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재밌게 읽으세요^0^~
누나는 무슨 일이든 시작이 중요하다고 했었다.
싸우다가 내 뺨을 때리기도 했지만, 한껏 상냥한 목소리로 조언과 충고를 아낌없이 하는 것에
온몸을 바쳐 따르는 것은 어른다운 여유로 나를 어우르기 때문이다.
누나는 언제나 내 하나뿐인 동경의 대상이었다.
비록 누나와 나는 아주 많이 다르게 커왔지만, 그 본질만은 함께이고 싶었다.
그러나, 늘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누나가 대학에 합격하고 모교를 방문해 연설을
한 날은 몹시 어수선했다.
새벽까지 빗줄기에 시달린 대기는 겨울의 날씨보다 더 매서운 초봄의 바람에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귀가 빨개지다 못해 아플 정도로 추운 날씨지만, 억지로 코트 깃을 여미며 참고 버스를 탔다.
그렇게 고생을 하며 학교에 가다가 그만 사정없이 미끄러졌다. 쪽팔려서 얼른 일어났지만, 새로 산
코트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스마트폰 액정을 통해 헝클어진 머리를 보니 씨발, 절로 욕까지 나온다.
괜스레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아스팔트 위를 운동화로 톡톡 쳐본다.
지 혼자 자빠진 내 죄지. 한숨과 함께 애써 자기위로를 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당 안에 들어선다.
학생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인 탓인지 다행히도 연설은 몇십분 늦춰졌다. 1학년 입학식 중 누나의 연설이
있어서 3학년이지만 짐짓 모르는척 들어왔다. 아아, 진짜 친구 녀석들 말대로 시스콤인지도 모르겠다.
" 푸핫, 누나 신혼여행까지 쫓아갈 기세네. 누나성애자세요? "
비웃는 변백현의 목소리가 생각나 그 때 쥐어박았을 껄 후회가 된다.
1학년 사이에 껴있는 것도 아니다 싶어, 자리정리가 이루어질 때 맨 뒤쪽에 자리를 잡아 안았다.
북적이던 강당 안이 어느 정도 조용해지고, 곧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누나의 연설이 시작될 즈음, 누군가 단상으로 올라와 마이크를 잡는다. 내 일인 것처럼 뿌듯한 마음이
든다. 가슴을 펴고 고개를 꼿꼿이 들어 먼 단상 위를 주시했다.
그런데, 올라온 사람은 누나가 아닌 교감이었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연설은 다음으로 미루어졌다고
그는 말했다. 강당 안이 술렁거렸다. 유명인사인 누나를 좋아하는 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고생을 하여 온게 짜증이 나면서 누나가 걱정되어 나가려고 타이밍을 잴 때였다.
예상치 못한 특별한 만남은 항상 뜻하지 않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초조함에 달했을때, 눈치채지도 못할 찰나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 아, 미안 "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학식인데 늦어도 한참 늦었다.
게다가 옆 사람의 발을 밟았는지 작은 소란을 피운다. 그 목소리에 나가려다 멈칫하였다.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에 비음이 섞인 그 묘함에 나만 시선을 뺏긴 것이 아니었다.
주변에 앉은 여자애들은 하나 둘 입을 모아 ' 어머, 잘생겼다 ' 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자칭타칭 교내에서 미남 1위였기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디 얼마나 잘생겼는지 보자.
삐뚤어진 심보로 팔짱을 끼고 평가를 하려고 녀석을 보았다.
시선은 자연스레 움직이는 녀석을 향해 꽂힌다.
어라. 근데..
아주 느릿한 동작으로 제 친구가 맡겨 놓은 자리로 앉는 그 순간까지.
모든 것이 정지하고 그 작은 뒷통수만 보였다.
인식한 모습은 잔상처럼 남아서 시선을 돌려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눈부신 햇빛을 본 것처럼 오랜 시간동안.
그래서, 바라봤다.
처음은 거슬리듯 눈에 밟혀서, 두 번째는 잔상처럼 아른거려서
세번째는.... 씨발, 잘생긴게 아니라 더럽게 예뻐서.
모두가 입어 평범한 노란색 교복. 귀와 목을 덮는 차분한 머리카락. 풀린듯 나른한 눈매.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 입을 가린 긴 손가락은 날씬하고 하얗고.
그리고.. 웃은 입가를 가렸던 손가락을 내리며 드러난 조그만 입술은 빨갛고..
이상하다. 입을 가리며 웃고, 눈을 반달처럼 휘며 눈웃음을 치는 녀석을 보니 여자가 아닌
남자인데 이상한 기분이 자꾸 들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여자애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옆 자리의 까만 녀석과 조잘조잘 수다를 떤다.
동그랗게 벌어진 조그만 입술이 참새처럼 쉴새없이 움직인다.
까만 녀석이 아마 친구인 듯한데 그 녀석을 밀쳐내고 앉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는 것도 깜빡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지 까만 녀석의 말을 들으며 호호 입김을 분다.
모아진 입술이 앵두같았다.
아, 뭐야 귀엽네.
드르륵. 일제히 의자를 미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넋을 잃고 보다가 입학식이 끝날 때 1학년들과 함께 나가게 되었다. 낭패라는 표정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슬쩍 뒤를 돌아 보는데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옆에 까만 녀석과 재잘대던 작고 빨간 입술이 순간 벌어지는듯하더니 일순, 눈이 휘어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돌렸지만 심장 박동이 빨라짐을 느끼며 강당 밖으로 도망치듯 나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