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ver.
좁은 연습실 안은 떨리는 숨소리로만 가득했다. 학연은 먹먹한 마음으로 스크롤을 내리며 댓글을 하나하나 다 읽고 있었다.
"허리 좀 아파도 얼굴 많이 비출 걸 그랬네......"
내 별빛님들에게, 라고 올리기까지 쓰고 지우길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손이 떨려서 오타는 또 얼마나 났는지 모른다.
항상 내 곁에 있으면서,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게 팬이라고 생각했는데........좀 크게 데인 것 같다.
학연은 한숨을 쉬며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파묻었다. 이 기분으로는 그 지독했던 슬럼프가 다시 올 지도 모르겠다.
까만 감정이 저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잠시 잠이 들었나? 얼마나의 시간이 지났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좁은 방 안에는 시계도 없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시선이 닿은, 학연의 발끝에는 포스트잇이 붙은 바나나우유가 하나 놓여있었다.
'정신 차려. 넌 이런 것에 무너질 만큼 약하지 않잖아?'
피식- 학연의 입꼬리에 허탈한 웃음이 걸렸다. 제일 무심하게 생겨서는 의외로 정이 많다, 저의 평생지기는.
"고맙다. 정레오 이 자식아."
빨대를 톡 꽂아먹는 바나나우유는 달고, 시원했고, 맑았다. 학연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택운ver.
'미련하긴.'
택운은 혀를 찼다. 어디서인지는 몰라도 제 루머를 듣고는 내리 안절부절하던 학연이 해명이라도 해야겠다며 좁은 연습실에 들어간 지 네 시간째다.
개별 연습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고, 트레이너 선생님의 허락 하에 다섯이서만 맞춰 보던 춤 연습도 이제 끝났다. 학연을 걱정하던 나머지 멤버들은 집으로 보냈다. 시계 초침 소리만이 공기를 가르고, 택운은 큰 연습실의 소파에 앉아 학연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착해 빠져서는....."
불만스레 중얼거리는 택운의 손에는 바나나우유가 쥐어져 있었다. 손에서 바나나우유를 굴리던 택운은 이내 자신이 삼십분째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학연이 들어간 연습실의 문을 열었다.
".....자?"
온 몸을 구깃구깃하게 접어서는, 방금까지 만지작거렸을 컴퓨터를 그대로 켜 두고 학연은 잠들어 있었다. 오늘따라 그 모습이, 힘들어 보인다고 택운은 생각했다. 잠시 허리에 손을 얹고 학연을 내려다보던 택운은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려 연습실을 나갔다.
"언제쯤 단단해질래, 너는."
포스트잇을 붙인 바나나우유를 학연의 발치에 두고, 택운은 학연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많이 힘들겠다, 너도.
그렇게 한 시간을 밖에서 더 기다렸다. 이젠 깨워야 하나, 하고 생각할 때쯤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깼어?"
".....응."
"그래. 가자."
택운은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고맙다."
학연이 조용히 내뱉은 한 마디는, 못 들은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