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하나, 옆으로 하나
W. JPD
"야. 내 거 처먹었냐?"
"뭐가, 왜 또 지랄인데."
"지랄? 야, 네가 처먹은 거 맞잖아, 씨발아."
"야,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이 집에 내 거 건드리는 새끼가 너 말고 누가 있다고? 존나 당당하네?"
"그니까 키가 크고 싶은 거면 흰 우유나 마시라고."
"... 이 개새끼가."
나보다 조금 더 위에 있는 갈색빛의 머리칼을 휘어잡았다. 곧이어 내 두피에서도 고통이 느껴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손에 힘을 더 주었다. 내 머리카락이 다 뜯겨져나가도 이 새끼는 족치고 만다, 이런 다짐과 함께. 물론 내가 이러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생각 없이 사는 박지훈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상쾌하게 일어나 아껴두었던 바나나우유를 먹으려 냉장고를 열었는데, 그랬는데, 왜 어젯밤까지만 해도 나를 향해 환히 웃고 있던 빙그레가 자취를 감췄냐 이 말이다. 내가 상쾌한 주말을 보내기 위해 좆같던 평일을 다 참아내며 남겨두었던 내 빙그레를... 이렇게 되면 범인은 하나다, 박지훈. 어쨌든 박지훈이다. 생각, 추측, 그딴 거 다 필요 없다, 이럴 새끼는 그냥 박지훈이다.
"야, 놔라, 놔."
"네가 먼저 놔, 네가 잘못했잖아!"
"네가 먼저 잡았으니까 네가 먼저 놔야지, 뒤질래? 내가 오빠거든?"
"쌍둥이끼리 오빠 동생이 어딨냐? 지랄이야, 빨리 놓으라고, 아, 씨발!"
"아아, 아, 아파, 아프다고, 야!!"
거실이 시끄러웠다, 이럴 때면 아파트가 아닌 게 정말 다행이었다. 더불어 부모님이 바쁘시다는 것도. 부모님은 주말에도 평일처럼 일을 하러 나가신다. 그래도 사업을 하시기 때문에 회사원들이 주말에 나가는 기분이랑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일하는 걸 꽤 즐기시는 것도 같고. 어쨌든 그래서 우리 집은 거의 자식들끼리 있는 시간이 많은데, 박지훈과 나는 쌍둥이, 그리고 위로 오빠 하나가 있다. 우리는 아직 열아홉이지만 오빠는 스물둘이다, 무려 성인. 그거 빼곤 딱히 부럽거나 한 건 없다, 성인 되고 나서는 우리랑 있는 시간도 적었고. 워낙 잘 싸돌아다니다 보니, 아니, 잘 싸돌아다닌다기보단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밖에서 찾는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것 같다. 나갈 때마다 귀찮다며 욕을 쏟아내고 가는 걸 보면, 아마도.
"씨발새끼, 존나 죽일 거야."
"어, 그래, 쳐라, 쳐!"
"칠 거다, 새끼야!"
"아악!! 야, 쳤냐? 지금 쳤냐고, 와, 이게 이젠 오빠를!"
어느새 머리카락을 쥐고 있던 손은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고 있었고, 이건 남매 싸움이 아니라 그냥 개싸움에 가까웠다. 치라는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쳤고, 상대방도 전혀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힘으로 싸우면 내가 당연히 불리하니 나는 거실에 있던 야구방망이를 들었다. 아마 박지훈의 친구가 저번에 집에 놀러 왔을 때 놓고 가서 아직도 안 찾아간 물건인 것 같은데, 정말 좋은 친구인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나의 행동으로 박지훈은 뒤로 물러났고, 우리는 대치 상태에 놓였다.
"다 싸웠냐."
"..."
"존나 시끄러운 건 알고?"
"... 형, 지금 영상 찍은 거...?"
"에이, 설마. 오빠, 아니지?"
"맞는데, 왜. 엄마한테 보낼까, 아빠한테 보낼까."
"..."
"골라."
... 씨발, 이런 좆같은 상황이. 아니, 주말마다 약속 있다고 나가던 사람이 왜, 오늘은, 집에 있는 건데. 씨발,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좆됐다는 건 정말 잘 알 것 같다. 아, 진짜 안 되는데, 그렇다고 입으로만 떠들 사람은 절대 아니고, 저러다 진짜 보내게 생겼다고. 그러면 나는 오늘, 아니, 어쩌면 부모님이 굉장히 일찍 집에 들어오실 수도 있겠고, 게다가 오늘은 내가 먼저 머리채를 잡았고, 심지어 이 무기까지 들었는데, 게다가, 나는 법적으로 동생, 씨발, 상황이 굉장히 불리하다.
"오빠, 일단 핸드폰 내려놓고, 응?"
"너나 그거 내려놓고, 나도 칠까 무섭다 야."
"그래, 씨발! 너 그거 존나 무섭다고!!"
"박지훈, 너도 다물어."
"..."
이래서 쌍둥이 있는 집에는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구나, 물론 내가 방금 지어낸 말이긴 하다만. 어쨌든 큰오빠의 등장으로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우리는 거실을 청소했고, 악수를 했고, 포옹을 했다. 말로만 듣던 보여주기 식 화해랄까, 뭐 그런 거. 악수를 할 땐 서로가 서로의 손을 아작 내기 위해 힘을 줬고, 포옹을 할 땐 등을 토닥이는 척하며 이 새끼의 척추를 부러뜨리겠다는 의지로 두들겼다. 어째 화해하고 난 다음이 몸이 더 쑤시는지. 그런 우리의 모습을 소파에 앉아 한심하게 바라보던 큰오빠가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너무 눈치 없게 굴었나 싶어 서로 네 잘못이라며 눈으로 욕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곧 웃을 수 있었다.
"예, 여기 피자 두 판 배달해주세요."
"... 헐, 오빠..."
"... 존나 멋있어."
우리는 단순했다, 먹을 게 눈앞에 있으면 모든 게 다 좋아 보였고, 피자를 먹을 때만큼은 서로를 아주 사랑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건 피자를 다 먹음과 동시에 끝난 일이다. 어쨌든 큰오빠의 넓은 마음으로 우리의 평소 같은 사소한 다툼은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고, 그 뒤로는 소리 없이 싸우는 법을 연구하곤 했다.
-
"박지훈이랑 짝 됐다고... 존나 싫어..."
"왜, 친해지고 좋지."
"... 난 싫은데..."
"그래도, 네가 동생이니까 좀 더 이해하고, 응?"
"... 그래도... 애들은 우리 남매인 거 모르는데 계속 잘 어울린다느니, 부럽다느니, 진짜 귀찮아."
"남매인 걸 왜 몰라?"
"우리가 쌤들한테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어."
내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기 시작하는 오빠를 말없이 바라보니, 고개를 끄덕이곤 그럴 수 있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근데 그런 말하는 사람치곤 너무 크게 웃던데, 기분 탓이겠지, 뭔가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그래도 내 투정을 잘 받아주는 큰오빠이기에 더 달라붙어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데 방에서 나오는 박지훈에 얼굴을 굳혔다.
"형, 나 오늘 쟤랑 짝 됐어."
"마침 그 소식 듣고 있었다, 너도 싫어?"
"그걸 말이라고."
"누군 좋은 줄 아냐?"
"넌 좀 닥쳐."
"너나."
"둘 다 그만."
오빠의 한 마디에 입을 다물곤 강아지가 된 것처럼 품으로 파고들어 몸을 기댔다, 역시 잠 오기 딱 좋은 포근함이다. 그렇게 축 늘어져 앞으로의 학교생활을 걱정하고 있었을까, 내게 시비를 걸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은 박지훈이 입을 열었다. 아니, 근데, 씨발, 저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지.
"아, 맞다, 형. 방금 생각난 건데."
"어, 왜."
"쟤 남친 있는 거 알아? 같은 동아리인데 둘이 동아리실만 들어가면 나오질 않는다더라."
"... 뭐?"
아니, 씨발, 잠시만, 이게 무슨 지랄이지. 방금 생각나긴 개뿔, 나를 엿 먹이려고 작정을 했는데, 개새끼가. 차라리 사실이면 할 말이 없기라도 하지, 모솔인 나는 남친을 사겨본 적이 없다, 고백을 한 적도 받은 적도 없다, 그냥 존나 조용히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짝사랑이야 해봤겠지만 그거랑 이건 전혀 관련 없는 거 아닌가. 게다가 내 동아리에는 남자가 없는데 무슨 남친. 씨발, 말에 모순이 넘쳐흐르는데 양심 없는 새끼. 저거 다 알면서 저 지랄이지 지금? 저 개새끼, 존나 싫어 진짜. 안 그래도 이런 쪽으로 굉장히 예민한 오빠를 앞에 두고,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빙그레는 지가 처먹어놓고?
"아니, 오빠, 그게 아니라, 진짜 오해야."
급하게 몸을 일으켜 오빠를 바라봤는데 표정이, 영 아니다. 이러다 한 대 얻어맞을 수도 있겠다, 싶은 정도. 설상가상 이 상황을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장난이었다고 해명해줄 수 있는 박지훈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보이질 않는다. 거실엔 오빠와 나, 둘뿐이었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핑계 대는 걸로 보일 게 뻔한데. 존나 억울해서 뭐라 말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어쨌든 박지훈은 이따 죽여놓는 걸로 확실하게 마음먹었다, 이 새끼는 한 번 죽어봐야 정신을 차릴 것 같다.
"알았어, 오해인 거 알겠어."
"..."
"근데 그 새끼 이름이 뭐라고?"
오해라는 걸 전혀 모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