰랐으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달렸다.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힘으로. 무작정 앞으로 달리고 달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저 소리가 누구를 부르는 건지. 나는 왜 저 소리에 달리는 건지. 그리고 다시 저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정신을 잃었다.

 

 

 

 

 

 

_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창 밖에서 눈물범벅으로 나를 보고 있는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에서 괴로운 표정으로 벽을 때리고 있는 친구들도. 무언가가 답답했다. 눈을 밑으로 내리니 웬 투명한 것이 내 얼굴을 덮고 있었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친구들 중 한명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함께 나타났다.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의 눈이 크게 떠졌고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허겁지겁 내 옆에 선 그는 한참을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조용한 그의 눈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얼마나 나를 걱정 했는지. 자기가 수술을 고집해 영영 깨어나지 못할까 두려웠음을. 힘겹게 손을 들어 산소마스크를 툭툭 쳤다. 그가 안 된다고 고개를 저였으나 나는 다시 산소마스크를 건드렸다. 결국 그가 내 뜻에 따라 내게서 산소마스크를 벗겨주었다.

 

 

 

“네 목소리가…,”

“…….”

“……날,”

“…….”

 

 

 

불렀어. 결국 나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목이 아파왔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도한 더 이상 내 목소리라 하기 힘든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도 했다. 내 목소리에 그의 눈에 눈물이 어린다. 그가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여전히 서늘한 그의 손에 나는 작은 미소를 띠며 눈을 감았다.

 

 

 

“다시 눈떠줘서, …고마워요, 호원씨.”

“…….”

 

 

 

그의 목소리에는 작은 물기가 어려 있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와 서늘한 손의 느낌에 의지해 다시 잠을 청했다.

 

 

 

 

 

 

_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306호, 내 병실이었다. 익숙한 벽, 익숙한 사물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에 젖은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눈 감지 말라고, 다시 눈을 감으면 저승 끝까지 쫓아가겠다고 협박한다. 피식, 나는 그들의 모습에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들은 알까.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재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남은 길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나는 우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을 강제적으로 병실에서 내쫓았다. 집이라 하여도 편히 쉴 것 같지는 않겠지만 어기서 몸을 구부린 채 쉬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 했다. 밤이 깊어갔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동그란 보름달이 밤하늘 한 가운데에 걸려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 달을 바라보았다. 한밤중, 잠이 오지 않는 사람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있었는지 작은 발소리가 들려온다. 나와는 관계없는 발소리라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으나 내 생각을 비웃듯 발소리는 306호 앞에서 멈췄고, 병실 문이 열렸다. 익숙한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성규, 그였다. 그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내게 다가왔다. 느껴지는 기색으로는 내 바로 뒤에 서있는 듯 했다. 나는 여전히 밤하늘을 보고 있었기에 그가 나를 보는지 밖을 보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어디를 보고 있던지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호원’이라는 존재로 가득 차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나 죽어>

 

 

 

옆에 놓여있던 핸드폰에 글을 적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핸드폰을 내게 돌려주었다.

 

 

 

<안 죽어요>

<사람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는데>

<내가 살려요>

<헛수고>

<나 못 믿어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잘게 떨리는 듯 했다. 나는 작은 미소를 띠며 그에게 다시 핸드폰을 건넸다.

 

 

 

<알잖아 재수술 소용 없는 거>

“…호원씨.”

 

 

 

내 느낌이 맞는다면 아마 내게 남은 시간은 100일. 3개월 하고 일주일정도 더 되는 날.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있다면 아마 난…. 그가 짙은 숨을 토해내며 내 침대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는다. 작은 떨림을 보건데 우는 듯 했다. 나는 그의 등을 조심히 토닥였다. 그가 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더더욱 나 때문이라면. 의사는 울고 곧 죽을 환자는 위로한다. 나는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옮겼다. 무심히 빛나는 달빛이 유난히도 마음에 들지 않는 밤이었다.

 

 

 

 

 

 

_

그날 밤 이후 그와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는 평소와 같은 웃음을 띠며 병원을 돌아다녔고, 나를 찾아왔다. 나는 무언으로 세상을 맞이했고 찾아온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만 아무 일 없어 보일 뿐 실상 그 속은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향하는 눈을 간신히 옭아매야만 했고 그를 붙잡고 싶은 손을 간신히 붙들어야 했다. 아마 그 또한 나와 다르지 않으리라. 누구 한명이 조금만 움직여도 깨져버릴 위험한 평온이었으나 이 평온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나도, 그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아주 조심스럽게.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수십 번 생각했고 시선을 돌리더라도 수백 번을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갔다. 그리고 또다시 한 달이 지나갔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더욱 피폐해져갔다. 재수술이라는 조치에도 불구하고 내 암은 더욱 덩치를 키워나갔고 방사선 치료와 화학 치료는 더욱 독해졌다.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또다시 재수술을 생각하고 있는 듯 했으나 아무도 내게 쉽게 권하지 못했다. 그 전 수술보다 더욱 위험한 수술이 될 것이기에. 더 이상 어떠한 조치도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나락을 뒤로 밀어낼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어 보이는데 나는 끝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피폐해져간다. 그 덕에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언제나 눈물바람이었다. 다들 과거의 내 모습을 말하며 뚝뚝, 눈물을 흘렸다 .친구들은 피폐해진 내 모습이 보기 싫다면서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 내가 모르게 문을 열어 나를 슬쩍 보고 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있을 거였다. 성규, 그는 더욱 오랜 시간을 내 옆에서 머물렀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곳은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그리고 내가 조금 더 이곳에서 머물 방법은 없는지 찾아내려 애썼다. 그는 내가 조금이라도 아픈 기색을 보이면 그가 더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그런 그가 귀여워 어쩔 때는 가끔 아픈 척 신음도 흘려보았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가 내 옆에 오래 머물수록 헛된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그가 내 옆에 있기를. 내가 조금만 더 그의 옆에 있을 수 있기를. 내 끝을 알고 있으면서도, 종착지까지 남은 발걸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 욕망을 막을 수 없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 나는 이 때를 후회할지도 모른다. 가져서는 안 될 욕망을 가지고 키워낸 이 순간을, 나를.

 

 

 

 

 

 

_

유난히도 하늘이 파란 어느 날. 불현듯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달력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병실에 들어온 그가 내 시선을 따라 달력을 바라보았다. 10월 7일. 그리고 그 밑에 써진 78일.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얼굴은 나보다 더욱 딱딱하게 굳었으리라. 간호사가 그의 등을 떠밀었다. 내게로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소리를 낸다.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그가 내게 이것저것을 묻더니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오늘은 서늘한 그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주지 않았다. 아마 그도 작게 써진 78일의 의미를 알아챈 듯 했다. 내가 남아있을 시간이라는 것을. 학교 점심시간에 잠시 병원에 들른 동생에게 펜과 종이를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동생은 단번에 알겠다고 대답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 한 묶음과 펜을 가져왔다. 도와줄까? 라고 묻는 동생을 내쫓았다. 펜을 들고 천천히 종이 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 치료는 끝나 있었으며 내가 따로 부르지 않는 한 병실에 들어올 사람은 없었다. 최대한 바른 글씨로 글을 쓰려고 하였으나 간간히 찾아오는 고통에 글씨는 자꾸만 흐트러져갔다. 그러나 다시 쓸 수는 없었다. 다시 쓸 시간까지 내게 허락되어 있지는 않았다. 잠시 병실에 들린 가족들도, 그도 나는 전부 돌려보냈다. 밤 9시가 되어서야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빼곡히 글이 적힌 종이를 곱게 접어 탁자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다란 가방을 꺼냈고 그 안에 차곡차곡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옷, 세면도구, 약. 11시가 넘어서 나는 내가 생각했던 물건 전부를 가방에 담을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병실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가 조금씩 사라지더니 결국 들려오지 않는다. 시간은 밤 12시. 나는 가방을 들고 문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

“…….”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성규, 그였다. 밤늦게 환자를 찾아온 의사, 그리고 밤늦게 병원을 나가려던 환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가 내가 물러난 만큼 앞으로 다가오며 문을 닫았다. 나는 침대에 다시 앉았고 그 옆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언제고 나갈 수 있다면 나갈 생각이었다. 그가 내 옆에 앉았다. 익숙한 향이 내 코끝을 맴돌았다. 그도 나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을 느낄 뿐이었다.

 

 

 

“어디…가려구요?”

“…….”

“몸도 안 좋은데…어디를 가려구요.”

“…….”

 

 

 

나는 그에게 달력을 내밀었다. 10월 8일이라는 날짜 밑에 <77시간>이라고 썼다. 그라면 별다른 말없이도 이 시간의 의미를 알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머뭇거리며 내 손을 잡는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다. 평소 좋다 느끼던 서늘한 그의 손이었으나 오늘은 그의 손이 무겁게 만 느껴졌다. 그의 손에서 내 손을 빼고자 생각하던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호원씨, …이호원씨.”

“…….”

“나, …나 당신을, ……사랑해요.”

“…….”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가 흔들린다. 그의 눈이 흔들린다. 아니, 흔들리는 것은 그의 눈이 아닌 내 눈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담담한 눈으로, 작은 미소와 함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가 보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방금 들었던 말이 공중에서 산산이 흩어지기를 바라면서.

 

 

 

“사랑해요, 이호원씨.”

“…….”

“내가, 김성규가 이호원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무척이나.”

“…….”

 

 

 

그러나 오히려 더 또렷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그가 더욱 확고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나는 옆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손에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병실 문으로 향했다 여기를 나가야 했다. 더 이상 그의 앞에 앉아있을 수 없었다. 이 이상 그의 앞에 앉아있다는 것은 그의 시간을 파멸시키는 행위가 될 것이었다. 문고리를 잡아 돌리려던 순간 그가 내 팔을 급히 잡고 나를 돌려 세웠다. 생각지 못한 그의 힘에 내 몸은 휘청거렸고 가방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그의 눈은 담담하지 않았다.

 

 

 

“내가, 김성규가 당신을 사랑한다니까요, 응?”

“…….”

“그러니까 가지 마요. …가지마. 나랑 있어.”

“…….”

 

 

 

나는 그의 팔을 뿌리쳤다. 그의 팔은 힘없이 내 팔에서 떨어졌다. 작은 미소는 불안함을 가득 담는다. 그의 눈에 작은 물기가 어린다. 나와 마주하던 그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살짝 물기에 젖은 목소리로 그가 디시 입을 열었다.

 

 

 

“우리 이럴 시간 없잖아요. 서로 보고만 있기도 아까운 시간이잖아.”

“…….”

“당신, 시간 없다며. 77시간. 호원씨랑 나 사이에 남은 시간은 그것뿐이라며.”

“…….”

“가지마. 나 용기 냈어. 당신 이렇게 보내기 싫어서. 내 마음 숨긴 채 당신 보내기 싫어서!”

“…….”

 

 

 

그가 주저앉았다. 더 이상 말할 힘도. 서있을 힘도, 날 붙잡을 힘도 없다는 듯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어깨가 작게 들썩거렸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댔다. 다리에서 힘이 빠진다. 내 몸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나도, 그도 바닥에 주저앉아있다.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가지마. 나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 안 해도 되니까. 그냥 내가 곁에 있을 수 있게만, 곁에 있기만 해도 좋으니까 가지만, …마.”

“…….”

 

 

 

바닥에 작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가만히 그 물방울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아프다. 그의 눈에서 떨어진 물방울에 내 눈에서도 작은 물방울이 맺힌다. 그 독한 치료에서도, 수술에서도 한 번도 맺힌 적 없었는데 그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에 의해 내 눈에 눈물이 맺힌다. 나는 남겠다고 해야 하는 걸까 .안 남겠다고 해야 하는 걸까. 내가 남겠다고 하면 그에게 닥쳐올 결말을 아는데. 나는 도대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걸까. 그의 미래를, 아니면 그의 마음을. 그리고 내 마음을.

 

 

 

“……호원씨, ……제발 날….”

 

 

 

그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본다. 하얀 볼 한가운데에 눈물이 흐른 자국이 나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그 자국 위에 작은 눈물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눈물에 달빛이 비춘다. 애잔히 그의 눈물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달빛에 홀린 듯, 그의 눈물에 홀린 듯. 내 손은 그의 얼굴을 향한다. 내 손 끝에 차가운 그의 눈물이 맺힌다. 나는 가만히 내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눈에도 눈물이 맺힌다. 울고 싶지 않았다. 울 생각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물에 나는 운다.

 

 

 

“……나는,”

 

 

 

한 방울, 두 방울. 나와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른다. 나도 그도 눈물을 닦을 생각을 하지 않은 채 하염없이 서로가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다. 나는 다시 손끝으로 그의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를 내 품으로 끌어당겼다. 내게 남은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77시간. 그를 눈에 담기에도, 사랑한다 말하기에도 부족한 시간. 나는, 내 결정은.

 

 

 

“…나는,”

 

 

 

그의 마음을. 그리고 내 마음을. 내 남은 시간을 전부 그에게. 내 모자란 전부를 그에게.

…사랑하는 그에게.

 

 

 

 

 

 

 

 

 

♪ copyright ⓒ 2012 by 홍은조. All Page Content is property of 홍은조

♪ 써놨던 글 정리하다가 보여서... 요러케 업데이트...?!

♪ 下는 언젠가 올라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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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제가 첫 댓글인가요?? 완전 감동.......원래 공커 선호하는데 작가님덕에 호원성규도 사랑할듯.... 호원이랑 성규 둘 다 너무 불쌍해요 ㅠㅠㅠㅠ 다음 픽 기다릴게요♥♥ 신알신하고갑니다! 전 토벤이라구 기억해주세요!!
11년 전
홍은조
엉엉 덧글 감사드립니다 첫댓글이세요 또르르 야성도....야성도 사랑해주세요s2 토벤님 머리속에 꼭꼭 입력해둘께요♡_^ 신알신 하실 그..그런 작품은 아닌데..(넙죽) 긴 글 읽으시느라 참으로 수고하셨어요^_T
11년 전
독자2
????ㅠㅠ겁나좋아 야성 이라니 ㅠㅠ
11년 전
홍은조
네네 야성이에요ㅠㅠ 엉엉 야성ㅠㅠ 겁나 좋아여ㅠㅠ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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