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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ON/바비아이] 메이즈 러너 中 | 인스티즈

[iKON/바비아이]메이즈 러너 시리즈는영화 '메이즈 러너'를 오마주 했음을 알려드리며

영화와 매우 흡사한 부분이 많으니 스포를 원하지 않는 독자분들께서는 뒤로가기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꽤나 오래걸렸네요. 그래도 다음편이 마지막이니 그다지 긴 연재는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이라니ㅠ.. 제 첫 완결작이 되겠네요.

 

 

 

 

 

 

4

 



[iKON/바비아이] 메이즈 러너 中 | 인스티즈

 

 

 

 

 

낮은 쇳덩이의 움직임 소리가 지원의 귀에 서서히 다가왔다. 의식은 깨어났지만 눈은 뜨고 싶지 않았다. 지원은 마지막 기억을 되짚어 보며 상황 파악을 하려 애썼다. 김한빈을 따라 미로에 들어오고.. 구준회를 묶어서 덤불 사이에 숨기다가 그리버를 만났다. 그리고 도망쳤지.. 지원은 손에 닿는 흙의 감촉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 쥐었다. 나, 살아 있는건가? 어쩌면 닫히는 문 틈 사이에 끼어 몸이 산산조각 난 것은 아닐까? 두려움과 함께 지원이 서서히 눈을 떴다. 달빛만이 비추는 삭막한 풍경은 그가 여전히 미로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미 뉘어져 있는 몸을 내려다 본 지원은 멀쩡하게 붙어 있는 사지에 안심했다. 살아있구나.. 그렇다면 김한빈은? 벌떡 몸을 일으키자 잊고 있었던 자잘한 충격들이 한꺼번에 놀란 듯 지원에게 통증으로 돌아왔다.

 

 

" 윽.. "

" 깼으면 얌전히 일어나. 상처가 덧난다고. "

 

 

지원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키자 한 켠에 기대어 앉아있던 한빈이 다가왔다. 새빨갛게 충혈 된 그의 눈은 밤을 지새운 티를 역력히 내며 지원을 한심하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미친놈. 한빈이 중얼거렸다.

 

 

" 아주 잘하는 짓이야. 자랑스러워 죽겠네. 1초라도 늦었으면 저런 꼴이 날 뻔 했어, 알아? "

 

 

한빈은 한 쪽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벽과 벽 사이로 잔뜩 찌그러진 형태의 그리버가 짙은 색의 액체를 뚝뚝 흘렸다. 녀석의 다리로 추정되는 것은 당장이라도 그들을 찌를듯이 밖으로 삐져나와 여전히 위협적인 자태를 취했다. 지원의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 너는 괜찮아? "

" 뭐? "

" 너는 괜찮냐고, 다친 곳 없어? "

 

 

한빈은 피가 흐르는 지원의 팔을 쳐다보았다. 착한건지, 멍청한건지. 내버려두면 알아서 죽어나가기에 딱 알맞은 성격이다. 한빈은 먼지를 뒤집어 쓴 것을 제외하곤 멀쩡한 제 몸을 쳐다보았다. 아니면 장님인가. 눈이 작아서 안보이나. 한빈은 콧방귀를 뀌고 뒤돌아섰다. 뒤에서 지원이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빈은 한숨을 내쉬고 지원에게 다시 걸어와 그의 몸을 부축했다. 진짜 가지가지한다. 한빈이 투덜거리자 지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 한빈의 물음에도 지원은 눈을 곱게 접어 다 갈라진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 투덜이. "

" 뭐라고? "

" 떽떽거리면서 다 챙겨주네. "

 

 

이걸 확 버리고 갈까? 한빈은 이를 부득부득 갈고 고개를 휙 돌렸다. 웃는 낯이 꼴보기가 싫었다. 지원은 입술을 굳게 닫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한빈을 보며 계속 웃음을 흘렸다. 미친 상황에도 웃음은 잘만 나오는군. 끙끙거리고 자신을 부축하는 한빈이 어찌보면 기특했다. 키도 나보다 훨씬 작은데.

 

 

" 너, 착하다. "

"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진짜 내다 버린다. "

" 구준회도 데려가야 해. "

" 나도 알아. 닥쳐 좀. "

 

 

험하게 말하면서 지원의 말에 한빈은 방향을 틀었다. 그게 우스워 지원은 한빈 몰래 소릴 죽이며 킥킥 웃음 지었다.

 

 

 

 

 

 

 

 

 

MAZE RUNNER

CHAPTER 4.

 

 

 

 

 

W. 두번째손가락

 

 

 

 

 

 

글레이드에 아침이 밝았다. 찬우는 날이 밝자마자 거의 잠들지 못했던 눈을 부릅뜨고 '미로의 문' 앞으로 달려갔다. 육중한 쇳덩이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열리자 그를 따라 사내들이 문 앞으로 모였다. 진환도 하루 사이 헬쑥해진 얼굴로 문 앞에 천천히 걸어왔다. 새파래진 그의 입술은 누가 봐도 안쓰러웠지만 아무도 선뜻 무어라 위로를 건넬 수 없었다.

 

 

" 형들, 빨리 와요! "

 

 

찬우가 소리치고 미로가 완전히 열렸다. 휑한 미로 안은 지난 밤의 사건을 홀로 잊은 듯 지원과 한빈, 준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바람 소리 하나 지나가지 않았다. 진환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털썩 주저 앉았다. 그의 몸은 미친듯이 떨리고 있었다.

 

 

" 내가 그랬지.. 돌아 올 수 없어.. 안 와.. "

" ... 가자. "

 

 

사내들이 진환을 부축하며 하나 둘 뒤돌아섰다. 돌아서는 사내들을 보고 찬우는 푸석해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 어..? "

 

 

사내들 중 한 명이 찬우를 위로하려 고개를 돌리다 무언가를 발견하곤 손을 들어보였다. 말도 안돼.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찬우를 비롯한 사내들이 미로에 시선을 옮겼다. 찬우가 환호성을 질렀다. 왔다! 왔다구요! 미로 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은 준회를 사이에 부축한 지원과 한빈이었다. 안간 힘을 다해 준회를 부축하곤 온 두 사람에 사내들이 재빨리 준회를 받았다. 파리한 안색으로 돌아온 준회의 몸뚱이에 진환이 한 걸음에 달려왔다. 준회를 붙들고 엉엉 우는 그를 윤형이 겨우 말리곤 두 사람에게 물었다.

 

 

" 어떻게 된거야? "

 

 

사내들의 시선이 준회의 가슴팍에 박힌 상처에 꽂혔다. 그를 본 진환은 더 격렬하게 울음을 토해냈다. 차마 일어나서는 안되는 상황이 사내들의 혼돈을 불러 일으켰다. 찬우가 두 사람과 준회를 번갈아보고 말했다. 그리버를 봤어요? 당연한 질문에 한빈이 인상을 찡그리고 찬우를 노려 보았다. 그의 표정과 관계없이 지원이 대신 대답했다.

 

 

" 그래, 봤어. "

" ... 눈치없는 새끼. "

" 뭐? "

 

 

한빈이 한숨을 쉬고 사내들을 보며 말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 ... 보기만 한 게 아니야. "

" ...... "

" 이 녀석이 놈을 죽였어. "

 

 

사내들은 소리 없이 서로의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버를 죽여? 지원은 저를 향한 시선들에 눈을 굴리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한빈이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성격은 병신같지만 실력은 인정하지. 순간 윤형의 표정이 싸하게 식으면서 사내들을 집합시켰다. 지원이 미로에 들어갔다는 규칙 위반의 '처벌' 을 내려야 할 시간이었다.

 

 

 

 

 

 

 

 

 

오두막 안에는 사내들의 먼지 묻는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한동안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준회가 없는 '회의' 나 '결정' 은 상상해본적이 없었고, 실현이 된 적은 더더욱 없었다. 원형에 둥그렇게 앉은 사내들은 줄 곧 진환의 상태를 살폈다. 조금 더 휴식을 취하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진환은 회의에 참석했다. 준회가 없는 자리를 지켜야한다는 나름의 의지였지만 그는 여전히 회의를 이끌기엔 힘이 겨워 보였다. 사내들을 집합시킨 윤형이 그들을 둘러보다 힘겹게 말했다. 상황이 달라졌어.

 

 

" 그건 부정 못 해. "

" ...... "

" 민호가 대낮에 그리버에게 찔렸고, 이젠 대장까지.. "

 

 

사내들의 중심에 앉은 지원은 눈을 껌뻑였다. 그런 지원을 윤형이 팔짱을 낀 채 경멸의 눈으로 돌아보았다. 그는 지원이 '러너' 의 일에 끼어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대장인 준회가 없는 동안의 규칙 위반은 큰 혼란을 야기시킨다.

 

 

" 그리고 여기 이 신참은 자기 멋대로 미로에 들어갔어. "

" ...... "

" 우리가 생명처럼 여기는 룰을 어겼지. "

" 그래, 하지만 대장을 구했잖아. "

 

 

한 사내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진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환이 윤형을 빤히 바라보자 윤형이 고개를 저었다.

 

 

" 3년간 우린 그리버들과 공존해왔어. 근데 저 놈이 한 녀석을 죽였지. "

 

 

윤형의 날이 선 말이 다시 지원에게 돌아갔다. 윤형의 삿대질에 지원은 인상을 구겼다. 구석에 앉은 한빈과 눈이 마주쳤다. 한빈은 까만 눈동자로 그를 지켜볼 뿐, 아무런 표정도, 제스쳐도 취하지 않았다. 조용한 사내들 가운데 윤형이 말을 이었다.

 

 

" 이제 어떻게 될 지 뻔하잖아? "

" 그래서 어쩌자고. "

 

 

잠자코 윤형의 말을 듣던 진환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를 한 없이 작고, 듣기만 해도 힘이 빠지는 지친 목소리였지만 사내들은 모두 들을 수 있을정도로 선명했다. 조용하게 제 말을 전하는 그의 모습은 준회를 떠올리게 했다. 진환의 물음에 윤형이 딱 잘라 말했다. '처벌' 해야지.

 

 

" 말도 안돼요. "

" 그리버를 해치웠잖아! "

 

 

사내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지원은 어이없는 표정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웅성거리는 사내들 속에서 다시 진환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가만히 한빈을 불렀다.

 

 

" 네 생각은 어떻지? 둘이 같이 있었잖아. "

 

 

사내들의 시선이 한빈에게 모였다. 한빈의 바둑알같은 눈동자가 지원에게 박혔다. 지원이 그를 힐끔보자 한빈은 눈동자를 굴리다 저만을 쳐다보고 있는 사내들에게 말했다.

 

 

" ... 지금까지 우리들 중에 그리버를 죽인 사람은 없었어. "

" ...... "

" 난 도망쳤는데 저 초짜는 구준회를 구하겠다고 뒤에 남았지. "

 

 

준회가 언급되자 진환이 세게 입술을 깨물었다. 눈에서는 한가득 눈물이 고였다. 찬우가 헝겊을 진환에게 건네는 사이 한빈은 앉아있던 몸을 일으키고 말했다.

 

 

" 용감한건지 멍청한건진 몰라도 우리한텐 저런 녀석이 필요해. "

" ...... "

 

 

한빈과 지원의 눈이 마주쳤다. 한빈이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 '러너' 를 시키자. "

 

 

지원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한빈은 제 할 말이 끝났다는듯 아무 표정없이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윤형이 노발대발해서는 한빈에게 소리쳤다. 한빈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말을 일체 무시했다. 사내들도 웅성거리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너무 섣부른 결정 아니야? 찬우 혼자 신이나 김지원! 김지원! 을 외쳤지만 그에 호응해주는 사람이 없어 흔들던 주먹을 가만히 내려 놓았다.

 

 

" 초짜에게 목숨을 맡기겠다고? 좋을데로 해! "

" ...... "

" 하지만 내가 미로에 대해서 잘 아는데, 절대로.. "

 

 

윤형이 소리치며 말하는 틈 사이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알리는듯한 경보음에 사내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오두막을 뛰쳐나갔다. 지원은 그들의 뒤를 따라 오두막을 나섰다. '그 소리' 는 모두에게, 지원에게도 낯익은 소리였다. 지원이 중얼거렸다. 들어본적 있는 소리야.. 그의 말과 동시에 누군가 소리쳤다. 박스가 올라오고 있어!

 

 

" 그럴리가 없어. "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한빈의 목소리에 지원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한빈이 달려간 곳에선 상자를 끌어 올리는 수레바퀴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잔디 위에 인공적으로 깔린 바닥이 반으로 열리고 철장이 나타났다. 그들이 말하는 '상자' 가 맞았다. 가장 먼저 달려 나간 윤형과 한빈이 철장을 열었다. 사내들이 곧 이어 철장으로 모여 들었다. 상자 안으로 내려간 한빈이 말했다. 어린애야. 그의 말대로 상자에는 열일곱 남짓 되어 보이는 소년이 죽은듯이 쓰러져 있었다. 지원이 사내들을 재치고 들어와 소년의 앳된 얼굴을 보았다. 소년의 손에는 잔뜩 구겨진 종이가 쥐어져 있었다. 윤형이 말했다.

 

 

" 손에 뭐야? "

 

 

한빈이 조심스럽게 소년의 손에서 종이를 꺼냈다. 펼쳐진 종이에는 대충 휘갈긴듯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소년이 마지막이다.'

 

 

한빈이 문구를 읽고 사내들을 올려다보았다. 평온했던 그의 까만 눈에서조차 혼란이 섞여 있었다. 무슨뜻이지. 사내들이 중얼거리며 머리를 굴리는동안 소년이 급작스럽게 숨을 들이켰다. 허억. 하고 깨어난 그는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초점도, 방향도 잃은 그의 눈은 제정신이 아닌듯 보였다. 숨을 참고 있던 사람처럼 헐떡이던 소년은 입을 벙긋거렸다. 다 갈라진 쉰 목소리가 소년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갈라졌지만, 앳된 목소리가 그가 한참 어리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 김지원.. 지원이 형.. "

 

 

소년의 입에서 가장 처음 나온 말은 '김지원' 이었다. 소년은 숨을 내쉬다 이내 정상적인 호흡을 되찾았는지 다시 잠들었다. 사내들이 일제히 지원을 쳐다보았다. 지원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을 둘러보자 윤형이 그의 옷을 움켜 쥐었다.

 

 

" 이래도 내가 오버하는것 같냐? "

 

 

지원은 말 없이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소년은 표정없이 숨을 고르며 잠들어 있었다.

 

 

 

 

 

 

 

 

 

진환의 뒤를 따라 지원과 한빈이 치료반이 있는 오두막을 향했다. 어두운 빛깔의 헝겊들을 쌓아올린 나무침대 위에서 준회가 상체를 벗은 채 이리저리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를 보는 진환의 표정은 다시 괴로움을 가득 안았다. 이를 악물며 참고 있는 준회의 하얀 몸뚱이에는 검붉은 그리버의 표식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준회의 하얀 몸과 대조되는 그것은 한 층 더 징그럽게 보였다. 진환은 애써 고개를 돌리며 상자가 보낸 소년이 누워 있는 침대로 향했다. 소년의 옆에 앉아 그를 지키던 승윤에게 진환이 다가갔다.

 

 

" 문제가 뭐지? 왜 꺠어나질 않는거야? "

 

 

승윤은 어깨를 으쓱하곤 말했다. 난 진짜 의사가 아닌걸. 소년은 여전히 곤히 눈을 감고 잠에 빠져 있었다. 진환이 지원에게 물었다. 누군지 알아? 한빈의 눈동자 또한 지원을 향했다. 빤히 저를 쳐다보는 한빈에 지원이 고개를 젓자 그제서야 그의 시선이 지원에게서 벗어났다.

 

 

" 이 애는 널 아는 것 같던데. "

" .. 그 쪽지는? "

" ... 그건 나중에 걱정하자. "

" 지금 걱정해야 할 일 아냐? "

" 지금은 준회가..! "

 

 

준회가 우선이야. 라고 소리치려던 진환은 커지는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냉철하게. 모두를 위한 방향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진환은 자꾸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주제 할 수 없었다. 진환이 이마를 짚고 미안해.. 하자 승윤이 그에게 말했다.

 

 

" 김지원 말이 맞아. "

" ...... "

" 박스가 안 올라오면 우리가 얼마나 버티겠어? "

 

 

박스. 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생필품과 식량이 보급되는 유일한 생명수단. 진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은 소년을 쳐다보다 무언가를 결심한듯 오두막을 나섰다. 한빈이 그를 어이없게 쳐다보았다. 어디가는거야? 진환이 묻자 지원이 뒤를 돌아 대답했다. 다시 미로에 갈거야. 지원의 말에 벙찐 진환과 마주보던 한빈이 돌아버리겠군. 하는 표정으로 지원이 나간 오두막을 뛰쳐나왔다. 망설임없이 걸어가는 지원의 앞을 한빈이 막아섰다. 지원은 왜 그러냐는 얼굴로 한빈을 내려다보았다.

 

 

"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겨우 나왔는데 다시 들어간다고? "

" ... 김진환이 그랬지. 그리버 만나서 살아 남은 사람이 없다고. "

" ...... "

" 우린 놈을 봤어. 근데 궁금하지 않아? "

 

 

한빈이 인상을 잔뜩 구겼다. 전혀. 지원이 다시 발걸음을 떼자 한빈이 또 다시 막아섰다. 화를 최대한 누르는 표정이었다. 이성을 잃고 감정을 앞세운 놈은 많이 봤어도, 이성을 잃고 호기심을 앞 세우는 놈은 처음이다. 한빈이 크게 한숨 쉬고 지원을 쳐다봤다.

 

 

" 어쩔 생각인데? 혼자서 그 자식 해부라도 하겠다? "

" 그래야만 한다면. "

" ... 미친놈. "

" 다른 러너들, 갔어? "

" 오늘 아침에 다 그만뒀어. "

 

 

한빈이 턱 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첫 날 지원의 환영파티에 한빈과 함께 무리지어 있던 러너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침울한 표정으로 서로의 등을 두드렸다. 그 중엔 윤형도 함께였다. 지랄들이군.

 

 

" 구준회가 찔린 후로 미로에 들어가길 주저해. "

" ...... "

" 넌 왜 가려는거야? "

 

 

한빈이 지원을 아래 위로 훑었다. 멀쩡하게 생겨서는 왜 자꾸 골때리는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한빈의 심정으로는 그리버가 아닌 지원의 머릿속을 해부해보고 싶었다. 돌아오는 지원의 대답은 한빈을 실망시키지 않는 어이없는 대답이었다.

 

 

" 우리가 싸우는 상대가 뭔지 알아야겠어. "

 

 

용맹스러운 기사 납셨군. 그러나 지원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기에 한빈은 고민에 빠졌다. 이 멍청이를 혼자 보낼 수도 없고. 그리버를 조사해보는 것은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지원이 못참겠는지 한빈을 지나치려하자 다급히 그의 팔을 붙들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 하지만 너 혼자는 못보내. "

" 뭐? "

" 30분 뒤에 숲 앞에서 만나. "

 

 

한빈은 결투신청하는 사람마냥 일방적으로 제 말만 전하고는 다른 오두막으로 향했다. 지원은 한빈이 붙잡았던 제 팔을 슥슥 문질렀다. 기분이 왜 이러지. 다시 미로를 앞두고 긴장한걸까. 30분 뒤에 마나기로 했지만 몸뚱이말고는 딱히 준비할 것도 없는 지원은 오두막 주위를 서성이다 곧 숲으로 향했다.

 

 

 

 

 

 

 

 

 

숲은 변함없이 기괴했다. 지원은 지난번 민호에게 습격당했을 때를 회상하곤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아파온다. 자신을 보았다는 민호의 말은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지원은 손을 비비며 의미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 때우기에는 더럽게 적절하지 못한 곳이다. 구경만하려 해도 숲 속에는 쳐다보기도 기분이 나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와. 하긴. 시계가 없으니 30분후에 만나자는 한빈의 말은 농담에 가까웠다. 30분이 어느정도더라. 시간의 흐름조차 정확히 알 수없는 이곳에 올바른 기준이 있기는 한걸까. 자신을 바라보던 까만 눈이 생각이 났다. 지 혼자 똑똑한 척은 다 하더니 30분이 어느정도인지는 아는거야? 괜히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던 지원의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지원은 몸을 훽 돌려 제 눈 앞의 '30분' 을 확인했다. 왠지 모르게 짜증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 좀 늦었나? "

" ... 아, 아니. 잘 왔네. 30분. "

 

 

네가 오는 시간이 30분이겠지, 뭐.

 

 

" 갈까? "

 

 

한빈의말에 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두 사람이 푸른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눈 앞의 잿빛 미로로 들어가는게 아니었다면, 어쩌면 최고로 로맨틱한 장면인지도 모른다. 지원은 앞장서서 달리는 한빈을 보며 생각했다. 괜히 데려왔나. 말 그대로 초짜는 자신이기에 더 위험한 상태였지만, 한빈을 끌어들였다는 생각에 찝찝했다. 그 생각도 잠시 이미 잿빛 벽들 사이를 달리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어젯 밤의 루트를 모두 기억하는지 한빈은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다. 다 똑같아 보이는데.. 어두침침한 벽들과 덩쿨은 하나같이 다른 듯, 같은 모양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새 그리버의 시체가 있는 곳에 다다랐는지 한빈이 우두커니 서서 벽면을 바라보았다. 날이 밝은 상태에서 보는 녀석의 시체는 더 끔찍했다. 기분 나쁜 빛깔의 질척한 내장이 그의 다리와 함께 벽 면 사이에 삐져나왔다. 지원은 헛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았다. 벽 틈 사이에서 붉은 색의 작은 불빛이 보였다. 지원의 시선을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 안에 뭔가 있어. "

 

 

마찬가지로 그를 발견한 한빈이 시체 앞으로 다가섰다.

 

 

" 잠깐, 뭘 하려고? "

" 꺼낼거야. "

" 뭐? "

 

 

누가 누구보고 무모하고 멍청하다는거야. 벽 틈 사이로 손을 넣으려는 한빈을 지원이 밀쳐냈다. 내가 할게. 밀쳐진 한빈은 어이없게 뒤로 물러서 지원이 팔을 뻗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버의 다리가 움찔거리자 한빈이 지원의 몸을 붙들고 벽에서 떨어뜨렸다.

 

 

" 죽은거 아니였어? "

" 반사신경인가.. "

" 조심 좀 해! "

 

 

한빈이 지원과 엉킨 몸을 급하게 떨어뜨렸다. 누워 있다 싶이 쓰러진 몸을 일으키고 그리버를 보았다. 완전히 꺼내는게 좋겠어. 한빈의 말에 지원이 끄덕였다. 벽에 끼어 있는 그리버의 다리를 붙들고 힘을 주었다. 두 사람의 힘에 완전히 뜯긴 다리가 질펀한 내장들과 함께 벽 밖으로 흘러 나왔다. 한빈이 내장 사이에서 반짝이는 붉은 불빛을 집어 들었다. 누가 봐도 인공적인 산물이었다. 한빈의 손에 집힌 내장이 번뜩였다. 그는 끈적이는 액체 사이에 파묻힌 기계를 빼내었다. 손이 썩어 버리는 느낌이다. 한빈의 표정이 그의 손만큼 지저분해졌다.

 

 

" 그게 뭐야? "

 

 

한빈의 손에 들린 기계는 남자 팔뚝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은색 원통형의 기계였다. 한 쪽에는 전선이 마구 끊어져 있었다. 한빈도, 지원도 처음보는 정체를 알 수 는 기계였다. 한빈은 기계를 이리저리 살폈다. 붉은 빛을 깜빡이는 부분과 나란히 디지털로 적힌 '7' 이라는 숫자, 'WCKD' 라 적힌 문구가 있었다. 흥미롭네. 한빈이 말했다.

 

 

 

 

 

 

 

 

 

진환은 한빈에게 건네받은 기계를 관찰했다. 누런색으로 끈적이던 액체는 기계에 늘러붙어 시커먼 검은색으로 변질 되었다. 진환이 'WCKD' 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진환이 기계를 한 번, 지원을 한 번 쳐다보았다.

 

 

" 보급품에 적힌 것과 같은 문구잖아. "

" 그래. 우릴 여기 보낸 자들이 그리버를 만든거야. 이게 3년만에 처음 찾아낸 진짜 단서지. "

" ...... "

" 김한빈, 안그래? "

 

 

왜 나한테 지랄이야. 그들을 둘러싸고 모인 사내들이 한빈을 보자 한빈은 뻘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지원이 이어서 말했다.

 

 

" 다시 미로로 들어가야 해. 이걸 이용하면 출구를 찾을지도 몰라. "

 

 

진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윤형을 슬쩍 쳐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 이래도 저 자식을 봐줄거야? "

" ...... "

" 처음엔 룰을 깨뜨리더니 이젠 싸그리 무시하고 꼬드기고 있잖아. "

" 하.. "

" 지금껏 룰이 있어서 여기가 잘 굴러갔어. 근데 왜 이제 와서 깨뜨려? 대장이 있었다면 내게 동의 했을거야. "

 

 

진환은 이마를 짚었다. 하필 또 민감한 부분을.. 준회가 언급되면 판단력이 흐려지는데. 진환은 냉정을 찾으려 애썼다. 옆에서는 윤형이 지원을 처벌해야 된다고 끊임없이 진환을 설득했다. 룰을 어겼다는 사실이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다.

 

 

" 그래, 맞아. 김지원은 룰을 어겼어. "

" ...... "

" 구덩이에서 식사 없이 하룻 밤. 됐지? "

" 지금 장난해? 겨우 하룻 밤? 그걸로 미로에 가는 걸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

" 아니. 러너가 아닌데 미로에 들여보낼 순 없지. "

 

 

진환이 고개를 들었다. 준회라면, 어떻게 했을까. 대답이야 뻔하다. 그 녀석이라면 분명. 사내들이 진환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진환은 지원을 보며 말했다.

 

 

" 그러니까 지금 정하자. "

" ...... "

" 내일부터 넌 정식으로 러너야. "

 

 

지원이 숨을 들이켰다. 새삼 놀랄 일도 아닌데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에 얹혀진 느낌이었다. 진환의 말에 한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형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오두막을 뛰쳐나갔다. 낮게 욕을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지원이 고개를 숙인 진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에게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버거울 것이다.

 

 

" 고마워. "

 

 

진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따라와. 회의가 끝나고 한빈이 지원에게 다가와 짧게 말했다. 명령조에 가까운 말을 뱉은 그는 지원의 동의따윈 필요없다는듯 멋대로 걸음을 앞서갔다. 지원은 그 건방짐에 헛웃음을 지으며 잠자코 그의 뒤를 따랐다. 한빈이 향한 곳은 좀 더 깊은 숲 속이었다. 한 걸음 걸을수록 주변이 어두워지는 느낌에 지원은 괜히 발을 털었다. 당장에라도 어둠이 발목을 휘잡고 나락으로 끌어 내릴 것 같았다. 햇빛이 잘 드는 중앙과 사뭇 다른 곳이었다. 한빈은 익숙한건지, 아무렇지 않은건지 가끔 지원이 따라오는지 곁눈질로 확인할 뿐 성큼성큼 제 갈 길을 갔다.

 

 

" 어디가는거야? "

" 가보면 알아. "

 

 

이내 그들이 도착한 곳은 글레이드에 있는 오두막과 별 다를 바 없는 오두막 한 채였다. 한빈을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간 그 곳엔 중앙에 큰 원형 탁자가 천으로 덮혀 있었다. 지원은 시선을 옮겨 오두막을 둘러 보았다. 벽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들과 미로로 추정되는 모양이 그려진 나무 판자가 즐기했다. 이게 다 뭐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벽 주위를 서성이는 지원이 한빈을 쳐다보자 그는 담담한 얼굴로 탁자를 덮고 있던 천을 단번에 벗겨 냈다.

 

 

" ......! "

" 미로야. "

 

 

수 천개의 나뭇가지. 한 눈에 보아도 미로를 떠올리게 하는 미니어처가 지원의 눈에 들어왔다. 나뭇가지를 이어붙여 벽을 표현한듯한 미니어처는 장인 수준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미로에 지도를 만들고 있던건가.. 김한빈이 미로의 지리를 잘 아는 이유가 있었군. 지원은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을 꾹 누르며 행여라도 미로를 망칠세라 조심스럽게 탁자에 손을 올려 놓았다.

 

 

" 아직 다 파악 못했다하지 않았어..? "

 

 

지원의 물음에 한빈이 시선을 떨어뜨렸다. 처음으로, 그가 주눅 들어보였다. 눈빛에 생기를 잃은 그가 대답했다.

 

 

" 더 파악할게 없었어. "

" ......? "

" 내가 구석구석 다 가봤어. "

" ...... "

" 모든 주기, 모든 패턴. 나가는 길이 있다면 벌써 찾았겠지. "

 

 

어째서.. 지원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미로를.. 현실을 알고 있었던거야?

 

 

" ... 왜 다른 애들한테 말 안했어? "

" 구준회의 결정이였어. 여길 나갈 수 있다는 꿈을 갖게 해주자고. "

" 그런건 너무 잔인하잖아! "

 

 

첫 날 자신에게 웃어주던 준회의 얼굴이 떠올랐다. 구준회도 알고 있었던건가. 미로에서.. 영영 빠져 나갈 수 없다는걸. 지원은 한빈의 팔을 잡았다. 갑자기 잡힌 팔에 한빈이 몸을 뒤로 뺐다. 뭐하는거야.

 

 

" 뭐야, 이거 ㄴ.. "

" 잔인하잖아, 모두한테.. "

" ...... "

" 너한테도.. "

 

 

넌 다 알면서 말할 수 없었던 거잖아. 매일을. 끝이 없다는 걸 아는 미로를 달리면서. 혼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원의 눈빛에 한빈이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왜.. 왜 그런 눈으로 나를.. 고개를 저은 한빈이 지원의 손을 뿌리쳤다. 까만 그의 눈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 멋대로 판단하지마. 너한테 동정 받으려고 한 얘기가 아니야. "

 

 

한빈이 정신을 추스리고 지원에게 은빛원형 기계를 건넸다. 그리버에게서 꺼내 온 의문의 기계였다. 당황한 표정의 한빈이 의아했지만 지원은 별 의심없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건네 받으면서 닿은 손에 한빈이 손을 급하게 떨어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 이, 이걸봐.. "

 

 

한빈이 어울리지 않게 말까지 더듬으며 미로의 가장자리 부분을 가리켰다. 한빈의 손가락 끝에는 숫자가 적힌 작은 돌이 놓여 있었다. 돌은 미로의 끝 부분에 일정한 거리로 둘레를 이루며 자리를 잡았다. 한빈의 표정이 다시 진지하게 변했다.

 

 

" ... 1년전쯤 이쪽 외곽을 살피기 시작했는데 벽에 새겨진 숫자들을 발견했어. 1에서 8구역. "

" 무슨 의미지.. "

" 방식은 이래. 매일 밤 미로가 바뀔 때 새로운 구역이 열리는데, 오늘은 6구역이 열렸어. 내일은 4구역, 그 다음은 8과 3구역. 패턴은 항상 똑같아. "

 

 

지원은 원형기계를 매만졌다. 붉은 빛의 디지털 숫자 '7'이 번뜩였다.

 

 

" 7이 뭐가 특별하지? "

" 그건 나도 몰라. 어젯 밤에 네가 그리버를 죽였을 때 7구역이 열렸어. 아마도 놈이 온 곳이겠지. "

 

 

어느새 두 사람의 얼굴이 코가 닿을 듯 가까워졌다. 엿들을 사람도, 훔쳐 볼 사람도 없는 가운데 목소리는 점점 낮고 작아졌다. 흔한 풀벌레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 내일 우리 둘이서 자세히 살펴 보자고. "

" 둘이? "

 

 

지원이 되물었다.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가는 것을 보고 한빈이 피식 웃었다. 괜히 얄미워 그의 입술을 툭 쳤다. 입술을 쳐오는 그의 손을 지원이 붙들었다. 이번엔 뿌리치지 않는 그를 한 번 보고, 그의 손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이곳저곳 긁힌 자국과 상처들이 난무하는 손이었다. 얼굴과 다르게 곱지 못하네. 지원이 중얼거리자 한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 너, 여기 정말 오래 있었구나. "

" ... 손 계속 잡고 있을거야? "

 

 

아니. 지원이 웃었다. 대답과는 달리 손을 꽉 붙드는 그의 모습에 한빈은 무언가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성일까. 아니면 참아왔던 그 무언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지원의 입술에 달려든 후였다. 이유도, 변명도 필요 없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저 그렇게 하고 싶었기에. 행위에 젖어 두 입술이 열리고 혀가 얽혔다. 미로 속을 달릴 때보다 짙고 아득한 느낌. 질척하게 옭매이는 혀는 미로 속의 덩쿨과도 같았다. 한빈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입술이 떨어지고 가느다랗게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두 입술을 이었다. 입가에 번들거리는 맑은 액체에 지원이 혀로 한빈의 입술을 훑었다.

 

 

" 벗어날 수 있어? "

" 닥쳐. "

 

 

숨을 고르기도전에 입술이 다시 맞물렸다. 벗어날 수 있어? 주어없는 질문에 답을 할 순 없었다. 미로에서, 너에게서, 혹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5

 

[iKON/바비아이] 메이즈 러너 中 | 인스티즈

 

 

 

 

 

 

입술이 떨어진 것은 저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린 뒤였다. 지원을 밀치고 신경질적으로 문을 보려본 한빈의 눈 앞에 승윤과 태현이 나타났다. 헐떡거리며 도착한 두 사람은 꽤나 급하게 달려온듯 숨을 골랐다.

 

 

" 왜 왔어? 여긴 출입금지 구역이잖아. "

" 미안해, 그게.. "

" 꼬맹이 때문에.. "

 

 

꼬맹이라면.. 마지막이라는 문구를 쥐고 박스에서 온 아이를 말하는듯 했다. 지원이 승윤을 붙들고 물어봤다. 깨어났어? 그의 관심에 한빈이 그를 슬쩍 흘겼다.

 

 

" 뭐, 비슷해.. "

 

 

 

 

 

 

 

 

 

MAZE RUNNER

CHAPTER 5.



 

 

W. 두번째손가락

 

 

 

 

 

 

" 무슨 일이야? "

 

 

급하게 달려 온 글레이드에서는 남자들이 모여 하나같이 머리에 방패삼아 무언가를 이고는 쩔쩔매고 있었다. 지원은 오두막을 올려다보았다. 준회를 따라 글레이드를 내려다보았던 곳이다. 글레이드에서 가장 높은 오두막. 찬우가 키득거리고 오두막을 가리켰다. 진짜 끝내주는 꼬맹이에요.

 

 

" 저리가!! "

" 이봐, 한번만 더 던지면..! 악! "

 

 

소리치는 윤형의 머리 위로 돌덩이가 떨어졌다. 윤형은 아픔을 호소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계속해서 '저리가' 를 연발하는 아이는 손에 집히는대로 그들에게 던지는 것 같았다. 지원이 사내들 틈으로 들어가 상황을 물었다. 우리가 별론가봐. 돌아오는 것이라곤 머리가 텅텅 빈 것 같은 대답뿐이었지만. 곧 이어 자신에게도 날아오는 돌덩이에 지원이 그들과 함께 몸을 피했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되자 지원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처음 눈 떴을 때, 내 이름을 불렀었지.

 

 

" 나.. 나 김지원이야! 내가 김지원이라고! "

 

 

그의 외침에 거짓말처럼 날아오던 돌덩이가 멈추었다. 사내들이 조심스럽게 방패를 치우자 오두막 꼭대기에서 작은 얼굴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상황파악이 안되지만, 또 소년이 폭주할까 지원이 손을 올려 그가 보이도록 휘저었다.

 

 

" 내.. 내가 올라갈게. 알았지? "

 

 

소년은 말 없이 다시 오두막으로 사라졌다. 지원이 사내들을 둘러보다 혼자 갈게. 짧막히 말한 후 천천히 오두막을 올랐다. 처음 느꼈던 바와 같이 오두막은 꽤나 올라가기 버거웠다. 꼬맹이 주제에 용케 안잡히고 올라왔군. 맨 꼭대기에 도착해 올라서자 눈에 보이는 것은 어설프게 칼을 쥔 소년이었다. 워워..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뻔 했네. 어설프지만 위협적인 소년은 칼 끝을 지원을 향한 채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지원이 팔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 그.. 그것 좀.. 어.. 진정해, 일단. 응? "

" 여긴 어디에요. 어떤 곳이죠? 왜 제가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는거에요? "

" 그게 정상이야. 우리도 다 그랬거든. "

 

 

지원은 제가 처음 이곳에 온 날 준회와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이런 기분이구나. 물론 현실은 전혀 우습지 않지만.

 

 

" 곧 이름이 기억날거야. 보통 이틀 쯤 걸린다는데, 나 같은 경우는 바로.. "

" 김동혁. "

" ... 뭐라고? "

" 내 이름. 김동혁이라구요. "

 

 

이 아이도.. 바로 기억을.. 지원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그래, 동혁아. 형은 김지원이야. 아이를 달래는듯한 말투였다.

 

 

" ... 알고 있었겠지만.. 그렇지? "

" 제가 잠결에 그 쪽 이름을 계속 불렀다 했어요. "

" ...... "

" ... 누구에요, 당신? "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다. 나는 대체 누구지? 이 아이라면 조금이라도 아는 줄 알았는데.. 지원이 고개를 저었다. 동혁은 여전히 칼을 들고 지원을 겨냥했다.

 

 

" 나도 몰라.. 기억이 안나. "

" ...... "

" 나 뿐만이 아니라 여기 모두가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해. 너처럼 깨어보니 여기였어. "

" ...... "

" 정말이야. "

 

 

동혁의 손에서 힘이 스르륵 풀렸다. 칼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지원은 재빨리 그것을 주워 뒤에 감췄다. 동혁은 혼란스러운지 더 이상 저항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직 멀었어? 오두막 밑에서 사내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는 지원의 말에 사내들이 곧 뿔뿔히 흩어졌다. 한빈은 오두막을 빤히 올려다보다 표정없이 뒤를 돌았다. 재미없는 새끼. 한빈의 중얼거림에 찬우가 몸을 움찔했지만 이내 그와 갈라져 제 오두막으로 향했다. 사내들이 흩어지는 것을 내려다보던 지원이 동혁이 편하게 앉게끔 자리를 내주었다. 그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대충 설명하자, 동혁이 서서히 경계로 굳어진 표정을 풀었다. 한참 지원의 말을 듣던 동혁이 입을 열었다.

 

 

" '이 아이가 마지막이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

" 나도 몰라. "

" ...... "

" 네가 온 후로 박스가 내려가질 않아. 그래서 다들 걱정이지. 특히, 송윤형이.. "

 

 

지원은 밑에서 두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는 윤형을 턱 짓으로 가리켰다. 잘 보이진 않지만, 잔뜩 불만을 품고 있는 그의 얼굴이 눈에 훤했다. 처음 만났을때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였는데.. 규칙을 깬 지원이 지독하게 마음이 들지 않는 모양이다. 더불어 새로운 동혁도. 동혁은 의외로 눈치가 빨랐다.

 

 

" 내 탓이라 생각하는 거군요. "

" ... 다른 건 아무것도 기억 안나? "

" 물이요.. 익사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

 

 

동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다지 좋은 느낌의 기억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 날 쳐다보는 얼굴들.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하는 어떤 여자의 목소리.. "

"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는거야.' "

 

 

자신이 하려던 말이 지원의 입에서 나오자 동혁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역시. 지원이 꿨던 꿈과 동혁의 기억의 내용은 같았다.

 

 

" 여기 온 후로 계속 같은 꿈을 꿨어. 지금까진 꿈인 줄 알았지. 네가.. "

" ...... "

" 네가.. 그 꿈에 나왔어. "

 

 

꿈에 나왔던 어린 아이. 지원은 흐릿하게 비춰졌던 꿈 속의 얼굴과 눈 앞의 동혁을 함께 맞추어보려 애썼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꿈 속의 아이는 동혁이 맞았다. 동혁은 또 다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 네가.. 모든게 바뀔거라고 하면서.. "

" 그게 무슨 뜻이죠? "

" 모르겠어. 기억 나는건 그게 다야. "

"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해요? "

" 전혀. "

" ...... "

" 왜 우린 다른거지? "

 

 

동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기억이 난 듯 호주머니를 뒤적여 꺼낸 것을 지원에게 내밀었다. 주머니에 이게 들어 있었어요. 지원이 그것을 받아들어 살폈다. 'W.C.K.D.' 라고 박힌 작은 통에는 푸른 색의 액체가 들어 있었다. 지원이 중얼거렸다.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는거야..

 

 

" 우릴 여기 보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

 

 

지원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이건 혹시..

 

 

" 구준회.. "

 

 

 

 

 

 

 

 

 

하얀 몸뚱이는 점점 검붉은 피멍들로 물들고 있었다. 빠르게 악화되는 상황에 지원이 액체가 든 통을 진환의 손에 쥐어주었다. 통을 받은 진환은 심히 망설였다. 지원이 주장한 바로는, 이 푸른 액체는 해독약이다. 준회를 이 고통 속에서 해방시켜줄.. 그가 고통에 한 번씩 몸을 뒤틀때마다 진환 또한 심장이 뒤틀리는 기분을 맛봐야했다. 진환은 'W.C.K.D' 라 쓰인 작은 통을 매만졌다.

 

 

" 이게 무슨 약인지,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잖아. 왜 널 통해서 이걸 보냈는지도.. "

" ...... "

" 이게 준회를 죽일지도 몰라. "

 

 

그럼 난 절대 너희를 용서할 수 없을거야. 겁에 질린 동혁이 몸부림치는 준회를 보고 지원의 뒤로 숨었다. 지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 어차피 죽어가잖아. "

" ... 김지원. 말 함부로 하지마. "

" 보라고..! 더 나빠질 것도 없잖아? 해 볼 가치가 있어. "

 

 

가치? 지금 그런 실험 정신에 준회를 이용하자고? 진환의 눈에 핏대에 섰다. 준회의 신음소리에 진환이 시선을 옮겼다. 자꾸만 늘어가는 상처들이 준회의 몸을 뒤덮었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차라리.. 차라리 내가 미로에 있었더라면. 진환은 준회와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절대로.. 절대로 미로엔 들어가지 않겠다고. 꼭 함께 나가자고 마주보며 웃었는데.. 진환이 통을 꽉 쥐었다.

 

 

" ... 좋아. 해 봐. "

 

 

차마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없어 진환은 지원에게 통을 건넸다. 지원이 재빨리 통을 받아 준회에게 다가갔다. 팔, 다리가 묶여 제압되어 괴로워하는 그의 몸엔 땀이 가득했다. 그 땀이 마치 피처럼 아파보였다. 지원이 천천히 다가가 통을 주사하려 그의 몸에 기대었다. 그러자 갑자기 팔을 잡아오는 엄청난 힘에 지원의 몸이 기울었다. 시뻘개진 눈으로 지원을 노려보는 준회가 지원의 팔을 붙들고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 넌 여깄으면 안돼. 넌 여깄으면 안돼!!! "

" 준회야! "

" 안돼!!! "

 

 

진환이 달려와 그의 팔에 매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가만히 앉아있던 승윤과 태현까지 일어나 급하게 준회의 몸을 붙들었다. 한 번 폭주한 그를 안정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진환의 몸이 미친듯이 떨려왔다. 빨리 주사기 줘! 지원의 외침에 동혁이 힘껏 준회의 팔에 주사기를 내리 꽂았다. 그대로 굳은듯 멈춘 준회의 손에서 겨우 빠져 나온 지원이 숨을 골랐다. 효과는 있네. 눈을 감고 숨을 고른 진환이 말했다.

 

 

" 내가 남아서 돌볼게. 그만들 가서 쉬어. "

 

 

진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곤 얌전히 잠이 든 준회를 쳐다보았다. 얼마 있지 않아 오두막에 윤혀잉 찾아와 턱 짓으로 지원을 불렀다.

 

 

" 해가 졌어, 신참. 가자고. "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바깥에 윤형이 횃불을 들고 앞장섰다. 입을 꾹 다물고 앞만 보며 걸어가는 윤형은 구덩이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를 느낀 지원이 물었다.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해?

 

 

" 네가 나타난 순간부터 모든게 틀어졌어. 처음엔 민호, 그리고 준회. 이제 꼬맹이까지. "

" ...... "

" 그 꼬맹이가 널 알아봤어. 장담하는데 너도 걔가 누군지 알겠지. "

 

 

윤형이 구덩이 문을 열고 지원이 들어가길 기다렸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지원은 별 말 없이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처벌치고는 가벼운 편이었지만, 축축한 구덩이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건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였다. 매정하게 문을 닫은 윤형이 횃불을 꽂고 문을 고정시키는 끈을 맸다. 지원은 위에서 쭈그려 앉은 그에게 다가갔다. 윤형은 그의 눈길을 피했다.

 

 

" 너도 알잖아? 영원히 여기 있을 순 없어. "

 

 

윤형이 지원을 힐끔 보고 꽂았던 횃불을 들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종일 제대로 먹지 못해 굶주린 배에 지원은 털썩 주저 앉았다. 배를 움켜쥐며 참아봤지만 꼬르륵거리는 소리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배고파서 잠도 오지 않는다. 의미없는 손장난을 치던 지원은 다가오는 불빛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누구야? 지원의 물음에 나타난 인영은 대답하지 않고 횃불을 구덩이 옆에 꽂았다. 불에 비추어 구덩이로 얼굴을 내민 것은 한빈이었다.

 

 

" 나야. "

" ...... "

" 재미 좋았어? "

 

 

다짜고짜 물어오는 그의 말을 지원은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야? 그가 되묻기도 전에 나뭇가지 문틈 사이로 무언가 던져졌다. 무심하게 굴러떨어진 덩어리를 주운 지원이 한빈을 올려다보았다. 잘 싸여진 나뭇잎 안에는 아무렇게나 뭉쳐진 주먹밥 몇 알이 들어있었다. 지원이 급하게 그것을 입에 넣자 한빈이 혀를 차며 물통을 던졌다.

 

 

" 배가 든든해야 잘 뛰지. "

" ... 고마워. "

" 어린 애랑, 재미 좋았어? "

 

 

이번엔 주어가 붙어 딸려 온 질문에 지원이 풉. 하고 입에 넣었던 밥알을 뿜었다. 아씨, 더럽게.. 한빈이 욕설을 뱉자 지원이 미안. 하며 물통을 주워 물을 들이켰다. 그보다, 무슨 말이야. 이게.

 

 

" 무슨 소릴 하는거야? "

" 원래부터 알던 사이라 했나. "

" ... 그건 나도 몰라. 아는 사이같긴한데 뭐였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니까. "

" 기억해내고 싶어? "

 

 

그거야 당연히.. 답하려던 지원이 멈칫했다. 불빛에 비추어 더 새빨간 한빈의 입술이 눈에 가득찼다. 오후에 정신없이 저 입술을 탐하던 자신이 떠올랐다. 솔직히 알 수가 없다. 기억하는 것이 좋은건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 한빈은 무표정이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너도 김동혁이 신경쓰이는거냐. 이놈이나 저놈이나 새로운 무언가에 대해 두려움이 너무도 많다. 지원이 피식 웃었다.

 

 

" 재미 좀 봤냐고? "

" ...... "

" 너랑은 재밌더라. 그리고. "

" ...... "

" 너도 어려. "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기억도 못하는게. 라고 반박해 올 줄 알았던 한빈은 의외로 조용했다. 가만히 지원을 보던 한빈은 몸을 일으켰다. 잠깐만! 지원이 다급하게 부르자 왜. 하는 무성의한 대답과 달리 한빈이 순순히 다시 구덩이 앞에 앉았다. 막상 한빈을 불렀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 주먹밥을 우물우물 씹었다. 맛은 형편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지원이 눈을 치켜떴다. 한빈의 무표정에선 항상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는 빈 허공을 바라볼 뿐, 그 어떤 생각의 단서도 허락하지 않았다. 피곤하게 사네.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늘 피곤하다.

 

 

" 너도 기억나는게 전혀 없어? "

 

 

한빈의 눈동자가 지원에게 흘러갔다. 한빈은 고개를 저었다. 3년동안 그 무엇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루종일 미로안을 달리고 잠이 들면, 꿈 안에서는 또 다른 미로가 펼쳐졌다. 그럼 그 곳에서돈 자신을 끝없이 달리고, 또 달린다. 그게 끔찍해 한동안은 잠을 설쳤었다. 지원이 손을 뻗어 한빈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손을 통해 전해져 왔다. 단 한 번도, 기억을 되찾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미로의 출구만 찾으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지원이 오고 나서 모든게 달라졌다.

 

 

" 나도 기억해내고 싶어. "

" ...... "

" 난 누군지, 가족은 있었는지. "

" 너와는.. 알던 사이였는지. "

 

 

지원은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도. 나도 알고 싶어. 한빈의 입술을 보자 또 다시 타오를듯한 충동을 느꼈다. 계기따윈 없었다. 당장에라도 문을 뜯고 그에게 달려들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는 답답함에 지원이 문을 세게 내리쳤다. 한빈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홀린듯 문 틈 사이로 다시 내민 지원의 손등에 한빈의 입술이 닿았다. 빨간 입술 사이로 내민 혀가 손등을 할짝였다. 피가 한 곳에 몰리는 느낌이다. 지원이 몸을 열자 한빈이 입술을 뗐다. 여기까지.

 

 

" 침 발라 놓은거야. "

" ...... "

" 나중에 재미 좀 보자. "

 

 

한 쪽 입꼬리만 비스듬히 올린 한빈이 횃불을 들었다.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지원은 번들거리는 제 손등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잠도 자지 말라는 처벌 중의 하나인가. 한빈이 흘리고 간 분위기가 구덩이 속을 헤집었다. 지원은 소리 없이 솟아오른 기분에 나른했던 잠결 속에서 깨어나야했다. 덕분에 딱딱해진 참을성이 우뚝 서서 흔들렸다. 한빈의 흔적이 묻은 지원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여지없이 숨 막히는 지원의 욕정이 밤새도록 그의 몸에서 몇 번이고 쏟아져 나왔다.

 

 

 

 

 

 

 

 

 

몇 번을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다. 지원은 한빈이 입고 있는 러너들의 옷과 같은 옷을 입고 미로의 문 앞에 섰다. 방탄조끼처럼 생긴 것이 몸에 딱 달라붙어 조금 불편했지만, 차마 그것으로 투덜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거운 쇳덩이가 열리고 잿빛 길이 나타났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 웃었다. 소리도, 기쁨도 없는 미소였다. 가자. 한빈이 외치고 앞장서서 달렸다. 어제와 같아 보이는 미로를 한빈은 모두 파악하는지 정확히 방향을 틀어 움직였다. 급하게 달리는 두 사람의 뒤에는 텅 빈 잿빛 공간만이 남았다. 지원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을 쫓아 오는건, 그리버가 아닌 시간이었다.

 

 

" 이쪽이야, 중심부까진 얼마 되지 않아. "

 

 

한빈을 따라 계속해서 달리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구조가 눈 앞에 나타났다. 사방이 좁은 잿빛 벽으로 둘러싸였던 길과 달리,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듬성듬성 나 있는 잡초들은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달리는 두 사람의 옆으로 커다랗게 5 라고 붉은색으로 쓰여있는 벽이 나타났다. 한빈이 말했던 구역으로 진입한 것이다. 곧 이어 나타난 6구역을 지나자, 금새 7구역에 도착했다. 7구역에 도착하자 그들의 발이 서서히 더뎌졌다.

 

 

" 이상해. "

" 뭐가? "

" 7구역은 일주일 후에나 열리게 되어있어. "

 

 

좀 더 깊숙히 들어가자 기다란 벽들이 일직선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미로의 구조 중 가장 기괴하다. 지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벽이 끝을 헤아릴 수도 없이 이어졌다.

 

 

" 여긴 대체 뭐야? "

" '블레이드' 야. "

 

 

한빈은 그렇게 말하고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아마 이름만 붙어있을뿐 그 이상의 정보가 없는 공간임이 분명했다. 길게 나열 된 벽 사이를 걷자 바닥에 널부러진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한빈이 다가가 그것을 집었다. 낡아빠진 옷과 헝겊가방. 지원은 마지막에 울부짖었던 민호의 모습을 떠올렸다.

 

 

" ... 민호의 셔츠지? "

" 응. 그리버가 여기로 끌고 왔었나봐. "

 

 

그 때 난생 처음 듣는 기이한 소리가 두 사람의 귀를 파고 들었다. 뭐지..? 치지직거리는, 망가진 기계가 내는듯한 소리. 지원이 한빈이 매고 있던 가방에서 은빛의 원통형기계를 꺼냈다. 그의 예상대로 소리는 그 기계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지원이 기게를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원이 방향을 틀 때마다 기계가 반응했다. 이게 길을 안내하고 있어. 지원이 앞장서자 한빈이 뒤를 쫓았다.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기계에서는 규칙적인 알림음이 작동했다. 점점 빨라지는 소리는 무언가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소리를 따라걷자 다리와 흡사한 길이 나타났다. 다리 밑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자릴 잡았다. 얼마나 되는 높이인진 알 수 없지만, 떨어지면 무사하진 못할 것 같았다. 여기 와 본적 있어? 지원의 물음에 한빈이 고개를 저으며 두리번거렸다. 아니. 인위적인 공간을 따라 쭉 걷자 또 다른 잿빛 벽이 그들을 막아섰다. 한빈이 한숨을 쉬었다.

 

 

" 또 막다른 길이네. "

 

 

그가 탄식하자 지원의 손에 있던 기계가 소리를 멈추었다. 붉은빛을 띄던 기계가 7이라는 숫자와 함께 녹색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막다른 길인줄로만 알았던 벽이 거짓말처럼 위에 솟아 올랐다. 몇 겹씩이나 닫혀 있던 벽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자 가장 안쪽에 있던 커다란 구멍이 열렸다. 한빈이 지원을 보고 물었다.

 

 

" 이 길이 맞을까? "

" ... 나도 몰라. "

 

 

지원이 앞장 서 그들 앞에 열린 통로로 향했다. 커다란 구멍에 가까이 가자 새까만 어둠만이 적막과 함께 멤돌았다. 한빈이 구멍 가장자리를 손으로 훑어냈다. 끈적한 액체가 묻어 나왔다. 그리버야. 그의 목소리가 구멍 속에 울려 퍼졌다. 그 때 붉은 불빛이 구멍 속에서 번뜩였다. 불빛은 그들을 스캔하듯 두 사람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제 몸을 더듬던 한빈이 아무런 이상도 없자 의아하게 구멍을 쳐다봤다. 뒤에선 커다란 소리가 그들을 덮쳤다.

 

 

" 방금 뭐였지? "

 

 

불안감이 서서히 그들의 몸을 잠식했다. 여기서 나가야 돼. 한빈의 말과 동시에 구멍이 닫히고, 겹겹히 올라서 있던 벽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서둘러! 두 사람이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한빈이 말했던 블레이드란 곳에 도착하자 길게 세로로 나열되어 있던 벽들이 움직이면서 맞물렸다. 하나하나씩 맞춰져 가는 벽들에 한빈이 사색이 되어 외쳤다.

 

 

" 가야 해! 잘못하면 갇혀! "

 

 

닫히는 벽 사이를 가로질러 미친듯이 달렸다. 벽들이 맞물려질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가는 몸뚱이가 까딱 잘못하면 금방이라도 부숴질 것 같았다. 벽이 닫히는 속도가 점점 빨라질수록 지원은 다리가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좁아지는 벽틈 사이로 한빈이 재빨리 빠져 나갔다. 쿵. 하고 제 눈 앞에서 닫히는 벽에 지원이 죽을 힘까지 끌어내 달렸다. 한빈이 사라졌다. 닫히는 문을 사이에 끼고 두 사람이 달렸다. 벽 너머로 한빈이 달리고 있었다. 더 빨리 뛰어!! 지원이 이를 악물고 몸을 던져 겨우 벽 틈 사이로 빠져 나왔다. 비틀거리는 그를 지탱하고 한빈이 그를 끌어 당겼다. 넓은 중앙이 다시 나타나자 바닥이 무너지면서 또 다른 벽들이 튀어나왔다.

 

 

" 뒤돌아 보지마!! "

" 빌어먹을..! "

 

 

무너지고, 솟아오르고, 지원과 한빈을 죽일 기세로 불규칙하게 변하는 구조에 두 사람은 미친듯이 다리를 움직였다. 가로, 세로로 움직이는 벽 틈 사이로 몸을 구겨 넣어 빠져 나오자 두 사람의 몸이 바닥을 뒹굴였다. 하마터면 몸이 짓눌려 터질뻔했다. 지원은 끔찍한 상상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고개를 처박았다. 순간순간이 죽음의 문턱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옆에 누운 한빈을 돌아봤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는듯 땀에 젖어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미로 앞에서 기다리는 사내들에게 지원과 한빈이 달려왔다. 아무 말 없이 저벅저벅 걸어가는 그들을 사내들이 쫓았다.

 

 

" 대체 무슨 일이야? "

" 김지원, 이번엔 무슨 짓을 한거냐? "

" 새로운 길을 찾았는데 출구일지도 몰라. "

 

 

지원의 말에 사내들이 웅성였다. 진환의 시선이 지원에서 한빈으로 옮겨졌다. 정말이야? 한빈이 비스듬히 웃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그것을 발견한게 뿌듯하다는 사실이 조금은 우스웠다. 아마 자신도 미쳐가는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 사실이야. 문을 열었는데 처음 보는 곳이였어. 낮에 그리버가 가는 장소일거야. "

" 잠깐. 그리버의 집을 찾았다구요? "

 

 

찬우가 그들 사이로 달려와 물었다. 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근데 거길 가자구요? 그의 얼굴을 본 한빈이 웃었다. 지원이 찬우의 표정을 보고 설득시키려 입을 열었다.

 

 

" 거기가 나가는 길일지도 몰라. "

" 그래. 아님 그리버가 우글거리는 곳이던가. 저 자식은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 "

 

 

사내들 틈에 있던 윤형이 지원의 말을 잘랐다. 참아왔던 지원이 한계를 느끼곤 뒤돌아 그를 밀쳤다.

 

 

" 입닥쳐. 난 그거라도 했지. 넌 뭘했어? 벽 뒤에 숨는 것 빼곤 뭘 했냐고? "

" 잘들어, 신참. 넌 여기 온 지 사흘 됐지만 난 3년째야. "

" 그래, 여기 3년이나 있었는데 아직도 여기 있잖아! 아직도 모르겠어? 방법을 바꿔보라고. "

" 네가 대장이라도 되냐? "

 

 

험악해져 가는 분위기에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들 너머로 동혁이 소리쳤다. 깨어났어요! 구준회라는 분이 깨어났다구요! 그의 말에 가장 먼저 진환이 달려가고, 몇몇 사내들이 그 뒤를 따라 달렸다.

 

 

 

 

 

 

 

 

 

" 준회가 무슨 말이라도 했어? "

" 아뇨. 아무것도.. "

 

 

진환이 달려와 등지고 앉아있던 준회에게 안기려다 멈칫하고 그의 앞에 섰다. 준회는 충혈된 눈으로 제 앞에 선 자신의 연인을 올려다보았다. 진환의 눈가는 준회와 마찬가지로 불게 변해있었다. 그의 작은 얼굴에 준회의 손이 닿았다. 푸석해진 얼굴이 손 끝에서부터 느껴졌다. 내가, 걱정시켰구나. 준회의 눈을 읽기라도한듯 진환이 고개를저으며 그의 손에 제 손을 포갰다. 검붉었던 상처들은 말끔히 사라진 후였다. 괜찮아..? 다갈라진 목소리로 물은 진환에게 준회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지원이 조심스레 다가와 그에게 말했다.

 

 

" ... 미로에서 나가는 길을 찾은 것 같아. "

" ...... "

" 들었어? 여기서 나갈 수 있어. "

 

 

진환을 올려다보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무언가를 참아내는듯한 표정이었다. 진환이 놀라 그의 얼굴을 끌어안자 준회는 소리없이 그의 품에서 울었다. 준회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내뱉은 목소리는 아주 작아 곁에 있던 지원과 진환만이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모든걸 잃은 목소리였다. 못나가.. 그가 되풀이했다.

 

 

" ... 우린 여길 못나가. 그들이 허락하지 않아. "

" 무슨 소리야? "

" 이제 다 기억나.. "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혼란으로 얽혔다. 진환의 품에서 떨어진 준회가 얼굴을 쓸었다.

 

 

" 뭐가 기억 나는데? "

" ... 너. "

 

 

준회가 고개를 돌려 지원을 바라보았다. 원망과 슬픔이 뒤섞인 눈빛. 그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졌다.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 그들은 널 제일 좋아했어. 항상.. "

" ...... "

" 왜 그랬어? 왜 여길 온거야? "

 

 

무슨 말이야.. 그들이 준회의 말을 미처 깨닫기전에 오두막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준회는 머리가 아픈지 두 손으로 머릴 감싸며 신음을 뱉었다. 지원이 몸을 일으켜 한빈과 동혁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어둠이 차츰씩 내려 앉는 글레이드에는 평소와 달리 사내들이 급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지원이 그 중 하나를 붙잡고 묻자 사내는 겁에 질린 얼굴로 횃불을 든 채 안절부절 못했다. 큰일났어.

 

 

" 미로 문이 닫히질 않아. "

 

 

절망의, 시작이었다.

 

 

 

 

 

 

 


6

 

[iKON/바비아이] 메이즈 러너 中 | 인스티즈

 

 

 

 

 

 

횃불을 든 사내들이 허둥지둥 미로의 입구로 달렸다.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사내들의 얼굴빛이 푸르스름한 저녁 하늘보다 창백했다. 바람을 빨아들이며 닫혔던 잿빛 벽은 그 어떤 힘으로도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굳게 서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입구 앞에 서자 삭막한 기운이 사내들을 감쌌다. 미로를 올려다보는 그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거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울릴 정도의 진동이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던 사내들의 뒤로 그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열리는 것인지도 몰랐던 반대방향의 잿빛 벽이 서서히 움직이며 엉켜있던 덩쿨을 뜯어내고 입을 벌렸다. 이어서 굳게 닫혀있던 양 쪽의 벽들도 큰 소리를 내며 입구를 열었다. 지원이 고개를 흔들고 얼어붙어 있는 찬우를 흔들었다. 내 말 들려? 정신차려.

 

 

" 찬우야, 본부로 가서 물건들로 문을 막아. "

 

 

윤형이 낮게 욕을 읊조리고 사내들에게 말했다. 다들 숲으로 숨으라고 해, 어서! 사내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가 되었다. 지원은 한빈의 팔목을 붙들었다. 편하게 얼굴 볼 사이가 없구나, 너는.

 

 

" 무기들 챙겨, 전부 다. "

" 알았어. "

" 김한빈. "

" ...... "

" 본부에서 보자. 꼭, 살아 남아. "

 

 

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빈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지원의 손목을 살짝 잡아 떨어뜨리곤 사내들 몇 몇과 함께 무기고로 향했다. 점점 멀어지는 한빈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지원이 뒤를 돌았다.

 

 

 

 

 

 

 

 

 

MAZE RUNNER

CHAPTER 6

 

 

 

 

 

 

W. 두번째손가락

 

 

 

 

 

 

덜덜 떨고 있는 동혁은 이 상황을 납득하기 힘든 것처럼 보였다. 지원의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서툴게 쓸어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험한 상황이었다. 지원이 다정한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 찬우보다 적으면 적었지, 결코 나이가 많지 않을 어린아이다.

 

 

" 동혁아, 형 봐봐. "

" 왜.. 왜 이러는거에요? 입구가 왜.. "

" 넌 형이랑 같이 구준회를 데리러 가자. 괜찮아, 내가 같이 있을거야. 지금 대장한테 가는거야. "

 

 

동혁이 덜덜 떨리는 몸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괜찮아. 동혁의 어깨를 잡고 오두막으로 몸을 트는 지원의 귀에 기괴한 울음과 사내들의 비명소리가 박혔다. 고개를 튼 지원의 눈 앞에 두려움에 가득 찬 사내들이 기겁을 하며 달려갔다. 좌편의 입구를 보러갔던 사내들이다. 끼이익. 쇠를 긁는듯한 울음소리가 지원이 서 있는 입구쪽에서도 들려왔다. 동혁이 아연실색하며 지원의 몸에 매달렸다. 무섭다. 지원도 이 순간만큼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두운 미로 입구 끝에서 낯설지 않은 형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마리가 아니야..? 점점 뚜렷해지는 '그것' 들의 형태에 지원이 소리쳤다. 전부 숨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사내들이 방향 없는 도주를 시작했다. 꼼짝 없이 당에 발이 박힌듯 서 있는 동혁은 넋이 나간 것 같았다.

 

 

" 동혁아!! 큭.. "

 

 

지원이 멍하게 서 있는 동혁을 들쳐매고 들판을 가로질러 달렸다. 빨리! 뛰어, 어서! 기다란 풀밭을 달리는 지원의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내들의 비명 소리가 귓가를 찔러왔다. 죽으면 안돼. 죽을 수 없어.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살점이 뜯기는, 날카로운 것에 몸이 관통되는 생생함이 울음소리와 함께 섞였다. 어깨에 들쳐맨 동혁 때문에 지원의 발걸음이 점점 더뎌졌다. 주변에서 달리던 사내들이 어디에선지 모르게 튀어나오는 그리버의 촉수에 하나 둘 나가 떨어졌다. 본부로 가! 누군가의 외침에 사내들이 같은 방향으로 달렸다. 지원의 품에서 겨우 내려온 동혁이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았다. 본부에서 막 부축을 받고 나온 준회가 지원을 보고 물었다.

 

 

" 무슨 일이야? "

" 놈들이 밖으로 나왔어. "

" 그리버들이? "

 

 

말이 끝나자마자 끔찍한 비명과 함께 그리버와 한 사내가 눈 앞에서 뒹굴었다. 주춤거릴 틈도 없이 뒤에서도 습격해오는 또 다른 그리버에 정신없이 방향을 틀어 달렸다. 사내들의 부축에서 떨어진 준회가 배를 움켜쥐고 달렸다. 아직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버의 습격은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한 두마리가 아닌지 또 한 마리가 그들의 앞에 튀어나와 촉수를 세웠다. 지원이 옆에 있던 술병에 불을 붙여 그리버를 향해 던졌다. 뜨거운 불길에 그리버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뒹구는 틈에 사내들은 그 사이를 빠져 나갔다. 뒤를 돌아 본 그리버는 바닥을 뒹굴다 저절로 불을 끄고는 다시 그들을 쫓았다. 끈질긴 새끼.. 달리면서 뒤쳐진 사내들은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그리버에 덮쳐졌다.

 

 

" 윽..! "

" 대장!! "

 

 

상처에 이기지 못한 준회가 비틀거리며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지원이 주변에 있던 장대를 집어 준회의 앞에 섰다.

 

 

" 내 뒤로 서! "

 

 

눈 앞에서 그리버가 끈적거리는 액체를 질질 흘리며 달려왔다. 지원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장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 죽는건가. 생각한 순간 달려오던 그리버의 몸뚱이에 장대들이 꽂혔다.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김.. 한빈.. "

 

 

살아있었구나.. 무기고에서 돌아온 한빈이 사내들로부터 앞장 서 지원의 앞에 섰다. 뒤에서 활을 들고 쫓아오던 진환이 쓰러진 준회를 발견하곤 달려와 그를 안아 끙끙거리며 일으켰다. 작은 몸집에 매달리다싶이 일어선 준회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장대가 잔뜩 꽂힌 그리버가 끼긱거리며 움직이자 사내들이 서둘러 몸을 피했다. 찬우가 소리치는 곳으로 달려가니 피난처처럼 생긴 꽤나 넓은 오두막이 나타났다. 감탄할 틈도 없이 사내들이 나뭇가지로 잔뜩 둘러싸인 오두막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밖에 있던 찬우가 들어오고 문을 닫았다. 숨죽인 사내들이 가득한 오두막 밖 안에서 그리버 특유의 움직임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나무로 얽힌 오두막의 문이 덜컹거리며 당장에라도 부숴질 듯 흔들렸다.

 

 

" 조심해. "

 

 

낮고 작은 지원의 목소리에 사내들이 몸을 숙였다. 위에서 쿵쿵대는 그리버가 사내들의 기척을 느꼈는지 미친듯이 오두막에 부딪히며 날뛰었다. 극도의 긴장감이 사내들을 덮쳤다. 천장에 엮인 나뭇가지 사이로 그리버가 한 걸음씩 다가오자 사내들이 뒷걸음질 쳤다. 뒤로 물러서.. 그리버가 자릴 잡고 찧는 천장이 먼지를 토해냈다.

 

 

" 으아아아악!!! "

 

 

퍽. 하고 그리버의 다리가 내려 앉고 천장을 지탱하던 나무들이 무너져 내렸다. 한 번 뚫린 오두막은 사방에서 그리버의 촉수가 튀어나와 사내들을 하나씩 집어 삼켰다. 지옥이 따로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촉수가 사내들을 몰아 세우고 먹이를 고르듯 빠르게 그들을 훑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찬우를 붙들었다.

 

 

" 정찬우!!! "

" 안돼! "

 

 

지원과 진환이 끌려가는 찬우의 팔을 잡고 뒤 몸을 힘껏 잡아뺐다. 안돼, 안돼! 찬우의 얼굴이 절망으로 번졌다. 물러서 있던 사내들이 함부로 그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주춤였다. 으.. 도와줘.. 진환이 몸을 비틀자 쓰러지다싶이 누워있던 준회가 손을 더듬어 무기를 찾았다. 그의 눈에 그리버가 촉수를 세우는 것이 보였다. 이번만큼은, 내가 지켜줘야해. 장대를 잡은 그가 손에 힘을 주었다.

 

 

" 으아아아아!!! "

 

 

소릴 지르고 몸을 일으켜 달려간 준회가 미친듯이 그리버의 촉수를 내리쳤다. 장대로 수 없이 내리친 촉수가 부숴지자 찬우를 붙잡던 촉수가 끊기고 공중에 붕 떠 있던 찬우의 몸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방향성을 잃은 촉수가 휑하니 뚫린 오두막을 빠져나갔다.

 

 

" 찬우야, 괜찮아? "

" 어.. 으으.. 응.. "

 

 

진환이 급하게 준회를 올려다보았다. 상처가 온전히 아물지 않은 옆구리에서는 피가 쏟아져 그의 바래진 옷을 붉게 적셨다. 가쁜 숨을 내쉬는 그에게 진환이 손을 내밀었다. 쓰러질것처럼 머리가 어지럽다. 피를 쏟아내는 옆구리를 붙잡고 한 손으로는 진환의 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준회를 올려다보는 진환의 시야로 방금전 빠져나갔던 촉수가 다시 보였다. 손을 내밀면, 당장이라도 닿을듯한 거리에. 네가 있는데. 진환이 찢어질듯 고함쳤다.

 

 

" 구준회!!! 안돼!!! "

 

 

촉수가 기괴한 움직임으로 준회의 몸을 낚아챘다. 크게 비틀린 몸이 힘 없이 끌려 천장에 부딪혔다. 잡아!! 지원이 촉수에 달려들고 진환이 그를 쫓았다. 안돼.. 제발.. 안돼.. 지원이 위로 솟구쳐 올라가는 촉수를 붙들었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그를 준회가 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원을 한 번, 그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또 울고 있는 진환을 한 번. 뚫린 옆구리를 파고드는 촉수의 서늘한 감각이 준회를 지배했다. 내 연인. 나의 연인아. 내가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는데..

 

 

' 꼭 함께 나가자. '

 

 

그렇게 말했는데.. 약속했는데..

 

 

" 구준회!!! "

 

 

그 약속. 지키지 못하겠구나.

 

 

" 김지원, 똑바로 들어.. 꼭 여기서 탈출해. "

 

 

진환의 우는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준회가 속삭였다. 꼭 탈출해, 저 아이를 데리고. 거칠게 잡은 멱살은 그 어느때보다 간절했다. 그의 눈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약속해. 내 대신, 저 아이를 탈출시켜주겠다고. 지켜주겠다고. 지원이 대답하기도 전에 촉수가 순식간에 그를 끌어 올려 눈 앞에서 사라졌다.

 

 

" 구준회!!! 안돼!!!!! "

" 김지원! "

" 나가면 안돼! 김지원! "

" 김지원! 기다려!!! "

 

 

촉수를 따라 지원이 급하게 오두막을 기어 나왔다. 그를 뒤따라 나온 사내들의 눈 앞에 저만치서 불 타오르는 그들의 오두막이 보였다. 그리버들의 울음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준회를 끌고 간 그리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 타오르는 오두막 사이에서 몇 몇의 사내들이 걸어나왔다. 누구지..? 누군가 묻자 모습을 보인 사내가 있는 힘껏 지원의 얼굴을 내리쳤다.

 

 

" 송윤형.. "

" 이게 다 네 탓이야!! "

 

 

지원에게 달려드는 윤형을 사내들이 뜯어 말렸다.

 

 

" 이거 놔! 주위 좀 둘러봐! "

" 그만둬! 김지원 잘못이 아니야! "

" 대장 말 들었잖아! 저 새낀 놈들과 한패야! "

" 누굴 말하는거야?! "

" 여길 파괴하라고 놈들이 보냈고, 그렇게 됐다고! "

" ...... "

" 주위를 봐, 김지원. 보라고! "

 

 

지원이 잘려나간 촉수를 집어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준회의 마지막 모습이 어른거렸다. 윤형의 말이 귀에 멤돌았다. 다 네 잘못이야. 네 잘못. 너 때문에.

 

 

" 형..? "

" 어쩌면 송윤형 말이 맞을지도 몰라, 동혁아. "

" 무슨.. "

" 난 기억을 되찾아야 해. "

 

 

촉수를 든 손에 힘이 실렸다. 무언가 크게 결심한듯 숨을 들이킨 지원이 촉수를 들었다. 형..? 형 뭐하는거에요? 형..! 동혁이 지원의 팔을 잡았지만 그를 뿌리치고 지원이 강하게 본인의 다리를 찔렀다. 촉수가 전해주는 고통이 다리의 혈관을 파고 들었다.

 

 

" 안돼!! "

 

 

한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지원의 몸이 맥 없이 쓰러졌다. 어지러운 머릿속이 기억없는 기억들을 게워내고 싶어 자꾸만 울러였다. 약속해. 꼭 여기서 탈출해. 저 아이를 데리고. 저를 보고 있던 준회의 속삭임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것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그것이 유일한 기억인듯. 준회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울렸다. 처절하고, 조용하게, 결코 전해질 수 없었던 마지막 말.

 

 

' 사랑해, 진환아.. '

 

 

전해야 하는데.. 덮쳐오는 기억의 물결에 치여 지원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여긴 어디지. 또 꿈인가. 삭막한 내부. 건물 안..? 어린 소년이 보인다. 아마도 나인걸까.

 

 

' 누가 우릴 여기로 보낸거지? '

' 우리도 몰라. '

 

 

연구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데이터를 훑으며 기계 주변에서 알 수 없는 말들을 주고 받았다. 계속해서 연구원들을 살피며 그들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중년의 여자. 데이터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동혁은 다른 연구원들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도 동혁은 눈에 띄게 어린 모습이었다. 지원의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동혁의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 우리가 왜 이래야 하지? '

 

 

그렇게 말하는 자신에게도 하얀 가운이 입혀져 있었다. 나도 연구원이였던가? 지원의 손가락이 디지털화 된 수치들이 떠 있는 화면을 이리저리 터지하고 정보를 입력했다. 중년의 여자가 지원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고 귓가에 속삭였다. 잘했어, 바비. 날 따라와. 홀린듯이 따라간 지원의 몸이 수술대와 같은 침대에 눕혀졌다. 누군가 말했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 위키드는 나쁜 일을 하는거야. '

 

 

처음 듣는 부정. 당신은 누구야. 그 때 꿈에서 내 손을 잡았던 남자인가?

 

 

' 김지원. '

 

 

처음 듣는 이름. 꿈에서는 항상 '바비' 가 아니였던가. 이 남자는 누구지.

 

 

'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는거야. '

 

 

또 다시 중년의 여자가 말해온다. 물에 잠긴 사람들. 지원이 관찰하듯 그들을 쳐다보았다. 고통 속에 몸부림 치는 얼굴들이 지원을 향해 소리쳤지만 물 속의 기포들이 그 아우성을 대신하여 터져나왔다.

 

 

' 이게 어떻게 내 잘못이야? '

' 네가 이랬어!! '

' 널 봤어! '

 

 

물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윤형의 얼굴이 스쳤다. 지원이 뒤돌아서 자신과 같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동혁에게 말했다.

 

 

' 그들이 죽어가는걸 더는 못 보겠어. '

 

 

동혁이 텅 빈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옳고 그름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가 기계처럼 말했다.

 

 

 

 

 

 

 

 

 

지원의 작은 눈이 두 어번 껌뻑이며 시야를 찾았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기억을 되짚었다. 꿈. 아니, 내 기억. 야. 하고 부르는 소리에 지원의 새카만 눈동자가 소리의 근거지를 향했다. 한빈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괜찮아? "

 

 

여기가 어디지. 몸을 일으키는 지원에 한빈이 움찔거리며 몸을 뒤로 젖혔다. 김한빈 무릎에 누워 있던건가. 왜..? 지원이 이마를 짚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한빈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갈 곳을 잃은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얼굴이 붉었다. 왜 저래. 옆에는 동혁이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고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거에요? "

 

 

좀 더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지원이 고개를 치켜 들었다. 찬우가 쭈그려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여긴 구덩인가. 첫 날, 그리고 처벌을 받았던 날 자신이 처박혔던 것을 회상하고 지원이 한빈과 동혁을 번갈아보다 인상을 찡그렸다. 김동혁은 그렇다치고, 김한빈은 왜 여기 있는거지.

 

 

" 어떻게 된거야? "

" 이제 윤형이 형이 대장이에요. "

" ...... "

" 우리더러 선택하랬어요. 자길 따르던지, 아님 형이랑 미로에서 죽던지. "

 

 

지원이 고개를 흔들며 일어섰다. 다른 애들도 그렇게 생각해? 그를 따라 눈동자를 굴리던 한빈이 지원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 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됐다는 말에 설득 당했어. "

" ... 그건 맞는 말이야. "

" 무슨 소리야? "

" 이곳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달라. "

 

 

지원은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기억들에 텁텁해진 입술을 축혔다. 옆에서 웅크리던 동혁은 고개를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 앞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을 본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지원은 동혁을 쓰다듬으려던 손을 거두고 말을 이었다.

 

 

" 감옥이 아니야. 일종의 시험장이지. "

" ...... "

" 우리가 어렸을 때 시작됐는데.. 다 그들이 고안한 테스트야. "

" ... 뭐? "

" 우린 그저 실험 대상이지. "

 

 

그리고, 김한빈. 너와 나는.. 지원이 입술을 달싹였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애써 삼키고 크게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아직은, 말하고 싶지 않다. 충분히 혼란을 안고 있을 그의 머릿속에 무엇을 더 심어줄 수 있을까. 내가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자격이 될까. 재촉하는 한빈에 지원이 마지못해 다시 입을 열었다.

 

 

" 근데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어. 매달 정확히, 한명씩 차례대로.. "

" 미로로 보낸거군.. "

" 그래. 하지만 전부는 아냐. "

" 무슨 뜻이야? "

 

 

지원이 뜸을 들이자 한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말해도 된다는 뜻이였다. 오히려 안달 난 것은 위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찬우였다. 찬우는 구덩이 입구에서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지원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 ... 난 그들의 일원이야. "

" ...... "

" 너흴 여기 보낸 자들과 함께 일했었어. 오랫동안.. 너희를 지켜봤어. "

" ...... "

" 너희들이 여기 있는 동안 난 반대쪽에 있었어. "

 

 

그의 말에 동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한 숨도 못잤는지 충혈된 눈이 지원을 향했다.

 

 

" ... 동혁이 너도 그렇고. "

" ......! "

" 동혁아.. 우리가 같이 이런거야. "

" 아.. 냐.. 그럴리 없어.. "

" 사실이야. 내가 봤어. "

 

 

동혁의 붉은 눈에 눈물이 고였다. 힘 없이 도리질치는 고개짓은 인정할 수 없다는듯 지원의 팔을 붙들고도 계속되었다. 거짓말., 거짓말이라고해..!

 

 

" 우리가 그들 일원이라면 여기 보낼리가 없잖아요..! "

" 이젠 상관없어.. "

" 김지원 말이 맞아. "

 

 

동혁의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떨어졌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한빈이 지원을 붙들고 있는 동혁의 팔을 떼어냈다.

 

 

" 이젠 상관없지. 이 모든게.. "

" ...... "

" 미로에 오기 전의 우리는 이제 존재하지 않아. 기억하고 싶지만, 예전 기억은 다 지워졌으니까. "

" 그치만.. "

" 중요한건, 우리가 지금 누군가이며 살아남는거야. "

 

 

'살아남는' 다는 말에 강조한 한빈의 말에 동혁이 침을 삼켰다. 이곳에 오래 있었던 사람일수록, 과거에 그다지 미련이 없었다. 그만큼 이 현실에 묶인 내 자신이 지겹도록 불쌍하고, 아주 지독하게 지쳤으니 말야. 한빈이 시선을 피하는 지원의 눈을 집요하게 쫓았다.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라.. 실은 피떡이 될 때까지 치고 싶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다. 다 부숴진 지금으로 네가 이끌어줬으니까. 어쩌면 파멸의 끝이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르지.

 

 

" 넌 미로에 들어갔고 나갈 길을 찾아냈어. "

" 내가 안들어갔다면 구준회가 안죽었겠지.. "

" ... 어쩌면.. "

" ...... "

" ... 김지원. "

" ... 김진환은 어디있지? "

 

 

그 애에게. 꼭 전해야 하는 말이 있어.

 

 

 

 

 

 

 

 

 

 

진환은 수 명의 이름이 새겨진 벽 앞에 서서 준회의 이름을 손 끝으로 훑었다. 가장 먼저 새겨졌을 그 이름은 이제 성의 없이 긁혀진 선 몇 개로 없는 사람이 되었다. 진환은 벽 위에서 힘을 주어 손을 말아 쥐었다. 네 시체는 지금쯤 미로 곳곳에 찢어 흩어져 있을까. 아니면 그리버의 뱃속으로 들어가 날카로운 촉수와 같은 몸이 되었을까. 어느쪽이든 되찾고 싶다. 미로에 있다면 그 찢어진 시체를 모두 주워 끌어안고 싶고, 그리버의 촉수가 되었다면 수 백번이고 그에 찔려도 좋다.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 단 하나라도 네 흔적을 찾을 수만 있다면 설령 죽는다해도 상관없다. 그치만..

 

 

' 미로엔 단 한 발자국도 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해. '

' 다치지 않겠다고도 약속해. '

 

 

약속.. 했으니까... 난 끝까지 너를 거역할 수 없어. 이젠 닿을 수 없는 그에 진환이 그의 흔적이 묻었던 이름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바로, 어제까지만해도 있었는데. 내 곁에서..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었는데.. 잿빛 벽이 그를 삼켰다. 그의 이름마저 삼켜 버릴까. 떨리는 손으로 진환이 이름 위에 덧대여진 선을 더듬거렸다. 지워.. 제발 지워져.. 이런걸로 네 이름이 사라질 수는 없어. 눈물이 죽은 풀 위에 뚝뚝 흘러내렸다. 작은 비가 내리는 것만 같았다.

 

 

" 김진환.. "

" ...... "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진환은 곧바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챘다. 그를 향한 원망은 없었다. 다만 혼자 있고 싶을 뿐이다. 진환은 뒤돌지 않은 채 벽을 올려다 보았다. 지원이 조용히 물러서줬으면 싶었다. 지원의 잘못이 아니라는것 정도는 알고 있다. 원망은 없지만, 지금은 그 누구에게라도 책임을 묻고 싶은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이 튀어 나올 것 같아서였다.

 

 

" ... 구준회가.. 나한테 전한 말이 있어. "

" ......! "

" 약속, 못지켜서 미안하다고.. 꼭 너를 데리고 탈출해달라고. "

 

 

너는, 왜 끝까지.

 

 

" 마지막에 부른건 네 이름이였어. "

" .... 흐윽.. "

" '사랑해, 진환아.' 라고.. 그렇게 말했어. "

" 흐으으.. "

" ... 미안해... "

 

 

미안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는, 왜 끝까지 나를 사랑해. 왜.

 

 

" 사랑해.. 나도 사랑해.. "

 

 

쇳소리가 섞여나온 목소리가 대답없는 벽을 향해 반복되었다. 지금, 어디있어.

 

 

' 나랑 사귈래? '

' 뭐..?! 미쳤어? '

 

 

처음 봤던 그날, 우리의 끝을 알았더라면.

 

 

' 왜. 싫어? 너 맨날 나 졸졸 쫓아다니잖아, 꼬맹아. '

' 꼬맹이 아니거든? 가서 일이나 하시죠, 대장. '

' 그럼 네가 뭔데? '

' 내가 너보다 형일지 어떻게 알아! 아무것도 기억 못하면서! '

' 뭐? 푸하하하하 - '

 

 

밝게 웃던 네 얼굴에 수도 없이 입을 맞췄을텐데.

 

 

' ... 형이라고 부르면 생각해볼게. '

' 푸흡.. '

' 싫음말아..! '

' 형- '

' ...... '

' 진환이 형- '

 

 

사랑하는 사람아. 왜 항상 끝나고 나서야 그 모든 것이 진정 사랑이였음을 깨닫게 되는건지.

나는 네가 끝나고 나서야 사랑임을 깨달아. 눈물이 쉴새 없이 네 이름 끝에 맺힌다.

 

 

" 사랑해, 준회야... "

 

 

내게 마지막 숨결이 주어지는 순간에도, 속삭이는 말이 그것이기를.

 

 

 

 

 

 

 

 

 


두번째손가락



[iKON/바비아이] 메이즈 러너 中 | 인스티즈

 

 

 

 

아ㅠㅠㅠㅠㅠ잠깐만ㅠㅠㅠㅠㅠ나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왜 이렇게 썼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죄송해여 제가 ㅈㅣ금 시차적응이랑 새벽감정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어요ㅠㅠㅠㅠㅠㅠ정신없이 쓴 글인데 눈물이 멈추질 않아여ㅠㅠㅠㅠ아진짜 똥싸지르고 혼자 울어ㅠㅠㅠ쪽팔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엉어유ㅠㅠㅠㅠㅠㅠㅠㅠ죄송해여ㅠㅠㅠㅠㅠㅠㅠ아미칯ㅎㅍ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흐으으으ㅠㅠㅠㅠㅠ 다음에 마지막 편 들고 올게여ㅠㅠㅠㅠ오타가 많을수도 있는데 지적해주시면 감사해요... ㅇㅁㄴ힁뉴ㅠㅠㅠㅠㅠㅠㅠ

 

ㅈㅓ는 기절하러 갑니다ㅠㅠㅠㅠㅠㅠ20000...........

 

 


메이즈러너 시리즈에선 암호닉을 받지 않습니다.

ㅠㅠㅠ암호닉은 피아노만 받아여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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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수면바지에요..아ㅠㅠㅠㅠㅠㅠㅠ메이즈러너ㅠㅠㅠㅠㅠ영화로도 봤는데ㅠㅠㅠㅠㅠ준회가 죽는건 알고 있었지만으ㅓㅓ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눈물 날 것 같아요..ㅠㅠㅠㅠㅠ준회가 그리버에게 끌려간게 진짜..아ㅠㅠㅠㅠㅠㅠ준회 다시 살아난다면 진짜 얼마나 좋을까요..ㅠㅠㅠ아 그리버 진짜 개..아오...다음편도..기대할게요ㅠㅠㅠㅠ
9년 전
독자2
ㅜㅜㅜㅜㅜㅜㅜㅜ 자까님 ㅠㅠㅠㅠㅠㅠ 신알신해놓길잘했네요ㅠㅠㅠㅠ 잘보고갑니다ㅠㅠㅠ♡♡♡
9년 전
독자3
와이와중에저는왜친척집이죠 저는왜스마트폰아아닌.... 이거보면 오해사기 딱 좋을것같아요 하하하ㅏ핳이런하하하ㅏ하하하 내일 아빠핸드폰 꼭 사수해보도록 할게요ㅠㅠㅠㅜㅠㅠ 그렇게 가다린 메이저러넌데ㅜㅜㅠㅠㅠㅠㅜㅠㅜㅠㅜㅜ 꾸에애에엥푸ㅠㅜ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ㅜ
아! obsession이에요ㅠㅠㅠㅜㅜㅜㅜㅜㅜ내일꼭와요저진짜ㅠㅡㅜㅜㅠㅠㅡㅠㅠㅜㅠㅜㅡ

9년 전
독자4
뿌엥 구준회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ㅜㅠㅠㅠㅠㅠㅠㅠㅠㅜ와짅차 픽보고울거란생각해본적도없고 울어본적도없는데 이게참진짜 으어ㅜㅜㅠㅠㅠㅜㅜㅠㅠㅠㅠㅠㅜ진환이가 준회와의 과거회상부분에서 저도모르게그만ㅜㅠㅠㅠㅠㅠㅠㅠㅠㅜㅠㅜㅠㅠ메이즈러너항상기대많이하고있구요 원작도궁금해지네요ㅠㅠㅜ 그리고제가바뱌를 밀다보니 오늘키스신.... 캬죽여주네요정말ㅠㅠㅜㅜㅠㅠㅠ 최고엥ㆍ느정말! 잘보고갑니당ㅠㅜㅠㅜㅠㅠ
9년 전
독자5
휴지입니다!
ㅂㄷㅂㄷ...ㄷㄷㄷ...(동공지진) 쓰차풀려서 쓰려다가 다시 봤는데... 이런ㅋㅋㅋㅋㅋ작가님 혹시 손이 금이세요...?헣
ㅠㅠㅠㅠ이거 진자 너무 재미있잖아요ㅜㅜㅜ 제가 사랑하는 준환이가 아련터지게 으윽... 한빈이가 점점 바비랑 깊어져가는게 너무 좋았어요ㅠㅠ
보는 내내 둘에게 처해진 환경은 너무 힘들고 어두운데 둘사이에서만 보면 달달함(휴지주관...ㅎ)이 너무 저를 행복ㅋㅋㅋㅋ하게 만들어줘서ㅠㅠㅠㅠ
다른 곳 갔다오셨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ㅠㅠ 작가님이 써주시는 메이저러너가 표현이 너무 제 취향을 저격하다못해섴ㅋㅋㅋ이미 넘어가버렸어요ㅜㅠㅠㅠ
사랑합니다!!작가님 오늘도 잘보고 가요♥

9년 전
독자6
콘콘이에여... 아 어제 집에 도착해서 이제 읽었는데 역시 두번째 손가락님은..the love... 애정하는 영화라 그런지 더 재미있게 읽히네요ㅠㅠ 마지막화도 기다릴께요!!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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