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적은 달동네.
도대체 언제 보수를 한 건지 모르겠는 낡은 벽돌과 시멘트는 동네 분위기가 어떠한 지를 말해주는 듯 했다.
시골은 아니었지만 참으로 정겨운 슈퍼가 하나 있는 달동네 계단 아래 오른쪽.
오후엔 그 평상에서 허구헌 날 아줌마한테 등짝을 맞는 아저씨가 하나 있다.
"아이고, 담배 좀 고만펴! 이것아!"
"아, 아줌마! 아, 이거 비싼 옷인데...!"
저 촌스러운 호피무늬 트레이닝 복이 어딜봐서 비싸보이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며 아줌마가 때린 등을 손으로 털어낸다.
나는 한심하게 쯧쯧 고갤 저으며 옆을 지나치려는데, 옆에서 '어' 하는 소리를 낸다.
"안녕! 너 저기 살지?"
'웬 아는 척.'
"난 저~기 살아. 지나가다 몇 번 봤는데."
"...아저씨."
"어?"
"양말에 구멍났어요."
"아...!"
삼디다스 신발 사이로 보이는 엄지 발톱이 양말이 구멍난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한심한 아저씨를 뒤로하고 제 갈 길을 가려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잠깐만."
"...?"
"누구보고 아저씨래, 야!"
난 눈치도 보기 전에 다다다 튀었다.
어차피 저 삼디다스로 어떻게 쫓아오겠느냐만은.
이상한 아저씨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나오며 돌아가는 길.
밤 공기가 참 상쾌하고 좋다.
기분좋게 기지개를 켜며 저벅저벅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쩐지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요즘엔 취객도 그냥 지나가는 행인보고 기분 나쁘다며 찌르는 세상인데...
갑자기 무서워졌다.
"......"
분명 내가 발걸음을 늦추자, 모래알 버적이는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점점 불안해져서 돌아보고 싶지만
돌아보면 기분 나쁘다며 해코지를 할 것 같고,
앞만 보고 가자니 언제 뒤에서 덮쳐올지 모르니 불안하다.
또 갑자기 뛰자니 저쪽에서도 달려올 것만 같아서 무섭다.
난 최대한 가로빛이 밝은 길목으로 다니며 돌아간다.
드디어 달동네 계단 아래에 다다랐다.
침을 꿀꺽 삼키며 한발 한발 오르는데 투다다다 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내 등을 확 친다.
"히익...!!"
"야!"
"...깜짝이야.... 아, 뭐예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돌아보니, 낮에 봤던 백수 아저씨다.
난 안도감과 분노가 뒤섞여서 소리부터 질렀다.
아저씨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어깨에 팔을 걸친다.
"이 시간까지 여자애가 어딜 그렇게 쏘 다니냐?"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야, 아저씨 아니거든?! 나 25살밖에 안됐어~!"
"...반오십이네."
"...빨리 가자."
아저씨는 인상을 꾸깃꾸깃 거리며 내 어깨에 팔을 걸친 채로 달동네 계단을 오른다.
약간 숨이 찰 정도의 계단을 정복한 후, 이제 가려나 싶은데 그대로 내 집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 아저씨 어디가요?"
"너 아까 누가 뒤따라오는 거 못 느꼈어?"
"...그거 아저씨 아니었어요?"
"...아저씨 아니라고."
"헐, 소름..."
난 당연히 같은 길가던 아저씨였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착각이었나보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그걸 알고 날 도와준 건가.
"...아저씨 나 도와준 거예요?"
"...아.저.씨 아니라니까."
"...쨌든... 고마워요."
"고마우면..."
아저씨는 길목에서 걸음을 멈춰서 다짜고짜 내 손목을 붙잡는다.
당황스런 전개에 얼떨떨해 있는데 얼굴을 가까히 하며 내게 강조한다.
"오빠라고 불러, 오빠♥"
'...뭐지, 뒤에 하트가 달린 이 기분은.'
"싫은데요."
"...됐다."
"......"
아저씨는 다시 내 어깨에 팔을 걸치며 천천히 걸음을 뗀다.
"근데 넌 만날 이렇게 늦게 와?"
"...독서실이요."
"그래도 웬만하면 일찍 들어가.
다 큰 여자애가 이렇게 밤 늦게 돌아다니면 위험해."
'...아저씨 맞구만, 뭘.'
"넌 무섭지도 않아?"
"뭐........ 조금..."
".......아!"
난 어느 새 우리집 앞에 다다라서 걸음을 뚝 멈춘다.
문을 등진 채로 아저씨의 실실 거리는 입가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 이렇게 하자."
"...?"
"내가 널 밤마다 데려다 줄게."
"...??"
"...대신에 넌 나한테 천원씩 주는 거야."
"......"
'거지야...?'
참으로 빈곤한 거래이지만 나에게 큰 손해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난 팔짱을 끼고 고민하다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뭐... 그래요..."
"...근데 너..."
"...?"
"밤에 보니까 예쁘다?"
"...밤에 보니까?"
아니꼽게 올려다보자, 아저씨가 웃으면서 내 머리를 짧게 쓰다듬는다.
약간 엉클어지면서도 머리칼이 부벼지는 것이 어쩐지 예쁨받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장난이야."
"......"
어느 새 아저씨는 저만치 멀어져서 가로등 빛 아래서 내게 팔을 흔든다.
나는 수줍게 손바닥을 들어 빼꼼히 흔들어보인다.
"들어가~"
"아저씨도요~"
"아저씨 아니라니까..!!"
"....푸훕."
어느 집 멍멍이가 짖는 소리에 놀라, 아저씨는 꽁지가 빠져라 후다닥 도망간다.
...이거 공평한 거래가 될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