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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하라!' 

 

소년이 그런 말을 알아들을 리는 없었다. 그저 반복되는 말 뒤에 메아리처럼 울려오는 총성이 아파 귀를 틀어막으며 아악, 하고 고통스런 신음을 내지를 뿐이었고, 아무런 예고없이 일어난 난리에 그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시장에 다녀오며 제 어머니에게 드릴 빵을 한 봉지 챙겨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숲 근처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저 멀리서 조이네 집이 불에 타오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이! 그의 목소리가 화약터지는 소리에 처참히 묻혀버렸다.파울, 하일, 앤 아주머니, 래퍼드 아저씨, 옆집 호키씨 그리고 강아지 셸터까지. 여기저기서 그가 아는 사람들의 비명섞인 목소리가, 한꺼번에 소년의 귀를 덮쳤다. 

 

 

'도망 가, 정국아!' 

 

 

그렇게 멍하니 화염 속에 가라앉는 마을을 보며 소년은 더이상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전에 어머니가 읽어주셨던 나라와 나라의 전쟁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아, 이게 제발 꿈이었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친 게 아니었으면, 하고서 그는 작게 어깨를 떨었다. 그러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그의 몸을 감싸 안았다. 소년의 어머니, 그녀가 그를 품에 안은 채로 접질러진 발목의 아픔조차도 잊은 채 필사적으로 달렸다. 뗏목, 뗏목이 있는 강가로 가야했다. 그녀의 머릿속엔 오직 자신의 하나뿐인 핏줄을 살려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고, 이미 소식이 두절된 자신의 남편도 찾아야 했다.  

 

 

'어머니..?' 

 

 

'정국아,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거라.' 

 

 

'..네.' 

 

 

'이 뗏목을 타고 강 건너로 가, 그리고...' 

 

 

소년은 울부짖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듯이 그의 목구멍에서 제대로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눈 앞의 어머니의 너덜너덜한 옷을 보며 차마 그녀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제게는 하나뿐인 어머니고, 그런 그녀와 헤어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아직 어렸다. 

 

 

'어머니, 안돼요!!!!' 

 

 

그의 외침과 달리, 강의 흐름을 타기 시작한 뗏목은 소년의 마음과 달리 자꾸만, 자꾸만 그의 어머니와 멀어져갔다. 

 

 

 

 

 

'어머니!!!!!' 

 

 

 

 

 

그녀가 어느새 멀어진 소년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이며 곧 갈게, 라고 크게 외쳤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 앞에 말도 안되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아악!!!' 

 

소년의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가 제 눈앞에서 빨갛게 불타 올랐다. 고개만 돌려도 초록빛이었던 엘리오스는 그렇게 꼼짝없이 화염덩어리 속에 갇혀 그 빛을 잃어버렸다. 

 

 

 

 

 

 

'어머니!!!!!!' 

 

 

 

 

 

 

 

 

 

 

 

 

 

 

 

 

 

 

 

 

그는 너무 어렸다. 

 

 

 

 

 

 

 

 

 

그는 너무 어려서,  

 

 

 

 

그는 너무 어려서... 

 

 

 

 

 

 

 

 

 

"..하아, 하아..." 

 

창밖을 보니 어느새 해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국은 후덥지근한 자신의 몸을 억지로 일으켜 하아, 하고 숨을 진정시킨다.  

벌써 몇 년째 반복되는 꿈. 

그 꿈 속에서 몇 번이고 총살당한 어머니. 

그의 얼굴 전체가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갈색 머리칼이 목 언저리에 달라붙었다. 침대 옆의 탁자에 놓인 물병을 들어 주저없이 입으로 가져간다. 그의 감겨진 눈에서 속눈썹이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 

 

 

여전히 진정되지 못한 그의 몸이 원상태로 돌아올 때까지 정국은 계속해서 물을 마셨다. 

 

 

 

 

 

*** 

 

 

 

 

 

"명령이 내려왔다." 

 

한 군인이 예? 하고 되묻기도 전에 사령관은 자신을 비롯한 동료들에게 모두 입을 열었다. 엘리오스를 공습하라는 명령이다, 사령관의 말에 모두들 재빨리 전투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 모습들이 모두 하나같이 용맹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 중 한 군인은, 남들처럼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엘리오스와 크로티아가 휴전협상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이게 무슨 명령인가 싶었다. 씁쓸한 입안이 어째선가 조금 불안했던 그는, 온갖 무기를 제 몸에 장착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어머니와 누나가 집에서 기도를 하고 있겠지, 살아서 돌아가야 할텐데. 목에 걸린 팬던트 속의 가족 사진을 만지작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적에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 그런 탓에 그는 부정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언제나 사진으로만 마주하는 근엄한 아버지 앞에서는 다 괜찮다는 듯 웃어보이기 일쑤였다. 

 

 

"모두 제자리에!" 

 

 

엘리오스와 크로티아가 휴전협정을 맺은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그가 속한 크로티아는 배신을 앞세우며 적지로 돌진했다. 와아아, 하고 군사들의 사기높은 외침소리가 크로티아를 가득 메웠다. 

 

 

 

 

 

 

 

 

 

 

 

 

 

"이봐, 진." 

 

 

'어?' 

 

 

그와 함께 잠복해있는 동료가 그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둘은 같은 군복을 입고 있었고, 벌써부터 시작된 전쟁에 속출하는 피해자 속에서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누구것인도 모를 피가 튄 군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번 전쟁에서 누가 이길 것 같아?" 

 

 

동료가 진에게 물었다.불 보듯 뻔한 답, 하지만 진은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긴가 싶더니, 이내 동료의 예상 밖의 대답을 내놓는다. 

 

 

 

 

 

 

 

 

 

 

 

"둘 다 지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동료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옆에서 꿋꿋이 정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진을 쳐다봤다. 입대할 때부터 꽤나 범상치 않은 녀석, 상관의 말이나 명령에도 절대 거역하지 않으면서 이상하게 말을 잘하는 놈이었다, 동료의 기억 속에는. 진은 동료의 물음이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양 쪽이 다 지쳐있는 상태인데 거기에서 전쟁을 더 부풀려봤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건 없었다. 그런데도 굳이 배신을 한 이유가 뭘까,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때였다. 

 

 

 

 

 

 

 

 

"으아악!" 

 

자신이 생각에 잠겨있을 동안,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턱이 없었으나 곧이어 들려온 고통스런 비명에 진은 설마, 하고 불안감이 역력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 셰드!" 

 

 

그의 동료가 탄 파편에 맞아 안면이 심하게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정도로 처참한 광경이었지만, 진은 고통스러운 그를 대신해서라도 차분해야 했다. 부상자가 생긴 마당에 호들갑을 떨어서는 전혀 도움될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는 동료를 옆으로, 안전한 곳으로 끌어당기며 이제야 조금 위험해진 것 같은 이 장소에 경계심을 놓치 않았다. 

 

 

"셰드, 말할 수 있겠어? 셰드!" 

 

 

"..으으,으으으..." 

 

 

진은 자신의 소매를 부욱, 하고 뜯어 우선 출혈이 심한 곳부터 지혈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외상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료를 옆에 두고 바라봐야하는 진은 정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번 전쟁에서 누가 이길 것 같아?' 

 

 

불과 몇십 분 전이었던 동료의 물음을 다시 한번 상기한 진은, 결국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그를 안전한 곳에 뉘여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셰드, 상황 좀 보고 올게." 

 

아무래도 생각했던 것만큼 빨리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된 그는, 숲을 나선 뒤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엘리오스를 보게 됐다. 적국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 나라가, 한 마을이, 그렇게 화염 속에서 그 형체를 잃어가는 것을 보며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애초에 왜 이런 전쟁을 해야하는 지로 의문이 올라갔다.  

아이를 품에 안고 살려달라고 비는 어미, 도망치다가 다리를 다쳐 울고 있는 소녀, 가족의 행방을 모두 잃고 홀로 남은 남자, 그리고... 

 

 

"...어?" 

 

 

순간이었다. 

그가 강 건너로 눈에 들어온 모자지간이 갈라진 것은. 

소년이 어머니, 하고 애처롭게 부르짖는 소리가 진에게 까지 닿아 그 절실함을 증명하고 있었다.소년의 어머니로 보이는 한 여자가 아군에게 총살당한 것을 보며 마음 속 한구석에서 반감정이 치솟았다. 그러나 그는 크로티아의 군인이었고, 소년과 어머니를 동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자가 불타는 풀밭에 쓰러진 뒤로 소년은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뗏목을 저었다. 그러다가 이내 그것은 중심을 잃고 강변에서 뒤집어졌다. 침몰한 것이다. 그 순간에 카일은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였다. 뗏목과 떨어져 강물에서 허덕이고 있는 소년을 향해 달려갔지만, 강에 다다랐을 때 소년은 이미 가라앉아버린 뒤였다. 진은 어느새 제 얼굴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주저없이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긴 팔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소년을 찾아 헤매었다. 이윽고 투명한 강물 아래로 소년이 눈을 감고 반쯤 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행이라고, 그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희망을 부여잡은 채로 소년을 육지로 데려와 눕혔다. 

 

 

"..제발, 제발.." 

 

 

진의 온 신경은 그 소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탄소리에 심장의 맥박수가 자꾸만 더 올라갔다. 긴장감을 고취시키는 그 끔찍한 소리 속에서, 그는 희미하게나마 소년의 기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ㅋ..콜, 콜록.." 

 

 

"얘, 정신이 드니? 얘야!" 

 

 

소년의 입에서 토해진 물은 상당량이었다. 그는 이런 흙바닥에 소년을 두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작은 오두막이라도 찾아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목에 닿는 소년의 숨결이 아슬아슬한 탓에 진의 마음은 자꾸만 조급해져갔다. 

 

 

 

 

 

*** 

 

 

 

 

 

 

"...으," 

 

다행히도 인적이 드문 오두막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을 때, 소년은 위태롭던 시기를 거두고 정상적인 숨소리로 고르게 호흡했다. 이따금씩 찌푸려지는 미간에, 진은 그의 이마 부근을 손가락으로 살짝씩 눌러주며 그것을 어루만졌다. 혹시 아까 강 너머 어머니의 꿈이라도 꾸는걸까. 진은 이마에 손을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걷잡을 수 없을만큼 커져버린 이 사태에, 어째서 여리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가 희생당해야 하는 건지 모를만큼, 이 전쟁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그는 갑자기 후덥지근해진 몸에 군복을 벗어내렸다. 마침 그것에 셰드의 피가 묻은 것이 섬뜩하기도 했을 뿐더러, 적군이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면 이 어린 녀석이 금방이라도 이곳을 뛰쳐나가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뭐 먹을 게 필요하려나." 

 

 

진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자신의 옆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소년을 보고는 곧바로 망설임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벗어둔 군복과 모자는 오두막 밖의 바위 밑에 무사히 숨겨둔 뒤, 열매가 달린 나무를 찾아 나섰다. 해가 어느새 고개를 떨구고 있어, 더 어둑어둑해지기 전에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그로부터 몇십 분 뒤, 소년이 여전히 고통스러운 신음을 하며 천천히 눈꺼풀을 열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시야가 따끔거렸다. 곧 자신이 누워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어떻게 오게 되었고 또 그 전에 무슨 일이 있는지를 생각해내려 애썼다. 

 

 

"...어머니."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였다. 

 

눈 앞에서 적군에게 총살당해 피로 물든 그 웃음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렇게 정국의 곁을 떠났다.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났지만, 불과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일이었다. 꿈이길,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길 바랐던 그의 작은 소망은 현실과는 타협하지 못한 채로, 타고 남은 재처럼 홀연히 부스러져있었다. 

 

 

'이 뗏목을 타고 강 건너로 가, 그리고...'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생한 어머니의 목소리. 

그는 복잡한 마음을 가다듬고 깊게, 그리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이 뗏목을 타고 강 건너로 가, 그리고 곧장 걸어가면 작은 오두막이 있을거야.' 

 

 

 

 

 

 

 

그의 마른 눈에서 다시금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정국의 얼굴은 점점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곳에 머물러 있다보면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거야' 

 

그리고, 소리없는 울음이 터졌다. 

 

 

 

 

 

'...엄마도 곧 갈게' 

 

지켜지지 못한 약속에,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누가, 도대체 누가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거지? 정국의 마지막 기억은 뗏목이 전복되어 자신이 강물에 빠진 것이였다. 그렇게 분노와 원망, 그리고 그리움과 고통이 응축된 눈물을 흘리며 기억을 되살리던 중에 낯설은 인영이 그의 다리 근처에 생겨났다. 

 

 

"누구세..." 

 

 

"깨어났구나." 

 

 

소년과 군인은 그렇게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보게 되었다. 

 

 

"혹시 저를 도와주신 건가요?"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자, 먹어." 

 

 

정국은 진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봤다. 자신도 모르게 일어난 경계심에 생각없이 한 행동이었지만 상대에게 실례가 된 것 같아 순간 아차, 싶었다. 그러나 그런 작은 정국을 보고 진은 작게 웃으며 그에게 열매를 내밀 뿐이었다.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그렇게 혼자가 된 정굳의 심정을 완벽히 이해할 순 없어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그는 그저 소년이 빨리 안정을 되찾기를 바랐다. 작게 흔들리는 어깨에, 진은 더이상 소년과의 거리를 좁힐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고, 고맙습니다.' 

 

 

정국은 군인에게서 열매를 받아들며 눈을 조금씩 그에게 맞추었다. 

혹시 어머니가 말한 오두막이 이 곳이고, 또 '누군가' 라는 게 이 사람인 걸까, 소년은 생각했다. 진은 그와 조금 거리를 둔 채로 바닥에 앉아 열매를 한 입 물었다. 작은 오두막 속에서는 정국과 진이 이따금씩 아삭, 하고 열매를 베어무는 소리가 교차해서 울렸다. 

 

 

 

 

 

*** 

 

 

 

 

 

"아저씨, 들려요?" 

 

 

정국은 넓게 펼쳐져있는 무대 위에서 홀로 서 있다. 성당 안이라서 울려퍼지는 목소리가 작게 메아리친다. 그의 작은 체구와 단상을 비교하기에는 아직 조금 멀은 듯 싶다. 좀 전에 정국은, 남들이 보기에 다소 요란하게 계단을 밟았다. 

 

 

"응, 올라갔구나." 

 

 

진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싱긋 웃는다. 느릿하게 시선을 옮기는 모습이 마치 졸려워하는 거북이 같아, 정국이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진은 아무렴 좋은지, 그의 웃음소리에 맞추어 실없이 미소를 올렸다. 그의 좌석 옆에는 꽤 된 듯한 나무 지팡이가 누워있고, 소년은 그런 진을 바라보면서도 그저 태연하게 목을 풀기 시작한다. 

 

 

"아아아-" 

 

 

남아치고는 높은 톤의 음색이 진의 귀 언저리를 맴돈다. 정말 곱구나, 하고 진은 생각했다. 언젠가 정국의 꿈을 듣고는 그것을 이루어주기 위해 노력했던 자신의 모습이, 어느덧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눈도 잃었지만, 진은 상관하지 않았다. 다만 정국의 얼굴을 다신 볼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안타까울 뿐,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라도 제대로 붙어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때는 정국이 14살이 될 무렵, 진은 스무 살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었고, 엘리오스와 크로티아가 종전을 선포한 지 어느 덧 5년이 지나가고 있었으며 거리마다 곳곳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물들던 이브였다. 

 

진은 성가대에서 제법 자리를 잡아 제 목소리를 마음껏 노래할 수 있게 된 정국이 자랑스러웠다. 마침 이브인 오늘, 내일이 공연날이기도 해서 그는 오랜만에 맛있는 저녁이라도 사서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아노 소리가 넘실거리는 겨울의 저녁 가운데, 진이 정국을 마중나와 있다. 눈이 쌓인 길이라 누구보다도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그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누군가 덮쳐왔다. 

 

 

"아저씨!" 

 

 

코와 귀가 빨개진 정국, 자신보다 옷을 얇게 입고 나온 진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며 핀잔을 늘어놓는다. 목도리는 어디다가 버리고 왔냐느니부터 시작해서 신발은 왜 미끄러운 걸 신었느냐, 털장갑은 왜 벗었냐, 왜 자신을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느냐. 진은 걱정어린 소년의 어투에 그저 미소만 지을 뿐, 그런 그를 보고 셰인은 뾰루퉁해있었다. 어린 애가 하는 말이라고 자꾸 무시할래요, 정국은 진을 내버려두고 혼자 저 만치 빠르게 걸어나간다. 

그제서야 알았어, 미안해, 하고 순순히 항복하는 카일에게 셰인이 팔짱을 껴 왔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음, 아저씨는요?" 

 

 

"나야 뭐..." 

 

 

진은 말끝을 흐렸다.  

늘 이런 식이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더라도 정국의 식성 정도는 알고 있다. 몇 년을 함께 지내왔는데. 자신에게 미안해서인지, 아니면 눈치가 보이는건지, 늘상 정국은 진에게 자신의 마음을 숨겨왔다. 2년은 족히 된 거 같았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곧잘 말도 하고 조르기도 하더니만. 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럼...오늘은 내가 요리할까요?" 

 

 

정국의 뜻 밖의 말에 진이 어? 하고 되묻는다. 

이브 잖아요, 생각해보면 얼토당토않는 이유를 핑계삼아 정국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려 애쓴다. 이럴 때, 그러니까 자신이 이렇게 부끄러워할 때마다, 어쩌면 조금 미운 말일 수도 있겠지만 진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얼어붙은 콧물을 훌쩍거리며 셰인이 작게 몸을 떨었다. 반면에 진은 소년의 목도리에도 충분히 따듯해보였다. 

 

 

"좋지." 

 

 

빨리 가요, 정국이 진의 팔을 잡아 끌며 우물거린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는 뭐가 그리 즐거운 지 콧노래를 불러대는 정국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토록 즐거워하는 모습은 꽤 오랜만인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뭐야, 민간인 아냐?' 

 

 

크로티아를 상징하는 붉은 군복을 걸친 두 명의 사내가 눈을 찌푸렸다. 사람인지 아닌지, 그리고 적군이지 아군인지 모를 인간이 그들의 눈 앞에 놓여있었다. 미간을 찌푸려 억지로 초점을 맞추니, 나무들 사이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누구지?' 

 

 

두 사내는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도 연신 의문을 가졌다. 설마 엘리오스 사람인가? 둘 중 한 명이 말문을 열었다. 하기야 여기가 걔네 땅이니까. 나머지 한 명이 대답했다. 

 

 

'그럼 쏴 죽여야 되는 거 아냐? 으하하.' 

 

 

한 사내가 실탄이 든 전투용 총을 장난스레 흔들거리며 옆의 사내에게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해 봐. 전쟁의 긴장감 속에서 어울리지 않게 둘은 킥킥거리며 티격태격거렸다.  

 

 

'쏴 버릴까?' 

 

 

한 사내가 가볍게 툭 던지는 말투로 말하며 그림자의 실체를 조준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 둘은 계속해서 실랑이를 멈추지 않았다. 총을 들고서 뛰어다니기도 하고, 서로를 겨냥하는 척을 하며 입을 꾹 다물고 웃음을 참으려 애썼다. 그러던 중 둘 중에 한 명이 실수로, 

 

 

 

 

 

 

 

 

 

 

 

'야, 야! 야 이 미친놈아!' 

 

 

 

 

 

 

 

 

 

 

 

 

실수로. 

 

 

 

 

 

 

 

 

 

 

 

 

 

 

그게 화근이었다. 

 

탕. 

 

숲을 가득 메운 한 발의 총성이, 어떤 이의 비명 속에 붉게 젖어들었다. 

 

 

 

 

 

 

 

 

 

 

 

 

'으아,아악!!!!!!' 

 

그림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진이였고, 소년과 함께 지내기 시작한 지 일주일 째였다. 두 사내는 남자의 비명에 놀라 그 자리에서 총을 떨궈놓고 재빠르게 도망쳤다. 진은 자신의 눈을 스쳐간 총알이 발 밑에 떨어진 것을 내려다보며 고통에 신음했다. 그의 눈에서 피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옷을 적셨다. 

 

 

 

 

 

 

 

 

 

 

 

 

 

 

 

 

 

"...아저씨," 

 

 

부엌에서 불을 지피며 채소들을 잔뜩 늘어놓은 정국이, 식탁에 앉아 가만히 벽을 응시하고 있는 진을 쳐다본다. 벌써 몇 번은 넘게 불렀는데 도무지 대답을 하지 않는 그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는지, 정국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정국?" 

 

 

진은 무언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인기척에 정국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아저씨, 무슨 생각해요, 하고서 정국이 팔짱을 끼며 입술을 내민다. 진은 그제서야 그의 말에 집중을 할 수가 있었고, 갑자기 떠오른 옛날의 기억에 눈 한 켠이 욱씬거렸다.  

 

마치 그 날의 맥박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아니기는?" 

 

 

"...아무것도." 

 

 

진은 무릎 위에 가만히 올려두었던 양 손을 식탁 위로 올려 가볍게 깍지를 낀다. 조금은 미세하게 떨고 있는 듯한 그의 손을, 정국이 보았다. 하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아저씨가 또 그 때의 꿈을 꿨구나, 하고서 말없이 그를 뒤에서 안아줄 뿐. 

 

 

"이리와 봐." 

 

 

진은 자신에 목에 둘러진 정국의 팔을 잠시 떼어 자신의 옆으로 끌어놓는다.  

사실 그가 정국을 본 것은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피를 뚝뚝 흘리며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마주보았을 때,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 어린 소년.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안기던 소년, 바로 그 때가 마지막. 

그런 탓에 진은 지금껏 정국이 성장한 모습을 알 턱이 없었다. 이따금씩 정국이 그의 손을 자신의 얼굴에 올려놓으며 만져봐요, 하고 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벌써 2년이 지나버렸다. 그러고보니 정국이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한 순간과 겹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진은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손을 들어 정국의 목 부근을 먼저 쓰다듬었다. 그리고 천천히 턱을 지나 볼을 스치며 코와 눈, 그리고 얼굴의 이곳저곳을 더듬어본다. 아아, 이렇게 생겼구나. 꽤나 부드러워진 인상에 진은 손의 감촉을 가슴에 꼭 쥔 채로 안심의 미소를 짓는다. 정국은 그런 그의 행동이 조금 어색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제 얼굴에 올려진 그의 미지근한 손 위에 제 것을 겹쳐놓았다. 

 

 

"...아저씨," 

 

 

"어?" 

 

 

"아저씨는 평생..." 

 

 

정국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힘겹게 열었다. 

 

 

 

 

 

 

 

"평생 나랑 있어줄 거에요?" 

 

 

그 둘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부엌으로부터 맛있는 스프냄새가 퍼진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스프에 들썩이는 냄비 뚜껑이 마치 지금 정국의 상태 같아서... 

 

 

"...떠나지 않고, 계속?" 

 

 

진이 자신의 손 위를 덮은 정국의 손에서 미미하게 맥박이 전해져온다. 그리고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진이 입을 열었다. 

 

 

 

 

 

 

 

 

 

"그래." 

 

 

창 밖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걸맞는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었다. 

 

 

 

 

*** 

 

 

 

 

 

정국이 진과 은연 중에 평생의 약속을 한 날, 그날 밤. 

사건은 터지고야 말았다. 

어두운 방안에서 이따금씩 불규칙적으로 깜빡거리다 이내 꺼지고 마는 등불 아래에서, 정국은 5년만에 말랐던 눈물샘이 터지게 되었다. 바람에 열린 창문은 그의 체온을 손쉽게 앗아가고, 잔인한 칼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헤집어진다. 엎드린 그의 등이 다소 애처롭게 들썩거리며 단지 한 사람만을 부르짖고 있었다. 

비명과 울음이 뒤섞인 눈보라처럼 말이다. 

 

 

 

 

 

 

 

 

 

'아저씨, 아저씨.' 

 

정국은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자신이 만든 요리를 주욱 훑어봤다. 이 정도면 진수성찬인데, 어릴 적 어머니에게 어깨너머로 배웠던 음식들이 한가득이었다. 어머니..그녀의 웃는 모습이 정국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그래도 지금 그의 곁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영원히 곁에 있어줄거라고 진지하게 약속해준 그의 보호자이자 믿음 그 자체. 그는 제 음식 맛에 미소지을 진의 얼굴을 떠올리며 살짝 귀를 붉혔다. 아저씨가 웃으면 나도 좋아, 그는 마지막 요리까지 모두 식탁에 얹고서 진을 불렀다. 

 

 

'...어디갔지?' 

 

 

정국은 아까까지만 해도 식탁에 앉아있던 진이 없어진 것에 의아했다. 분명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한 게 몇 분전 같은데, 그새 사라진 그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정국은 뜨거운 장갑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집 안의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진은 없었다. 그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말없이 어디를 가버릴 사람이 아닌데, 정국은 초조해지는 마음에 입술을 뜯기 시작했다. 이유가 뭐던 간에, 자신의 눈 앞에 진이 보이지 않으면 그는 불안했다.  

이런 증세는 물론 어머니의 죽음이 한 몫을 했고 말이다.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들어가게 된 카일의 방.  

 

 

[내 방은 들어오지 않도록 해] 

 

 

이상하게도 자신만의 공간에는 완강한 태도를 보이는 그였다.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고, 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아니다, 정국은 생각했다. 그리고 제 방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그의 방을 천천히 둘러보다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방은, 그 만큼이나 따스하고 포근했다. 덕분에 진이 없는 동안 소년은 조금씩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 때였다. 

 

 

 

 

 

'....이게,' 

 

 

서랍을 뒤지다가 발견한 무언가. 익숙한 색감과 무늬의 모자였다. 정국은 그 서랍에 놓인 물건을 가만히 응시했다. 무언가 생각이 날 듯, 말 듯. 그는 기억의 파편을 붙잡은 채 몇 분 동안 그 물건에 대해 떠올리려 애를 썼다. 아니, 사실은 처음에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기도 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건... 

 

 

 

 

 

 

 

 

'크로..티아?' 

 

그는 서랍에서 군모를 꺼내어 이리저리 관찰했다. 그리고 일순간 스치는 생각에, 정국은 진의 옷장을 벌컥, 하고 열었다. 그것이 그가 받게 되는 상처의 시발점이었다. 그는 천천히 옷 하나하나를 헤집어보며 군모와 비슷하게 생긴 옷을 찾으려고 했다. 그는 크로티아의 군복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진의 옷장에서 정국이 찾던 물건이 나오게 되었다. 정국은 입을 틀어막으며 아래에서 치솟아 오르는 토기를 꾹꾹 참아내려 애 썼다. 하지만 어느새 눈에 고여버린 눈물은, 이내 점차 무거워져 그의 손에 들린 군복의 끝자락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게, 이게...아,아저씨...?' 

 

 

그는 아닐거라고, 아닐거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뗏목을 타고 내려가는 자신의 너머에서 크로티아 군인이 총을 쏘아 제 어머니를 죽였다. 깊은 잠의 나락으로 빠트렸다. 정국은 제 손에 들린 군복과 군모가 그 때의 크로티아 군인의 복장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고, 눈물은 열린 수도꼭지마냥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닐 줄 알았다, 설마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물건에 박힌 진의 이니셜이 정국의 마음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진 뒤였다. 

 

 

'아..아아, 아저,아저씨..' 

 

 

그는 그 물건을 품에 안으며 소리쳤다.  

울부짖었다. 

정국의 머리를 스쳐간 어머니의 마지막 웃음이 그를 옥죄였다. 

그는 진과 몇 년간 같이 있어온 나날들이 모두 제 어머니에게 죄를 지은 것만 같은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도 죄송하고 죄송해서, 그는 더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어머니를 죽인 사람과 동족인 사람을 좋아하게 돼버려서 미안해요, 미안해요.. 

어느새 진의 방바닥에는 그의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깨달은 자신의 마음이, 이 군복과 군모 하나에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절절히 탄식해야 했다. 

 

 

'정국아, 나 왔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이 눈발 속을 헤치고 어렵사리 문을 열으며 귀가했다. 그의 머리칼과 옷자락에 묻은 눈이, 집안의 열기에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는 으슬거리는 몸을 이끌고 식탁으로 가, 자신이 사온 것을 올려놓고는 목도리를 풀기 시작했다. 식탁을 가득 메운 요리 냄새에 그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정국이 너무나도 보고싶어했던 바로 그 미소였다. 그는 인기척이 없는 부엌을 거쳐 정국의 이름을 부르며 이리저리 정국을 찾아 걸었다. 

 

그리고 곧, 정국의 눈물섞인 목소리와 마주하게 되었다. 

 

 

 

 

 

 

 

'...아저씨, 이거 뭐야.' 

 

 

진은 정국의 물음을 알아들을 턱이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뿐더러 무엇을 뜻하는 지도 몰랐기에. 그는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뭔데, 하고 되물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소년의 긴 침묵뿐이였다. 긴 정적을 깨고, 소년이 군인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마른 입안이 따끔거렸다. 

 

 

'...크로티아.' 

 

 

진은 순간 흠칫했다. 

정국의 입에서 적국, 아니 자신의 나라 이름이 나온 것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진은 지팡이로 짚은 방바닥이 휘청거림을 느꼈다. 그는 나머지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정국을 향해 입을 뗐다. 

 

 

'...부정하지는 않으마.'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곳도, 또 뒤로 도망칠 곳조차 없는 이 상황에서, 진은 '진실' 을 선택했다. 흐느끼는 정국의 목소리가 점점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자신의 어깨를 치고 달려 나가버린 그를 차마 따라 나설 수가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국을 보았던 날을 떠올렸다.  

피로 범벅된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어린 주제에 괜찮다는 말이나 하면서 꿋꿋이 상처를 치료해주던, 경계어린 눈빛이 차차 누그러지기 시작했던 그 날의 녀석을.  

진이 밟은 자리 자리마다 정국의 눈물이 적셔들었다. 그의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게 죄여들었다.  

 

식탁 위에서는 이미 식어버린 요리들 가운데 놓여있는 케이크만이 홀연히 놓여있었다. 

 

 

 

 

 

 

 

 

 

 

[Merry Christmas] 

 

케이크에 박혀있는 초콜릿이 주인없는 식탁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아무도 들은 사람은 없었다. 

 

 

 

 

 

-- 

오타 수정했어요 

너무 많아서 창피하네요ㅠㅠ 

몰입에 방해되셨다면 정말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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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8년 전
독자2
굿...
8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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