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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여 선배님."
"어."
"경수선배님도 진짜 오랜만에 뵙네여."
"그러게. 이제 백현이네 소속사라며? 준면이랑 되게 친한가봐."
"네..뭐."
그쪽과 변백현 선배가 친한 방식으로 가까워지고 있달까. 라고 세훈은 굳이 말을 잇지 않았다. 그나저나 바쁜 일정으로 안그래도 뾰족했던 변백현 선배의 턱이 이제는 턱선하면 떠오르는 아이돌 1위였던 오세훈의 자리를 넘볼만큼 날카로워져 있었다. 세훈은 백현이 듣는다면 기함하고 싸대기라도 날리겠지만 뭔가 장인어른 앞에 선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뭔가 못마땅한 표정의 변백현 앞에서 이제는 약간 식은땀이 흐르려던 찰나에 저쪽에서 메이크업을 마친 찬열과 민석이 다가왔다.
"오-너가 그 오세훈?"
"네. 안녕하세여 선배님."
"야. 존나 오글거리게 무슨 선배님이야. 그냥 형이라고 불러."
세훈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의형제마냥 제어깨에 손을 얹고 말하는 찬열에게서 낯설지만 익숙한 어떤 향을 느꼈다.
"아 네..편해지면여..선배님."
"너 방금 되게 나댔어 찬열아. 이 부담스러운 새끼."
하찮은 향이랄까.
"야 절대 터치하지마."
"....."
"진짜 죽여버릴라니까."
"....."
"대답안하냐?"
"...네."
대체 내가 이 대기실에 있으면서 도경수 선배를 터치할 일이 뭐가 있을까. 세훈은 어거지로 입술을 올리며 대답했다. 리허설을 하러 간다는 말에 저도 구경을 할까 싶었지만 혼자 대기실에 남아있을 도경수 선배를 생각해 함께 남기로 했다. 대체 이런 저의 기특한 생각을 칭찬을 못할 망정 저 변백현 선배는 왜저렇게 저를 째려보기 바쁜걸까. 세훈은 백현의 표정이 썩어들어 갈수록 준면이 제게 했던 조언을 더욱 가슴 깊이 새겼다.
'경수한테 잘보이면 변백현은 게임 끝이야.'
"우리 도경수 오빠 리허설하고 올테니까 잘 놀고 있어 여기서."
"나 밖에서 같이 구경해도 되는데..너 내가 보는거 좋아하잖아."
"안돼. 지금 너무 더워. 그냥 여기서 기다려. 현석이한테 게임팩 새로 나온거 다 채워놓으라고 했어."
"이제 그만 사도 돼 백현아. 너무 많아."
"뭐 먹고싶은거 있으면 바로 현석이한테 말해. 알겠어?"
"알게쪙."
"쟤랑 너무 가까이 붙어있지 말고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소리 지르고. 알겠냐."
"세훈이가 뭐 이상한걸 한다고 그래!"
"아무튼."
"알겠으니까 잘 하고와."
"사랑해 우리 도경수."
"나도."
"너도 뭐."
"나도 사랑해."
"내가 더."
내가 더. 하며 동시에 경수의 얼굴에 도장을 찍듯 열번이 넘게 뽀뽀를 해댄 백현이 그제서야 대기실을 나섰다. 세훈은 소파에 앉아 하나도 빠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봤다. 존나 느끼하고 역겹지만 뭔가...생각에 잠긴 세훈에게 인이어를 정리하며 찬열이 다가와 말했다.
"너가 이해해라."
"네? 뭘여?"
"저새끼가 지는 리허설 나가는데 너는 여기서 경수랑 있을 수 있으니까 질투나서 저러는거야."
"아..."
"경수랑 잘 놀고 있어라."
어깨를 툭 치며 나가는 찬열.
"오늘 경수 안심심하겠네. 세훈이라고 했나?"
"아 네."
"경수 게임 좋아하니까 잘 놀아줘. 적당히 져주면서."
"......."
"게임 져서 울상하고 있으면 백현이 또 돌아와서 너 갈굴지도 몰라."
뒤따라 나가는 민석.
"사고치지 말고 있어.ㄱ.."
"경수랑 잘 놀고 있어."
"뭐?
"라고 하려고 한거 아닌가여."
"어..뭐."
"아니 미취학 아동은 저기 자고 있는 타온가 뭔가 쟤 아닌가여. 왜 다들 녹음기도 아니고 똑같은 소리세여."
"니가 여기 일주일만 있어봐라. 알게된다. 아무튼 나 간다."
미련없이 나가려는 준면의 팔을 잡아챈 세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부터 느끼는 구리고 짜증이 나게 하는 이 기분.
"나한테 할 말이 그게 다에여?"
"뭐가?"
"다같이 존나 똑같이 머리에 무슨 칩 박은 사람들처럼 경수 경수 하고 나가도 선배님은 좀 다르게 말할 수 없어여?"
"무슨 소리야. 나 빨리 나가야 돼."
"변백현 선배처럼 존나 입에 불도저 단것처럼 뽀뽀는 못해도."
"......"
"뭔가 내가 선배님한테 특별하다고 느낄 수 있게는 해주고 가여."
"너 뭐 바라고 여기 왔어? 내가 부른것도 아니잖아."
"내가 돌았어여? 바라는것도 없이 여기까지 오게."
"...뭘 바라는데."
"....됐어여. 빨리 리허설이나 하고 와여."
세훈은 내던지듯 준면의 손을 놓고 뒤돌았다. 아무리 지금은 저가 숙이고 들어갈 타이밍이라지만 패기남의 대명사 오세훈도 희망이 있어야 들이댈 것이 아닌가. 인지도 빼면 하나도 빠지는게 없는 자신이거늘. 아직은 어린 고딩의 마음을 애태우고 스크래치 입히는 선배님이 원망스럽기도 하다만.
"아니 잠깐. 존나 빡쳐."
"뭐?"
가련히 내치는대로 물러난다면 그건 김준면의 마음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들었다놨다하는 희대의 연패남 오세훈이 아니지.
"선배님이 언제부터 우리 썸의 주도권을 잡게됐는지 모르겠지만."
"....."
"존나 나도 모르는 새에 선배님한테 안달이 나서 미친놈처럼 일본까지 쫓아온건 나니까 일단은 가만히 있을게여 그런데."
"....."
"지금 이거 어중간한거 끝나고 진짜 연애 시작하면."
"....."
"가만히 안있을거야."
준면은 멍하니 세훈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항상 물 흐르듯 잔잔한 연애에만 길들여져 있던 준면은 이런 세훈이 조금은 부담스럽다고 느꼈다. 친구처럼 편하고 느긋하게. 마음 졸일 일 없이 언제나 서로를 배려하고 의지하는게 준면의 연애 스타일이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시시각각 변하고 무엇 하나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을 견디지 못하는 패기 넘치는 고딩은 준면의 이상형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연락을 이어가고 싫다고 하면서도 굳이 밀어내지 않는 자신이 저도 이해가 안갔는데 세훈은 오죽했을까. 준면은 문밖에서 조금 짜증스럽게 저를 부르는 찬열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갔다 와서 얘기해."
"할 수 있으면여."
"뭐?"
"말이 먼저 나갈지 입술이 먼저 나갈지 모르겠는데."
"..ㅇ..야."
"빨리 가여. 변백현 선배 빡쳐서 난동부리면 어떡해여."
준면은 떠밀리듯 대기실 문을 열고 나섰다. 분명히 저가 생각할 때도, 방금 세훈의 입을 통해서도 들었다시피 지금 이 기나긴 썸의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는것 같은데...
그런데 왜...
자꾸 저가 휘둘리는것만 같은지 준면은 도저히 알 수 가 없었다.
"세훈아! 게임할래?"
"네. 어떤거여?"
또 왕년에 게임하면 이 오세훈이지. 타고난 얼굴과 기럭지는 세훈의 삶을 아주 편하게 만들어준 일등 공신이었다. 솔직히 이렇다할 재능 하나없이 얼굴과 몸매 하나만으로 캐스팅 되어 어쩌다보니 발견하게 된 능력이 춤이었을뿐. 그전까지 세훈은 일명 어른들이 말하는 '쟤는 커서 대체 뭐가 될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준일진에 버금가는 고딩이었다. 그런 세훈의 유일한 특기는 위닝과 피파를 비롯한 비디오 게임이었달까. 세훈은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위해 손가락을 요란하게 풀어대며 경수가 게임팩을 고르는 모습을 바라봤다.
"근데 대기실에서 비디오 게임도 하고 여기 진짜 좋네여. 일본은 다그래여?"
"아니? 이거 백현이가 따로 사다가 설치한거야."
"...이 게임기랑 벽걸이 티비를여?"
"엉. 백현이 이거 설치하려고 어디 사무..뭐였더라...아무튼 거기다가 서류 엄청 냈대. 이거 허가를 받아야 된다고 하던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상자에 가득 담긴 아직 비닐도 채 뜯기지 않은 게임팩들을 뒤적이며 경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마치 저런 엄청난 애정이 항상 있던 일인것처럼. 유난스럽다고 느길 새도 없이 당연한것처럼.
"변백현 선배도 게임 좋아해여?"
"아니. 백현이는 게임 안좋아해. 나만 좋아해."
"그러게여. 진짜 변백현 선배는 선배님만 좋아하는거 같네여."
"아니...그게 아니라...나만 게임을 좋아한다는거였는데..."
세훈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 경수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안그래도 큰 눈을 쏟을듯이 굴려가며 당황을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경수가 견딜 수 없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의외로 작고 귀여운 것에 환장하는 취향인 세훈은 작긴 하지만 목석같이 딱딱한 준면과는 반대로 귀여움을 온몸으로 줄줄 흘리는 도경수를 보니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어릴적 헤어진 동생을 마주하는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서야 왜그렇게들 개나 소나 경수 경수 거리며 그를 챙기려 들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어느새 세훈은 저도 자각하지 못하는 새에 경수의 아담한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알아여. 근데 무슨 게임할까여."
"어? 아 이거!"
"뭔데여. 재밌는ㄱ..."
경수가 눈을 반짝이며 건넨 게임팩의 제목을 읽은 세훈은 약 3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세훈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수는 안타까운 제 마음을 토로하기 바빴다.
"슈퍼..마리오여..?"
"응. 나 이거 끝까지 깨면 기둥 타고 내려와서 깃발 집는거 한번도 못해봤어. 내가 이거 좋아해서 백현이가 한정판이랑 스페셜시즌까지 스무개 넘게 사줬는데 하나도 못깬거 있지..."
하얀얼굴을 축 늘어뜨리며 말하는 경수의 모습에 덕후심이 폭발한 세훈은 경수의 반질한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경수 선배 기죽으면 안되지 암. 그렇고 말고.
"선배님. 걱정하지 마세여. 제가 오늘 마리오 보스몹까지 구경시켜 드릴게여."
"와- 진짜?"
"그럼 가짠가여. 저만 믿어여."
"세훈아. 너 정말 짱인거 같아. 백현이는 슈퍼마리오 잘 못하는데...백현이가 깨준다고 3일이나 밤을 샜는데도 못했어."
"풋. 아니 그게 무슨 개허접같은 이야긴가여? 이거 세시간이면 보스몹 보고나서 떡치고도 남아여."
"떡을 왜쳐?"
"흠..아무튼 뭐 그렇다고여."
세훈은 어느새 비장한 표정으로 아홉살 이후로는 손도 대보지 않은 슈퍼 마리오 게임을 실행시켰다. 옆에서 저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경수가 느껴져 그 책임감이 더했다. 그리고 도경수와 오세훈. 둘 중 그누구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열여덟밖에 안된 후배가 민증이 나온지 5년차에 접어든 스물셋 도경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그의 아들내미가 어느새 잠에서 깨 그런 세훈은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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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준 썸이 너무 길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