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VS 소아과 :: 04
By.아리아
살짝 젖혀진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이 저를 안아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팔목에 채워진 시계를 흘깃 보았다. 오전 6시 30분. 끊임없는 사건사고 덕에시끌벅적한 병원이 가장 조용한 시간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시간. 저도 모르게 자꾸만 흘러나오는 콧노래가 마치 새하얀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입고 잠든 탓에 살짝 구겨진 가운을 정리하며 컴퓨터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제 시선을 빼앗은 건 반짝-거리는 휴대폰이었다.
NS 권순영 교수
[냉장고에 초밥 넣어놨습니다]
[다 먹으면 연락해요]
여기까진 좋았다.
[그리고 냉장고 청소 좀 하세요]
[남들이 보면 욕합니다]
아침부터 신경 박박 긁어 놓는 건 취미인건가 재능인건가. 묘하게 기분이 상하는 듯한 느낌에 냉장고는 열어보지도 않고 서론에서 머물고 있는 논문이나 건드려볼까 하는 마음에 컴퓨터 전원버튼을 꾹 누르곤 잠시 눈을 감았다.
'만나는 사람 있습니까.'
꿈인가. 꿈이겠지. 권교수가 그런걸 왜 궁금해하겠어.
생각하면 할수록 꿈이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열이 확 오르는 걸 느끼곤 컴퓨터 옆 거울을 흘깃 보자 토마토와 비교해도 비슷한 색을 띄고 있을 것 같은 제 얼굴이 보였다.
"미쳤지. 꿈일거야, 꿈.."
고개를 휘휘 저으며 부팅이 완료 된 컴퓨터를 그저 바라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곤 논문 파일을 클릭했다.
이거라도 쓰다보면 잠깐은 덜 생각나겠지.
***
평소처럼 회진을 돌고, 예정 된 수술을 집도하고, 수술방에서 나오자마자 들이 닥치는 응급 환자들에 또 다시 수술실로 들어가고. 시간을 확인할 여유 조차 없이 숨가쁘게 달려왔다. 저녁 8시쯤 됐나, 그제야 찾아온 조금의 쉴 틈에 침대를 보자마자 몸을 던져 누워버렸다. 한참을 거들떠 보지도 않아 차가워진 휴대폰이 가운 주머니에서 저를 좀 봐달라며 웅웅 대 발신자가 누구인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수신 버튼을 눌러버렸다.
확인을 했어야 하는건데.
"소아과 김ㅇㅇ입니다."
"초밥 아직도 안 먹었나 봅니다."
"네?"
그제야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 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NS 권순영 교수. 미친.
"상했을 것 같은데."
"..아, 냉장고에 넣어놔서 괜찮을텐데요."
"아, 그래요?"
"네."
"......"
"근데 왜 전화하셨어요?"
"아니, 그냥. 카톡도 무시하고 연락 없길래 해봤습니다."
"아.."
"저녁 아직이죠?"
"네."
"어차피 회의도 해야되니까 밥부터 먹고 하죠. 김교수 배고프면 집중 못 하는 것 같던데."
"허, 제가요?"
"네, 너가요."
너? 너가요?
"옷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전화는 끊긴 후였다. 네, 너가요라니. 뭔가 갑자기 확 가까워진 느낌에 그의 향수 냄새가 옅게 풍겨오는 듯 했다. 꺼진 액정에 얼굴을 비추어보자 여기저기 핏자국이 묻어있는 수술복부터 시작해 거칠다 못해 푸석푸석한 피부, 고등학생 때부터 쓰던 동그란 안경까지. 제 자신이 봐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얼굴에 스프링 튀듯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 앞으로 향했다.
치마?
아니야. 이 시간에 무슨 치마야.
후드티?
너무 추리해 보일 것 같은데.
옷장을 아무리 뒤적거려 보아도 딱 삘이 꽂히는 옷이 없어 힘없이 닫으려는 순간 옷장 구석에 걸려있던 하얀 니트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니트, 남색 슬랙스. 얼굴엔 대충 뭐라도 찍어바르자 꽤 봐줄만 하다는 생각에 괜히 들뜬 기분이 저를 감싸왔다. 영혼과도 같았던 크룩스 대신 하얀 컨버스화를 신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1층을 향해 걸었다.
권교수 만나는데 뭐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이렇게 꾸미고 있는건지도 모르겠고.
깊게 파고들자 또 다시 지끈거려오는 머리에 고개를 내저으며 생각을 떨쳐내려했다.
"김교수님."
"..으어, 네."
"볼 때마다 이상한 짓 하고 있는 거 압니까."
웃음을 꾹 참는 듯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그에 곰곰이 회상을 해보니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정확한 그의 분석에 밀려오는 쪽팔림은 덤이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시죠. 내일이 수술인데 회의 아직 덜 끝났잖아요."
"뭐 먹을지도 안 정해놓고 막 갑니까?"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듣기 좋은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려 바라보았다. 보았는데, 봤는데, 왜 권교수 옷차림이 익숙하지?
디자인은 살짝 다르지만 하얀 니트에 남색 슬랙스, 흰 컨버스화까지. 마치 연인인 듯 한 모양새를 비춰주는 그의 모습에 다시 앞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안 봐도 뻔하다. 귀, 볼, 얼굴 어느 곳 할거 없이 붉어져있을 제 모습이.
"말 안하면 그냥 제가 가고 싶은데 갑니다."
내 다리가 짧은건가, 권교수 다리가 긴 건가. 분명 제가 훨씬 앞에서 걷고있었는데 어느새 나란히 걷고 있었고 꽤 가까이 붙어있는지 자꾸만 닿아오는 손등에 온 몸에서 오른 열은 내려갈 줄 몰랐다.
***
"안 먹습니까."
"아, 먹어야죠."
"잘 먹겠습니다-"
소아과에서 어린 아이들을 상대하다보니 생긴 말버릇을 시작으로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해 고플대로 고픈 배를 조금씩 채워갔다. 분명 내 앞의 음식들은 줄어가는데 흘깃 본 권교수 쪽의 음식은 처음 플레이팅 되어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안 드세요?"
"먹고 있습니다."
"하나도 안 줄었는데요?"
아이들이 주사를 맞기 싫어하거나, 밥을 먹지 않을 때 보내던 의심의 눈초리가 그를 향했다. 그런 저를 한참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여 큭큭대며 웃는 그의 모습에 겨우 가라앉았던 두근대는 마음에 다시 한번 봄바람이 불어왔다.
"하나도 안 줄었어요?"
"네."
"그래서, 걱정됐어요?"
"네."
"네?"
"아니요! 제가 언제 걱정을 했다고!"
"그럼 뭡니까?"
"ㅇ, 음식 아까워서요."
누가봐도 믿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또 말렸다 또.
"저 저녁 먹었습니다."
"그럼 여긴 왜 오셨어요?"
"김교수 밥 먹이려고요."
"다 먹었으면 일어나죠. 늦었는데."
지 할말만 하고 먼저 나가버리는 싸가지는 여전한데, 도대체 왜 자꾸 얼굴이 달아오르는건지 모르겠다. 짜증나게.
***
"이민수. 6세 남아. 마취 완료 되었습니다."
"수술 시작합니다."
수술대 위의 전등이 켜지고 수술실 안은 지시를 내리는 권교수와 내 목소리만이 오갔다. 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면 정적이 공기를 감싸안았고 수술실 위쪽에서 참관 중인 교수님들 또한 숨죽인 채 지켜보고 계셨다.
권교수의 차례가 끝나자 갑자기 밀려 들어온 부담감이 화근이었는지, 멀쩡한 혈관을 건드려 마치 불꽃처럼 튀어오르는 피에 수술실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어레스트를 외치는 마취과 선생님부터 시작해 삐-삐- 소리를 내는 심전도 기계까지 순식간에 응급 상황으로 변해버린 수술실은 내게 공포로 다가왔다.
그 순간, 눈을 맞추는 권교수에 그와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춘 듯 그의 목소리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괜찮아요. 긴장 풀어. ㅇㅇ야."
마스크에 가려 입모양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위로 살짝 보이는 째진 눈은 분명 웃고 있었다. 이어 능숙하게 제 실수를 해결해 나가는 그의 모습에 결국 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반했구나. 저 싸가지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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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연애라면서 왜 달달하냐구요? 원래 썸탈때가 제일 달달해요 여러분호호호홓 드디어 여주가 지 맘을 알아차렸네요. 바보 ㅇㅅㅇ 오늘은 설레는 장면이 1도 없고, 권교수 시점도 없다지만 우리에겐 큰 수확이 있어요. 여주가 지 맘을 알았거든요!!!!수녕이는 진작에 알았고!!!!그리고 여러분 요즘 제 취미가 뭔 줄 아세요? 독방에 신경외과 쳐보는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 글 추천있으면 혼자 실실 웃는답니당꺄아 사랑해요♥ 굿밤!!!!!암호닉은 정리되는 대로 공지로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