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너를 만난다면 02
무슨 말이라도 하던가. 불러내 놓고 몇 분 동안 인사 빼고는 아무 말도 안 한 채 내 얼굴만 쳐다보길래 삐쭉거리며 앞에 놓인 에이드만 쪽쪽거렸다.
굳이 내가 먼저 걸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서 나도 같이 입을 다물고 있다가 에이드를 다 빨아들이고 더 이상 이런 분위기를 못 참겠어서 먼저 입을 열었다.
"불러냈으면 무슨 말이라도 하죠"
탁 소리 나게 에이드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팔짱을 끼며 물었다. 내 말에 그 남자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테이블에 턱을 괘고 더욱 가까이 다가와 내 얼굴을 쳐다봤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왜 이렇게 들이대...
"나, 갈까요?"
가까워진 얼굴이 부담스러워서 몸을 뒤로 살짝 뺀 뒤, 한번 더 물었다. 이번에도 입을 열지 않으면 그냥 나가버리리라.
"기억이,"
"...."
"안 나요"
그거 때문에 쳐다본 거구나. 오늘 날 불러낸 이유에 착실하게 행하고 있었다. 재촉해서 미안.
기억이 안 난다.. 애초에 내가 기억난다는 대답을 들으러 나온 게 아니었으니까. 어제 이후로 이 남자에 대한 미련도, 그 아이에 대한 미련도 버렸으니까.
내가 이 자리에 나온 건, 나온 건... 이 남자가 잘생겨서라고 치자. 난 절대 미련이 남아서 나온 게 아니다....
"확실해진 게 있는데"
"...."
"내가 마음에 들어서 번호를 딴 게 아니라는 거"
그건 어제 우리가 문자를 할 때부터 알았어야지. 그랬으면 오늘 다시 이 남자와 만나지 않았겠지.
"이름, 뭐예요?"
뭐야? 내 이름은 왜 묻는 거지? 알았다며? 내가 자기한테 관심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왜 묻는 거야?
"이름은 왜요"
"계속 그쪽이라고 부를 순 없잖아"
"또 보게요?"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젠 내가 아니라 저 남자가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만약, 정말 그렇다면 성격도 좀 싸가지 없고 자기 멋대로에, 게다가 그 아이와 닮은 얼굴까지 한 이 남자에게 내 관심을 나눠줄 생각은 조금도 없다.
"전정국"
"그쪽, 이름이요?"
"그쪽 말고 이름 부르라고, 알려준 건데"
"네네. 전정국 씨"
"이제 알려줘야지"
"싫은데요"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돌아오는 것도 없는데 난 왜 내 이름을 막 팔았나 몰라"
"그건 그쪽, 전정국 씨가 먼저...!"
"...."
"... 김아미요"
내 말이 맞다고 대들어도 곧 죽어도 자기가 맞다고 우겨댈 성격이란 게 확-하고 다가오는 상황이었다. 순 자기 맘대로네.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플 거 같아서 지는 셈 치고 내 이름을 던져주었다.
"김. 아미... 나이는"
내 이름을 하나하나 뜯어보더니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나이까지 물었다.
"저기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보면 몰라요? 호구조사하고 있잖아요"
"그니까 왜. 내가 지금 좀 이상해서 그러는데, 내가 그쪽한테 관심 없다는 거 알았다며. 근데 왜 이래요?"
"전정국"
*
*
*
*
"이름이 뭐야?"
시간이 흐른 만큼 머리도 커버렸고, 행동보단 말로 하는 의사소통이 더욱 늘어난 나이. 다시 2년이 지나 3년, 그 후 다시 그 꽃밭에 갈수 있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인지, 너는 누구인지. 얼굴을 보자마자 달려간 여자아이는 인사도 잊은 채,반가운 얼굴에 연신 웃어주는 남자아이에게 물어보았다.
"나중에, 나중에 알려줄게"
이름 하나 말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여자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반짝이다 대답을 하며 눈을 슬프게 빛내는 남자아이의 표정에 뭔가 내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있구나 하며 궁금한 걸 꾹 참고넘겨버리려 했다.
이름보다는 이곳에 다시 왔다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같이 꽃밭을 뛰어다니고 꽃을 엮어 화관을 만드는 대신 나란히 누운 두 아이는 할 말이 많았다. 실은 여자아이만.
쉬지 않고 입을 움직이는 여자아이와 달리 남자아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웃음으로 답할 뿐 자신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하면 올 수 있는지 너는 누구인지, 중간중간 물어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나중에' 였다.
"도장판 다 모아서 선생님이 엄청 이쁜 거울 주셨는데! 너 주고 싶은데... 어떻게 주지?"
여자아이는 끊이지 않고 입을 움직였다. 아쉽다는 듯 입술을 쭉 내밀고서는.
"손에 꼭 쥐고 자면, 여기 올 때 들고 올수 있을까? 언제 또 여길 올 수 있을까..? 또 올 수...."
주먹을 쫙 쥐고 거울을 보는 시늉을 하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 흐르듯 자꾸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짧지 않은 3년이란 시간. 그 시간 동안 이곳에 오고 싶어서, 니가 보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하면 다시 꿀까, 저렇게 하면 다시 꿀까.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별이란 순간에 여자아이는 다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깨가 축- 늘어졌다.
"나 또 가야 하는 거지? 여기, 계속... 여기서 너랑 같이 살 수는 없는 거지?"
남자아이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친 여자아이가 얼른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여자아이 옆에 같이 몸을 일으켜 앉은 남자아이는 그 따뜻한 미소를 유지한 채 대답했다.
"또 오면 돼. 또 올 거지?"
언제나 또 올 거냐는 남자아이의 말에 여길 떠났고 이번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한 여자아이는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면 눈앞은 다시 깜깜한 천장일 거라, 악착같이 눈을 크게 떴다.
"같이 가면 안 돼? 그럴 수는 없는 거야?"
억지로 뜨고 있는 눈이 따가웠지만 감지 않고 잡고 있는 손을 더 꽉 쥐었다.
"여기서 기다릴게. 항상 기다리고 있어, 여기서"
안된다는 듯 고개를 두어번 젓더니 여전히 기다린다는 대답을 해주었고 더 이상 못 참을 만큼 눈이 아려와서 자신도 모르게 눈을 꽉- 감았고 다시 뜬 눈앞에 역시나, 너는 없었다.
****
팔짱을 풀며 몸을 앞으로 기울여 이번엔 내가 그 남자, 전정국에게 더욱 다가가 말을 툭툭 내뱉었더니 돌아오는 건 자기 이름 세글자였다.
내가 아직도 그쪽이라고 부르는 게 맘에 안 든 모양이었다.
"이름 알려줬잖아요"
"알았어요. 그래, 전정국 씨"
마치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투로 나간 말에 기분이 나빴을까 안 보이게 눈치를 봤지만 정작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한듯했다.
"나는 스물한살"
또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 저래놓고 내가 대답을 안 하면 아까와 같은 말이 돌아오겠지.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나. 어이가 없었다.
"순 자기 맘대로"
근데 중요한 건. 쟤 나보다 어리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뇌를 스치자 순간 전정국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뭐야, 애기네. 고작 한살뿐이지만 그래도 나보다 어리잖아? 아까 내가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나간 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애기야, 누나가 바쁜 사람이거든? 니가 나한테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니가 알다시피 난 너한테 관심이 없어요"
이번엔 내가 확실히 자기를 어린아이 다루듯이 대한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미간을 한껏 구겼다. 그래서 어쩔 거야.
솔직히 약속은 없었는데 바쁜 여자라는 사실을 어필하고 더 이상의 대화를 차단하기 위한 말이었다. 이제 난 여길 뜨고 이 이상 너와의 만남에 끝을 맺으리라.
"나 이제 간다? 앞으로 더 보지 말자..."
옆 의자에 놓았던 클러치를 들어 무릎에 올리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잘 있어라. 얼마 안 봤지만 넌 꽤 잘생겼어. 그게 내가 너에게 해줄 말이야. 안녕.
"앞으로 더 볼 건데"
몸을 일으키려다 날 잡는 전정국의 말에 엉덩이를 다시 붙였다.
"나보고 기억 안 나냐고 했죠"
"...."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그렇게 물어본 이유가 뭔지,"
"...."
"말해봐요"
뭔가 정곡을 찔린 느낌. 그러게, 난 집요하게 전정국에게 내가 기억이 안 나냐고 자꾸 물었다. 그리고 오늘도. 혹시나 기억이 났다는 말을 들으러 이 자리에 나온 거지. 그래 맞다. 실은 그래서 나왔다.
대답할게 없었다. 너는 내 꿈에 자주 나왔던 그 아이와 얼굴이 비슷했을 뿐이었고, 혹시나 했을 뿐이었다. 그냥, 순간 판단이 흐트러져 바보 같은 생각을 한 것. 그거였다.
이걸 어떻게 정리해서 말한담. 정리한들 이걸 어떻게 말해?
대답을 못하고 입만 꾸물거리고 있었다. 나오지 말껄. 뭐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나와 나오길...
"만약 내가"
"...."
"기억이 없다면, 믿어줄래요?"
이건 무슨 개똥같은 소리야. 저번에 내가 널 잡으려고 던진 말에 자길 꼬시려는 수작으로 생각하더니 이번엔 니 차례니.
퍽이나 믿겠다. 확실해졌어. 이젠 얘가 나한테 관심이 생긴 거야. 맞지?
"내가 이뻐서, 어떻게 해볼라고 수작 부리는 건 알겠는데, 난 너한테 관심이 없다니까? 누나 바쁘니까 먼저 간다!"
고개를 한번 흔들어주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이쁘다는 말을 하면서 나 자신도 양심이 콕콕 찔려 닭살이 돋았지만, 용케 말을 마치고.
"4년 전부터 그전에 있었던 일이, 기억나질 않아"
자신을 지나쳐 가는 내 손목을 드라마에 나온 장면처럼 멋있게도 낚아채며 고개를 들어 말했다.
뿌리치고 그냥 갈수 있었는데, 이젠 안 볼 사이라고 모른 척 이 카페를 나가버릴 수 있었는데.
4년이란 그 말이, 뒤통수를 딱- 때려서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을 꿈을 꾸지 못한지도 4년, 그 아이를 보지 못한지도 4년.
가지 못하고 묶인 손에 고개를 돌려 전정국을 내려다보면 장난기 하나 없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 전에, 4년 전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거, 맞지"
내용이 산으로 가는 것 같지만 아니라는거... 이게 원래 짜여진 이야기랍니다....하핫
이 글 만약 너를 만난다면, 그냥 만만이라고 부를게요ㅋㅋㅋㅋㅋㅋㅋㅋ
만만은! 꿈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도 나올 거지만 정국이는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고ㅠㅠㅠ
좀 복잡하고.... 음 아닌가... 좀...음... 뭐라고 설명드릴수가 없네...ㅋㅋㅋㅋㅋ
제가 말을 잘 못하나봐요ㅋㅋㅋㅋㅋㅋㅋ 차차 내용이 나올테니까! 음 너무 놀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ㅎㅎㅎ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ㅠㅜㅠㅜㅠㅜㅠㅜㅜㅠㅜㅠㅜㅠ
그냥 저는 또 가볼게요ㅠㅠㅠㅠㅠ
아이고 이런 치환기능....
암호닉! 감사합니다ㅠㅠ ♥
민슈가님, 김남준님, 설날님, 런치란다님, 권지용님, 베베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