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0214, 더 파라디(The paradis) # 09.
w.규닝
09.
형은 애초부터 내게 기댈 생각 따위는 없었다.
나도 물론 알았다. 그래서인지 장례식장에 제일 먼저 도착했을 때 내가 한 건 형의 손에 담배를 쥐어주는 것이었다. 형은 내가 내민 담배를 보고서 고맙다는 말 대신 그런 말을 했다. 너는 역시 나를 잘 알아. 형은 상주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만을 남겨둔 채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두었다.
당연히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내 앞이 아니더라도 그랬다. 애초에 숨어서 울 만큼 피하려 드는 성격도 아닌데다가 그냥, 예상했던 것처럼 형의 표정은 너무나 멀쩡해서 그걸 보는 내내 헛웃음조차 나오질 않았으니까.
형은 그 사람의 영정 사진 앞에 서기가 무섭게 빈소 안을 벗어났다. 조용한 발길들이 오가는 내내 형은 상주 자리를 버젓이 비워놓았으며 어쩌다 한 번 돌아오던 때엔 그저 무표정으로 안쪽에 딸린 방 안에 들어가버리곤 했었다. 내가 미처, 하얗게 마른 그 손을 잡아챌 새도 없이.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 장례식장에 도착하기 전, 편의점에서 사온 담배를 건네자 형이 했던 대답이었다. 유난떨지마. 형은 가볍게 웃으며 여덟곽 모두를 가져가고 나선 내게 유난이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형이 빈소 밖을 나갔다 온 자리에 도망치듯 피신해 있으면, 맨바닥 위에 수북히도 쌓여있던 담배꽁초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ㅡ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줄담배를 피워댔을 형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것과 같이 맨 바닥을 발로 차는 것밖엔 없었다. 그 때서야 물론 알았다. 형의 담배는, 내게 유난떨지 말라는 타박을 듣게 만들었던 형의 담배가, 어느새 모두 동이 나 버린 것을.
"그게 마지막."
마지막 날 되던 날엔, 내가 사다 준 담배로도 모자라 자신의 담배를 물고 있던 형을 발견했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상주 자리를 비워놓은 채 건물 뒷편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던 형이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그 모습이 속상하다고, 백번 천번 말해도 너는 좆도 모를테지 김성규. 형은 갑자기 나타난 나를 불청객 보듯 쳐다보다가 나에게서 뺏긴 담배 한개비가 바닥에 즈려밟혀 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김명수, 천재다. 형이 상황에 맞지 않게 배시시한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그게 마지막이었는데."
"……."
"역시 넌 날 잘 알아"
거의 형의 말버릇이었다. 역시 넌 날 잘 알아. 그 목소리에 나는 그저 허탈한 웃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잘 알아? 뭘 잘 알아. 내가 너를 잘 아는지 너는 어떻게 알아? 나도 잘 모르는 일을 니가 도대체 어떻게 알아.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순 없는 독백이 목 안에서 맴돌았다. 형은 언제나 내가 본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그렇게, 웃음만 나와서 정말이지 웃겨 죽겠다고 생각했다.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난 너를 눈꼽만큼도 몰라. 김성규.
이렇게 하고싶은 말을 꽁꽁 감춰둔 채 담배만 피워대고 있는 널 내가 어떻게 알아. 그렇지만 이런 말 조차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는 내게 화가 나 바닥에 쌓인 담배꽁초들을 발로 차 흩뜨렸다. 형은 그 때까지도 내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고 나는 열이 올랐다. 정말이지 진짜, 화가 나 죽겠어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김성규의 팔을 낚아 일어서게 만들었다. 갑작스럽게 팔을 잡아당긴 나 때문에 어정쩡하게 일어섰던 김성규는 그대로 벽 쪽으로 기대어 물러섰다.
"그럼 형은 아냐?"
"……."
"나는 매번, 형 때문에"
"……."
"화가 나."
죽겠어 난.
그렇게 말을 꺼내고 나서야 순식간에 뜨거워진 눈가에 힘을 주었다. 8년 전에 했던 다짐은 깨지 않겠다고 그 순간에마저 다짐했으니까. 김성규 앞에선 울지 말자. 이런 사람도 날 지켜주겠다며 버티는데 내가 울면, 그건 너무 초라해서ㅡ 자제심을 잃고 뜨거워져 오는 눈을 한번 세게 감았다 떴다. 그렇게 여러번 눈물을 꾹꾹 참아냈어도, 바로 앞에 보이는 형의 얼굴은 너무나도 담담하다.
그래서인지 그 순간에는 사고회로가 나갔다고 생각했다. 너는 너무 멀쩡하니까. 가만히 내 눈을 살피고만 있는 모습이 얄미워 뒷통수를 끌어잡고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거의 홧김에 김성규의 코앞까지 들이밀었던 얼굴이 정작 입술이 닿을만큼 가까운 거리까지 마주했을 땐 바보같이 또, 멈춰버렸다는 게 또 화가 나지만.
허공을 사이에 한 채ㅡ한동안 김성규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이 마주쳤다. 나는 너무나도 멀쩡히 뜨고있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눈동자를 마주하다가 고개를 틀었다. 그렇게 비스듬히 틀었던 고개는, 적어도 김성규가 그런 말을 꺼내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닿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넌 못해"
살짝 떨어진 내 입술 위에서, 또다시 얄미운 말만 늘어놓는 입술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맨날 말하는 거지만, 너 나한테 키스 못해. 그러니까 자꾸 그렇게 키스하려 들지 마. 너는 나한테 화가 나 죽을지 몰라도 나는 너,"
"……."
"안쓰러워서 죽어."
그렇게 말하는 김성규의 코 끝이 비스듬히 틀었던 내 볼에 닿게 되자 바보같이 화들짝 놀라버린 것도 후회한다. 그냥 모든 것을 미친듯이 후회한다. 밉고 또 밉게도 나를 무시해왔던 그 말들도 그냥 미친 척 삼켜버릴 걸 그랬던 것을 후회하고 후회한다. 내게 안쓰럽다는 말을 뱉은 김성규에게서 한걸음 정도 뒷걸음질 친 다음에서야 나를 비웃듯이 올라간 입꼬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해줘? 너 나한테 키스 못해."
"김성규"
"이유는 세 가지 있어."
"지랄하지 마. 그딴 거 없어."
"세가지 다, 너도 알고 있어. 모르는 척 하고 있을 뿐이지."
미칠듯이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주제에 뱉어내고 있는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 잔잔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 목소리로 형은 또다시 못을 박으려 들고 있었다. 하지만 웃기게도ㅡ세가지라고 말해오는 형의 말이 끝나는 순간,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기억들은 내게 넌 안된다,고 말해오고만 있었다. 그걸 저지하고 싶어서라도 나는 그 순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까 형이 지금 내게, 또 하나의 큰 못을 박으려 하고 있으니까.
"알아. 그러니까 말하지…마."
"니가 자꾸 까먹고 있는 것 같아서 말할게."
"됐다고 김성규. 충분히"
"첫째,"
김성규의 입꼬리가 다시 한 번 호선을 그렸다.
"니 아빠랑 난 잤어."
아무렇지도 않은 게 싫다. 그러니까 형은, 정작 아무렇지도 않아하며 말하는 형은 그게 오히려 내게 더 큰 독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는게 싫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 또다시 각인처럼 머릿속에 박히는게 싫고 김성규의 입에서, 또 나와 함께 서 있는 공기 속으로 그 말이 꺼내어지지 않기만을 바랬을 뿐인데. 이미 피가 났던 입술을 다시 한 번 세게 물었다. 형이 내게 꺼낸 첫번째 이유가 너무 많이 귓가를 괴롭혀와서.
"둘째, 그리고 여긴 우리 엄마 장례식장이야."
첫번째 이유가 머릿속에서 그 때 기억을 건드려내기도 전에 쏟아진 두번째 이유는 과녁처럼 내 의식을 찔러넣었다. 그러니까 키스 못해. 적어도 이곳에선. 그렇게 덧붙여 말해오는 김성규의 목소리 때문에 나는 이미 주먹을 세게 쥐었다. ㅡ한마디로 그때서야 나는, 또 멍청하게 그 자리에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셋째, 너랑 난"
내가 이렇게 등을 돌린다고 해도,
"애초에 이런 감정으로 시작하지 않았어."
물론 지금도 아닌 건 똑같아. 그렇게 말해오는 목소리는 절대 끊겨오지 않았다. 매번 내가 도망갈 적마다 잔인하게도 할 말은 하고야 말았던 형은 이번에도 역시나 변명하듯 돌린 내 등 뒤로 상처가 될 말을 남겨놓고야 말았다.
"웃기지 마. 형만 그랬어."
이런 감정 아닌 것처럼 외면하던 건 형이야, 난 항상 솔직했어. 8년 전처럼 나는 그저 솔직해왔을 뿐이라고ㅡ 형이 도망가 죽으려고 했던 그 날, 단순히 동생으로써 그거 말렸던 거 아니야. 사랑해서 그랬다고 말해봤자 형은 모르는 척 할 테니까 말할 수는 없어도 난 처음부터, 아니었어.
김성규 너랑 달랐어.
그러니까 지금, 갑갑한 눈물을 쏟아내기 위해선 다른 장소가 필요했다. 여기엔 김성규가 있어 너무 위험하니까. 그렇게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음에도, 잔인한 김성규는 내 대답은 완벽하게 무시한 채ㅡ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 너한테 거짓말했어. 사실 담배 한 개 남았는데!"
거봐, 또 아무렇지도 않다.
"핀다!"
아까처럼.
언제나처럼.
*
향로 앞 영정사진을 지키던 그 날은 마지막 날 밤이었다. 조용히 오가던 발걸음이 모두 멈추고 마지막까지 남은 두세사람이 자울자울한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술을 권하고 있었던 조용한 공기 속이었다. 낮에 나눴던 대화 이후로 가까이 하지 않은 형은 왠일인지 계속해서 빈소 앞을 지키며 앉아있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그렇게, 떨구어진 고개를 보는 것이 마냥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할 수 없다. 형은 내가 가까이 오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 아마도.
열한시가 좀 넘어서야 앉아있던 형의 침침한 눈이 감겼던 걸로 기억한다. 몇시간 전부터 혼자서 소주잔을 비워내던 꼴은 결국 잠을 불러온 모양이었다. 답지않게 술은 지독하게 센 탓에 벌써 세 병이나 혼자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김성규는 피곤하게 몰려오는 피로 때문에 눈을 감은 것이었다. 네 병째 술을 따고서 막 따른 첫번째 술잔이 형의 손에 들렸다가 쏟아지며 뒹굴었다.
"…진짜,"
순간 가까이 다가가야하나 고민했다. 깊게 잠든 게 아니라면, 눈 떴을 때 얼굴이 마주하게 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망설였다고 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형의 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 걸 보는 순간 멀찍이 굳어졌던 다리가 움직여 그 앞에 서게 되었다.
허리를 숙여 형의 앞쪽에 가까이 당겨 앉았다. 형의 미약한 손이 엎지른 술이 바짓단을 적셨어도 상관 없었다. 안쓰럽게 꺾인 고개가 아파보여 그 옆쪽에 자릴 해서 어깨에 기대게끔 고개를 끌어왔다. 언제나 그렇듯, 취하진 않지만ㅡ취기에 따뜻하게 오른 볼이 어깨맡에 닿아 안착했다. 확,하고 끼쳐오는 독한 술냄새와 김성규 특유의 알싸한 체취는 또 언제나 그렇듯, 내 정신을 흐트러지게 만들었다.
형의 볼은 낮에 봤을 때와 달리 발갛게 달아있었다. 그 뒤로 얼마나 마셔댄건지. 술에다, 담배에다. 그 사람은 살아 생전에 형 이런 꼴을 제일 싫어했다고ㅡ말을 하려 했지만 그러면 아마도, 형은 며칠간 내 얼굴도 안 보려 들 것이 뻔했기 때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던것이기도 했다. 너무나 진하게 느껴지는 상처에 고개를 더욱 아래 쪽으로 기대었다. 김성규의 머리 위로,내 뺨이 가 닿았다.
그렇게 눈 앞엔 낮에 감히 찾아들지 못했던 입술이 아른거렸다. 8년동안이나 내가 감히 사랑할 수 없었던 입술. 하지만 그렇게 마지막으로 형의 입술을 눈에 담고 돌아섰던 데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울컥 치미는 마음에, 마룻바닥으로 떨어졌던 형의 손을 끌어당겨 살짝이 잡아쥐었을 때 은근슬쩍 손을 빼 가던 그 때의 그 움직임 때문에.
끄응,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내게 기댔던 고개를 거두어 반대편으로 끄덕이며 뒤척이던 김성규는 잠시 후에 코끝을 찡긋했다.
오랜 시간 곁에 있었기에 알 수 있는 형의 작은 버릇이었다. 아무리 이렇게 완벽하게 자는 척 연기를 한다해도, 나는 알 수 있었다. 형은 자는 게 아냐. 그러니까 이렇게 내 손을, 어깨를 피하려고 하는거지.
형은 잠을 자는 순간까지도, 혹은 이게 깊고 깊은 꿈속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넌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무언의 몸짓을 알아들었기에 몸을 일으켰다. 다가오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자꾸만 떨어지려는 형의 머리를 쿠션에 기대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여주진 않지만 분명한 상처가 되었을 삼일동안, 형의 눈과 고개는 정말ㅡ 피곤했음에 분명하니까.
* * * * *
"자?"
기차에 오른지 삼십분도 채 지나지 않아 창문 쪽으로 머리를 기댄 성규에게 얼굴을 들이민 우현이 물었다. 벌써 자? 덜컥 제 어깨에 기댄 우현 때문에 흔들리는 창문에 머리를 찧은 성규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아직. 덕분에 불편해진 자세에, 한번 크게 자리를 고쳐 잡은 성규가 팔짱을 끼며 편한 자세를 찾아 등을 기댔다. 우현이 그런 성규를 물끄러미 살피다가 작게 웃었다.
"전주는 뭐가 유명해?"
"…넌 지금 놀러가냐?"
여전히 눈은 감은 채, 비웃음이 섞인 타박을 한 성규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우현의 말을 무시하려 했다. 그러자 확,하고 코 밑에 와 닿는 우현의 기척에 살짝 눈을 뜬 성규가 제 얼굴 앞에서 생글생글 웃고있는 얼굴을 마주했다.
"기분 좀 풀라고 그런건데. 까칠해지지 마."
웃을 기분 아닌 건 알지만, 웃었으면 좋겠어. 칭얼대듯이 말한 우현이 헤픈 웃음을 지으며 자세를 바로했다. 그럼으로 제 얼굴 앞에서 사라진 우현의 웃는 얼굴 때문에ㅡ공기가 틔였다고 생각한 성규가 어느새 말짱히 뜬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창 밖의 오늘 날씨는 1월답게 청량하고 맑게 개였다. 어제까지도 펑펑 쏟아져내리던 눈은 하루새 거짓말처럼 그쳤고 한동안 유리창에 맺혀 시야를 흐리게 했던 물방울들은 말끔하게 말라 있었다. 한마디로 쾌적한 날. 우현은 제게, '웃을 기분 아닌 건 알지만'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별로 그렇지도 않다는 걸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지만서도. 성규가 집요하게 창 밖을 뜯어내던 눈을 들어 옆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차에 오르자마자 자야겠다고 생각한 터라 같이 온 개새끼의 존재는 그다지 크게 두고 있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성규가 어느새 저에게 시선을 거두고 챙겨온 백팩을 뒤적거리는 우현의 손만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또, 이게 왜 옆자리에 타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의문이긴 했지만,
호원과 동우가 얌전히 집으로 돌아가던 어젯밤. 보고싶었다며 다섯시간은 넘게 징징대던 우현의 목소리와ㅡ부엌을 지나가다가 무심코 시선을 던졌던 달력에 빨리 와. 하고 적혀있던 글씨가 순간적으로 겹쳐보였던 탓. 그게 지금의 이유라면 이유였다.
'내일 나, 전주 내려가.'
'또 어딜 간다고?'
'전주. 엄마랑 내가 살던 집.'
빨리 와. 삐뚤삐뚤하게 적힌 글씨를 빤히 쳐다보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뱉은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도 갈래?'
언젠가부터 멋대로ㅡ제 달력에 손을 대고 있는 제 생활 속의 또다른 흔적 하나가,
'좋아. 전주든 진주든'
그새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좀 오버일까, 싶어도.
"비빔밥."
"어?"
"비빔밥이 유명하다고. 전주에."
그것은 정말이지 한참 후에 떨어진 대답이었다.
전주엔 뭐가 유명하냐고 물어왔던 저의 물음이 거의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 갈 때 쯤 들려온 성규의 대답에 멍청히 되물었던 우현이 눈을 깜빡였다. 비빔밥.
그엔 아마 활짝 웃는 걸로, 그래?하는 답을 대신했다. 또 다시 무슨 물음으로 분위기를 풀어볼까,하고 궁리를 하던 차에 성규의 눈은 꼬옥 감겨 있었으니까. 그러면 돌아오기 전에 비빔밥 먹고 오자. 그 말을 꺼내려고 했는데 옆을 돌아본 성규의 고개는 비스듬하게 허공 위로 떨어져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도 옥탑방에 처들어가듯이 들어가 생활해왔지만 제 앞에서 이토록이나 경계를 풀고 편하게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아마,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입을 벌렸다. 그렇게 신기한 두 눈을 굴려ㅡ 살짝 감은 두 눈 위로 손을 휘휘 저어보기도 하고, 고개를 들이밀어 혹시라도 눈이 떠진 것은 아닌지 확인까지 하기도 했다.
성규의 자는 얼굴을 스캔하던 두 눈이 흐뭇하게 휘어지려는 찰나, 포착된 건 가지런히 놓여있던 두 손이었다. 무릎 위로 나무 상자를 감싸고 있던 두 손에 힘이 풀어져 단단하게 감싸야 할 상자를 조금 놓치고 있었다.
우현이 얼른 손을 들어 상자를 성규의 팔 안쪽에 바짝 붙여주었다.
"꼭 안아. 너는 지금 모셔가고 있는 거니까."
그렇게 성규가 잠이 든 것은 거의 두시간 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천천히 제 어깨로 성규의 머리를 기대게끔 만든 우현이 휴,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깼다. 성공. 사실은 꾸벅꾸벅 떨어지는 성규의 머리에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힐끔거리며 쳐다보고만 있던 우현이 종래에는 결국 용기를 내어 머리를 끌어온 것이었다. 우현은 무사히 제 어깨에 안착한 성규의 머리를 내려보다가 씩 웃었다.
아, 방금 코 찡긋했다. 귀여운 거 봐라. 우현은 기차의 흔들림 때문인지, 제 쪽으로 더욱 기대어 오는 성규의 목 때문에ㅡ화끈거리면서도 기분 좋은 떨림을 느껴야 했다. 앞으로는 김성규를 틈만 나면 재워야겠다고 생각하며.
새벽 3:18 |
임다..엉엉 나는 부엉이. 거기 아무도 없어요?..~^_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