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VS 소아과 :: 06
By. 아리아
으, 속쓰려. 몇개월 만의 알코올을 받아 들이기 힘들었는지 전보다 훨씬 더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푹신한 침대의 유혹을 털고 일어났다. 찌뿌둥한 몸에 기지개를 피며 습관처럼 옷걸이에 걸린 가운을 집으려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여기 있어야 할 가운이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곳곳을 확인하자 익숙한 하얀 벽지가 아닌 연분홍빛의 벽지가 제 시야를 가렸다. 들어온지 한 달도 더 된 것 같은 우리 집. 사람의 온기라곤 제가 누워있던 침대에만 살짝 맴도는 제 집이다.
"..나 어떻게 온거지?"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 보아도 끝은 말꼬리를 늘리며 애교같지도 않은 애교를 부리는 저를 지그시 바라보는 권교수였다. 결론적으로,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진 알 수 없었지만 애인을 바라보듯 다정했던 그의 눈빛이 두둥실 떠올라 열이 올랐다.
***
뽑아놓고 병원에서 살다시피 해 딱 두 번 타본 차에 올라탔다. 어색한 손길로 시동을 키니 자동으로 재생되는 라디오에 놀라기도 잠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잔잔한 선율이 제게 옅은 미소를 안겨주었다. 봄도 다 지나갔건만 왜 제 맘 속엔 따뜻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지.
"좋은 아침-"
"교수님, 속은 괜찮으세요? 어제 과음 하시는 것 같던데."
"안 그래도 필름 끊겨서 죽을 것 같아요.."
"저 어제 뭐 실수 한 거 없죠?"
"ㅇ, 어. 네? 네."
"...있어요?"
"아니요! 하나도 없어요! 절대!"
절대 없다며 약물 투여시간이라 가봐야겠다는 어색한 연기를 펼치고 가는 승관쌤에 끊겼던 기억 이후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머릿 속을 지나갔다. 놓치지 않으려 애써보았지만 형태가 확실히 보이는 다정했던 권교수의 눈빛만 떠오를 뿐 진전이 없어 힘없이 교수실로 향했다.
잠시만 넋을 놓고 있어도 여기저기서 뿅뿅 튀어나오는 권교수의 다정함이 뚝뚝 흘러나오는 눈빛에 이미 다 끝낸 논문을 괜히 한번 더 열어보고, 목에 걸쳐있는 청진기를 만지작거렸다.
지잉-
"소아과 김ㅇㅇ입니다."
"김교수님, 응급실인데 과 배치 때문에 좀 내려와 주셔야겠는데요."
"아, 네. 금방 갈게요."
휴대폰 건너편으로 권교수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 착각에 괜시리 두근대는 마음을 감추며 응급실로 향했다.
"교수님, 여기요!"
응급실 구석에서 저를 부르는 응급실 막내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가자 환자, 보호자, 그리고 계속해서 제 머릿 속을 둥둥 떠다니던 권교수가 있었다.
"그, 제 생각엔 소아과로 보내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권교수가 NS로 보내라고 하셨죠?"
"..네"
"제가 해결할테니까 가서 일 보세요. 7번 베드 위급한 것 같은데."
"아, 네! 감사합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7번 베드로 총총 걷는 간호사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저를 노려보고 있는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 그 다정했던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남자가 맞는지, 내가 본건 헛것이었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그의 행동에 마음 한쪽 구석에서 비집고 나오는 서운함이 꽤 많은 곳을 차지하자 괜시리 입술을 삐죽였다.
"소아 백혈병이잖아요. 저희 과로 올려보내주세요."
"당장 수술 들어가야되는 환잡니다."
"그래서요."
"..김교수 그 상태로 수술 들어가면 환자한테 토 하고 난리 날 것 같아서 그럽니다."
"네?"
"한국말 못 알아 듣습니까. 영어로 해 드릴까요?"
"아니, 무ㅅ."
"수술실 잡아주세요. 집도는 제가 합니다."
"......"
"김교수 실력 무시도 아니고, 제 성과 늘리려는 것도 아닙니다."
혹시 독심술도 하나. 제 마음을 그대로 읽은 듯한 그의 말에 치부를 들킨 듯 해 조그마한 귀가 살짝 붉어졌다.
"그럼 뭔데요."
"..걱정돼서 그럽니다."
"누가요, 환자가?"
"아니요."
"아, 그리고."
"ㄴ,네?"
"술 취할 정도로 들이붓지 마세요. 보기 싫습니다."
..망했다.
***
분명 실수를 한 것 같다. 그것도 권교수에게. 평소 제 술버릇을 살펴보자면 뜬금없는 애교부터 시작해 뽀뽀로 끝난다는ㄷ , 헐.
"시발, 뽀뽀?"
"네?"
속으로 생각한다는 게 입 밖으로 나와버려 놀란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찬이에게 대충 얼버부리며 의국을 빠져나와 정처없이 걷기 시작했다. 설마, 진짜 뽀뽀한 건 아니겠지. 아닐거야. 아니어야 ㄷ,
그 순간 제 어깨를 잡아오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그 손을 쳐내버렸다.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상대방에 먼저 고개를 올려 상대방을 확인했다. 아, 망했어.
"아, 그, 제가 그려려고 그런게 아니라."
"조심 좀 하세요. 그러다 부딪히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분명 질타가 날아올 줄 알았던 제 예상과 달리 꽤나 다정한 그의 말투에 또 한번 놀라 그를 올려다보던 눈을 거두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그런 제 눈을 피하지않곤 검은 눈동자에 오롯이 저 하나만을 담고 있는 그였고 그와 나, 우리 외엔 모든 것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몽글몽글한 느낌에 쓸데없는 용기도 생겼고.
"..그, 권교수님."
"혹시 어제, 교수님한테 실수 한 거 있어요?"
"......"
"몹쓸 애교 부린 거 까진 기억 나는데 그 뒤론 필름이 끊겨서요."
"혹시, 막 안겼다거나 뽀ㅃ..를 했다거나 그런 실수는 없었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지그시 내려다보는 그에 어제자 그 다정했던 눈빛이 겹쳐보였다. 두근두근 떨려오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그의 입술이 열리기 만을 기다렸다.
"글쎄요."
"네?"
"궁금하면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죠."
"보고 싶은 연극이 생겼는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요."
"내일 6시에 지하 주차장에 있겠습니다."
피가 튄 하얀 마스크를 벗곤 싱긋 웃어 보이며 발걸음을 떼는 그의 뒷모습에서 오늘 아침 제 마음을 감싸왔던 따뜻한 봄바람이 살랑였다.
권교수 시점
습관인지 시선을 맞춘 채로 자신이 실수한게 있냐며 구구절절 자신의 술버릇을 나열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뽀뽀라는 단어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내 눈치를 보다 또 다시 쫑알쫑알 이야기하는 사랑스러운 그녀에 결국 저질러버렸다.
뜬금없는 데이트 신청에 벙쪄있는 그녀를 뒤로 하고 교수실로 오며 휴대폰의 잠금을 해제해 노란 카톡 창을 열었다.
전원우
[야]
[그]
[데이트 할 때 뭐 입고 가야 되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심장이 막 두근대고 잠은 잘 수가 없어요
-볼빨간 사춘기, 우주를 줄게 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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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똥글에다 분량도 적으니 포인트 없어요!!!얘네 이제 다음화에 데이트하지롱호호호홓 얼른 보고싶죠?
여러분들이 보고 싶으신 만큼 전 여러분들의 댓글이 아주 큰 힘이 된답니당 진짜로!! 이런 글 읽어주시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감사드리지만 예쁜 댓글까지 남겨주신다면 글 쓸 때 정말 도움될 것 같아요!!!사랑해요!!!
암호닉 신청은 당분간 받지 않아요!!
5화까지 신청해주신 분들은 모두 다 신청되신거구 정리되는 대로 공지 올리겠습니다!!!그럼 안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