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걷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즐거워 보였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이 다정해 보인다. 나한테도 저렇게 웃어줬는데 나한테만 웃어주길 바라는 건 순전히 내 욕심이다. 선배는 원래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니까 선배와 나 사이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착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현실을 둘러보니 선배는 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도 웃어주고 있었다.
충분히 예뻐
04
w.갓제로빵민
조금의 쉴 틈도 주지 않고 쏟아지는 과제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특히 조별 과제 때문에 일주일 내내 내가 무슨 정신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건 영민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내내 영민 선배와 밥 한 끼 같이 먹을 시간도 없이 조원들과 과제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래도 나는 조원들이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해주는 덕분에 좀 수월한 편이었다. 한숨을 고르고 주위를 둘러보니 선배 곁에 나랑 동기인 여자애가 있었다. 우리 과에서 제일 예쁘다고 선배 후배 할 거 없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윤미소였다. 이름만큼이나 웃는 게 예쁜 애였다. 선배와 미소는 이번 조별 과제에서 같은 조였다.
나는 알고 있다. 미소가 어떤 마음으로 선배를 바라보고 있는지 그 마음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그래서 불안했다.
"여주야 너 영민 선배랑 무슨 사이야?"
"어?"
"혹시 둘이 좋아해? 아니면 사귀는 사이야?"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미소가 나에게 와서 대뜸 한 말이었다. 공격적인 말투는 아니었지만 그 말속에 가시가 박혀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영민 선배와 내 사이가 무슨 사이일까 솔직히 나도 요즘엔 잘 모르겠다. 유달리 친한 선배와 후배 사이라고 하기엔 애매했다. 내가 선배를 좋아하니까 일단 서로 좋아해서 사귀는 사이는 아니니까 말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다행이다"
"응??"
"혹시나 너랑 영민 선배랑 그런 사이이면 난 어쩌나 싶었거든 나 사실 영민 선배 좋아해... 아 이건 너한테만 말하는 거니까 비밀 지켜주라 알겠지?"
나도 선배를 좋아하는데... 내 두 손을 꼭 붙잡고 안도하며 웃는 미소를 보고 내 감정은 속으로 삼켜야 했다. 너한테만 말하는 거니까 비밀을 지켜달라 이건 일종의 경고 같았다. 내가 좋아하니까 너는 더 이상 다가오지 말아라 너도 나에게서 똑같은 감정을 느꼈겠지
내가 조금이라도 선배와 눈이 마주치고 말이라도 걸려고 하면 어김없이 미소가 나타나서 선배 과제 때문에 할 말이 있는데요, 선배 깜박하고 놓친 부분이 있는데요 하면서 선배의 관심을 제게 돌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멀찍이서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이럴 때마다 소심한 내 성격이 답답했다. 미소가 얄미우면서도 부러웠다. 나는 혹시라도 내 마음이 선배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선배와 어색하고 멀어지면 어쩌지 미리 겁부터 먹고 내 마음을 숨기기 급급한데 미소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상처받는 바보 같은 내 모습이 싫었다.
"여주야 혹시 지금 많이 바빠?"
다른 강의실에서 나오던 선배와 마주쳤다.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고 했는데 선배는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고 부탁이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사랑이가 지금 좀 아픈데..."
"사랑이 가요?? 어디가요?? 많이 아파요??"
"모르겠어 뭘 먹은 건지 병원에서 장염이라 하더라... 어제 잘 놀고 잘 자긴 했는데 그래도 좀 걱정이 돼서"
그러니까 선배의 부탁은 내가 대신 가서 사랑이 좀 한 번만 들여다 봐주면 안 될까였다. 내일이 당장 발표인데 아직도 과제를 마무리 짓지 못해 선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같아 보였다.
"진짜 미안해 여주야 이런 부탁해서..."
과제에 치여서 지친 선배의 표정 때문에 차마 거절을 할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 미소가 나타나 우리 지금 엄청 바쁜데 선배 한참 찾아다녔잖아요 하면서 선배를 끌고 갔다. 그것도 보란 듯이 선배의 팔짱을 껴 보인다. 점점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선배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한테 이런 부탁을 할 정도로 선배는 내가 편하단 뜻이겠지?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속이 쓰렸다.
그래서 난 지금 선배의 자취방 앞이다. 선배가 톡으로 남긴 비밀번호를 곱씹으며 도어락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죄짓는 것도 아닌데 괜히 주인 없는 남의 집 비번을 누르고 있으니까 기분이 좀 이상했다.
"사랑아~"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하얀 솜뭉치가 이미 현관문 앞까지 나와 격하게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아파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못 본새에 좀 큰 거 같기도 하고 처음 봤을 땐 손바닥만 했는데 지금은 손바닥 두 개를 겹친 것보다 더 큰 거 같다.
"사랑아~ 많이 아팠어? 오구 그래 오랜만에 만나서 기분이 좋아~"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내미니 어쩔 줄 몰라 방방 뛴다. 머리를 쓰다듬자 이내 발랑 누워 배를 까 보인다. 귀여워 절로 웃음이 났다. 그 상태로 사진을 찍어 선배에게 톡을 남겼다.
[선배 사랑이 괜찮아 보여요ㅎ]
한참이 지나도 1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보니 많이 바쁜가 보다. 나도 사랑이가 괜찮은 걸 확인했으니 집에 가봐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랑이가 내 신발 끈을 물고 늘어졌다. 아 조금만 놀아주다 갈까?
조금만 놀아주다 가야지 해놓고 두 시간 동안 선배의 집에 있었다. 혹시라도 이러고 있으면 선배가 오지 않을까 그럼 얼굴이라도 보고 갈수 있지 않을까 미련스러움이 결국 나를 주저 앉혔다. 지금쯤 두 사람은 뭘 하고 있을까 나란히 앉아 머리를 맞대고 PPT를 만들고 있으려나? 답장이라도 좀 주지 섭섭했다. 그리고 질투하는 내가 유치했다.
"사랑이는 좋겠다 영민 선배랑 맨날 같이 있어서"
"내가 너였으면 좋겠다"
내 허벅지 위에 엎드려있는 사랑이가 졸린지 눈을 꿈벅 거린다. 사랑아 네가 생각해도 나 참 유치하지? 그런 사랑이의 콧잔등을 살살 쓸어주니 금세 잠이 들어버린다.
"미안 사랑아 언니 이제 진짜 가야 해"
잠든 줄 알고 돌아섰는데 언제 깬 건지 사랑이가 현관문 앞까지 따라왔다. 신발을 신으려고 하니 또 내 신발 끈을 물고 늘어진다. 그런 사랑이를 어르고 달래서 밀어내자 낑낑거리며 현관문 앞을 왔다 갔다 거린다. 날은 이미 저물었는데 선배는 아직도 안 들어왔다. 카톡의 1도 사라지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신경안정제 두 알을 빈속에 집어삼켰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피곤했다. 약기운이 돌면서 이내 잠이 쏟아졌다. 핸드폰의 화면이 어둠 속에서 반짝 거렸다.
[찐짜 고마워 여주야]
선배의 답장이었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그대로 핸드폰의 홀드 버튼을 눌러 꺼버렸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조별 과제가 끝났지만 여전히 미소는 선배 옆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물러나 버렸다. 선배와 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건 미소였는데 괜히 내가 두 사람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선배의 시선이 나에게 닿을 때마다 난 선배의 시선을 피해버리고 선배가 다가오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하늘이 흐리고 먹구름이 잔뜩 낀 것이 꼭 내 마음과도 같았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제일 싫어한다. 기분이 평소보다 더 다운되는 것도 문제였고 꼭 항상 내가 우산을 챙기지 않으면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가 왔다. 나처럼 우산을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 비를 맞고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 분명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서 우산 챙기는 걸 깜박했다. 아 그냥 나도 비 맞고 갈까?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뛸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다.
"여주야!"
그런 내 행동을 멈추게 한건 영민 선배의 목소리였다. 뒤를 돌아보니 선배만 있는 게 아니라 미소도 함께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미소의 표정이 확 굳어지는 게 보였다.
"오늘 오후에 비 엄청 많이 온다고 했는데 우산 못 챙겼어?"
"아... 네 아침에 나오면서 깜박했어요"
선배가 나에게 다가오려고 하자 미소가 그런 선배의 옷깃을 꾹 잡았다. 선배는 그런 미소를 한번 돌아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그런 미소의 손을 거둬냈다.
"미안 미소야- 오늘 발표 수고했고 밥은 다음에 먹자, 택시 불러줄 테니까 너는 그거 타고 가라"
"선배!"
선배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핸드폰으로 택시를 불렀다. 2분 뒤 도착이래 조심히 가 선배는 울상을 짖는 미소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내 앞에 섯다. 그리고 선배는 손에 들고 있던 장우산을 펼치더니 내 어깨를 감싸고 가자 하며 웃는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한 미소가 보였다. 선배도 분명 그런 미소를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선배는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망설일 이유 따위 없었다. 나도 선배를 좋아하니까, 그 마음은 변함이 없으니까 나에게 우산을 기울어 주느라 잔뜩 젖어버린 선배의 왼쪽 어깨가 보인다.
착각하기 싫은데... 어쩌면 선배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자꾸만 기대하게 된다.
남기는 말 |
끙... 글이 너무 안써져서 몇번이나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했는지 모르겠네요 현생 다 때려치우고 싶어요ㅠㅠㅠㅠㅠ 영민이 떡밥도 없고 하루하루가 힘들네요ㅠㅠㅠㅠ 영민아 보고싶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라버지 제발 영민이좀 같이 봅시다ㅠㅠㅠ 중간에 멍멍이 사진은 저희집 멍멍이입니다 ★특별출현★ 항상 재미있다고 해주시고 응원의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ㅠㅠ 이제 제 두뇌에 한계를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힘내보겠습니다!! |
♥암호닉♥ |
[무기력] [희동이] [인연] [나영미닝] [우진아♡] [임녕민] [샘봄] [바나나] [메리크리스마스] [솜사탕] [다녜리] [짱요] [흥흥] [체토] [응] [꼬꼬] [쟈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