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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다. 엄마는 세훈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세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따스함 때문에 더욱 더 눈을 뜨기 싫었다.

사배자라고 밝혀진 이후로도 세훈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 없었다. 눈뜨면 학교에 갔고, 하루 종일 책과 씨름했고, 때가 되면 시험을 보고 성적에 따라 상하 관계가 뒤바뀌는 등의 광경을 목격하는... 그런 삶의 연속이었다. 조용한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세훈에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기다려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로지 책과 자기 자신만이 남겨진 것 같은 기분. 그래서 그 시간이 좋았다.

갑자기 교실 앞문이 열리며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손에는 먹을 것이 잔뜩 들려져 있었다. 아이들은 환호하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세훈도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봤다.

세훈이 어머님께서 너희들을 위해 특별 간식을 준비해주셨다. 남기지 말고 맛있게 먹어라. . 세훈이한테 감사 인사 꼭 하고. 그리고 반장아, 뒷정리 깔끔하게 해야지 10분이라도 더 잘 수 있다.”

. 세훈이네 엄마 짱이다. 이 김밥 직접 만드셨겠지? 이게 다 몇 인분이야.”

세훈아 고마워 잘 먹을게. 매번 사먹는 김밥 지겨웠는데 직접 만든 김밥이라니. 감동이다.”

우리 엄만 맨날 요가에 꽃꽂이에 공사가 다망하셔서 가정부 아줌마가 다 해주니까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음식 먹어볼 일 없었는데, 좋은 경험하게 해줘서 고마워 세훈아.”

아이들은 저마다 감사를 표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세훈을 비꼬기 위한 말들이었고, 이런 말들이 세훈을 더욱 못 견디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저마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김밥을 먹고 있었지만 세훈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 오세훈 이거 안 먹을 거면 나 먹는다.”

반장이 책상 위에 놓인 세훈의 김밥을 집어 들었다.

세훈이는 이런 거 매일 먹으니까 지겹나보다. 나도 스테이크 말고 김밥, 떡볶이 이런 서민 음식 좀 제대로 먹어보고 싶다.”

, 반장. 말이 좀 심하잖아. 김밥이랑 떡볶이가 무슨 서민 음식이냐? 그냥 싼 아니 저렴한 음식이지.”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세훈은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모든 사고의 회로의 스위치가 꺼져버린 것처럼 머릿속이 암전 상태였다. 무시해야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여기서 참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한 엄마의 정성을 처참히 짓밟을 수 없다고 외쳐댔다.

엄마는 분식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세훈은 얼른 뛰어 들어가 어머니를 돕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세훈의 도움을 만류했지만 세훈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엄마. 오늘 김밥 고마워요. 반 애들이 맛있었대. 우리 엄마 음식 솜씨 하나는 진짜 대한민국 최고라니까.”

우리 아들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엄마, 기분 엄청 좋은데?”

근데 엄마. 갑자기 왜 간식을 만들어 보낸 거에요?”

... 그냥 우리 아들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고생하니까 맛있게 먹으라고.”

진짜?”

그럼! 김밥 나눠 먹으면서 친구들이랑 우정도 더 돈독해지고.”

? 아 친구들이 엄청 맛있다고 다음에 또 먹고 싶다고 했어. 나 오늘 엄마 덕분에 완전 인기 스타였어요.”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들이 학교에서, 교실에서 어떤 존재인지. 분식집에 자주 오던 여자 아이들의 수다 속에서 세훈의 이름을 들었을 때만 해도 동명이인일 거라고 치부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오세훈. 1학년. 이 모든 이야기를 직접 듣고 나서야 그녀는 비로소 아들의 입지가 많이 좁아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들의 친구들에게 아부 아닌 아부를 준비했다. 그것이 오늘의 이벤트였다. 그녀가 이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키며 가슴을 쳐내야했는지 그 아이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세훈을 그렇게 만든 것이 그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녀는 끝없는 나락으로 잠기어 가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그녀를 원망하고 미워했더라면 나아졌을까. 하지만 세훈은 원망의 말이나 불평의 말 따위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금이나마 아들을 위해 소소한 헤프닝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병실 안은 세훈의 숨소리만 가득했다. 잠깐 눈을 떠 병실을 둘러보던 세훈이 이내 지쳐버린 듯 눈을 감았다.

어때? 여전히 obs(관찰,지켜보다) ?”

아침에 교수님이 광범위 항생제 치료 order 내리셨어.”

상태가 영 별론가 보네.”

그러게. 근데 계속 BT가 정상범위까지 오질 않아서 걱정이다. 야 근데, 김준면! 너 진짜 이 환자랑 무슨 사이인지 말 안 해줄 거야?”

의사와 환자 사이지 무슨 사이냐?”

아니다. 됐고, 우선은 이 환자 보호자부터 좀 모셔 와라. 이렇게 빈다.”

이신이 준면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섰다. 둘 사이의 대화가 세훈의 귀에도 어렴풋하게 들려온다. 김준면이라는 세 글자가 세훈의 귀를 간지럽혔다. 눈을 떠 준면 선배를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엄마가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은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세훈의 책상 위에는 다량의 약 봉투가 놓여있었지만, 세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약 봉투들을 휴지통에 버렸다. 아이들이 저마다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둑에서 물이 새어나오듯 갑자기 툭하고 수군거림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야 오세훈. 너랑 네 엄마 덕분에 나 어제 변비 완전히 치료됐다.”

나도. 어제 밤새 화장실 다니느라 한숨도 못 잤는데, 수업 시간에 졸면 어쩌냐.”

. 반장은 응급실 실려갔댄다. 어제 오세훈 저 새끼 거까지 뺏어먹더니. 우리 반장 불쌍해서 어떻게 해.”

오세훈 입이 있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봐. 이렇게 반 애들 단체로 식중독 만들어 놓으니까 좋냐? ? 학원 다니기 힘드니까 단체로 애들 아프게 만들어서 애들 공부 못하게 하고 그 와중에 너 혼자 공부 좀 해보겠다 이거야?”

진짜 이래서 가난한 집 애들이랑은 상종하지 말라는 거야. 근본이 잘못됐잖아. 근본이.”

세훈은 지금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제대로 설명을 해달라고 요구하려던 찰나에 정보통 녀석이 나를 불렀다. 담임선생님의 호출이었다. 어떠한 질문도 하지 못한 채 복도를 성큼성큼 걷고 있는 자신을 보자니 꼭 물에 빠진 생쥐처럼 느껴져 화가 났다. 교무실 안은 한산했다. 아마 다들 조회를 하러 각자의 교실로 내려간 모양이었다.

애들한테 대충 이야기 들었지? 어제 어머님이 가져다주신 김밥에 문제가 좀 있었나보더라. 식중독을 호소하는 애들이 꽤 많아. 반장은 응급실까지 실려 갔다고까지 하네...”

저희 어머니가 상한 음식을 아이들을 위해 가져왔을 리 없잖아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그것들을 만들었을지... 일부러 그랬을 리 없어요. 아니 일부러 그러지 않았어요.”

그래. 선생님도 네 말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상황이 별로 안 좋아. 식중독을 호소하는 학생들의 부모님이 단체로 학교에 항의를 하셨고, 학부모회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그럼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게요. 저 이 학교 꼭 졸업하고 싶어요. 그러니 선생님, 도와주세요. 지금 절 도와줄 사람은 선생님뿐이라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래... 네 마음이 어떤지 충분히 이해했다. 그런데 세훈아. 일단은 아이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게 먼저인 것 같다. 그러려면 너와 어머님의 실수를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니 그래야만 하겠지. 그렇게만 하면 졸업은 어떻게든 할 수 있도록 선생님도 최선의 노력을 할게. 여기서 일단 조용히 사과문을 작성하고...”

세훈은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모든 일들이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터지는 이 모든 일을 겪고 있자니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거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 참을 수 있었다. 나를 모욕하고 벌레 취급하고 하찮게 대하는 이 모든 것들은 다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실수를 인정하라느니. 사과를 하라느니. 어폐 투성이인 이 따위 말들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일부러 그런 일이 아니라는 것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텐데. 아니. 애초에 반 아이들이 자신을 더러운 쓰레기처럼 매도하지 않았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일인데. 세훈은 교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학교를 박차고 나와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갔다. 크리스마스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가게에는 손님이 많이 없었다. 어머니는 놀란 얼굴로 세훈을 다그쳐 물었지만 세훈은 그저 학교 사정상 일찍 끝났다는 말만 남긴 채 앞치마를 두르고 어머니를 돕기 시작했다. 마감 시간이 가까워오자 슬슬 가게를 정리하려던 차에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세훈은 한 눈에 준면을 알아봤지만, 준면의 눈이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여 묵묵히 주문을 받고 돌아섰다. 그러나 주문한 음식이 나와도 먹지 않은 채 계속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에 결국 궁금증을 억누르지 못하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러나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준면은 자리를 박차고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게 준면과 세훈의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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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8년 전
유즈드
하트 감사합니다! 열쓰할게요. 끝까지 함께해주세훈 *^^*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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