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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그렇게 멍하니 있었을까. 분명 집에 들어올 때는 불을 켜지 않아도 누나의 반짝이는 눈이 보일 만큼 환했는데 지금은 빨간 러그마저 검은색으로 보일 만큼 어두워졌다.
아미가 나가고 비어있는 자기 앞자리를 정국은 손으로 쓰윽 쓸었다. 누나가 좋아하는 건데. 그래서 산 건데. 같이 살자는 건 아니었다. 그냥 누나 생각이 나서. 덜컥 사버린 거였다.
오늘 말하려고 했었다. 좋아한다고. 내가 자격이 안되는 건 알지만 많이 좋아한다고.
계기라. 딱히 그런 건 없다. 태형이 건들지 말라고 귀에 딱지가 앉게 말했을 때 단지 궁금했었다. 누구길래. 호기심뿐이었다.
처음 며칠은 사람이 인간미도 없고 낯을 가리는 건지 그냥 내가 싫은 건지 대꾸도 그냥저냥.
이해가 안 되었다. 대체 저런 여자를 내가 왜. 나 좋다는 사람 많은데. 살짝만 찔러도 넘어올 여자들은 차고 넘쳤다. 좀 재수 없어 보이려나.
아미를 생각하니 정국은 실소가 터졌다. 철벽도 그런 철벽이 없었는데. 누나랑 좀 덜 친했을 때 그 당시 내가 공들이는 여자애 주려고 립스틱을 샀었는데 원 플러스 원? 이래서 하나 더 받아왔었다.
누나 이거 어쩌다가 생긴 건데 누나 써요. 저요? 내가 산거 아닌데. 괜찮아요. 나 립스틱 많아.
분명 얼마 전에 자기가 아끼던 립스틱을 잃어버렸다고 태형에게 징징거리던 것을 들었는데 말이다. 맞아. 저 때 누나는 내게 존댓말을 했었다.
다른 여자들이라면 10개가 넘었어도 받았을 거다. 그거 말고도 아미는 정국에게 늘 의외의 행동을 했었다. 뭐든 보통 여자들과 달랐다.
그래서 좋아진 건지도 모른다. 어이없고 뻔하다 할지 모르겠지만 그걸로 밖에 설명이 안된다.
태형이 이해가 될 정도였다. 저 여자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야. 뭐 이런.
[와...씨!! 악!!! 네! 여보세요?!]
정국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술 사줘요"
눈치도 지지리 없어서 내가 평소와 달라도 모르는 척, 아니 모르는 그런 사람.
그래도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
....
"야! 왜 불러내고 난리야! 잘 놀고 있었는데 분위기 다 깼네!"
"못 온다고 하지"
"그... 니가 어디 술 사달라고 한 게 여러 번이냐!"
"그럼 같이 술이나 마셔줘요"
투덜투덜 입을 삐쭉거리며 요란하게 등장하는 지민의 모습에 정국은 피식 웃음이 터졌다.
"뭐 하고 있었는데요"
"뭐 하긴 인마. 내가 아주 다 발라주고 있었다고"
"크리스마스에. 피씨방."
자기 술잔에 술을 따르면서 정국이 물었고 지민은 자신 있게 키보드를 따닥이는 제스처를 취하며 대답했다. 난 또 뭐 엄청난 거 한다고.
"그럼 어떡하냐? 석진이 형은 가족들이랑 보낸다고 가버리고 남준이 형은 나랑 점심 먹고 비행기 타고 날라버렸는데. 김태형, 이 새끼는! 아프다고 하구...."
잔을 들어 입으로 털어 넣으려는 순간 지민의 입에서 나온 태형이란 이름에 정국이 잠깐 멈짓 하더니 마저 입으로 가져갔다.
"쟈는 안주도 없이 먹네. 이모, 이모 여기 닭갈비 3인분, 아니 4인분 주세요!"
"왜 닭갈비인데요"
"내가 먹고 싶으니까"
씨익- 하고 지민은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밑반찬으로 나온 메추리알을 정국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배가 고팠는지 그냥 닭갈비가 좋았는지 정국을 위해 시킨 닭갈비였는데 지민은 익은 고기를 쉬지 않고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술이 안 땡겼는지 혼자 마시는 정국의 잔에 짠- 하고 잔만 부딪혀주고 고기만 주워 먹었다. 그렇게 맛있냐
테이블엔 지민이 비워버린 접시들과 빈 병들이 점점 채워졌다. 취하려고 먹는 술인데 취하기는커녕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그 이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형"
"앙?"
"나 벌받나 봐요"
"뭐가?"
이제 한 여자만 보려고 하는데 그것도 못하게 하네.
"아니에요. 고기나 먹어"
"우아~ 여기 진짜 맛있다! 야, 너도 술만 먹지 말고 안주도 좀 먹어"
지민은 자기 입에 넣으려다 방향을 바꿔 정국의 입에 고기를 집어넣었다.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거였지만 아무것도 안 물어주는 지민이 정국은 고마웠다. 그런 씁쓸한 얘기. 이러쿵저러쿵 꺼내고 싶지 않다.
그냥 앞에 누군가가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어? 다 익은 고기가 없는지 지민은 젓가락을 놓고 고개를 들어서 가게를 한번 쭉 보고는 눈을 깜빡거렸다.
"여기 거긴데? 저번에 태형이 룸메 처음 본 곳!"
"아미 누나요?"
고개를 숙이고 술잔만 바라보던 정국이 갑자기 고개를 확 들자 지민이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너도 같이 살지. 그때, 진짜 웃겼는데ㅋㅋㅋㅋㅋㅋ 태형이한테 막 너라고! 그리고 나한텐 뭐랬는지 아냐? 여자애라고ㅋㅋㅋㅋ"
"...."
"이거 말해도 되나? 그 아미씨! 가 너 좋아하는 것 같던데. 너 인줄 알고 태형이한테 뽀뽀도 했다?"
쿵- 둔탁한 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지끈지끈 두통이 왔다. 놓친 게 있었다. 눈앞의 상황에 화가 나서 잠깐 흘려보냈던 것.
그때 아미와 태형의 대화를 듣고 아미가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훅-하고 들어오는 키스하는 모습에 화부터 먼저 올라왔다.
아미의 말을 곱씹어 본건 그 후였다. 하지만 그때 생각했다. 누나는 절대 날 좋아할 리 없다고, 그건 잠깐 착각하는 것뿐이라고.
내가 보통 여자들에게 느끼는 감정처럼 일시적인, 그 당시만 설레고 떨리는 그런 가벼운 마음일 거라고. 누나도 분명 그럴 거라고.
"여자로 안 보이냐고 엄청 소리 질렀는데ㅋㅋㅋㅋㅋㅋ"
내 실수였다. 내 마음대로 누나 마음을 가볍게 여길 자격도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누나가 나 같은 놈과 같을 리 없는데 말이다. 누나는 내게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누나에게 진심인 것처럼.
병신 같은 새끼. 병신.
....
"우와아아아악!!! 전!! 정구우욱!!!!"
대체 얼마나 마신 건지 자기를 부르는 지민의 큰 목소리에도 헤롱헤롱.
덕분에 지민은 축쳐진 정국을 끄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일어나라꼬!!!! 더럽게 무거운 새끼야!!!"
끙끙거리며 정국의 팔을 어깨에 두르고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는 정국을 질질 끌었다.
그러다 번쩍- 정국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어디 가는데"
"어디긴 니네 집이지, 인마"
익숙한 길이었다. 새로 이사할 집이 아니라. 지금쯤 태형과 아미가 같이 있을 그 집.
"거기가 왜 내 집인데!"
아까 정국을 불렀던 지민의 목소리보다 몇백 배는 더 크게 정국이 소리쳤다.
지민은 깜짝 놀라서 남은 손으로 정국의 입을 얼른 막았다.
야!! 왜 소리를 질러! 쉿쉿!
거기가 왜 우리 집인데.... 이제 아니다. 거긴 이제, 우리 집이 아니다.
지민의 손을 뿌리치고 정국은 왔던 길로 몸을 돌렸다. 비틀비틀 곧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어디가!!"
"우리 집"
다리가 말을 안 들어서 자꾸 넘어지려 하는 걸 정국은 정신을 차리려고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저었다가 애를 썼다.
나 혼자 갈게요
붙잡아주는 지민에 정국은 됐다며 자꾸 뿌리쳤다. 평소와 다른 정국에 지민마저 약간 눈치를 챘다. 무슨 일 있는 거지 너 무슨 일 있지
혼자 보냈다가는 무슨 일이라도 낼 듯싶어 지민은 뿌리치는 정국의 옆에 계속 붙었다.
"걱정 마요. 이제 다 깼어"
정말 정국은 아까보단 정신이 돌아온 듯 꽤나 똑바로 걸었다. 슬슬 정신이 깨는 건 사실이었다.
내가 정신을 놔버리면 아무것도 모르는 지민이 날 그 집에 데려다 놓으리라. 악착같이 정국은 정신을 차렸다.
누나도 나랑 같이 이사 가면 안 돼요? 나는 누나가 나 없는 집에서 형이랑 같이 있는 거 싫은데. 아니, 내가 있어도 싫어.
같이 이사 가요. 그렇다고 같이 살자는 건 아니고. 그냥 둘이 같이 있는 걸 보기가 싫어서 그래.
나는 이제 그 집에서 못 살거든. 내가 누나 때문에 계약을 깼는데. 잘 했다고 해줘요.
그냥 모른 척. 누나가 내가 아닌 태형이 형 옆에 있어도 모른 척.
그냥 그렇게 누나랑 같이 있을 껄. 적어도 얼굴은 볼 수 있잖아.
나 때문에. 내가 병신이라서. 이제 누나랑 나는 아는 사이도 아닌데.
....
삑삑삑-
번호를 누르고 비틀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다.
이사할 집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자꾸 데려다 준다는 지민에게 알아서 갈 거라고 따라오면 다신 안 볼 거라고 장난 섞인 협박을 하고 겨우 보냈다.
집에 도착하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현관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꾸물꾸물 눈에서 쪽팔리는 게 나와버릴 것 같아서 팔을 올려 꾹 눌러버렸다.
잘한 거다. 처음으로 착한 짓을 한 거다.
누나가 꽤 진심으로 날 좋아하고 있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태형을 좋아하는 마음 또한 진심일 테니까. 그건 내가 확실히 안다.
눈치를 못 챘을게 당연하다. 겉으로 그렇게 행동을 해버리니 자기 자신도, 상대도 모를게 당연하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누난 형을 좋아하고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누나의 눈빛은 그게 아니었다.
나가 죽으라 하면서도 태형을 보는 눈빛은 그게 아닌 거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 태형이 집을 비우고 정국과 아미가 집에 남겨진 날이 있었다.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는데 아미는 한 시간에 몇 번이고 시계를 쳐다보며 궁시렁 궁시렁거렸다. 이게, 발랑 까져가지고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안 기어들어와.
그거 말고도. 잠깐잠깐 정국의 눈에 보인 아미는 그랬다. 저건 빼박 형을 좋아하는 거야.
나와 만나고, 나와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동안에도. 누나는 계속해서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억지로 꾸욱 눌러버렸는데도 결국 소매가 먹지 못한 눈물이 양옆으로 흘러버렸다.
아무 소리도 없는 방 안에서 정국의 흐느끼는 소리만 조용히 퍼졌다.
잘한 거다. 나만 새드엔딩이면 되는 거다.
나는 누나를 좋아할 자격이 없다.
이제 그만두면.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한 사람만 바라보면 될 줄 알았다.
그냥 아는 누나라고. 아무 사이 아니라고 했던 거. 사실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땐 정말 누나를 내 옆에 두고 싶다는 양심 없는 생각 따위 하지 않으니까. 입 밖으로 막 튀어나온 말이었고 그 말에 큰 의미 또한 두지 않았다.
부끄러운 짓. 정말 하지 않았다. 단지.... 단지... 난.
태형과 아미가 키스하는 모습을 본 날. 공원에서 '그 모습'을 본 날. 화가 났었고.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후에 이런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고 정말 화가 나고 답답하고 내가 싫어서. 정말 잠만. 같이 잠만 잤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것도. 잘못한 거라는 거. 나도 잘 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됐잖아. 이렇게 벌받고 있잖아.
나는 누나에게 좋은 남자가 되지 못할 테니까. 내가 변해도.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거 내가 잘 아니까.
보내주는 게 맞는 거죠. 나 잘한 거 맞죠. 적어도 태형이 형은 나보다 누나에게 좋은 남자일 테니까. 미안, 실은 많이 좋은 남자일 테니까.
미안해요. 그냥 전부 미안해요.
그리고 진심으로,
좋아했습니다.
아니 진심 왜 이렇게 쓸데없이 진지한 거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이렇게 죽을 듯이 슬픈건데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왜 이렇게..... 아련한거... 슬픈것만 쓰려고 하면.... 감정이 폭발인지...
왜 저렇게 정국이 마음을 엄청 진탕 진심으로 썼는지ㅋㅋㅋㅋㅋㅋㅋ
이해 할수가 없네요..... 넣지도 않는 브금까지 넣고.... 와핫ㅋㅋㅋㅋㅋ 저 이상해요....
이제 정국이는 다 나왔으니ㅠㅠㅠㅠㅠ
솔직히 이거 올리고도 수정하고 싶어서 난리일텐데 마음만 앞서서 얼른 올리고 싶어서ㅠㅠㅠㅠ
다음편부터는 이제 태형이와!!! 행쇼하는!!! 일만 남았죠!!!
제발 우울하고 눈물퍽발인 분위기 좀 몰아내고... 이제 핑크빛 좀 날릴게요 저도 바래요.....
또 글 얼른 쓰고! 오겠습니다~~~
정국아 사랑해.... 내가 좀 이상한가봐.............자까 취향이 좀 이래요......
감사합니다~!!!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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