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형은 한참 말이 없었다. 여주가 제게 등을 보이고 걸어가던 그 순간부터 그랬다. 펜을 꾹 쥔 채 눈으로 여주를 쫓았다. 여주는 제 속도 모르고 빠르게 멀어졌다. 그렇게 멀어지더니 친구라는 재현 앞에 멈춰 민형 저에겐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여주를 보며 해사하게 웃는 재현의 모습이 민형의 시야에 걸렸다. 왠지 모를 짜증이 퍽 일었다. 재현의 팔이 여주의 어깨를 감쌀 땐, 곡선형의 눈썹이 더욱 선을 그리며 감정을 표했다.
“이동혁.”
여주와 재현이 카페를 나가고 또 한참 후에야 민형은 동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바라보는 시선에 날이 서있다. 죽을래? 곧이어 들려오는 민형의 말에 동혁은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민형의 두 눈엔 이미 원망이 가득했다. 무심코 내뱉은 말에 입꼬리와 손을 시무룩하게 내리던 모습이 마음에 걸렸더랬다. 여주. 예쁘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마주한 얼굴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시선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예쁘네, 예쁘네 생각하던 얼굴이었다. 단지 동혁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는 뜻으로 말한 것이였는데 어쩌다보니 여주를 또 기죽이게 만들어버려 사실 아까부터 애가 탔던 민형이었다.
“야 솔직히..”
“..”
“너가 눈치가 그렇게 없을 줄 몰랐어..”
동혁은 그런 민형의 앞에서 제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시선은 이미 테이블에 박아둔 채였다. 민형은 그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곤 옆에 놔둔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쓸데없는 말 좀 하지마.”
그런 말을 내뱉으며. 동혁은 입술을 퉁 내밀며 슬쩍 민형에게로 눈을 올렸다. 동혁의 짧은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형은 어색하기만 한 문자창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분명 자기 안 예쁘다 생각하고 있을 거 뻔하니까 예쁘다고 해줘야지. 민형이 툭툭 키패드를 눌렀다.
“나는 너 도와주려고 했지..!”
어두워지니까 밤길도 조심하고,
“너가 왜.”
정신 없이 다니니까 찻길도 조심하고…,
“너가 선생님 좋아하니까.”
친구로 전혀 안 보이는 친구도…. 문득 민형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줄곧 화면만 내려다보던 얼굴이 다시 동혁에게로 향했다. 저 말도 한 적 없는데. 민형은 그런 생각을 하며 미간을 좁혔다.
“너 다 티나.”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동혁이 말했다. 이번엔 동혁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꼭 저렇게 연애 한 번도 안해본 티를 낸다니까. 쯧, 하고 혀도 한 번 차고 싶었지만 거기까지 가면 민형이 그대로 자리를 박찰까봐 꾹 참았다.
“너 선생님이 막대사탕 뭐, 그거 주신 후로 담배도 잘 안 피잖아. 맨날 사탕만 물고 있고.”
“..”
“다 푼 문제 일부러 물어보는 것도 내가 다 봤어 너.”
“..”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민형이. 백퍼 마음 있는 거지 뭐~”
동혁이 흘리듯 던진 말을 묵묵히 듣고있던 민형이 고개를 두어번 주억거렸다. 긍정의 표시였다. 후자는 조금 쪽팔리긴 하지만, 어쨌든 저가 여주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굳이 그 마음을 숨길 이유도 없었다. 민형의 빠른 인정에 기가 찬 건 동혁이었다. 이민형 성격 알고는 있지만, 정말 놀랍다. 저렇게 바로 사실로 만들어버리니 놀릴 맛도 뚝 떨어졌다. 그에 개의치 않고 민형은 다시 타자를 쳤다. 예뻐요. 밤길 조심 찻길 조심 친구 조심. 맥락 없이 이어지는 문자 내용에 스스로가 어깨를 한 번 들썩였다.
“근데 너네 선생님 친구라는 남자, 진짜 잘생겼더라.”
“그런가.”
“걱정 좀 해야겠던데.”
“내가 더 잘생겼어.”
민형이 전송 버튼을 눌렀다. 문자를 받고 좋아할 여주가 눈에 훤했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꾹 누르며 핸드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재수없어. 지가 잘생긴 걸 자기도 알아. 동혁의 바람 찬 중얼거림이 생생히 들렸지만 가볍게 스킵한 후 다시 펜을 잡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문제를 푸는 건 또 아니였다. 문제에 집중을 하려니 자꾸만 재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친구. 제일 오래된 친구. 그래서 그런 걸까. 어깨동무를 하고 카페를 나서던 두 사람의 모습은 감히 샘을 낼 수도 없을만큼 가까워 보였다. 민형은 느릿하게 펜을 돌렸다. 같은 문제를 몇 번째 읽고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 이거 울린다. 내가 가져올게.”
“..어.”
그 순간 요란하게 진동하는 진동벨에도 민형은 끄떡 없었다. 곧 동혁이 의자를 끄는 소리가 들렸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와플이 눈 앞에 놓여지고 동혁이 먹으라며 포크를 내밀었는데도 민형은 펜만 돌렸다. 걱정은 조금도 안 한다는 듯이 말했으면서 사실은 너무 신경쓰이고 짜증나니까. 그런 민형을 깨운 건 몇 십분이 지나고 난 뒤 [수학 과외선생님] 을 띄우며 환하게 켜진 제 핸드폰 화면. 그러니까, 여주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민형은 펜을 던지듯 내려놓은 후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맨날 문자만 했지 통화는 처음이었다. 제게 전화를 한 거 보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 걱정이 물씬 들었다.
-여보세요? 민형아..!
곧 여주의 목소리가 귓가를 감쌌다. 그에 민형이 짧게 대답하자, 수화기 너머로 으음.., 하고 앓는 소리가 나더니 얼마 안 가 제게 묻는다.
-너 혹시.. 저번에 막 돈 뺏으려던 그 양아치들 안 만났지?
양아치, 라는 말과 동시에 민형의 눈이 커졌다. 네, 왜요? 몇 달이나 지난 일인데 갑자기 얘기가 나오니 이상 할 수 밖에 없었다. 걔들이랑 무슨 일 있어서 전화 한 건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잘 도망치긴 했지만 그날 여주의 행동은 정말 위험했으니 말이다.
-아~ 아냐..! 아니 그냥 가다가 닮은 사람을 본 것 같아서 혹시나 하구.
그래 알았어. 공부 열심히 해! 아,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보다. 안 만난 걸 확인하는게 목적이었던 건지 대답을 듣자마자 얼른 전화를 끊으려고 마무리 멘트를 치는 여주의 목소리에 민형이 선생님, 하고 나지막이 여주를 불렀다.
-응?
“집이에요?”
-아니! 집에 가는 중. 왜? 모르는 문제 있어?
“아뇨, 그냥.”
아직도 그 친구랑 같이 있나 해서…. 민형은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애써 삼켰다. 제 말을 기다리는 건지 수화기 너머의 여주는 잠잠했다.
“그냥 궁금해서요.”
민형은 입술을 혀로 한 번 축였다. 항상 수학 문제만 궁금했었는데, 언제부터 여주의 사적인 것까지 이렇게 궁금했을까. 조심히 들어가세요. 민형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훨신 더 큰 마음을 품은 것 같았다.
비상구에서 정재현과 정신 없이 껴안고 있다가 둘 다 동시에 현타가 왔더랬다. 살면서 얘랑 이렇게 어색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숨 막히는 분위기를 형성하며 비상구를 나왔고, 밝은 곳에서 내 얼굴을 본 정재현이 처음 내뱉은 말은 그거였다. 아니 너가 하도 안 오길래. 전화를 했는데도 안 받길래 화장실 쪽으로 갔더니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문을 여니까 너가.., 영화 못 보겠다. 그리고 한숨.
나는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하고 싶었지만 애꿎은 입술만 깨물 뿐이었다. 평소였다면 바로 내 손목을 잡거나 어깨를 팔로 감쌌을 녀석인데 잠시 망설이더니 그냥 먼저 발을 옮겼다. 나야 땡큐였다. 지금 내 상태가 좀 이상했기 때문이다. 비상구에서 순간 잘생겨보였던 정재현이 계속 잘생긴 그런 굉장히 심각한 상태. 미쳤지. 미친 거야. 나는 정재현을 따라 걸으며 괜히 민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괜히는 취소. 민형이도 같은 백화점 건물에 있었으니 호옥시나 마주쳤을까 걱정돼서 건 전화였다. 내가 완전 쥐어터졌잖아..(먼산)
“….”
“..”
전화를 끊은 후에는 적막이 흘렀다. 우리 사이에 들리는 소리라곤 기껏해야 자동차 크락션 소리, 상가 음악 소리.. 뭐 그런 거였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나는 힐끔 정재현을 쳐다봤다. ..쟤가 코가 저렇게 높았나? 그런 생각을 몰래 할 때 정재현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눈이 마주쳐버렸다. 일순 굳어버린 내게 정재현은 왜? 라고 물어왔다.
“..아냐.”
그러게. 나 왜 이러지. 나는 휙 고개를 돌렸다. 귀에 열이 오르는게 느껴졌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딴청을 피웠다. 정작 온 신경은 정재현한테 가있는데 말이다. 이건 꽤나 심각한 상황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한 적 없는 걸 넘어서 그냥 의식 조차 안 하고 있던 정재현의 작은 것까지 눈에 들어오는 이 상황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엄청 이상한 증상이라고 이거. 나는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내가, 어, 사람 막 그렇게 때리는 정재현을 처음 봐서 좀 놀란 거야. 맞아. 이거 놀란 거야. 아니면 이럴 이유가 없지. 솔직히 나 아까 진짜 놀랬다고.
“맞아.. 맞아 그런거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중에 버스가 도착했다. 타는 사람이 나와 정재현밖에 없는 것 같았다. 정재현은 먼저 타라는 듯 한 발자국 물러서며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또 기분이 이상해지는 나였다. 나는 얼른 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는 걸로 정재현에게서 잠시 멀어졌다. 나를 따라 버스에 올라 타 교통카드를 찍은 정재현은 터벅터벅 걸어와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았다. 행동을 빨리 한게 무색했다.
“아, 팝콘이랑 콜라 영화관 의자에 두고 왔다.”
“..엉?”
“밥 먹고 들어갈래? 배 고플 것 같은데.”
너 얼굴에 바를 약 같은 것도 사야될 것 같은데. 집에 연고 있어? 아까는 같이 어색해하더니 이제 괜찮아진 건가. 앉자마자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 정재현을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지금 이 상태로는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것 같은데 밥은 무슨…. 아냐, 나 그냥 집 가서 빨리 잘래. 입 안에서 뜨거워진 침을 꿀꺽 삼킨 후 말했다. 이렇게 가깝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아까 정재현이 날 안던 게 문득 떠올라 자동으로 입이 다물어졌다. 심지어 얘 지금도 엄청 잘생겨보인다고..(경악)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한 20분 갔을 거다. 말을 거는 정재현에게 짧게 답하곤 고개를 돌리고, 돌리고, 또 돌리다보니 어느새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해 있었다. 정재현이 먼저 내렸고, 내가 뒤를 이어 내렸다. 버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고요한 길가에 울리더니 멀어져갔다. 얼른 정재현과 헤어지고 집으로 들어가는 게 목표인 나는 바로 집 쪽으로 걸어가려 몸을 틀었는데, 정재현이 그런 나를 잡았다. 아 물론 손으로 말고, 말로. 김여주, 부르는 소리가 밤 하늘에 작게 울리길래 나는 다시 녀석에게로 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왜.”
오늘은 여러모로, 진짜로, 많이 놀랐으니까.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질 거라 굳게 믿었다. 최대한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정재현을 바라봤다. 빨리 집에나 가자는 뜻이었다. 그런 나를 말 없이 잠시간 보던 정재현은 몇 발자국 떨어져있던 거리를 좁혀 걸어왔다. 그러더니 어느새 내 바로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본다.
“..”
“….”
또 적막이 흘렀다. 이번엔 시선이 맞물린 채였다.
“아..”
정재현이 낮게 소리를 냈다.
“..”
“진짜 속상해.”
한참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제 오른손을 뻗는다. 내가 피하기도 전에 녀석은 제 엄지로 내 볼을 살살 문질렀다. 따뜻한 촉감이 얼굴에 닿자 손끝이 옅게 떨렸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돼버려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그런 정재현을 바라만 봤다.
“너 약 발라야 돼. 여기 살짝 까졌어.”
하나도 안 아픈데. 그냥 네 눈이 생각보다 예뻐.
“또 귀찮다고 안 바르면 흉 져.”
어차피 너가 발라 줄 거잖아. 근데 너 피부가 이렇게 좋았나?
“김여주.”
얘가 진짜 언제부터 생겼었지?
“김여주.”
“..”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볼에 머물던 손이 이마를 감쌌다. 그에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나 방금 또 이상한 생각 했지. 눈동자를 데굴 굴리다 괜찮다고 말하며 정재현의 손을 떼어냈다. 진짜 집에 가야겠다. 얼른 자야겠어. 정재현은 아직도 나를 걱정스럽게 내려다봤지만, 나는 그 눈을 애써 무시하곤 걸음을 옮겼다. 내가 걸어야 쟤도 걸을 것 같았다.
가로등이 깜빡이는 골목이었다. 아주 예전부터 이 길은 어두웠다. 나는 그걸 핑계로 걸음을 빨리 했다. 야 정재현, 무서우니까 빨리 가자. 거의 달리다시피 발을 내딛었다. 그래야 집에 빨리 도착하니까. 그래야 정재현이, 안 잘생겼으니까.
띵동. 초인종 울리는 소리가 밖에서도 들렸다. 얼마 안 가 굳게 닫혀있던 현관문이 작게 소리를 내며 열렸다. 보통은 어머님이 문을 열어주시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민형이가 먼저 나온다.
“어머님은?”
“모임 있다고 나가셨어요.”
아아. 고개를 끄덕이며 신발을 벗었다. 어제 그 한바탕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다음 날이 토요일일게 뭐람. 덕분에 나는 팅팅 부어버린 볼을 하고선 과외를 하러 와야했다. 아니 나는 몰랐는데 어제 집에 가서 보니까 입술도 살짝 터져있고 (뒤로 넘어갈 뻔 했다) 여기저기 빨갛고 막 그렇더라고. 정재현이 몇 번이나 당부해서 연고라도 바르고 잤더니 자잘한 상처들은 잘 아물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지금 내 얼굴은 누가봐도 뭔 일 있었어요 광고하는 얼굴이었다.
“그럼 오늘은 예쁜 선생님이랑 둘이 집에 있는 거네?”
나는 최대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행동했다. 뭐 민형이야 내 얼굴이 어떻든 별로 신경 안 쓸게 뻔했지만 내 스스로가 이 얼굴로 수업하는 것에 대해 당당해 져야했다. 때문에 두 손으로 꽃받침 포즈를 취하며 농담식으로 말을 던져봤는데, 녀석이 표정을 구긴다. 그래.., 너무 무리수였지.. 그래도 너가 어제 나 예쁘다고 해줘서 받아주지 않을까 아주 조금 기대했는데..(울컥) 역시 이민형한테 이런 건 안 통하는 구나 다시 한 번 느끼며 손을 내렸다. 그렇게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민형이가 내 앞을 막아선다.
“얼굴 왜 그래요?”
그러더니 그런 질문을 한다. 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어..? 뭐가..?”
“어제 봤을 땐 안 이랬는데.”
아아, 왜 그따구로 생겼냐 가 아니라 얼굴이 왜 부어있냐 묻는게 확실했다. 나는 눈동자만 데굴 굴렸다. 신경도 안 쓸 거라고 확신했던 녀석이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니 꽤 당황스러웠다. 이민형은 여전히 제 눈썹 새를 잔뜩 좁힌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대답을 바라는 눈치였다.
“라면 먹고 자서 그럴걸..?”
“라면 먹으면 입술도 터져요?”
“..사실 넘어졌어..!”
“넘어졌는데 몸은 멀쩡하고 얼굴만 다쳐요?”
..(;◔д◔)말문이 막혀버렸다. 똑똑한 애들은 잘 속지도 않는 건가. 아니 저러면 내가 할 말이 없지..(삐질) 그렇다고 내가 이민형한테 그때 그 양아치들 만나서 몇 대 맞았어; 할 수는 없잖아. 나는 어어.., 하고 중얼 거리며 한참 머리를 굴리다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민형아, 일단 수업하자..! 녀석의 등을 슬짝 방 쪽으로 밀었다. 난감하니 얼렁뚱땅이라도 상황을 넘겨야했다.
“벌써 시간이.. 와 민형아 빨리 수업 해야겠다.”
괜히 더 호들갑을 떨었더니 민형이가 떨떠름하게 걸음을 옮겼다. 수업 하다보면 까먹겠지 뭐. 그런 생각으로 테이블 앞에 앉아 문제집을 펼쳤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네.”
“풀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꼭 물어보구.”
장시간의 수업이 끝났다. 나는 테이블 위에 즐비한 내 물건을 하나씩 가방에 넣으며 갈 준비를 했다. 민형이는 앞에서 제 필통과 프린트물을 정리했다. 지우개 가루를 탈탈 털어낸 후 프린터물을 가지런히 맞추던 민형이가 조용히 목소리를 냈다. 선생님,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응?”
“얼굴이요.”
왜 그런 거에요. 가방을 챙기느라 계속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아니 나 진짜 좀 당황스러우니까..(말잇못) 분명히 까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민형은 계속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민형이가 시선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나는 입 안이 바싹 타들어가는 걸 그대로 느끼며 머리를 짜냈다. 라면 실패. 콰당 실패. 으음….
“아.. 사실 옆에 보고 걷다가 벽에 박았어. 하하.”
“...”
“..”
“맞은 거죠.”
어어..? 내 입에서는 끝내 벙찐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때 그 양아치들한테 맞았죠.”
“..”
“그래서 어제 저한테 만났냐고 물어본 거죠.”
“..아니야~! 진짜 혼자 어디 쳐박은 거야 민형아.”
하하~! 진짜 어떡하면 좋지◐▽◐. 일단 내가 구라 파티를 열고있다는 건 들킨 게 분명했다. 아냐, 그냥 다 들킨 거다. 걔네한테 맞은 걸 도대체 어떻게 알아본 거야. 어제 전화를 괜히 한 건가 후회심이 밀려왔다. 그래도 나는 못해. 죽어도 그렇다고 말 못해. 민형이가 테이블 위에 둔 제 손을 주먹 쥐는게 시야 끝에 걸렸다.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끝까지 잡아뗄 생각이었다. 민형이는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듯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좋아해요.”
그러던 중 대뜸 그런 말을 한다.
“그러니까 나한테 거짓말 하지 마요.”
단호하게 방 안을 울린 목소리에 나는 입술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좋아한다고, 두 번째 말하는 거였다. 내가 너를 마음에 들어하는 중이니까 실망시키지 말라는 걸까? 나는 마주한 민형이의 눈을 피하지도 못했다. 내적 갈등도 이런 갈등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뜬금없이 벨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손에 들고 가려고 테이블에 놔둔 핸드폰이 통화 수신 화면을 띄운 게 보였다. 정재현의 전화였다.
“민형아 미안, 나 전화 좀 잠깐..”
어떻게 또 이 타이밍에 딱 전화를 하냐 정재현. 어제 후다닥 집으로 도망간 나 때문에 어영부영 헤어져서 그런가 오늘은 집에도 안 오더니. 속으로 다행이다 생각하며 손을 뻗었다. 근데 그 손을 민형이가 잡는다.
“대답 먼저.”
감싸쥐듯 내 행동을 막고는 지그시 내게 시선을 둔다. 아아, 이민형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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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화 댓글에 암호닉 문의해주신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피치크러쉬는 30화 정도에 완결이 날 것 같기 때문에 25화까지는 암호닉 계속 받을 예정이니 편하게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암호닉 신청 해주시면 완결 후 올라올 피치크러쉬 후기편에서 암호닉 확인 한 다음 텍파 보내드릴 예정이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