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선 깔끔한 아메리카노지.”
“웃기지 마. 그깟 탄 콩으로 내린 물이 뭐가 대단하다고 돈을 주고 사먹어?”
“너나 웃기지 마. 딸기 주스는 집에서 딸기 넣고 갈아 마시면 그만이야.”
“말 다 했냐?”
시끄러워…. 귀에서 윙윙대는 두 목소리에 인상을 팍 쓰곤 나를 바라보는 카페 점원에게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내 말에 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떠있던 두 놈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오른쪽에 있는 김지원의 얼굴은 시무룩해졌고, 그와 반대로 왼쪽에 있는 구준회는 씨익 웃으며 김지원을 보고 거 봐, 하고 으스댔다. 그리곤 내 어깨를 꼭 쥐더니 피실피실 웃음을 흘렸다.
“역시 우리 콩이는 뭘 좀 안다니까.”
“너무하다, 콩아.”
“뭐가 너무해. 딸기 주스는 집에 가서 혼자 처먹어, 이 천사 새-끼야.”
“너 예전엔 딸기 주스 좋아했잖아. 아냐?”
“아니거든.”
내게 묻는 김지원의 질문에 대신 답한 구준회는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팔로 내 어깨를 감쌌다.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밖이라는 생각에 참자, 참자, 하며 마음을 겨우 다독였다. 거의 나를 품에 안다시피 해서 내게 붙어있는 구준회의 팔이 자꾸만 신경쓰였다. 그치, 콩아? 하고 내 왼쪽 귓가에 속삭이듯 되물어오는 구준회의 목소리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인상을 팍 쓰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시끄러워, 하고 말하자 계산을 마친 점원이 내게 카드를 내밀며 네? 하고 되물었다.
“아…. 아무 것도 아녜요.”
내민 카드를 받으며 점원을 향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앞에 놓여진 아메리카노를 들어 빨대로 쭉 한 모금 빨아당겼다. 피어오르던 화가 조금씩 가라 앉는 기분이었다. 카드를 지갑이 아닌 코트 주머니에 대충 넣곤 카페 밖으로 나왔다. 카페 문이 딸랑이는 소리와 함께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내 옆뒤에서 내 어깨에 팔을 건 자세로 움직이는 구준회를 바라보던 김지원은 살짝 인상을 쓰곤 날 따라나왔다.
“콩이한테서 떨어져.”
“신경 꺼.”
“애 물들면 가만 안 둬.”
“안고 있기만 하는 건데 뭐가 물들어.”
“넌 10m 밖에서도 그 못된 기운이 폴폴 풍긴단 말야.”
끊임없이 투닥이는 둘의 목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갑작스럽게 자리에 우뚝 멈춰서서 날 사이에 두고 투닥이는 놈들을 바라보았다. 열을 올려 서로를 잡아먹을 듯 괴롭히기 바쁘던 두 녀석들은 그제야 내가 멈춘 걸 느꼈는지 투닥이는 걸 멈추고 내게 시선을 옮겼다.
“왜 그래, 콩아?”
날 멀뚱히 바라보며 묻는 김지원의 모습에 인상을 살짝 썼다가, 왜 그래? 하고 내 귓가에 대고 물어오는 구준회의 물음에 더 세게 인상을 팍 썼다. 아메리카노를 들지 않은 손으로 어깨에 올려진 구준회의 손을 세게 밀어냈다. 내게서 떨어진 구준회는 가벼운 몸을 움직여 내 앞에 마주보고 섰다. 더불어 김지원도 구준회의 옆에 서서 나를 마주보았다.
“뭐야. 콩이 표정이 안 좋은데.”
“너 때문이잖아.”
“이게 왜 나 때문이야?”
“네가 콩이 어깨에 손 대서 그렇잖아, 이 천사 새-끼야.”
조금 전 구준회의 말투를 따라 천사 새-끼야, 하고 똑같이 말을 한 김지원의 말에 구준회가 인상을 팍 썼다. 한 주먹도 안 되는 게. 으르렁거리는 구준회의 말에 김지원 또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으르렁거렸다. 나를 잠깐 보고 있던 둘은 어느새 또 이렇게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만 좀 해!”
욱한 마음에 그 녀석들을 향해 소리를 치자 그 녀석들은 싸우던 걸 멈추고 날 바라보았다. 제발 조용히 좀 하면 안 돼? 조용히 하는 게 싫으면 내 옆에서 좀 사라져. 차오르는 화를 꾹꾹 누르며 내뱉는 말에, 그렇게나 마음이 안 맞던 두 녀석은 잠깐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동시에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안 돼.”
“왜?”
내 물음에 웃는 얼굴의 김지원이 내 얼굴로 손을 뻗었다. 흐트러진 앞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해준 그는 다시 한 번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말했잖아.”
“…….”
“나는 네게 배정된 천사라니까. angel.”
“그리고 구준회도….”
“그래. 믿기진 않겠지만 저 새끼도 네게 배정된 수호천사고.”
“닥쳐.”
김지원의 말에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나와 김지원을 바라보고 있던 구준회가 닥쳐, 하고 짧게 말하곤 으르렁거렸다.
* * *
김지원과 구준회는 자신들이 수호천사라고 말했다. 날개를 보여달라는 내 말에 펼쳐도 안 보일 거라는 말로 대신한 김지원은 딱 봐도 '나 천사요.' 하는 순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종종 보이는 웃는 얼굴은 안 그래도 순한 얼굴을 더 착해보이게 만들었다. 성격 또한 순했다. 아니. 정정. 순한 성격은 아니었다. 개로 비유하자면 '비글'에 가까운 성격이었다. 비글의 성격은 유명한 걸로 안다. 활발하고, 장난기 넘치고, 지랄맞고….
“콩아. 과제는 했어?”
“무슨 과제?”
“너 어제 들은 프랑스어. 영화 보고 레포트 써야 하는 거 아니었어?”
“아! 맞다!”
장난기도 넘치고 지랄맞은 성격도 맞았지만 그래도 김지원은 착했다. 이렇게 종종 내가 까먹은 일이 있거나 빠트린 일이 있을 때면 김지원은 꼭 엄마처럼 날 챙겨주었다. 조별 모임 7시인 거 안 잊었지? 과제는 15일까지 내야해. 교수님이 메일 보내라고 한 거 잊지 마. 학교는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구준회와는 다르게 김지원은 내 수업마다 날 따라왔다. 비어있는 옆자리에 앉아서 꽤나 수업을 열심히 듣는 김지원의 모습에 가끔 웃음이 터졌다.
구준회는 지랄맞은 걸로는 김지원을 훨씬 넘어섰다. 능글맞은 말투, 욱하는 성격의 그는 날개를 보여달라는 내 말에 귀찮다며 딱잘라 거절했다. 흔히 생각하는 천사의 이미지와는 좀 다르게 무뚝뚝하게 생긴 구준회는 귀에 손만 대도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피어싱을 달고 있었다. 천사도 피어싱을 할 수 있어? 내 물음에 구준회는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야. 콩아.”
“왜?”
“학교 가냐?”
“응.”
“언제 와.”
“4시 좀 넘어서?”
“그럼 부탁 하나만 하자.”
“무슨 부탁이든 싫어.”
내 말에 구준회가 티비에서 시선을 돌려 벙찐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가 구준회의 표정을 보자 피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네가 맨날 나한테 이러잖아. 뭐 부탁하려고만 하면 싫다며. 그 말에 구준회가 어이가 없단 듯한 웃음을 흘렸다. 농담이고, 무슨 부탁? 하고 되묻자 구준회가 쇼파 위에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내게서 시선을 옮겨 티비를 바라보았다. 예능 프로그램을 무심히 바라보던 구준회가 짧게 답했다.
“올 때 메로나.”
아…. 구준회 저건 진짜 천사가 맞긴 한 걸까. 악마 아니고?
어쨌든 둘은 내 수호천사였다. 어느 날 갑자기 잠에서 깬 나를 처음 내려다보던 둘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날 관찰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김지원은 나를 바라보며 '얼른 씻어. 안 그럼 학교 늦어.' 하고 처음으로 말했고, 옆에 있던 구준회는 '얼굴이 호빵 같아.' 하고 처음으로 내게 말했다. 같은 수호천사지만 둘은 너무나도 달랐다.
왜 내게 온 거야? 내 물음에 김지원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답했다. 19살인 내가 20살이 될 때까지 위험한 일로부터 날 지키는 일이 그 둘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했다. 위험한 일? 꼭 인터넷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그 말을 듣고 왠지 모르게 유치하단 생각이 들어 입술을 삐죽이자 날 바라보던 구준회가 내 입술을 손으로 툭 쳤다.
“아프잖아!”
“입술은 뭐 하러 쭉 내밀어?”
“내 입술인데 내 마음대로도 못 해?”
“보는 사람이 불쾌해.”
“김지원! 얘 진짜 천사 맞아? 수호천사는 천사들 중에서도 꽤 괜찮은 천사들이 하는 거라며!”
“지금 그 말은 내가 썩 안 괜찮은 천사라는 소리야?”
구준회의 말에 흘겨보며 당연하지, 하고 답하자 구준회가 어이가 없다는 듯 내 이마를 쭉 밀었다. 씨이…. 쭉 밀린 이마를 감싸곤 김지원을 바라보자 김지원이 웃으며 이마를 덮고 있는 내 손 위를 살살 쓸어주었다.
“콩이 그만 좀 괴롭혀, 구준회.”
“괴롭히긴 누가 괴롭혀? 같이 노는 것 뿐인데.”
“구준회 완전 뻔뻔하다. 그치, 지원아.”
김지원과 구준회는 나를 '콩'이라고 불렀다. 그게 무슨 뜻이야? 하고 묻는 내게 구준회는 심드렁하게 웃으며 답했다. 땅콩 같아서. 땅콩 같은 게 뭔데? 하고 또 물어오는 내가 귀찮다는 듯 구준회가 내 얼굴을 한 번 손으로 훑어내리며 답했다. 쬐깐하다고. 그 말에 왠지 자존심이 상해서 한동안은 콩아, 하고 부르는 둘의 부름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길들여진 건지, 언제부턴가 '콩'이라고 불러오는 둘의 부름에 나도 모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자 나는 콩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졌다. 이제는 두 녀석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더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 말에 김지원이 웃으면서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구준회가 참 나, 하며 바람 빠진 웃음을 지었다. 입술을 다시 한 번 삐죽이다가 몸을 일으키자 김지원이 어디 가게? 하고 물어왔다.
“편의점.”
“편의점은 왜?”
“배고파.”
“같이 가자.”
당연하다는 듯 몸을 일으킨 김지원은 옆에 놓여져 있던 코트를 내게 건넸다. 코트를 챙겨 입고 목도리까지 두른 채로 현관으로 걸어와 운동화를 신었다. 구준회 너는 안 갈거야? 쇼파에 앉은 구준회를 향해 묻자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긴 구준회가 몸을 일으켰다. 안 간다곤 안 했어. 그리고는 날 따라 나오는 구준회의 모습에 피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어련하시겠어.
편의점에 도착하자 사준다고 한 적도 없는데 두 녀석들은 먹고 싶은 걸 하나씩 고르곤 날 바라보았다. 이거. 당연하다는 듯 날 바라보는 두 녀석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허, 하고 숨을 뱉었다가도 따라 나와준 녀석들이 고마워서 고른 물건에 내 라면까지 더해 계산대로 갔다. 물건을 내려놓자 알바생은 하나 둘씩 바코드를 찍기 시작했다. 날 사이에 둔 채로 김지원은 아이스크림이 가득 담긴 냉장고 안을 바라보며 우와, 하는 바보 같은 감탄사를 뱉었고, 구준회는 대충 몸을 기대선 채로 알바생의 뒤쪽에 정리되어 있는 담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콩아.”
“…….”
“콩-아.”
“…….”
“맞다. 너 밖에선 우리랑 말 안 하지.”
“…….”
“야. 콩아.”
“…….”
“혹시 담배 한 갑만 사줄 생각은 없냐?”
“미쳤어?”
구준회의 목소리에도 못 들은 척 지갑을 뒤적이다가 마지막으로 들려온 구준회의 말에 나도 모르게 구준회를 바라보며 미쳤어? 하고 대답했다. 말하고도 아차 싶어서 앞에 선 알바생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리자 알바생이 바코드를 찍다 말고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순간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다가 알바생을 향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어, 그러니까,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내 말에 알바생은 당황한 표정으로 5200원입니다, 하고 말했고 나는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구준회와 김지원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계산을 마치고 편의점 밖으로 나오자마자 둘을 쏘아보았다. 내 시선에 구준회가 킥킥대며 웃었고, 김지원도 함께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걸었다.
“웃지 마.”
“웃긴데 어떻게 안 웃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구준회.”
“왜?”
“너 나 곤란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그런 거잖아.”
“아닌데. 진짜 담배 한 갑 사달라고 한 말이었는데.”
“아, 좀!”
신경질적으로 내뱉는 내 목소리에도 둘은 마냥 날 바라보며 웃었다. 입술을 삐죽이며 내게 팔을 건 김지원을 바라보자 김지원이 왜, 하고 물었다.
“너도 담배 펴?”
“아니. 설마.”
“웃기지 마. 김지원 너도 피잖아.”
“끊은지 오래야, 멍청한 놈아.”
그 말에 구준회는 그렇냐? 하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얘들은 흔히 아는 천사와는 이미지가 너무 다른데…. 힐끔, 구준회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힐끔, 김지원을 바라보곤 물었다.
“너희 정말 천사 맞긴 한 거지?”
“그 질문의 의미가 뭐야?”
“대체 어느 천사들이 피어싱을 하고 담배를 펴?”
“담배는 그렇다 쳐도 피어싱은 뭐 어때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알던 천사랑 너희 모습은 달라도 너무 달라. 천사라고 하면 착하고, 순하고, 깨끗한 이미지에, 하얗고, 뭐 하여튼 그런 거 아냐?”
의심을 가득 품은 내 목소리에 김지원이 내 손에 들린 검은 봉지를 잡아채 제 손가락에 걸었다. 그리고는 어깨에 걸린 손을 풀더니 나와 마주보고 서선 뒤로 걸음을 걸었다. 손에 들린 봉지를 휙휙 돌리던 김지원이 피실피실 웃으며 말했다.
“뭐 그런 쓸데없는 걸 물어.”
“뭐?”
“여기 있잖아. 순하고, 착하고, 깨끗하고, 하얗고 뭐 그런 천사.”
“너희 둘?”
“아니. 나만. 구준회 저 새-끼는 깨끗한 이미지는 아니지, 아마?”
“죽을래?”
김지원의 말에 구준회는 다시금 으르렁거렸고 김지원은 킥킥 웃으며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쟤들은 종일 저렇게 싸우고도 지겹지도 않을까…. 어쩌다보니 다시 시작된 둘의 투닥거림을 바라보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코트 안에 입고 있던 후드티의 모자를 머리 위로 뒤집어 썼다. 으, 추워라. 빨리 집에 가서 라면이나 먹어야지.
♡
안녕!!! uriel 이에요!
이 글을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쓰고도 뭔지 모르는 글은 정말 처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큰 틀은 굉장히 시끄럽고 지-랄-맞-은 두 명의 수호 천사와 귀여운 콩이..? 에요! 그래서 제목도 엔젤, 땅콩, 엔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원이와 준회는 여주에게만 보인다는 게 함정! 목적이나 의도 없이 그냥 재미로 썼어요, 재미로 ★☆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재미로 읽어주기! 단편으로 바람처럼 왔다 갈게요 깜짝 선물로 생각해줘요 ㅎ_ㅎ 잘 자요♡ 사랑해요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