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어디 ㄱ..."
"쉬잇-!"
"......"
"......"
내게 큰 소리로 말을 걸며 오던 친구에게 검지를 치켜세우며 사나운 소리를 냈다.
벽쪽으로 몸을 밀착한 채로 빼꼼히 앞을 내다보는 나를 따라, 친구도 몸을 숨긴다.
시야에서 녀석이 사라지자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내게 친구가 묻는다.
"너 쫓기냐?"
"...비슷해."
"누구한테?"
"...말할 수가 없다."
"...나 네 친구 맞냐? 말 못하는 게 왜 이리 많아?"
"...미안해. 그런데..."
"...?"
때마침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려, 다리에 시동을 걸어 놓는다.
"미안...!"
"야...!........ 저거저거..."
지금 나는 할 일도 없이 매 쉬는 시간 이 짓을 반복하고 있다.
이 짓이란?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냉큼 튀어나가서 정처를 헤메고 있다가,
종이 울리자마자 반으로 튀어가는 것이다.
복도를 지나쳐 교실 코 앞에 시간 엄수로 까다로운 담당 과목 선생님이 들어가시는 게 보인다.
어떻게든 넘어가려고 우다다다 뛰어들어 가지만,
"뒤로."
"....아...씨.."
나를 똑바로 응시하시며 회초리로 나를, 그리고 뒤를 가리키신다.
덩달아 늦게 들어온 친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난 옆을 돌아보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친구에게 보내고 있다.
친구는 됐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내게서 시선을 뗀다.
저 망할 변태 XX 때문에 친구와의 우정이 위태로워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앉아."
한 대목을 설명하고 나신 뒤,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우린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뒤에서 내 자리로 돌아가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까지도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지만 애써 무시한다.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학교 생활 피곤하게 만드는 식으로 간다.
쓸데없는 요령 피우지말고 얌전히 교실에 앉아있어.'
4교시 직전 쉬는 시간에 날아온 경고 메세지.
학교 생활 피곤하게 만드는 식이라는 건 이제 대충 감이 잡힌다.
또 여자애들한테 둘러싸이거나, 대놓고 눈총 받는 전개가 된다는 거겠지.
난 또 다시 어느 것이 괴로운가 저울질하며 다리를 떤다.
"여기서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원래도 수업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아직 해도 저물지 않았는데 당장 이상한 짓을 하진 않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제 내가 뱉었던 말이 있어서 어쩐지 찜찜하다.
왠지 내 이런 초조함까지 읽으며 즐거워하고 있을 것 같아서 한 편으로는 짜증이 밀려온다.
...
♬~
수업 종료를 알리는 동시에, 점심시간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득달같이 나서는 애들.
그런 소란 속에서 녀석과 나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어있는 것 같다.
침을 꿀꺽 삼키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친구가 어깨를 툭 쳐와서 조금 놀랐다.
"야, 뭐해.
빨리 가자."
"아... 먼저 내려가 있어."
"..?
너 또 비밀이냐."
"...진짜 미안. 응?"
"알았다 알았어, 빨리 오기나 해."
"미안~"
'아오, 저 세륜색골.'
마침내, 반 애들이 전부 나가고 나서야 녀석이 나를 쏘아본다.
그 눈에 잠깐 움찔였다가 다시 고갤 빳빳히 한다.
"그제 좀 쉬더니 풀어진 것 같은데,
또 그거차고 싶어?"
"...!..ㅁ, 뭐?"
"그런거 아니면 자꾸 알짱알짱 약 올리지마.
힘 풀리게 해버리고 싶으니까."
"....넌 대체 얼마나 나랑 붙어먹어야 속이 시원하냐?"
"...평.생."
고갤 빼쭉 내밀며 강조하더니 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냥 나가려는 듯 했으나, 의미심장한 얼굴로 천천히 돌아본다.
긴장된 내가 몸을 슬금슬금 뒤로 뺐지만, 녀석은 냉큼 내 손목을 붙잡고 교실 밖을 나선다.
"어, 어디가...!"
"네가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닐 거야.
감당은 네가 다 해봐."
"...? 뭐?"
녀석이 날 끌고 온 곳은 다름 아닌 급식실이다.
아직 길게 늘어서 있는 줄 끝에 나를 놓아주며 싱긋 웃는다.
이건 또 뭔 또라이 같은 플레이인가 하는 것도 잠시, 뒷줄에 서 있는 여자애 한 명이 우릴 돌아본다.
이상한 기류였지만 그려러니 하는데 갑자기 녀석이 당황스러운 행동을 한다.
"어, 여기 뭐 묻었다."
내 머리칼에 손을 뻗어 무언갈 떼어준다.
그리곤 이미지 메이킹용 미소를 띄워주는데, 앞에 서 있는 여자애가 제 옆의 애를 톡톡 친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분위기 파악이 되지 않다가,
4명이 한꺼번에 나를 돌아보자 그제서야 '아차' 싶어진다.
"밥 맛있게 먹어라."
내 귀에 대고 속삭이더니, 앞 줄에 있는 같은 반 남자애들 틈으로 끼어든다.
난 오도가도 못하며 줄에 혼자 덩그러니 서서 빨리 배식 받기를 빌어본다.
"아오, 저 개..."
"...?"
"아우!"
친구 앞에 식판을 내려놓으며 내 화를 다스린다.
하지만 다스려지진 않고, 자꾸만 꽂혀날아오는 듯한 시선 탓에 더 돋구어지기만 한다.
"상종하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너 괜찮아..?"
"...나 어떡하지? 나 전학가야될까?"
"왜 그러는데?"
"....아니... 아니야.."
금세 시무룩해진 나는 방방 뛰던 엉덩이를 얌전히 의자에 붙이며 말했다.
친구의 말에 쉽게 대답해줄 수가 없으니 답답함과 미안함이 뒤섞인다.
"너네 사귀어?"
"야, 아니라잖아~"
"아 근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고 그랬단 말이야~"
"!@$*#"
급식실에서의 일이 또 어느 새 퍼져서 반애들이 몰려오더니
지들끼리 언쟁을 펼치고 있다.
난 조용하게 내 자리를 빠져나오려 슬금슬금 뒷문을 향한다.
누군가 내 앞에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또 녀석이다.
"어디 가?"
"......"
"또 늦어서 선생님한테 걸리지 말고 얼른 다녀와."
녀석이 웃으며 머리에 손을 얹고는 제자리로 돌아간다.
난 찜찜한 기운에 내 자리 앞을 지키던 여자애들로 시선을 돌려본다.
멍하니 보고 있던 애들이 서로의 어깨를 부딪히며, 제 말이 맞다는 언쟁으로 또 다시 불꽃이 튄다.
저 요망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