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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연 전체글ll조회 1921l 1







그 먼 곳이 내게는 가장 가까운 곳,

내 안에는 너로부터 도망 갈 곳이 한 곳도 없구나.



  





-김혜순, 한 잔의 붉은 거울中



  



  



                 


 

[iKON/준혁] Parado | 인스티즈 

  

Parado : 정류장 

  

w.리연 

 






아침잠이 많은 건 괴롭다. 얼굴 위로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잔뜩 찌푸려지는 미간은 정말인지 어쩔 수 없다. 가뜩이나 인상 사납다는 소리를 조금 듣는 얼굴인데, 여기서 더 험악해지면 어쩌라는 건가 싶다. 이런 내 얼굴을 본 김동혁은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의 가장 재미있는 코너를 볼 때처럼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무거운 눈꺼풀이 아직은 들릴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열린 귀를 통해서 들려온 김동혁의 목소리는 시끄럽다기보다는 창문을 두드리는 참새 같았다. 때문에 그냥 베개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김동혁이 혼자 조잘거리며 웃는 걸 들었다. 그 애는 쉴 새 없이 웃었다. 웃음이 참 많았다. 김동혁은.
 




“왜 계속 웃냐. 너.”

 

제법 진지한 척을 하며 물으면 김동혁은 씰룩거리는 제 얼굴을 멈추려고 노력하면서 똑같이 진지한 척을 했다.

 

“네 얼굴이 너무 웃겨서 그래. 안면근육이 참, 잘 움직이네.”



김동혁의 진지한 말투는 얼마 가지를 못했다. 결국 또다시 시원스레 웃어젖히고 말았다. 내 머리의 까치집이 이유였다. 아, 나도 스트레스라고. 자고 일어나면 멀쩡하던 머리가 왜 이렇게 되는지. 나름대로 변명을 했건만 정작 변명을 듣는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게다가 김동혁은 내 머리를 더 헤집어 놓기까지 했다. 그때까지도 거의 눈을 뜨고 있지 못한 나는 김동혁의 그런 행동에 결국 눈을 뜨고 말았다.  하지 말라고 하면 꼭 더 하는 김동혁의 모습이 귀여워서 이번엔 내가 웃음이 터졌다.



“아 왜 웃고 그래.”



내가 저를 보고 웃는 게 민망한지 김동혁은 제 머리를 긁적이고는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이리 와. 머리 다시 정리해 줄게.” 

병 주고 약 주고냐 하고 툴툴대자 김동혁은 손에 들고 있던 빗으로 내 팔을 아프지 않게 쳤다.



“자꾸 그러면 안 해준다, 좀 가만히 있어봐.”



김동혁이 그렇게 말하면 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무 말 없는 순한 양이 됐다. 모 도넛 회사가 도넛을 사면 사은품으로 끼워주던 하얀 인형-지금은 김동혁의 베개로 쓰이는-처럼 말이다. 머리 위를 오가는 빗과, 살짝살짝 스치는 손의 느낌이 좋다고 생각했다. 김동혁은 또 자냐며 내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그런 김동혁에게, 네가 내게 주는 나른함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크지 않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더 이상 짜증 나지 않았다. 슬쩍, 햇살이 간질이는 볼 위를 손으로 쓸었다. 햇빛이 묻어 나오지는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서 김동혁의 볼을 쓸었다. 뜬금없는 행동에 김동혁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아침을 준비했다. 그건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자 둘이 아침을 해 먹기엔,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김동혁은 손이 느렸다. 둘이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토스트 하나를 만드는데도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런 김동혁을 보다 못한 성질 급한 내가 아침을 다 차려버리는 날도 있었다. 물론 기적처럼 일찍 일어났을 때만 말이다. 김동혁은 그런 날이면 애정표현이 더 늘었고, 그런 김동혁의 모습에 나는 괜히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행복해하곤 했다. 내일은 한번 일찍 일어나볼까 생각하면서 김동혁의 뒤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배고프지 김동혁, 어제 저녁도 조금밖에 안 먹었잖아.”

“뭐, 그렇긴 하지. 근데 너 지금 뭐 하냐.”



뭐 하긴,

이제는 제법 제 손가락 대신에 당근을 잘 자르는 김동혁을 뒤에서 살짝 껴안았다. 왜 안 하던 짓을 하냐며 묻는 김동혁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그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칼질하는데 신경이 쓰이는지 자꾸 밀어내려고 하는 김동혁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제야 김동혁이 칼질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하라는 요리는 안 하고, 지금 이게 뭐 하는 건지?”

김동혁이 짐짓 화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가 뭐.”

시치미를 뚝 떼는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좀 어린애 같았다. 김동혁도 그렇게 느꼈는지 네가 아직도 고딩인 줄 아냐면서 나를 타박했다. 이러다가 아침이 점심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김동혁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김동혁을 놓고 식사 준비를 했다. 쌀을 깨끗이 씻으라는 잔소리는, 사랑하는 애인의 말이라도 살짝 무시하기로 했다.



밥을 먹는 김동혁을 볼 때면 꼭 토끼가 토끼풀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어쩜 저렇게 젓가락질도 야무지게 하는지, 편식도 안 하고 잘 먹는지. 밥먹는 김동혁을 관찰하는 것은 꽤나 재미있다. 밥은 안 먹고 왜 다꾸 저를 보냐는 김동혁의 말에 그제야 나도 젓가락을 들었다. 

이번에는 김동혁이 밥을 먹고있는 내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조금 민망해질 정도로 느껴지는 시선에 집중해서 밥을 먹는 척했다.



"구준회."

"어?"



김동혁이 젓가락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싶어 장조림을 집으려다가 멈춰 서 김동혁을 바라봤다. 김동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말을 이었다.



"너 자꾸 편식할 거야?"



아,

김동혁은 늘 내 편식을 못마땅해했다. 때문에 고기만 먹으면 충분한 영영소를 섭취할 수 없다며 잔소리를 했다.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그러니까 우리가 고등학생 때 그 잔소리는 특히나 심했다.  김동혁은 내게 편식을 하면 키가 크지 않는다며 위협했다. 그러면 나는 편식 안하는 너보다 편식을 하는 내 키가 7cm는 더 크다고 대꾸하며 김동혁의 작은 키-본인은 대한민국 평균이라고 주장하는-를 놀렸다. 제가 평소에 나를 놀리는 건 생각지도 않은 채 내가 저를 놀리면 김동혁은 꼭 토라지곤 했다. 화를 풀어주기 위해서 점심시간 후에 매점에서 지갑을 여는 건 언제나 내 차지였다.  



"이제는 키도 다 컸잖아."

"그래도 건강에 안 좋다니까."



내가 TV에서 봤는데 편식을 하면 어쩌고저쩌고...

입이 풀린 김동혁은 쉴 새 없이 잔소리를 계속하면서 내 밥 위에 나물을 차례로 얹어줬다.  어떻게 김동혁을 피해서 나물을 버릴까,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






 

  

  


김동혁은 옷장에서 잘 다려진 셔츠 하나를 꺼내 입었다. 하늘색이 김동혁과 잘 어울렸다. 내가 좀 멋지네라고 칭찬하자 김동혁은 쑥쓰럽다고 하면서 키득거렸다.  김동혁은 오늘도 회사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핸드폰의 전원을 켜서 시계를 봤다. 2014년 1월 2일 오전 10시였다. 



"김동혁, 너 지각 아니야?"

평소에 바쁜 척이란 바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서둘러서 준비하던 김동혁이었다. 내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김동혁이 얼마나 바쁜지는 잘 알고 있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평소보다 준비를 느리게 하더니,  출근 시간을 훌쩍 넘어버린 것이었다. 프리랜서인 내가 회사 생활을 모르긴 몰라도 지금 시간을 확실히 정상적인 출근 시간과는 거리가 멀다. 

"아, 오늘은 출장 가. 그쪽으로 바로 가서, 조금 늦게 가도 돼."

김동혁이 코트를 입고 현관에 서면서 말했다. 나는 김동혁에게 서류 가방을 건네줬다. 까먹을 뻔했다며 김동혁이 미소지었다. 

"잘 갔다 와. 끝나면 전화하고."

김동혁은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며 먼저 자라고 말하고서는 현관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꽤 경쾌했다.  



"내일이 네 생일인데, 어떻게 먼저 자."



김동혁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마저 하고선  나도 책상으로 향했다.







 

  

  

*







 

  

  

"아.."
 

  




울리는 벨소리에 잠이 깨버렸다. 발신자는 아니나 다를까, 김동혁이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벌써, 열두시가 되기 전까지 십분을 남겨두고 있었다. 잠이 확 깼다.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김동혁. 어디야."



'어? 아 준회야...'





김동혁의 목소리는 조금 머뭇거리는 목소리었다. 내가 제 전화 때문에 잠을 깬 걸 알아차렸는지, 무슨 부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목소리에는 약간의 미안함도 섞여있는 것처럼 들렸다. 



"무슨 일인데."



핸드폰을 목과 어깨에 끼운 채 나는 코트를 입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제과점이 모두 닫아버릴 것이다.  지갑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김동혁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 좀 데리러 오면 안 돼...? 비가 너무 많이 와.'



아. 



어쩐지 김동혁이 전화를 다 한다 했다. 아침에는 분명 날씨가 맑았는데, 저녁부터 비가 온 모양이었다.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겨울인데도 말이다. 김동혁은 20분 정도 후면 도착한다고 했다. 정류장으로 나가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직 안 닫았겠지."

혼잣말을 하면서 현관문을 나섰다. 한 명이 쓰기에는 조금 큰 검은 우산을 썼다. 우산 위로 비가 툭툭 떨어졌다. 빗길이지만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분명 정류장 근처에 늦게까지 하는 제과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 저기."



다행히도 아직까지 제과점에는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우산을 접고 들어가서 케이크를 하나 샀다. 김동혁이 좋아하는 초코케이크였다. 생일 초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점원이 케이크를 사면 생일 초를 공짜로 준다고 말해줬다. 큰 초를 두 개 작은 초를 여덟 개 사니 점원이 여자친구분 생일이신가 봐요 하면서 웃었다. 애인 생일이라서 샀다고 대답한 후 다시 정류장으로 향했다.



반대쪽 정류장에서 멈추는 버스에서 김동혁이 내렸다. 아직도 오는 비에 김동혁은 제 서류 가방을 머리 위에 놓고 비를 피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김동혁이 나를 봤는지 왼손을 들고 빠르게 손을 흔들었다. 편의점에서 우비라도 사지, 멍청하게 비를 왜 맞아. 물에 젖은 김동혁의 모습이 조금 속상했다. 그때 횡단보도의 불이 켜졌다. 김동혁은 빠르게 내 쪽으로 뛰어왔다. 나도 김동혁 쪽으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다. 



바뀐 신호와 빗길에 맥을 못 추는 버스가 있었다. 버스는 눈앞에서 김동혁을 덮쳤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손에 들고 던 케이크 상자를 떨어뜨렸다. 시야가 점점 뿌옇게 변한다 . 김동혁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한다.

세상이 거꾸로 돌기 시작한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저 쪽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다리는 움직이지를 않았다. 더 이상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차 소리가 들린다.



































 

  

  

"헉...하..."





 

  

  

  

  

정신을 차렸다.  빠르게 진동하는 폐부의 움직임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 정류장에 맨발로 서있었다. 손에는 우산과 핸드폰뿐이었다. 비도 오지 않았고. 김동혁도, 버스도 없었다. 핸드폰을 눌러 시간을 봤다. 2015년 1월 1일 오전 12시 29분. 그제야 나는 완전히 제정신을 차렸다. .





















 

  

  

  

  

  

  

  

  

오늘은 김동혁이 죽은지 360일 하고도 나흘이 지난 날이었다.











*







그대여, 지금 어디쯤 오고있는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도 가시지 않은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이 자리에 서있다.



-이정하,나무와 비





 

  

  

  

* 

  

  

  

  

  









우리의 감정선은 오래된 케이블 선과도 같았다. 너무나 오래되었지만, 고치거나 바꿔버리기에는 귀찮은. 그걸 사람들은 권태기라고 불렀다. 설렘은 익숙함으로, 익숙함은 진득이 눌어붙은 지루함으로 변했다. 



원체 매사에 잘 질리는 성격이었다. 김동혁은 내게 있어서 예외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우리가 사랑을 말하던 그 기나긴 시간들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고 여전히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지만 더 이상 같은 꿈을 꾸지 않았다. 사랑스럽기만 하던 작은 단점들은 지적해야만 할 큰 단점들로 변했다. 눈이 마주치면 싸웠고 그마저도 시간이 약간 흐른 뒤에는 싸움조차 없었다. 하루에 길어야 말 다섯 마디를 나눴다. 그게 전부였다. 



김동혁은 어떻게든 우리 관계를 바로잡고 싶어 했다. 그 애는 많이 노력했다. 그게 내 눈에도 보였다. 



준회야. 이번 주말에 전시회가 있대. 마침 표를 아는 분이 주셨는데, 보러 가자.



구준회. 이거 먹어봐. 네가 저번에 먹고 싶어 했었잖아. 우연히 길 가다가 보여서 샀어. 먹어봐 준회야.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전시회가 표를 구하기 얼마나 힘든 건지. 김동혁은 그걸 구하느라 인터넷을 이 잡듯이 뒤졌을 것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하얀 딸기 케이크를 사려면, 김동혁의 회사와는 완전 반대쪽에 있는 서울 외곽까지 가서 두 시간은 기다려야지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나는 전시회를 가지 않았고, 케이크를 먹지 않았다. 그냥 김동혁이 그런 노력을 하는 것조차도 아니꼬워 보였다. 우리가 정말 닳아빠진 끈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것 같이 느껴져서 맥이 빠졌다. 



헐어버린 감정의 구멍은 쉽게 매워질 수가 없었다.











*









창가에 서글픈 비가 뚝뚝 떨어지는 날이었다. 



책상 위에 엎드려 작년 12월로 되어있는 달력을 넘겼다.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날짜는 오늘이 아니라 다음 날이었다. 김동혁의 생일. 2014년 1월 3일 자에는 크게 빨간색으로 동그라미가 되어있었다. 그걸 보고서야 나는 김동혁의 생일을 기억했다. 1월 3일이 되기 10분 전에.

작년 김동혁의 생일에는 한 달 전부터 준비를 했었다. 김동혁이 출근하는 날이면 그때를 틈타서 영상편지를 찍었고, 김동혁이 쉬는 날이면 담배를 피러 나가는 척하면서 동네 놀이터에 가서 영상을 찍었다. 그땐 왜 그렇게 할 말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하루도 빠짐없이 찍은 영상편지는 김동혁의 생일에 같이 봤다. 나는 왠지 모르게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모니터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고, 김동혁은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었다. 꼭 쥔 두 손은 밤이 새도록 풀릴 줄을 몰랐다.

그랬던 내가 김동혁의 생일을. 생일을 10분 남겨두고 기억하다니. 내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린 건 그 순간이었다. 



김동혁은 푹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데리러 올 수 있어? 비가 와서.

나는 거기서 걷잡을 수 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김동혁은 이렇게까지 미안해하면서 부탁을, 그것도 쉬운 부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덜 미안해했겠지. 어쩌면 김동혁이 전화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정류장으로 가서 김동혁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도대체 이제까지, 김동혁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도 이해되지가 않았다. 나는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식어버린 감정을 데우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밀물이 밀려오듯 죄책감이 밀려왔다. 서둘러 신발을 신고 우산을 챙긴 채 밖으로 나갔다. 제과점에서 김동혁이 좋아하는 초코케이크를 샀다. 제일 크고 맛있는 걸로. 집에 가면 케이크에 촛불을 올리고 고백할 것이다. 그동안 미안했다고. 내가 잘하겠다고. 네 소중함을 잊은 걸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할 것이다. 다시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반대편 정류장에서 버스가 섰다. 정차한 버스에서 김동혁이 내렸다. 김동혁은 반대편 정류장에 서있는 나를 보고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나도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김동혁을 버스가 덮쳤다. 



그 이후 나는.

계속되는 2014년 1월 3일. 그날의 정류장에서 멈춰있었다.







전하려던  많은 변명은 생각으로만 그쳤다. 속으로 몇 번이고 다시 말했던 속죄의 말들은. 다시 솟던 애정의 말들은. 역시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













넋을 두고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본다거나

졸린 듯 두눈을 감고 누웠어도

더욱 또렷해지는 의식의 어느한부분처럼

네가 가고나서부터 비가내렸다

너를 보내는 길목마다



-여림, 네가 가고나서부터 비가 내렸다.





다시 햇살이 얼굴을 간질였다. 나를 깨우는 김동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회야, 좀 일어나. 구준회." 

김동혁이 내 몸을 흔들었다. 나는 애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10분만, 아니 5분만 더 자자. 제발. 

하지만 내 애절함은 김동혁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김동혁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내가 깔고 있던 이불을 휙 걷어버렸다. 덕분에 나는 고치를 잃은 벌레처럼 잔뜩 웅크렸다. 김동혁은 내 모습을 보고 한바탕 웃어젖혔다. 웃느라 김동혁의 눈에는 눈물까지 고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째려보자 김동혁은 미안하다며 나를 일으켜 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손을 잡아당겨 김동혁을 자빠뜨렸다.



“죽을래 구준회? 아프잖아!"

“내 이불 뺏은 대가야."

김동혁은 그런 유치한 복수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따지고 들었다. 여기 있다고 짤막하게 대꾸하고는 김동혁을 끌어안았다. 김동혁이 가슴팍 쪽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게 들린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소리가 줄어들었다. 노래 가사가 하나 떠올랐다. 보고 있지만 보고 싶어진다. 김동혁이 꼭 그렇다.



현관에 앉아 구두를 고쳐신는 김동혁의 옆에 앉아 무릎에 턱을 괴었다. 절로 볼 맨 소리가 났다. 괜히 더 있고 싶은 마음에 오늘만 결근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지만 칼같이 거절당했다. 이렇게 보면 김동혁도 참 딱딱하다.

아쉬운 마음에 나가려는 김동혁을 꼭 끌어안았다. 조심해서 다녀와. 김동혁은 잠깐 동안 대답이 없었다.



“준회야."



김동혁이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왜."



뭔가 이상했다. 심장박동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



“이제 데리러 오지 마."

그게 무슨 소리야.

“나 데리러 오지 말라고. 알겠지."

그리고 아프지 말고. 잘 지내. 건강해라

말을 마친 김동혁은 밖으로 나갔다. 나도 쫓아 나가려 했다. 네가 한 말이 무슨 말인데. 어? 가지 마. 야, 나도 할 말 있어. 동혁아. 김동혁. 내 말 안 들려? 김동혁!

















“아."



정신이 들었다. 

이번에는 정류장이 아니었다.

책상이었다. 창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서 시간을 봤다. 



2015년 1월 2일. 오후 11시 50분.



네 생일까지. 10분이 남았다.













*



 

  

  

  

  

  

  

비가 오는 거리로 나섰다. 우산을  때리는 겨울비가 매섭다. 한 명이 쓰기엔 큰 검은 우산이다. 

제과점에 들려서 케이크를 샀다. 꿈에서는 수도 없이 샀던, 실제로는 작년에 한번 산 초코케이크를 샀다. 점원이 또 초를 챙겨줬다. 이번에는 큰 초 두 개, 작은 초 아홉 개를 부탁했다. 점원이 여자친구분 생일이냐고 물었다. 웃으면서 애인 생일이라고 대답했다. 너를 생각하면 여전히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케이크 상자를 들고 서벅서벅 걷다 보니 그 정류장에 와있었다. 내 일 년의 순환점에. 정류장 의자에 박스를 놓고 초코케이크를 꺼냈다. 비린 빗물 속에서 약간의 단내가 풍겼다. 네가 좋아할 만하겠다 생각했다. 초에 불을 붙였다. 습기때문에 성냥불이 쉽게 붙지 않았다. 겨우 촛불이 다 붙었을 때에 나는 입을 올 수 있었다.



“어. 나야. 니 애인 구준회. 오랜만이다. 잘 지내고 있냐."



목이 멨다. 헛기침을 하며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거긴 좋냐. 뭐 우리 집 보다 넓겠지. 할아버지는 만났냐. 우리 할아버지. 너랑 되게 잘 맞을 거 같다. 니가 나 대신에 손자 노릇 좀 하고 그래라. 넌 말 안 해도 잘 하고 있을 거 같지만."



하나 둘 촛불이 꺼졌다. 불어오는 비바람을 막으려고 촛불 주위를 손으로 둘러쌌다.



“밥은 잘 먹지. 나도 잘 먹는다. 아직도 편식은 조금 해. 아주 조금. 그래도 나 많이 나아졌다. 더 잔소리 안 해도 된다. 집도 잘 치우고 설거지도 잘 한다. 진짜 주부 9단이 된 느낌이야. 거짓말이냐고? 어."



사실 거짓말이다.



“진짜 죽지 못해 산다. 겨우 살아 나. 안 죽는 게 신기할 정도로 살아. 동혁아 나 그렇게 살아.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웃기지? 너한테 그렇게 못되게 했던 놈이. 웃기지. 웃기지 않냐..."



촛불은 여섯 개만 타오르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일 년 전 이때. 너한테 빌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무릎 꿇고 빌고 싶었어. 용서해달라고 한 번만 봐달라고. 다시 나 봐달라고 사랑하자고 매달리고 싶었어. 그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야."



일 년 동안, 여기에 남겨두었던



“사랑해."



촛불은 이제 두 개가 남아있었다.



“너도 거기서 잘 지내라. 아프지. 아프지 말고."



촛불이 하나 남았다. 가늘게 빛을 유지하는 게 위태로워 보였다.



“스물아홉 번째 생일 축하해. 김동혁."



비가 그쳤다.

하나 남은 촛불은 미약하지만 아직 타오르고 있었다.



아직 습기가 남아있는 새벽 공기를 온몸으로 마셨다. 나는 이렇게 숨을 쉰다. 아프지 않다. 앞으로 잘 지낼 계획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러니까. 미안한데 동혁아.

아주 잠깐만, 잠시만. 너를 그리워해야겠다.



가장 어두운 시간이 지나고 서서히 여명이 밝아온다. 더 밝아지기 전에 서둘러 너를 그린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여기에 오지 않을 거다. 그냥. 왠지 그럴 거 같았다.



손을 탁탁 털고 케이크를 상자 안으로 넣었다. 











 

  

  

  

  

  

  

  

  

  

잘 지내주어요.

더이상 내가 그대안의 분홍빛이 아니어도

그대의 봄 아름답기를

-강인호, 봄안부

















Parado. End.〈!--"〈--> 

 


 

  

  

  

안녕하세요, 리연입니다:) 너무 오랫만이죠... 그동안 참 바빴습니다. 기다려주시는 독자분들께 늘 죄송한 마음 뿐이에요... 

Parado는 3월 14일에 준혁웹진에 먼저 공개되었던 글입니다. 특정 커뮤니티를 이용하지 않는 독자분들께서  읽지 못하셨을까봐 글잡에도 한번 더 업로드합니다. 

암호닉: [슬기],[오레오즈],[다람],[구십칠],[파랑짹짹이],[망고],[원],[보라돌이],[애봉이],[입술],[수박],[더럽],[형냄],[바비야밥이나먹자],[꽃],[코랄][초코콘][쪼요쪼요],[모카],[동동이워더],[콘콘],[행쇼], [호호아줌마],[문과],[알린],[건망증],[ 이과생],[coke],[붕붕],[동동맘],[초아],[꾸준해],[띵똥],[쩰],[레모나],[편지] 암호닉을 신청해 주신 독자분들께 제가 생각하는 봄의 소리가 닿기를 바라요:)


봄은 잘 보내고 계신가요? XD 


그럼,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기를 희망하며. 



 


리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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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1111 ㅅ선댓
9년 전
독자2
아니 리연님 왜 이제 오세요ㅠㅠㅠ꾸준해예요!! 허ㅓㅇㄱ....진짜 초반 분위기 좋다가 문득 왜 배경이 검은색이지?? 하는 순간 동동이가ㅠㅠㅠㅠㅠ 아 진짜 감성자극 대바규ㅠㅠㅠ준회가 진짜 애잔하고ㅠㅠㅠㅠㅠㅠㅠㅠ지금 뒤통수 맞은 기분이예요ㅠㅠㅠㅠㅠㅠㅠㅠ현실ㄴ눈물날뻐ㅏ뉴ㅠㅠㅠ 준회가 다른 좋은 인연 만날수 있기르류ㅠㅠㅠㅠㅠ그리고 리연님도 또 하루 빨리 만날수 있길ㄹ...!!!
9년 전
독자3
리연니ㅁ이다..!!!!
9년 전
독자4
가끔 이렇게 아련한거 올려주시면 감사합니다 뮤직비디오 한편 본거같은 느낌..? 제가많이 좋아해요 작가님
9년 전
독자5
보고싶었어요ㅠㅠㅠㅠ오랜만인데 진짜심쿵심쿵 아아련해ㅠㅠ
9년 전
독자6
낮부터 울뻔했어요ㅠㅠㅠㅠㅠㅠㅠ준회야 동혁아ㅠㅜㅜㅠㅜㅜㅠㅠㅠㅠㅠㅠㅠ잘읽고가요 작가님 짱ㅠㅠ
9년 전
독자7
더럽이에여ㅠㅠㅠㅠㅠ허류ㅠㅠㅠㅠ내요유ㅠㅠㅠㅠ진짜 완전 애잔하고 진짜.....동혁이....아..동혁아 진짜ㅠㅠㅠㅠㅠㅠㅠ왤케 슬퍼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근데 내용이 너무 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작가님은 진짜 먹이썽여ㅠㅠㅠㅠㅠ동동이가 더이상 데리러 나오지말라고 할때부터 눈무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독자8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브금이랑 글 냉용이랑 너무 잘어얼룰ㄹ여ㅛ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작가님 신알신이요!
9년 전
독자9
와..진짜 이건 무슨 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분위기도그렇고 설정이 좋은거아니에요?ㅜㅜㅜㅜㅜㅜㅜㅠㅠ아 진짜 오랜만에 이런좋은글을.. 정말 잘보고갑니다 정말 취저짱짱♡
8년 전
독자10
이제는 연재안하시나욤..?ㅠㅅㅠ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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