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봄. 문태일, 고등학교 2학년.
“야 지한솔..”
“..뭐냐? 너 얼굴 개빨게. 왜 이래.”
후끈거리는 얼굴을 쥐고 교실로 들어왔을 때, 막대사탕을 물고 삐딱하게 서 있는 지한솔을 와락 안아버릴 뻔 했다. 대신 놈의 팔을 잡으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후, 하고 숨을 내쉬면서 오를대로 오른 감정을 애써 가라앉혔다. 내 행동에 지한솔은 인상을 팍 징그렸다. 아 뭔데! 왜 이러는데! 입에서 뺀 막대사탕을 휘저으며 참을성 없이 소리를 친다. 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나..”
“어. 너 뭐.”
“여주랑 얘기했다..”
대박이지. 진짜 우리 첫 공연때만큼 떨렸어. 바싹 마른 입술 새로 한번 더 숨을 뱉었다. 계단을 올라온 여주와 부딫힌 그 순간부터 속이 울렁거려 죽는 줄 알았다. 여주가 들고있던 영어공책이 와르르 쏟아질 때, 아마 내 멘탈도 와르르 무너진 것이 분명하다. 내색은 안했지만, 그 애 앞에서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얼굴을 가렸다. 좀 전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려니 정말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새꺄 좀 자세히 얘기해봐!! 걔랑 어떻게 얘기하게 됐는데, 어?”
“아 몰라 나 지금 정신 없어. 중요한 건 여주가 날 보는데 진짜..아 몰라.”
지한솔은 끝까지 날 쥐고 흔들었다. 항상 뒤에서 혼자 좋아하던 내가 직접적으로 여주와 대화를 했다고 하니 많이 궁금한가보다. 하지만 지금은 그 5분 남짓한 순간을 구구절절 설명할 정신이 없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분명 요점 없이 예쁘다에서 예쁘다로 끝날게 분명했다. 나중에 말해주겠다며 내 교복을 잡은 지한솔을 떨어뜨렸다. 나부터 진정하는게 우선이었다. 그럴려면 잇 사이로 새어나오는 이 실없는 웃음부터 멈춰야하는데, 그게 너무 어려웠다.
여주를 처음 본 건 새학년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던 어느 날이었다.
“…그거 빵 맛있어?”
“한입 줄까?”
“응!”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재현오빠 한입만 주세요 해봐.”
“미쳤냐..?”
“먹기 싫다고? 알았어.”
“앍!!!! 할게!!!!”
그 날은 참 오랜만에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급식실 천장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가 좋아 친구들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묵묵히 밥을 먹던 중, 주변 모든 소음을 뚫고 들어오는 대화 소리에 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들던 순간이었다. 내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주가 낸 소리였다. 급식 대신 매점 빵을 먹던 제 친구 옆에서 반짝반짝 눈을 빛내던 아이. 내가 다시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질끔 눈을 감고 서툰 애교를 부렸더랬다.
“세, 세상..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재현옵빠! 하..한입만 주세여~~~!”
“시발..”
“..너만 좋자고 저런 거 좀 시키지 말라고 제발..”
“크핰캌하캌ㅋㅋ캌핳핰캌ㅋ캏”
그때 나는 들고있던 숟가락을 느릿하게 내렸던 것도 같다. 자, 먹어. 친구가 호탕하게 웃으며 건내는 빵을 기다렸다는 듯 한입 크게 베어먹는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았었다. 입가에 크림을 묻히고도 맛있다며 애마냥 웃길래 나도 모르게 따라서 작게 웃어버렸지. 뭐야, 귀엽네. 그런 생각을 아주 잠시 했던게 어렴풋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게 끝이였다. 그렇게 한번 웃은 후 다시 친구들에게로 고개를 돌린 걸로 기억한다.
그 후 그 날을 까마득히 잊고 지낼 때 즈음, 지하철에서 여주를 다시 마주쳤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터덜터덜 걸어와 맞은 편 빈자리에 앉는 모습을 본 나는 어, 하고 여주를 알아봤지만 여주는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때 여주는 뭐랄까, 많이 지쳐 보였고, 손으로 건드리면 픽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난 이어폰 한쪽을 빼며 그런 여주를 빤히 쳐다봤었다. 친구들과 웃으며 점심시간을 보내던 모습만 기억에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힘들어 하는 여주가 의아해서였나.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힘 없이 한 정거장을 앉아서 갔던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난 건 다음 정거장에서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께서 승차를 하신 후였다. 슬쩍 고개를 들고 할머니를 발견하자마자 벌떡 일어나 자리를 내주더라.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하고 말이다.
“아휴 아녀~ 학생 앉아요~”
“저는 괜찮아요 할머니. 앉으세요.”
몇차례 거부하시는 할머니를 기어코 자리에 앉혔던 여주가 할머니 앞에 서 좋은 말동무도 되어주었던게 생각이 난다. 내게 등을 보이고 서 있어서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었지만,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는 것 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몇살이여?”
“열일곱살이요!”
“우리 손녀랑 동갑이네~ 우리 손녀도 열일곱 살인디 외국에 살거든. 그래서 2년째 못 봤어.”
“헐..정말요? 많이 보고 싶으시겠어요..”
“보고싶지~ 학생 보니까 더 보고싶네 그려. 오늘 전화 한통 해봐야겠어.”
여주를 마주했던 할머니께서 환한 미소로 여주와의 대화를 이어 나가셨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 뒷모습이 신기했다. 어르신에게 자리를 내주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 어떻게 저렇게 쉽게 대화를 할 수 있나 싶었다. 그것도 바로 전까지 힘들어 죽으려던 애가 그렇게 멀쩡한 척을 하며 말이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작은 대화소리에 집중했었다. 여주는 계속되는 대화에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색한 답변을 하지도 않고 도리어 먼저 질문을 하곤했다. 그때 지하철 안에서 그 소소한 대화를 지켜보던 사람은 나 한명밖에 없었다. 참 다행이게도 나만 알아버린 것이었다. 나긋한 말투를 가졌던 그 아이가, 좋은 아이 라는 것을.
다음 날 학교에 갔다.
우연히 여주를 만나기 전에 내가 먼저 여주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 녀석을 발견했을 때,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게 웃고 있더랬다.
2015년 봄. 문태일, 대학교 2학년.
“안 가면 안돼?”
“어딜?”
“엠티.”
여주와 연애를 한지 대략 3년이 다 돼 간다. 그 사이 나를 이어 여주 또한 대학생이 됐고, 당연하듯 명문대에 진학한 여주는 첫 엠티를 앞두고 있었다. 그게 바로 지금 내 심기가 불편한 이유였다.
“오빠 나 신입생이야..”
“너네 과에 남자만 있잖아.”
“아냐, 여자도 많아. 그리고 다들 엄청 착하셔!”
여주는 수학과였고, 수학과는...남자가 많았다. 그냥 학교 가는 것도 불안해 죽겠는데 엠티는 무슨 엠티? 속이 타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들이켰다. 하긴 대학 가면 뭘 제일 해보고 싶냐 물었을 때도 망설임 없이 엠티를 외쳤던 애였다. 도대체 왜 엠티가 가고 싶냐 했더니 지한솔이 대학의 꽃은 엠티라고 했다더라. 지한솔 웬수새끼를 죽여..? 아무튼 여주는 엠티를 왕창 기대하고 있어 끝까지 생각을 바꾸지 않을게 분명했다. 여주가 괜찮다 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게 당연한 거다. 분명 남자가 바글거릴텐데 어떻게 그런 곳에 여주를 아무렇지 않게 보낼 수가 있을까.
“신입생이라고 꼭 엠티 가야하는 거 아니야 여주야. 그리고 엠티가 막 너가 생각하는만큼 재밌는 것도 아니다?”
“…난 오빠 엠티 다 보내줬는데 오빤 왜 자꾸 못 가게 하려고 해? 가고싶은데!”
다시 한번 여주를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오히려 말문이 막혀 입술만 벙긋거렸다. 저러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과거의 나를 반성하는 시간을 짧게 가졌다. 시간을 돌릴수만 있으면 좀 더 신박한 불참 사유를 생각해내 그동안 꾸준히 참석했던 엠티란 엠티는 모두 가지 않을 자신이 마구마구 솟았다. 하지만 그건 뒤늦은 후회고, 별다를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아 애꿎은 아메리카노만 꾹 쥐며 빨대를 질근 깨물었다. 그리고 내키지 않는 고개를 끄덕였지. 그래, 조심히 갔다 와.. 목구멍을 넘어가는 커피가 썼다.
“내가 꼬박꼬박 연락할게 오빠.”
“그래.. 그래서 몇 박 며칠이라고?”
“이박 삼일!”
…진짜 지한솔 죽일까?
열시가 다 돼 갈 때 즈음 카페를 나왔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주위는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여주네 집을 향해 걸었다. 캄캄한 길가를 비추는 가로등은 제 기능을 바로 하지 못하고 깜빡깜빡 희미한 불을 내렸다. 이 길은 절대 혼자 다니지 말라고 손을 맞잡고 걸어가던 여주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사실 저번에도 했고, 저저번에도 걸어가며 한 말이었다.
“오빠는 내 걱정을 너무 많이 해.”
“다 걱정 되는데 어떡해.”
“나 이제 스무살이라니까~”
여주는 그런 말을 하며 잡은 손을 더 꽉 쥐어왔다. 스무살을 말하는 목소리에 자부심이 넘친다. 1월 1일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나서부터 저런다. 자기가 다 큰 줄 아는 것 같다. 난 오히려 스물이 된 여주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보다 더 걱정인데 말이다. 오늘처럼 엠티 얘기가 나오기만 해도 걱정부터 앞서는데 앞으로 얼마나 걸리는 일이 많을까 싶었다. 이게 다 우리가 대학생이 되서 그런거다. 학교에 가도 여주를 볼 수 없는 건 아직도 적응이 덜 됐다.
일부러 반템포 늦춘 걸음으로 계속 걸어 가던 중 여주가 앞 쪽을 가리키며 뜬금없이 외쳤다. 어, 정재현이다! 이어 가늘게 뻗은 손 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을 땐 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채 터벅터벅 걸어오는 재현이가 눈에 들어왔다.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어, 김여주다 똑같이 외친 재현이의 시선은 내가 맞잡은 여주의 손에 머물다 곧 다른 곳으로 돌려졌다. 내 눈. 정재현은 굳이 나와 눈을 마주하며 환하게 웃었다. 형 안녕하세요. 살갑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 눈을 피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형, 얘는 얼굴이 무기라 굳이 집까지 안 데려다 주셔도 돼요.”
“뭐래, 너 이렇게 예쁜 무기 봤냐?”
“..너 내가 형 앞에서 욕 나오게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냐.”
“오빠 들었지!! 얘 오빠 없으면 나한테 막 욕도 하고 엄청 못됐다니까?”
정재현이 여주를 마냥 친구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다. 직접적인 티는 내지 않아도 항상 여주에게 향해있는 시선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재현은 항상 애정에 축축히 젖은 눈을 하고 여주를 바라봤다. 사실상 제일 위험하고 경계해야 하는 놈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여주에게 감히 재현이와 친구를 그만하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근데 너 이 시간에 어디 가?”
“김동영 만나러 치타폰.”
“뭐야, 왜 나랑 정수정은 빼고 너네끼리 만나냐?”
“가끔씩 남자끼리 만나는 날도 있고 그래야지. 어차피 너 데이트 하느라 불러도 안 왔을거면서.”
여주에게 정재현의 존재를 부정하라는 건 어쩌면 지금까지 여주가 살아온 모든 시간을 지우라는 것과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재현이를 이제서야 멀리 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말이다. 여주는 친구라는 명확한 관계로 정재현을 옆에 두는 것이 분명했다. 조금은 둔한 면이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그 관계에 대해 조금의 의심조차 한 적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재현이 그 관계를 깨려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불가피하게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됐을 때, 나 대신 여주와 함께 이 캄캄한 길을 걸어가 줄 사람은 재현이 밖에 없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어젯밤 전화로 신나게 짐 싸는 걸 생중계 해준 여주가 엠티에 갔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 때문에 걱정만 한가득인 마음을 비우자 다짐했건만, 여주의 천진난만한 메세지에 또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어떤 놈이 여주에게 수작을 부리지는 않을까, 새내기라고 술만 잔뜩 마셔 속을 버리지는 않을까, 과 전통이라며 쓸데 없이 잡힌 군기에 속상해 하진 않을까.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공부를 마저 끝내려 펜을 돌리다 결국 책을 덮었다. 문득 며칠 전 지한솔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대체 여주한테 왜 그런 말을 했냐 버럭 성을 냈던 내게 지한솔이 그랬다.
“걱정하는 건 이해하는데, 여주도 엠티 가서 그 얼마 안되는 여자들이랑 친해져야하지 않겠어?”
그래. 그 개소리를 애써 수긍하며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같은 과 사람들이 다 착하다는 여주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적적한 마음을 달래려 핸드폰 갤러리를 열었다. 앞으로 3일동안 못 볼 얼굴, 사진으로 많이 봐야지. 여주의 사진만 따로 담아둔 폴더를 열어 한장 한장 넘겼다. 이렇게 주책맞은 짓은 또 처음이다. 1년도 아니고 고작 3일 떨어져 있는데 이러는 내 모습을 본다면 친구들 모두가 혀를 찰게 분명했다. 그래도 보고싶은 건 보고싶은 거고, 제일 중요한 건 여주였다. 이렇게 예쁜데. 내가 걱정을 안하는게 이상한거 아니야?
그렇게 한참을 사진만 보다 잠시 고개를 돌렸다. 카페 벽 한쪽에 걸려있는 시계가 열두시를 알려주고 있었다. 슬슬 일어나야겠단 생각에 가방을 챙겼다. 오늘은 꼭 집에 와서 점심을 먹으라는 엄마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를 보던 아르바이트생에게 짧게 인사한 후 카페를 나갔다. 봄바람이 불었다. 그렇다고 기분이 좋진 않았다.
“여주는 점심 먹었을라나..”
걱정을 비우기는 무슨. 나는 그런 거 못하겠다. 쥐고있던 핸드폰을 켜 여주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몇 발자국 걷던 발을 멈추고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1은 사라지지 않았다. 으음,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예상은 했지만 이거 진짜 마음 아프네. 내가 엠티 갔을 때 여주도 이랬을까. 새삼 미안해진다. 아쉬운 마음으로 홀더키를 눌러 화면을 끈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건너야하는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불을 띄웠다. 가방을 고쳐 메고 걸음을 뗐다.
“저기요!!!!!”
그렇게 횡단보도 중간까지 건넜을 시점에 등 뒤로 누군가가 외쳤다. 나를 부르는 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계속 걸어가려다 옆에서 울리는 크락션 소리에 고개를 돌렸는데, 그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나는 급정지를 하는 차에 치였고, 붕 뜬 몸은 한순간 추락했다. 온 몸에 고통이 밀려왔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픈 소리를 내기도 전에 눈이 감겼다. 파랗던 눈 앞이 검게 물드는 건 금방이었다.
눈을 떴다. 지끈 머리가 아파와 미간을 좁혔고, 곧 내가 누워있는 곳이 병원이라는 걸 알았다. 하얀 병원복이 고르게 걷어진 오른 팔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져 있었다. 두어번 눈을 감았다 떴다. 바뀌는 건 없었다. 사고가 났던게 맞구나 싶었다.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힘 없이 의자에 앉아있는 엄마였다. 엄마는 내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걸어오셨다. 두 눈이 촉촉히 젖어있다.
“태일아, 정신이 들어? 엄마 보여? 이거는 보이니? 몇 개야, 응?”
눈 앞으로 손가락 두개가 왔다갔다 했다. 엄마는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작게 웃었다. 입을 여는 대신 멀쩡한 왼팔을 들어 브이짓을 해보였다. 마음이 여린 엄마가 혹시나 또 눈물을 쏟지 않을까, 그것을 막기 위한 나름의 애교였다. 엄마는 그런 내 모습에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그래도 큰 사고는 아니라 다행이라 말하셨다. 부딫힐 때는 분명 죽을 것 같이 아팠었는데 크게 다친 건 아닌가보다. 그러고보니 오른팔에 꽂힌 링거 말고는 그 흔한 붕대 하나 둘러진 곳이 없다. 엄마 말씀대로 그저 다행이다 싶었다.
“의사 선생님 불러야겠다. 너 어지럽고 그러지는 않아? 괜찮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은 엄마를 달래려 입술을 벌렸다.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던 건지 목이 꾹 막힌 감이 들었다. 목 언저리에 손을 가져가 살살 문지르며 헛기침을 했다. 짧은 준비를 마친 후 드디어 엄마를 불렀다.
“..왜 그래?”
“...”
“태일아, 너….”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입을 벙긋거려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당장 의사를 불렀다. 엄마는 또 울었고, 그 사이 병실에 들어오신 아빠가 그런 엄마를 달랬다. 나는 땀이 차는 손을 맞잡기만 할 뿐이었다. 내 상태를 확인한 의사 선생님께서는 일시적인 쇼크로 잠시 동안만 말을 못 하는 것일 수 있다며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 진정이라는게 쉽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김간호사, 환자분 CT 준비해요.”
“저기 선생님, 저희 태일이 그냥 잠깐 저러는 거 맞죠? 네?”
“CT 촬영하고 결과 봐야 알 것 같습니다. 확실한 답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환자분은 간호사 따라 가세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의 이목을 받으며 간호사를 따라 병실을 나갔다. 겁이 났다. 결과가 나오면 좌절을 할 것 같았다. 때문에 들어오라는 간호사의 말에도 선뜻 촬영실에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내가 망설이고 있자, 괜찮다며 나를 이끈다. 뜨겁게 고인 침을 삼켰다. 끝끝내 촬영실에 들어 가 CT 촬영을 위해 눈을 감고 누웠을 때, 현실을 부정한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건가 생각했다. 자꾸 드는 나쁜 생각에 코끝이 시큰 달아오르는 걸 참으면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나 진짜 잘못 된거면 어떡하지. 그럼, 그럼…. 감은 눈을 더욱 질끔 감았다.
곧 촬영이 끝났고,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에 얼마쯤 멍하니 앉아 있으니 잠시 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진료실로 향했다. 엄마가 너무 우셔서 나 혼자 결과를 들어야 할 것 같다는 간호사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문을 연 진료실에 들어가자 아까 내 상태를 체크하셨던 의사 선생님께서 앉으라며 맞은 편 의자로 손짓 하셨다.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지금 이쪽에 뇌손상이 오셨어요. ...실어증 입니다.”
“..”
“실어증은 보통 열 살 아래 어린 애들이 걸리면 쉽게 치료가 가능한데, 환자분은 이미 뇌가 다 발달 된 성인이시라..”
“..”
“완치 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실 거에요. 하지만 호전 정도는 연령이 낮을 수록 높기 때문에 환자분이 의지만 갖고 열심히 치료에 임하시면..”
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CT 사진이 눈 앞에 걸렸고, 의사는 그 사진 속 한 부분을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했다. 실어증이란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내보냈다. 웃기게도 이 알량한 소리는 비실거리며 목구멍을 넘어간다. 무릎 위에 놓았던 손을 주먹 쥐었다. 의사 선생님은 희망적인 말을 내게 건냈지만 귓가에 웅웅 거리기만 할 뿐 뚜렷히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초점 없이 한 곳에 둔 시선을 떨궜다. 느릿하게 숨을 들이 마셨다. 바짝 마른 입술을 벌려 말했다. 선생님, 제가 노래를 해야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안돼요. 나는 분명 그렇게 말을 했는데, 아아 앓는 소리만 튀어 나온다. 옅게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울대가 울렁였다.
“환자분 일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나를 다시 앉히려는 손이 있었지만 뿌리쳤다. 무거워진 고개를 저었다. 주먹을 꾹 쥔 채 진료실을 나왔다. 늦은 시각인지 복도는 텅 비어있다. 천천히 내딛던 발을 세웠다.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부정했다. 목젖을 세워 소리를 냈다.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언가는 분명 있었지만, 그것이 소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뜨거워진 숨을 한번 내쉰 후 다시 목소리를 꺼내려 목대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미련한 행동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돌아오는 건 걱정했던 좌절감이었다. 결국 힘 없이 주저 앉았다. 그제서야 비실 눈물이 올라왔다. 다른 곳은 다 멀쩡한데 왜 하필 목소리일까 원망 섞인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다문 입술 새로 새어나오는 울음마저 소리가 일그러져 복도에 울렸다.
내가 병실을 나간 후 계속 울었다는 엄마는 전등 하나만 주위를 밝히고 있는 병실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붉어진 눈을 하고 엄마 앞에 섰을 때,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한 손을 들어 가슴께를 두어번 두드린 후 천천히 목을 가리키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나 말 안 나온대. 그렇게 입술을 벙긋거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엄마는 조용히 다가 와 나를 안았다. 차게 질려버린 몸에 온기가 닿자, 겨우 가라앉힌 울음이 다시 차오를 것 같아 입술을 꾹 다물고 눈을 감았다. 가냘픈 숨을 내쉬었다. 호흡이 가빴다.
“간호사분이 와서 말해주셨어. 괜찮아 태일아. 열심히 치료하면 금방 다시 말할 수 있데.”
“..”
“학교는 잠시 휴학하고 치료 하자. 응?”
“..”
“얼른 치료 해야 다시 노래 부르지.”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한 엄마는 천천히 내 등을 쓰다듬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치료를 하는게 다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완벽히 치료하는 데에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한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분명히 기억한다. 이 실어증이 얼마나 지속될까 짐작도 되지 않았다. 포기를 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애(愛) 로만 차있던 노래가 시간이 지날수록 애증의 존재로 남게 될까봐, 그게 무섭다는 것이었다.
병실에 들어가 주름 진 침대에 누운 후 창 밖에 놓인 반쪽짜리 달을 바라봤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렁이는 달빛을 눈에 담았다. 꾸준히 치료 하면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언젠가는 다시 노래 할 수 있는 거냐 그 환한 달에게 물었다. 노래가 전부인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눈을 감고 뜨는 사이 전부를 잃었다. 곱씹을수록 목구멍이 턱 막혀왔다.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교차했다.
순간, 침대 옆에 있던 작은 서랍장 위에 놓인 무언가가 반짝였다. 그것에 시선을 두다 손을 뻗어 잡았다. 액정이 깨져 화면에 금이 가버린 내 핸드폰이었다. 없어진지도 몰라 찾지도 않았다. 환하게 켜진 핸드폰 화면을 확인해서야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열한시 삼십분. 메세지 창에는 많은 알림이 떠있었다. 대부분은 여주가 보낸 메세지였다. 왜 답장이 없냐는 물음이 마지막으로 온 연락이다.
“아..”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제서야 잊고있던 여주가 생각이 났다. 진짜 정신이 나갔구나 문태일. 마른 세수를 하며 메세지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급히 미안하다고 답장을 보내려던 손가락을 문득 멈췄다. 여주에게 사고 소식을 전해야 할지 고민했다. 더불어 내가 말을 못하게 됐다는 것도 말이다. 아마 크게 충격을 받을 거다. 엠티고 뭐고 당장 병원을 찾아오겠지. 여주, 두 글자만 시야게 가득 찼다. 나는 곧 홀더키를 눌러 화면을 잠굴 수 밖에 없었다.
기약 없이 사라진 목소리를 원래대로 돌려 놓으려면 장시간의 치료가 필요했고, 그런 상황에서 계속 여주를 만나는게 맞는 건가 고민했다. 내가 노래 하는 걸 몇 년 동안 옆에서 지켜 본 여주는 노래는 커녕 제대로 된 단어조차 내뱉지 못하는 나를 보며 속상해 할게 분명하다. 착한 아이라, 달라진 내 상황이 힘들어도 조금의 내색 없이 머물려고 하겠지. 스무살이 된 김여주는 스스로가 강하다고 믿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렵다는 걸 안다. 계속 내 옆에 둔다면 그 애를 많이 울릴 것 같다. 몰랐던 아픔을 줄 것 같고, 생소한 감정을 느끼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감히 여주에게 내 옆에서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
한참을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멀리 떠나자고 말이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약하고, 어리고,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도망치기로 했다. 내가 내 목소리에 자부심을 느끼고, 그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만이 사는 곳으로. 느닷 없이 꿈을 접어야 하는 나를 보며 괜한 속을 썩히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그런 곳으로 가자고, 결론을 내렸다.
-나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을 잊어줘 여주야.
그 짧은 문장을 칠 때엔 또 다시 눈물이 고여 글자가 너울졌다. 진짜 쓰레기 새끼. 이 문자 한 통에 그 긴 시간을 정리하자는 내 모습이 나조차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내보냈다. 하지만 이거 말고는 다른 방법도, 다른 할 말도 없었다. 망설였던 전송 버튼을 눌렀다. 당장 내일이라도 후회 할 결정이라는 걸 분명 알았지만 멈추는 일은 없었다. 곧 답장 대신 전화가 걸려왔다. 당연히 여주의 전화였고, 당연히 받지 않았다. 어차피 전화를 받아도 내 목소리로 온전히 전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여주야.
만약 너를 품은 내 오랜 감정이 너의 발목을 잡아 마음에 흠집을 남긴다면, 나는 기꺼이 그 마음을 접을거야. 그래도 너에게만은 쉬지 않고 노래 부른 사람으로 남고 싶어. 너가 처음 날 좋아하게 됐다던 그 모습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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