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미안해요. 카페에 못 갈 것 같아요. 라는 문자만 달랑 도착했다. 도경수 씨와 얼굴을 보지 못한게 삼 주째가 다되어간다.
강남 사는 도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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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장거리 연애하는 사람들은 더 길게 얼굴을 못본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 커플들은 알콩달콩하게 연락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지, 나와 도경수 씨는 이 카페에서 조금만 더 가면 얼굴을 볼 수 있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샌가부터 연락도 뜸해졌다. 거기다가 매일같이 주말마다 하던 연락도 뚝 끊겨버렸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게다가 나는 연락이 끊긴 이유조차 얼마 전 잠깐 연락이 되었을 때 겨우 알 수 있었다. 인사 이동 후 바빠서란다. 그냥 일때문에 사람 연락이 이렇게 갑자기 끊겨버린 것이었다.
일,이주 정도는 버틸만했다. 도경수 씨는 엄연한 사회인이고 할 일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전과는 비교되게 짧고 뜸한 연락은 도경수 씨를 믿자, 그럴 사람이 아니다 라고 굳게 생각한 나를 조금씩 깨트리기 시작했다.
남편 잃은 여자처럼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가 손님이 들어오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문 받는 것도 힘들 정도. 뜨거운 커피를 쏟은 것도 아까까지 총 네번째였다. 그런 내 모습을 살펴보던 이모는 힘들면 알바를 잠깐 쉬어도 된다고 했지만 언제 도경수 씨가 올 줄 알고...
저녁시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잦아진 한숨을 쉬며 싱크대에서 더러워진 트레이를 닦는데 눈치만 보던 박찬열이 보다보다 안될 것 같은지 내 옆으로 와서 트레이를 뺏고는 수도꼭지를 닫아버렸다.
" 야 너 미쳤어? 왜 찬 물로 설거지를 해 뜨거운 물이 안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여자애 손 다 튼다. 이것 봐 벌써 이렇게 빨개져가지고"
" ... 줘 "
" 경수형 못봐서 이래? 바쁜 사람이잖아 이해 좀 해줘 "
이해? 울컥 목이 콱 막힌다.
원래 내 연락에 바로바로 답장하고도 모자라서 전화까지 매일 하던 사람이, 날 매일매일 찾아오던것도 모자라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하루라도 날 안 보면 현기증이 난다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연락을 뚝 끊고 얼굴도 안비치는데 속 안 썩고 배겨?
" 신경 꺼 "
다시 물을 틀고 벅벅 다른 트레이를 닦기 시작하는데 박찬열은 또 물을 끄면서까지 나를 가만두지 못했다.
" 신경 끄라고? "
" 좀 가, 가서 할 일이나 해 "
" 야 "
" ... "
"막말로 헤어졌어? 경수형이 헤어지자고 했냐고, 좀 못 볼 수도 있지 애처럼 왜 이래? "
아 진짜... 낮게 욕을 내뱉은 뒤 손에 꽉 쥐었던 스펀지를 신경질적으로 던지고 앞치마를 벗었다. 이 상태로 일은 무슨 하다가 병만 날 것 같아 이모에게 알바 좀 쉰다며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나와 말없이 패딩을 입었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박찬열이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 너 진짜 철없게 행동하지 좀 마 "
" 철없어서 미안하다 "
그러며 내 팔뚝을 잡은 박찬열의 손을 거세게 내쳤다.
뭘 안다고 충고질이야.
성큼성큼 카페를 나가려하는데 때마침 안으로 들어오는 김종인 씨의 얼굴이 보였다.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화색을 하는데 애꿎은 사람에게 화내기 싫어 그저 작게 목례만 해주고 지나쳐버렸다.
죄송해요 김종인 씨 제가 아직 철이 없어서.
종인은 아무 말 없이 굳은 표정으로 나가는 ○○를 보다가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와 카운터에서 아씨.. 하며 짜증을 내고 있는 찬열에게 다가갔다.
" 왜 그래, ○○씨는 또 왜 저러고 "
" 아 존나 답답하잖아요 "
찬열은 거칠게 뒷머리를 털며 인상을 썼다. 종인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남은 대답을 기다렸다.
" 경수 형 안온다고 저래요. 일하는 사람을 얼마나 귀찮게 굴어야 속이 시원한 건지 모르겠어요. 죄다 우리처럼 종강을 해서 여유가 많은 것도 아니고 "
" 아.. 도경수 씨 "
하며 마른 침을 삼키는 종인도 사실 이번 애플리케이션 개발 부서로 인사 이동 발령이 난 경수를 마주치는 건 가끔 함께먹는 점심 때나 여러 심부름으로 앱 개발 부서에 잠깐 들릴 때 밖에 없었다.
운이 좋으면 회사 로비에서 마주치긴 하지만
" 안녕하세요 "
매번 피곤해 쩔어있는 모습으로 인사만 받아줄 뿐이었다. 게시판에 적혀있는 인사 발령일보다 조금 빨리 올라와줄 수 있겠냐는 말에 서둘러 책상 위를 치우던 경수는 " 자주 놀러올게요. 김종인 씨도 우리 부서 자주 놀러와요 " 하며 서운해하는 종인을 위로했지만 가끔 놀러가는 건 종인뿐 기획부 쪽에서는 경수의 머리카락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애초에 한 부서에 신입사원을 두 명이나 보내 준 것부터 경수의 인사 이동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일이었다. 리터소프트가 무리해서라도 시장을 확대한다는 소문은 일찍부터 IT 업계 바닥에 파다하게 소문이 나있었다. 그것도 창창하게 떠올랐다가 지금 살짝 지고있는 스마트폰 앱 쪽이라면 처음에 팡 터뜨려서 단단하게 입지를 다져야 하는 법. 그런 쪽에 오직 좋은 대학교 컴퓨터과학과만 나온게 자랑인 종인을 보낼리가 없었다.
아마 이번 인사 이동은 경수에게 경험이 되라는 좋은 의미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는 사장 아들로서 후계자로서 자격을 판단하는 시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부터 종인은 경수의 인사 이동을 일찍 눈치채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자신의 눈에만 안보이는 줄 알았더니 카페에도 안왔다니... 종인은 크게 숨을 뱉고 계속해서 짜증을 내는 찬열에게 말했다.
" 그래서 너는 뭐라고 말했는데 "
" 아니.. 철없게 행동하지 말라고... "
찬열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헛웃음을 치는 종인
" 커플 싸움에 함부로 끼어드는 거 아니야 "
" 그래도 답답하잖아요. 경수형이 노는 사람도 아니고 "
" 여자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도 있는거야. 이런 거 보니까 우리 찬열이 아직 멀었네, 나중에 사과해"
그 말에 찬열은 억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왜 사과를.. 그냥 철없이 굴지 말라고만 한 건데.. "
" ○○씨. 도경수 씨 얼굴 못 본지 꽤 되고 연락도 안돼서 서운하고 힘들었을 거야. 근데 거기다 너가 철없다고 말하면 당연히 화나지 "
일리있는 종인의 말에 찬열은 입만 우물거렸다. 진짜 사과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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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땅만 보며 걸아가다 집 앞 골목길이 눈에 보이면서부터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매일 여기서 나 내려다주고 같이 손잡고 집 앞까지 걸어가고 담벼락 아래에서는 포옹도 하고.. 거기다 마지막 데이트 할 때 같이 사진도 찍고 입도 맞추고,
발걸음을 따라가면서 이 좁은 골목길에는 너무 많은 애정이 서려있음을 느꼈다.
박찬열 말처럼 도경수 씨가 나보고 헤어지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연락 좀 안될 뿐인데 왜 이렇게 서러운지
훌쩍훌쩍 울음을 삼키며 집 안으로 들어가자 티비를 보고있던 엄마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 딸 왔ㄴ.. 우니? "
" ... "
엄마의 물음에도 아무대답없이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풀썩 엎드려누워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마음같아서는 소리라도 지르면서 울고 싶었지만 굳이 따라들어와 이유를 묻지 않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조용히 울 수 밖에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이렇게 관계가 소원해진게 너무 갑작스러워서. 영원히 붙어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내가 철이 없다. 영원한 건 없는데
너무 힘들다.
자꾸 도경수 씨가 머리에 차오른다. 진짜 보고싶은데. 애타서 먼저 연락하면 맨날 바쁘다고만 하고...
애써 눈물을 훔치며 여전히 은은한 빛을 잃지않은 커플링을 만지작거렸다.
나한테 안아달라고 어린아이처럼 굴던 도경수 씨가, 질투에 눈이 멀어 까칠해진 도경수 씨가,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이쁘다며 웃어주었던 도경수 씨가 눈 앞에 이렇게 아른거리는데. 나는 아직 함께 하고싶은게 너무 많은데. 사귄지 얼마나 됐다고 한참 깨가 쏟아져도 모자랄 시기에 벌써 이런 일이 닥치는지, 도경수 씨를 원망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할 뿐이다.
" 이렇게 이쁜 여자가 도경수 여자 였으면 좋겠어요 "
눈오던 그 날이 도경수 씨가 내게 반지를 주었 때가 한 겨울밤의 꿈만 같은데. 어떻게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매정하게 변할 수 있는지.
드라마 여자주인공들이 일이 중요해, 사랑이 중요해를 외치는게 공감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일이 뭐길래
참 어이가 없네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침 뚝 떼시면 나는 어찌합니까.
그토록 강렬하게 흩뿌려 놓고 지금 와서 슬쩍 다른 데 가 계시면 나는 뭡니까.
이게 대체 무슨 경우랍니까.
내 몸과 마음은 이미 폭싹 다 젖었는데.
<소나기가 끝나고 난 뒤> 이정하
*
미안해요. 카페에 못 갈 것 같아요.
문자를 보낸 뒤 핸드폰을 떨구듯 책상 위에 던져놓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대체 ○○씨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지 며칠 째가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려했지만 도저히 돌지않는 입 맛에 받자마자 버리고 올라와 다시 밀린 업무에 들어가는데 파티션너머 기획부 같은 팀에서 함께 이쪽팀으로 인사발령을 받은 김대리님의 전화받는 목소리가 날카로울정도로 커졌다.
" 이건 일반 개발부로 넘겨주셔야죠! 이 부분까지 저희가 어떻게 커버를 쳐요! "
그와 함께 주위를 둘러보니 미친듯한 업무분량에 같은 부서 사원들은 서로 어색한 기류를 느낄 새도 없이 기계처럼 모니터에 얼굴만 박고있었다. 가끔 농담도 하며 한가지 재밌는 일이 생겼을 때 다함께 웃고 떠들던 기획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얼마 없는 인력에 잠깐 자리를 비운 과장님과 팀장님 업무가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탓에 예민해진 김대리님 또한 팀 분위기에 한몫했다.
" 지금 개발부에 사람 있으면 그쪽으로 넘기시라구요. 안그래도 신규 부서에 아직 팀도 하나라 저희도 업무가 밀리고 밀렸는데 사람들 피 말려 죽일 일 있어요? 빨리 개발부에 사람있는지 확인해주세요. 있으면 이거 그쪽에서 할 수 있는지 도경수 사원 보내서 해결할테니 그렇게 전해주세요 "
뜬금없이 들리는 내 이름에 의자에서 일어나니 여전히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김대리님이 손만 내밀어 두꺼운 파일과 USB를 건내주었다.
" 들었지? 조금있다가 개발 2팀 팀장님 돌아오신다니까 갔다오고 "
순간적으로 느낀건지 아니면 원래 이랬던건지 넓은 층에 나름 준비했다고 준비한 하나밖에 없는 우리 부서 분위기는 그야말로 찬바람이 불었다. 탁타다닥 타자 치는 소리와 가끔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 일체 대화없이 종이만 팔랑거리는 소리는 김종인 씨가 몰래 떠드는 소리, 민대리님의 장난끼 섞인 화내는 소리에 익숙한 내게 낯설기 짝이 없었다.
모든 업무는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진행되고있었다. 정식명칭 스마트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부서지만 아마 이번 신규 사업을 위한 임시 부서명일 뿐. 아마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스마트 폰 소프트웨어를 디딤돌 삼아 요즘 대기업의 강력한 투자를 받고있는 사물 인터넷, 즉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있는 사물에 네트워트를 연결하는 사업으로 전향하고 투자를 늘릴 것이다. 한마디로 신규사업부 라는 이름이 더 적합한 부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자 기기로 유명한 제성기업과 연계되어있는 사업에 까딱하다가는 투자자를 잃을수도,수십억,몇백억대 손실을 입을 수도 있는만큼 중대한 임무에 회사 임원진들의 주목을 받고 있기때문에 팀원들이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 팀장님 돌아오셨대, 한 번 가서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이해 안가는 부분있다고하면 프레젠테이션을 해서라도 이해가게 만들고 와, 절대 우리쪽에서 못하는 일이니까 "
모두가 극도로 예민해져있는 상태에 큰소리를 내기 싫어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파일과 자료를 챙겨들었다.
지친 몸을 엘레베이터에 싣고 거울 쪽에 몸을 기대 천천히 닫히는 엘레베이터 문만 바라보았다. 홀로 있는 적막한 엘레베이터 안은 회사 내에서 유일하게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 되어주었다.
힘들다.
보고싶다.
그럴 때마다 컴퓨터 배경화면에, 핸드폰 갤러리에 저장되어있는 그녀의 사진을 보곤했지만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고 애정어린 말을 나누고 손을 잡고 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공허함이 남는다. 보지못한 동안 어디 아픈 건 아닌지, 매일 밤 혼자 집에 들어가는게 무섭지는 않은지, 혹시
내가 보고 싶지는 않은지
내게 불같이 화내시는 개발2팀 팀장님께 몇번을 허리를 숙이고 죄송하다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다시 우리 팀으로 돌아가기 위해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걷는데 끼니도 거르고 맨날 앉아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못해서일까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현기증이 돈다.
자판기 앞에서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최팀장님이 어이구 하며 나를 잡아주셨지만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 도경수 씨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다른 팀원들처럼 가끔 야근도 빼고 융통성 있게 해 "
" ..괜찮습니다 "
팀장님은 나를 복도 의자에 앉히고 작은 종이컵에 넘칠 듯 찰랑거리는 물을 떠다주셨다.
" 내가 안타까워서 그래, 회사 사람들부터 사장님까지 도경수 씨한테 부담주는 거 잘 알아 "
" 그래도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
" 이번 사업 끝나면 도경수 씨가 어쩌면 나보다 더 높아질지도 모르지 "
자판기 커피를 들고있는 팀장님은 이정도?하며 검지와 엄지를 볼펜 길이만큼 벌려보이곤 쓴웃음을 지으셨다. 중국에 몇년간 파견을 나갔다가 겨우 다시 돌아왔더니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하루도 쉴 날이 없는 새프로젝트팀 팀장직에 고등학교 자식을 둔 한 가장인 자신이 언젠가는 조카, 아들뻘 남자에게 굽신거려야 할 미래가 뻔히 보이니까
" 그래서 나도 싫어, 근데 도경수 씨도 하고싶어서 하는 거 아니잖아 "
" ... "
나는 말없이 비워버린 종이컵을 구겼다.
" 힘들 거 아니야.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장님 아들답지않게 많이 애쓰는게 눈에 보이더라고 "
" 감사합니다.. "
한참 적막이 가라앉고 꾹꾹 눌러접어 더이상 종이컵이 접히지 않을 때 였다.
" 사장님이 허락해주셨어 "
" ... "
" 제성전자에서 인력 지원 들어오는 거 말이야, 일이 좀 더 편해지겠지. 더 빨리 끝나고. 성공률도 높아지고 "
그렇게 인력 지원은 안된다고 모든 건 우리의 기술력으로 독자적으로 진행하라고 하시던 분이.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 이번 주까지만 고생해, 아니 금요일 날 인력 지원 오는 거 축하하는 회식이라도 해야하나 "
하며 하하 웃는 팀장님에 긴장이 풀린 나머지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이번 주까지만..
그래 이번 주 까지만 하면 평소대로 그녀를 보러 갈 수 있다.
버티자.
조금만 더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당신이 내게
가장 소중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신과 내가 함께 나누었던
그 시간들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당신을 생각하느라 지새운 밤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까닭이다
< 소중한 까닭 > 이정하
그 다음 날 점심, 다다음날도 금요일날까지 빠르게 밥을 먹고 카페에 찾아온 종인은 여전히 카운터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있는 찬열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 어, 형, 갑자기 점심시간에 자주 보네요 "
" 아직도 ○○씨는 안와? "
종인이 아직 인적없는 홀을 보며 카운터 앞으로 다가가자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는 찬열
" .. 잠시 알바 쉰다고 말했잖아요. 이모님께서 시급 좀더 올려주신다고는 하는데 혼자 일 다 하니까 너무 힘들어요 "
" ... "
" 걔가 있으면 같이 수다라도 떨지..맨날 같이 있어서 몰랐는데 없으니까 엄청 심심하네요 "
" 도경수 씨때문이야? "
" 에이, 경수형때문이면 오히려 카페에 붙어서 오매불망 경수형만 기다릴 걸요 "
머리를 긁적거리며 괜시리 하하 웃는 찬열
" 제가 그 때 말을 심하게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까 걔도 경수형 못본지 하루이틀이 아니더라구요 "
" 삼 주.. 정도 ...? "
" 어, 네 삼 주 정도인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니까 엄청 길어보이네요... "
그리고는 작게 사과해야하는데... 하며 중얼어리는 찬열에 종인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 주.. 도경수 씨가 인사 이동한 날과 얼핏들어맞는 시간...
한참 가만히 서서 무언가 생각하던 종인은 연신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밀려들어오는 손님에 급하게 인사를 하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 도경수 씨, "
종인이 경수에게 찾아온 것도 오랜만이었다. 팀이 여러개로 나뉘어져 한결 가벼운 기획부라도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텅 빈 사무실 안, 점심도 먹지않고 혼자 앉아있는 경수는 종인이 온지도 모르고 일이 잘 풀리지않는지 이마 부근을 꾹꾹 누르며 여전히 시선을 문서에 꽂은 채 깊게 숨을 내뱉었다. 종인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 편의점에서 산 피로 회복 음료를 책상 위에 소리나게 올려두자 그제야 고개를 드는 경수
" ..김종인 씨가 여기까지 웬일이십니까"
" 요즘 일 많이 힘들지, 보니까 맨날 야근하는 것 같던데 "
그 말에 경수는 몸에 힘을 빼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느릿느릿 꿈뻑이는 눈꺼풀에는 금방이라도 잠들어버릴 것 같이 피곤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 .. 안힘듭니다 "
곧있으면 붉게 충혈될 것 같은 눈으로 가당치도 않은 거짓말을 하는 경수에 종인은 직접 음료수 뚜껑을 비틀어 건냈다.
" 안힘들기는, 회사에 소문 다났어, 사장님 아들 눈에 불키고 일한다고, 맨날 야근에 밥도 안먹는다며 "
" 가끔은 먹습니다 .. "
" 나랑은 맨날 먹었잖아, 요즘 한대리님이랑 같이 먹는데 너무 재미없어 "
" ... "
" 정말 도주임이 도대리 되고 도대리가 도과장 되는 건 금방인가보네 "
오랜만에 듣는 종인의 우스갯소리에 음료수를 한 입 들이킨 경수는 슬쩍 입꼬리만 올렸다.
" 몸 상해, 적당히 해, 기획부에 있을 때 야근하는 날이 손에 꼽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많이하면 쓰러진다니까 "
" 그냥 이것저것 처리해야 할 일도 많고.. 빨리빨리 하려다보니까.. "
" 이번에 제성에서 이쪽 부서로 인력지원 들어온다며 "
경수는 인력지원 이라는 말에 더이상 바쁘다는 핑계도 댈 수 없는 터라 턱, 하고 목이 막혔다.
" 카페갔다왔어 "
" ○○씨는.. "
카페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손톱으로 탁탁 음료수 병 겉면에 붙어있는 종이를 뜯는 경수의 손길에는 불안감이 가득 담겨있었다.
" 한동안 못봤는데... "
" ... "
" 오늘은 야근 빼고 카페에 가려는데 너무 늦게 왔다고 화 내려나요..."
그녀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로 실없이 웃는 경수를 바라보던 종인은 잠깐 고개를 돌려 시선을 멀리두다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 오늘은 가도 없을거야 "
" ... "
" 카페 알바 잠깐 쉰대,
불안하게 종이를 뜯던 경수의 손이 멈추었다. 당황한 나머지 갈 곳을 잃은 눈동자는 한참을 방황하다 종인의 얼굴에서 멈추었다.
" 어디 아픈건가요, 아니면 무슨 일 이라도.. "
" 안나온지 조금 됐어, 저번에 내가 본게 마지막 같은데... "
" 저.. "
저... 하고 작아지는 목소리는 힘없이 허공에 떨어졌다.
" 때문인가요... "
본래의 경수답지않게 힘없는 목소리에 아무리 바빠도 카페에 한 번쯤 얼굴 좀 내비춰주지 그랬냐라고 타박하려던 종인은 마른침만 삼켰다. 똑같이 많이 힘들어보이는 모습에 그저 도경수 씨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 아냐, 그동안 카페 꼬박꼬박 잘나왔잖아, 우리 연차쓰듯이 잠깐 쉬는 거겠지 "
하지만 그 말에도 경수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그동안 잘버텨왔는데
" 그리고 찬열이하고 싸웠대, 들어보니까 찬열이가 말을 이쁘게 안했더라고, 내가 가서 찬열이 많이 혼내줬으니까 도경수 씨는 가서 ○○씨 잘 달래줘 "
그 말을 끝으로 파티션에 몸을 기대 짝다리를 짚고있던 종인은 으쌰 힘을 주어 제대로 서서는 말했다.
" 내가 바쁜 사람 괜히 와서 찌른 거 아닌가싶네 "
" 벌써 가시는 겁니까 "
" 벌써 가냐고 물어보면서 어째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하나도 안담겨있네 "
인사 이동 후 웃을 일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에 매일매일 피폐해져가는 자신이었는데 갈 때까지도 자신만의 조크를 날리며 작게라도 웃을 수 있도록 해주는 종인이 오늘따라 너무 고마운 경수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에게 까닥 목례를 했다.
그에 종인은 일어나지말라며 손을 휘적이다가 이내 밝게 흔들던 손을 멈추었다.
" .. 도경수 씨 "
" ... "
" 나 도경수 씨 바쁜 거,힘든 거 다 아는데 "
느리게 눈을 깜빡거리는 경수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머쓱하게 자신의 뒷목을 매만지는 종인
" 근데 또, "
" ... "
" 무작정 기다리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어 "
무작정 기다리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어, 종인은 의미심장한 말만 남기고 엘레베이터 쪽으로 사라져버렸다. 경수는 다시 앉으려던 몸을 그대로 멈추고 종인이 사라진쪽만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먹지도 않은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있는 것 같다.
그것도
늘
<상처> 원태연
퇴근 시간인 여섯시가 다가오자 경수의 팀은 여느때와 같지않게 붕붕 뜬 분위기였다. 인력 지원이 들어온다는 것이지 일이 마무리 됐다는게 아닌데도 말이다. 그러나마나 경수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사무실 가장 안쪽에 계신 팀장님이 일어나 박수를 두어번 쳐 관심을 끌었다.
" 자, 다들 고생했어요, 못전해들은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드는 경수
" 저희 회사와 협력을 맺고있는 제성 전자에서 인력 지원을 해주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바로 다음주부터 파견 오니까 잘들해주시고 "
그리고 어... 하고 미간을 찌푸리던 팀장님은 곧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이제부터는 여유로워질 것 같으니 그런 의미로 회식이나 할까요? "
회식이라는 소리에 여기저기 구석에서는 아...하는 짜증이 담긴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지만 대부분은 좋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카페에 가고 싶지만 그녀도 없고 그저 쉬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여기서 안가겠다고하면 분위기를 깨게되는 터라 경수는 어쩔 수 없이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다.
빠지는 사람은 없어야한다면 일일히 한 명,한 명 다 챙겨 식당에 데려온 팀장님은 그간 일이 많이 고되었던 건지 무리할 정도로 술을 들이키셨다. 다른 사원들과 다르게 나를 바로 옆자리에 앉혀놓고 풀린 혀로 힘들게 무언가 말하려는 팀장님에 귀를 기울였다.
" 내가 중국에서.. 돌아온지.. 얼마안됐거든..? "
본래 개발부에 계시던 최팀장님의 중국 파견근무는 익히도 많이들었다. 2년정도였을까
" 돈도..많이 주고.. 2년만 고생하면! 빨리 승진 시켜준다고.. 그래서 갔다왔는데... "
그 말에 우리 테이블에 있던 팀원들의 시선은 모두 팀장님에게 집중되었다.
" 개뿔이.. 후회 중이야...그냥 내 새끼들... 보면서 그냥... 한국에 있을 걸... "
한국에 있을 걸... 하고 뱉는 갈라진 목소리에는 깊은 후회가 담겨있었다.
" ...가족들이.. 나 일하러 가는 거 다 알고.. 매일매일 연락해주겠지.. 했는데.. 어쩔 수 없더라고... "
" ... "
"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이거 진짜.. 맞는 말이야... 가기 전에.. 맨날 아빠..아빠..하고 불러주던 애들이... 돌아오니까.. 훌쩍 커버려서는.. 집에 들어가도.. 나와보지도 않고... 부인은 시큰둥하고..내가 누구때문에 사는데! "
그리고는 후, 하고 억지로 술을 깨려 고개를 좌우로 젓는 팀장님에 윤과장님이 안경을 올려쓰며 말씀하셨다.
" 팀장님 오랜만에 일찍 집에 들어간다고 기분 좋아서 너무 많이드셨네, 그래도 팀장님 자식들하고 사모님 때문에 살지 않습니까 "
" 그렇지... 내 새끼들.. 부인.."
" 그럼 이만 드시고 집에 들어가보셔야죠 "
이 자리를 자꾸만 파하려는 윤과장님이 살짝 초조해보였다.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보니 시간은 어느새 8시를 훌쩍 넘어가버렸고 한 명,한 명 이만 집에 들어가봐야한다는 사람이 생겼다.
" 자, 도경수 씨도 받아! "
술자리가 막바지로 흘러가고 그동안 일체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던 내게 술을 건내는 팀장님. 다른 분 같았더라면 차가 있다고 받지도 않았을테지만 이미 기분이 상할대로 상하신 팀장님의 기분을 맞춰드리기 위해 빈 잔을 들었다.
" 도경수 씨.. 애인 있다며.. "
사귀고 나서 얼마지나지 않은 시점에 그 소문이 퍼졌을 때는 꽤나 부담스럽고 곤란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거라는 김종인 씨의 말이 딱 들어맞게도 지금은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는데...
쫄쫄쫄 가득 채워진 잔을 그저 들고만 앉아있었다.
" 그동안 일때문에.. 만나지도 못했겠네 "
잠깐 팀장님의 시선이 앞쪽으로 향했을 때 잔을 한쪽에 놓고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 아무리..세상에 2년.. 군대 기다려주고.. 남자 기다려주는 여자 많다지만.. 짧더라도 기다리는 건... 힘든 거야.. 우리 부인이 그랬어.. "
오늘 김종인 씨한테도 한 마디 듣고 팀장님한테서도 한 마디 듣고, 다 ○○씨를 기다리게 하지말라는 이야기들 뿐이다. 윤과장님께서 팀장님 전화왔어요. 하며 맥을 끊자 나는 상 아래로 몰래 폰을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정말 내가 그녀를 많이 기다리게 한 것일까 하며 통화 목록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확연히 인사이동 전과 차이나는 통화 내역에는 하루도 연락 안 한 날이 꽤 눈에 띄었다. 착잡해진 마음에 주고받았던 문자도 확인했지만 오늘 카페 오는거죠? 하며 애정이 가득 담긴 그녀의 문자에 내 답장에는 언제 썼는지도 모를 회의중입니다. 나중에 연락할게요.하는 단답만이 자리 잡고있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이라도 당장 전화해서 일은 다 끝났다고 이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전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용히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 다들 이만 집에 들어가보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월요일날 보자고 "
얼마남지 않은 팀원에 술에 취해 도저히 주체가 안되는 팀장님 대신 법인카드를 꺼내든 윤과장님이 서둘러 회식을 끝냈다. 외투를 챙겨입고 자리를 뜨는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계산하러 가신 윤과장님이 돌아오실 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 계속 중얼거리는 팀장님을 보니 한 집안의 가장이 이렇게 왜소한 존재였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 내가 누구때문에 사는데! ”
비록 술에 취해 무심결에 외친 말이었지만 팀장님의 그 한마디에는 뼈가 있었다. 팀장님의 살아가는 이유가 아내와 아이들이었다면 그를 위해 열심히 일했더니 결국엔 외면당하는 현실이라는 말인가, 조금 씁쓸한 현실에 미지근한 물만 들이키는데 상 위에 올려진 팀장님의 핸드폰이 작게 울렸다.
비몽사몽 술기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팀장님을 대신해서 핸드폰을 보니 평소 자상한 성격답게 예쁜 마누라 라고 저장되어있는 이름이 보였다. 몇번이고 사모님 전화에요 라고 말했지만 받을 생각을 안하는 팀장님에 어쩔수없이 연결버튼을 눌렀다.
「 당신 어디야? 오늘은 빨리 온다며! 」
받자마자 날카롭게 쏘아붙이지만 걱정이 한가득인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 .. 안녕하세요 팀장님과 같은 부서에 있는 도경수 주임입니다 "
낯선 목소리에 전화 너머엔 정적이 흘렀다.
「 그 이 거기 있나요? 」
" 네, 조금 많이 취하셨는데.. "
「 회식 끝났으면 지금 바로 택시 태워서 여의나루역 4번 출구쪽으로 보내주세요, 부탁할게요 」
네, 죄송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고 팀장님을 바라보니 문뜩 다시 한 번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은 외면당하는게 아니라 어쩌면 벌어진 틈을 메우는 방법을 모르는 것뿐이라고.
바쁘게 다시 뛰어오신 윤과장님과 팀장님을 부축하고 찬바람이 부는 도로변까지 나가 힘들게 택시 하나를 잡았다. 그렇게 팀장님을 먼저 보내드리고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삐질삐질 땀을 흘리는 윤과장님은 끝까지 수고했다며 내 어깨를 두어번 쳐주신 뒤 다른 택시에 올라타셨다.
아직 회사 주차장에있는 차를 타기위해 쌩쌩 날쌔게 달려가는 차들과 여러 도시 소음을 배경음 삼아 터덜터덜 딱딱한 보도 위를 걷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한 방울도 입에 대지않았던 알싸한 술냄새가 기분을 한층 더 심화시켰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회사 빌딩 저 위, 아직 꺼지지않을 불빛들이 나를 반겼고 천천히 걸음을 늦춰 지하가 아닌 회사 뒷편에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문을 열기위해 손잡이를 잡는데 갑자기 빌딩 숲사이로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그대로 멈춰서 컴컴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찬바람이 더욱 거세게 내 얼굴을 감싸왔고 휘날리는 머리카락에 살풋 미간을 찌푸려 검은 하늘을 눈에 가득 담았다.
하지만 매일같이 내 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 호수 > 정지용
*
침대 위에서 슬며시 눈을 뜬 나는 닫혀진 창문가를 바라보았다. 붉은 가로등 불빛만 새어들어오는 모습에 밤임을 직감한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버릇처럼 핸드폰을 켰다.
아무런 기대없이 킨 폰에는
부재중 전화 다섯통이 도착해있었다.
모두 도경수 씨에게서 온 전화였다. 아직도 저장된 이름에는 박찬열이 저장한 하트가 그대로였다. 순간 너무 벅차오르면서도 허탈한 기분에 핸드폰을 잡은 손에 힘을 빼고 헛웃음을 쳤다. 그렇게 보고싶었는데...
막상 이렇게 연락이 오니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가만히 앉아 핸드폰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톡하고 꺼지는 액정 화면에 다시 홀드버튼을 눌러 또 가만히 있기를 반복, 마지막 부재중 통화로부터 30분이 지난 지금 혹여라도 전화를 받을까 망설이던 끝에 꾹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 들리는 연결음 끝에 들리는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명량한 여자 목소리에 다시금 기분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무릎을 끌어안고 또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계속해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절망감에 얼굴을 무릎에 묻고 더이상 눈물도 나오지않는 무표정으로 지끈거리는 머리가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렸다.
먼저 연락이 오면 미친듯이 화도 내고 밉다고도 말하고 보고싶었다고도 하고 지금 빨리 만나자고 조를려고도 했는데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다시, 또다시 더 멀어지는 걸까 살짝 고개를 들어 허공에 시선을 두고 한참을 생각했다.
한순간에 이어진 인연은
이렇게 또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가벼운 것일까
여전히 아른거리며 붉게 비쳐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신경쓰였다. 몇년간 살면서 우리 집 앞 골목길은 그저 길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아니었는데 언제 이렇게 그리움이 담긴 곳 중 하나가 되었을까,
지금이라도 달려가면 가로등 밑에서 내게 손을 흔들어줄 도경수 씨가 있을 것 같은데
그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괜히 헛된 희망만 품게한다. 도경수 씨가 내게 전화를 했을 때부터 한 시간 가까이 지났는데 말이다.
그래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을까
항상 나를 기다려주었던 도경수 씨니까
차갑게 얼어버린 창문을 열어 확인해볼까, 손 끝을 유리창에 가져다대보니 시리도록 찬 기운에 등골부터 소름이 돋았다. 뭐가 그렇게 두려운건지 섣불리 가져다 댄 손을 때버리고 얇은 외투를 챙겨입은 나는 방문을 열었다.
나를 움직인 것은
헛된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런 헛된 희망을 현실로 이루어주 듯 조심조심 나선 집 밖,
의지할 것이라고는 가로등 밖에 없는 어두컴컴한 골목길
그 곳에 도경수 씨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간 내가 그대로 멈춰있자 도경수 씨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 올라가는 여전히 이쁜 입꼬리,
현실이다.
" 오랜만에 보네요 "
오랜만에 보네요. 삼 주만에 만난 그가 내게 건낸 첫인사였다. 이렇게 얼굴을 보면 눈물까지 흘리며 엄청 기쁠 줄 알았는데, 조금씩 마음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화와 원망이 뒤섞여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오랜만에 봐? 그래 오랜만이 보는거죠. 근데 도경수 씨는
" 아무렇지도 않은가봐요 "
작게 웅얼거린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그가 느리게 내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 앞으로 일이 널널해졌어요. 이제 원래로 돌아갈 수 있ㅇ.. "
내 머리를 쓸어넘겨주려던 도경수 씨의 손길에 고개를 흔들며 살짝 뒷걸음을 치자 뚝 말을 끊는 그
" 화났어요? "
살짝 비스듬히 기울여 내린 시선을 올려 똑바로 그를 바라보았다.
" 화났냐구요? 지금 여기서 화 안나는게 더 이상한거에요, "
갑자기 내가 큰 소리를 내자 도경수 씨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삼 주동안 제대로 된 연락은 커녕 거의 잠수타다시피 했는데. 오랜만에 보네요, 화났어요? "
" ... "
" 저한테 할 말이 그렇게 없어요?
보고싶었어요, 일이 많이 힘들지는 않았어요,새 부서는 어때요, 그동안 무슨 일 있지는 않았어요.
저만 해도 이렇게 할 말이 많은데.
어떻게, 기껏 한다는 말이,
" 미안해요 일이 너무 바빠서.. "
" 지금 그 말이 듣고 싶은게 아니잖아요!! "
그런 사과 받으려고 지금 여기에 제가 서있는게 아니에요
보고싶었다고, 많이 보고싶었다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홀로 집에 돌아올 때 외롭지는 않았냐고,하고 싶은 말도,듣고 싶은 말도 너무 많은데. 왜 도경수 씨만 몰라요
씩씩 거리며 아무 말없이 마주보고 있는데 바람을 타고 코 끝에 맴도는 진한 술냄새에 하, 하고 짧게 숨을 뱉었다.
" 이번에 옮긴 부서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ㅅ "
" 술 마시느라 바쁘셨겠네요 "
내 말에 변명을 하던 도경수 씨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갔다.
" 회사 회식이었어요. 뺄 수도 없는 자리였다구요 "
" 아, 네 "
비소가 담긴 얼굴과 빈정거리는 말투로 대답을 하자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기는 그
" 저 좀 이해해줘요. 그리고 오늘 술 한 방울도 안마셨어요. 제 최선을 다한 거에요 "
이해..조금씩 촉촉해져오는 눈가에 눈을 위로 향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더이상 이러고 있어봤자 상처받는 건 내 쪽일 것 같아 어깨를 집 쪽으로 돌리니 그가 내 팔목을 세게 붙잡았다.
"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요! 왜 이렇게 어리게 굴어요 "
" 너 진짜 철없게 행동하지 좀 마"
도경수 씨의 한마디와 박찬열이 했던 말이 겹쳐 들려온다.
차라리 제가 너무 어려서 땡깡을 부려도 다 눈감고 넘어갈 나이였다면 상황은 더 나아졌을까요. 힘들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곳이 왜 제겐 없을까요. 여기서라도 털어놓으면 괜찮아질까요. 울컥 하고 눈물이 차올랐다.
" 힘들어요. 힘들었어요! 너무 힘들었다구요... 주위에서는 다 그냥 도경수 씨를 이해하래요. 그냥 무작정 이해하래요 저보고, "
" ... "
" 제가 어디까지 이해해야해요? 저도 한계가 있어요... 아 도경수 씨가 많이 바쁜가보다. 아무렴 회사 때문에 많이 바쁘겠지,도경수 씨는 어른이니까 그래 . 백 번은 더 생각했어요. 매일 도경수 씨가 끼워준 커플링 보면서, 즐겁게 찍은 사진 보면서, 근데.. 그걸 도경수 씨가 모조리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잖아요... "
" 제가..! "
" 삼주가 삼십 개월같고, 매번 바쁘다는 소리로 먼저 연락을 끊었을 때!! 제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아요? 미친듯이 비참했어요! 유치하게 누가 더 좋아한다라고 말하기는 싫지만 도경수 씨에 대한 제 마음이 더 커져버린 것도 너무 싫었고! 그냥...!.. "
끝끝내 참지 못한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버렸다. 흐윽 하는 흐느낌도 미세하게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 그냥... 다 싫었어요... 도경수 씨도... 다.. "
다 싫었어요. 도경수 씨도, 다. 그 말은 비수가 되어 경수의 심장에 꽂혔다. 하, 하게 짧게 숨을 뱉은 경수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주춤거리다가 마른 침을 한 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 제가 대체 지금까지 뭘 해왔는지 모르겠네요 "
비 내리듯 눈물을 떨구는 그녀를 달래줄 생각 없이 경수는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말을 이어갔다.
" ○○씨가 완전히 절 믿고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요? 제가 그동안 완전한 믿음을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요? "
" .. "
" 저도 보고싶었어요.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도, 전무님께 상황 보고를 하면서도 매번 ○○씨 얼굴이 차올라서 말조차 다 못할 때가 다반사였어요. 저도 많이 힘들었다구요. 바쁘다는 말로 먼저 연락을 끊어버렸을 때 지금 현실이 너무 싫어서 차라리 직장을 그만두고 평생 옆에 붙어살면 안될까 하는 어이없는 상상까지 해본 적도 있어요! "
“ 먼저 회사에 제대로 자리잡는게 우선순위 아니겠니? ”
“ 연애때문에 경수 너에게 지금 당장 중요한 걸 놓치지말거라 ”
파노라마처럼 머릿 속을 지나쳐가는 부모님의 말씀에 경수는 눈 앞이 까마득해졌다.
" 저도 유치하게 누가 더 좋아한다 안좋아한다라는 말 하기 싫지만 그동안 항상 해왔던 생각이 하나 있었어요. 제가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항상 매번 제가 먼저 질투하고 사랑을 거침없이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봐요. 제 사랑이 많이 부족했나봐요. ○○씨가 느끼기에는 제가 "
경수는 물기 가득한 눈가로 턱 막혀오는 숨에 잠깐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그리고는 이내 시선을 피하고 입을 열었다.
" 많이 부족한가봐요 "
부족한가봐요. 하고 순간적으로 작아지는 목소리와 함께 끝끝내 참았던 눈물이 탁 터졌다.
" 많이 힘들었겠네요.. 부족한 저 좋아하느라 "
또다시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 저도 지금은 조금, 많이 힘드네요 "
아무 대답없이 바닥에 시선을 놓고있는 그녀에 답답해진 나는 그녀의 팔을 부서질라 아프지않게 잡으며 호소했다.
" ○○씨가 듣고 싶은 말이 뭔지는 모르지만 지금 제 마음만은 알아달라고 발악하는 거에요 "
얼굴을 보기 전까지만해도 분명 할 말이 한가득이었는데 머릿 속에 새하얘진다. 그저 현재의 감정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말만 뒤죽박죽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보고싶었다고, 너무 보고싶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왜 이리 모진 말만 나가는지.
어쩌다 우리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조심히 그녀의 팔목을 잡았던 손을 풀고 고개를 숙였다. 미세하게 떨리는 숨결과 함께 나오는 하얀 입김이 허공에 흩어졌다.
이와중에도 그녀의 얇은 외투가 신경쓰인다. 계속 이러고 있으면 감기라도 걸리는 건 아닌지
" 들어가요. 나중에.. 나중에 이야기해요 "
그리고 여느때와 다르게 먼저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골목길을 나오면서도 차에 타면서도 후회가 마음 속에 가득 차올랐다.
그런 말은 하는게 아니었는데
아직 시동을 걸지않아 차가운 공기가 가라앉은 차 안, 애꿎은 핸들을 주먹으로 치고 이마를 박고 나 자신을 질책했지만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문뜩 조수석에 두고 내린 핸드폰이 어두운 차 안을 밝게 비추고 눈물에 흐려진 시야 사이로 만나기 전 그녀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 두 통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와 함께 눈물은 더욱 거세게 떨어졌고 낮게 소리를 내며 흐느낄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안맞기보다 엇갈린게 아닐까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부탁> 나태주
보고싶다.
*
분위기 상 사담은 요약글로 할거에요, 글 분위기를 계속 이어 나가고 싶으신 분은 클릭 안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하이 여러분 리히터예요!
ㅎㅎ...
여러분들... 특별편 이벤트때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원츄하신 장면이 진지하게 싸우는 장면이었자나요.. 그렇자나요.. 사실 이 편은 거의 10화 할 때부터 미리 생각을 해놓았던 편이었습니다... 근데 여러분들이 막 싸우게 해달라고해서 당황..!!
무튼 부제목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죠 네.. 우리 도부자 커플도 한낯 커플입니다. 언제까지나 꽁냥꽁냥 해피해피 깨발랄할 수는 없죠 그래서 더욱 오늘 해피해피 한 분위기 즐기러 오신 독자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크네요 흡... 흐규ㅜㅠ
와
인티에
인물 이름 치환 설정이 생겼어요!!!!!!!!!!!!!!!!스고이!!!!!!!!!!!스게!!!!!!!!!!!!!!!!!!! 쩔어염!!!!!!!!!!!!!!!!!!!!!!!!!!!!!!! 이게 무슨 와!!!!!!!!!!!!!!! 일단 00편은 한번 치환설정을 해봤는데 음.. 개인적으로 조금 걱정도 했습니다. 독자분들 중에서 개인의 이름을 넣는건 각자의 취향이고 또 다른 가상의 여성을 집어넣어서 드라마처럼 보시는 분들도 많은지라,
하지만 빙의글이라는 글의 특성에 맞게 저는 밤에 모든 편에 인물 이름 치환이 가능하도록 수정을 할 예정입니다. 만약 자신의 이름을 넣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한 여성의 이름을 정해서 넣으셔도 되고 몰입을 하실 수 있으시다면 그대로 보셔도 좋습니다.
..
결론은
인티 쩐다구요
이런 훌륭한 기능이라니 짱짱맨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렇게 메일링을 환영해주실지 몰랐어요...ㅎㅎ...☞☜
.. 지금 알려드려서 죄송한 사실이지만 메일링 1차는 암호닉 신청자 분들에 한해서 진행될 예정이구요 2차,3차는 상황을 지켜본 후 암호닉이 아니신분 또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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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너구리걸님/면하트님/우비님/망고님/카페알바생님/아메리카노님/정수정수연님/바닐라라떼님/굔듀님/뽑뽀님
됴됴륵님/종순이님/몽구님/복숭아님/핫초코님/첸스님/모나리자님/쀼님/2평님/맴매맹님
꽯뚧쐛뢟님/이웃집여자님/제인님/베이비파우더님/데후니님/안녕님/안열님/랭거스님/6002님/사랑둥이님
부릉부릉님/전봇대님/딸기님/설렘사님/소녀님/제이너님/경수하트워더님/민속만두님/시카고걸님/모카님
찬효세한님/마름달님/세시님/로운님/스누피님/언어영역님/모찌님/블리님/도즈님/SH님
메리미님/쉬림프님/박력탬님/드보봅님/프라이빗님/타오네엄마님/씽씽카님/됴로롱/됴숭됴숭님/거뉴경님
카푸치노님/으니님/고구마님/툐툐님/세젤빛님/율스루님/뽀로로님/시나몬님/청담동앨리스님/우럭우럭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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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빵님/허니님/초코나무숲님/두유님/Believer님/아퀼라님/츄파츕스님/티슈님/까꿍님/잼잼님
찰떡님/0227님/파파이스님/됴아됴아님/니나노님/으하힝님/공듀님/꽃돼지님/피타츄님/메추리알님
된장찌개님/고고싱님/부릉님/버들님/스무디님/세로고님/강남김송이님/붕붕이님/종인씨는제게와요님/에베베님 ( 핰.. 제 정신머리가...에베베님도 제 러브러브 받으세요 )
젤리냠냠큥님/피클님/연어덕후님/공공칠빵님/낑깡님/반시님/요다댥님/두부님/꼬르륵님/리잰님
아쿠님/혹시몰라경고하는니니님/백허그님/윤아얌님/Joboo님/레몬사탕님/타앙슈욱님/종인미인님/자몽님/테라피님
쭈꾸미님/콩이님/얼음팩님/도른도른님/Mercy한양갱님/언더더씨님/징니님/쯔덩님/워니님/찌통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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