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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이 밝았다. 평소처럼, 늦은 아침을 맞은 한솔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오늘도 스케줄 없으려나. 멍하니 생각을 정리하다 다시 잘까 하는 생각으로 뒤로 넘어가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얘가, 또, 또 이러고 있네. 익숙한 순영의 모습에 고갤 갸웃한 한솔이 멍하니 순영을 바라봤다. 저 형이 이 시간에 왜. 순영이 다가와 한솔의 등을 퍽퍽 내려치며 일어나서 옷 갈아입어! 하고 소리치자 shit! 하며 욕을 중얼거린 한솔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왜 옷을 갈아입어? 어디 가? 나 아무것도 없는데. 한솔의 말에 이불 정리를 하던 순영이 한솔을 휙 돌아봤고 움찔하며 놀라는 한솔에게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스케줄 생겼으니까, 빨리 옷 갈아입고 안 나오면 펑크 내는 거야 네 손으로. 순영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한솔이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 준비를 서둘렀다. 스케줄? 스케줄이 왜, 음. 벌써... 양치를 하면서도 생각을 하고 샤워를 끝내고 머리를 말리면서도 생각을 하는 한솔의 뒤통수를 다시금 내려친 순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빨리빨리 준비 안 하지? 아, 좀! 내가 뜨면 어? 형부터 바꿔달라고 그럴 거야. 네 마음대로 해라 아주. 순영이 한솔의 투덜거림에 대답하며 옷을 던져주고는 먼저 집을 나섰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차에 올라탄 한솔이 운전석에 몸을 가까이하며 말을 이었다.
"근데, 갑자기 무슨 스케줄?"
"거기 NCA, 그 화보 촬영하는 쪽에서 네가 자기네들 콘셉트에 맞다나 뭐라나, 그래서 미팅하자길래"
"아..."
"가서 잘해 인마, 너 그거 한번 찍어서 훅 뜬 애들 많은 거 알지?"
한솔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시트에 몸을 기대앉았다. 빠르긴, 빠르네. 몇 달 동안 잡히지 않던 스케줄이 이렇게 하루 만에 잡히고. 비웃음 섞인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나를 어떻게 찾아봤을까. 뒤에서 또 무슨 일들이 벌어졌을까.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지는 기분에 한솔이 눈을 감았다. 쉽게 생각하자. 좋게 생각하자. 그래도 자꾸만 기분은 아래로 쳐졌다. 차가 자연스레 제가 사는 원룸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오고 한참을 달리다 빨간불에 멈춰 섰을 즘, 울리는 순영의 핸드폰에 순영이 고갤 갸웃했다. 모르는 번혼데. 중얼대다 전화를 받은 순영이 자연스레 말했다. 네, 최한솔 씨 매니저 권순영입니다. 한솔이 살짝 감은 눈을 떠 순영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아, 정말요? 네, 네, 감사합니다, 네, 오후에 찾아뵙겠습니다. 네. 순영이 전화를 끊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왜, 누군데. 한솔의 질문에 살짝 한솔을 돌아본 순영이 드라마 캐스팅 디렉터 분. 하고 답했다. 캐스팅 디렉터... 한솔이 눈을 살짝 크게 뜨자 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 드라마 찍게 생겼다. 기쁨과 허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스케줄이라. 한솔이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초록불이 들어오고 차가 다시금 출발했다. 눈앞에 지나가는 한강 다리를 보던 한솔이 눈을 감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자. 그래, 그러자, 최한솔.
미팅은 쉽게 끝이 났다. 콘셉트 이야기와 할 수 있겠냐는 물음. 예전에 찍은 화보를 좋게 봤다는 말. 계속 웃음을 띠고 있어서인지 입꼬리가 떨려왔다. 이것도 못할 짓이네. 사무실을 나와 찌뿌둥한 몸을 풀며 차에 도착하자 형이 다시금 울리는 전화에 잠깐 차에 있으라며 차에서 내렸다. 어두운 차 안, 가만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스폰서의 힘이 이렇게 대단한 건가. 그래서, 다, 스폰을 받는 건가. 빌어먹을. 낮게 욕이 흩어졌다. 그렇게 발버둥 쳐도 되지 않던 일이 너무 쉽게 풀렸다. 차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림에 눈을 떠 형을 바라보자 나를 힐끔 보고선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왜"
"그게"
"...."
"이사님이, 오늘 밤에, 좀 보자고 하시는데"
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미안하다는 표정 짓지 말라고 손을 저어 보이고 안대를 찾아 꼈다. 완전하게 암흑이 되어버린 시야에 또 기분이 좋지 않은 생각만 퍼졌지만 곧 떠오르는 이사님의 얼굴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 같던 사람. 그래, 그래서, 내가 스폰을 받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 근데, 막상 이렇게 갑자기 일이 잡히고 바쁜 하루를 보내니까. 정은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이 드네요, 이사님. 애써 시야 속 웃는 이사님의 얼굴을 지웠다. 흔들리지 않겠다, 정을 주지 않을 거라 다짐하면서.
사무실 앞에 선 한솔이 한숨을 내쉬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괜히 흠 잡히는 거보단 낫겠지. 중얼거리며 큼큼하고 헛기침을 한 한솔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 바쁘게 통화를 하고 있던 승관이 손을 흔들며 앉아있으라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다시 통화를 이어나갔다. 네, 이사님, 투자 빼시면 그쪽 기업이 흔들리신다는 거 그거만 알아두세요. 다른 말은 필요 없을 거 같네요.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에 한솔이 어깨를 으쓱이다 자리에 앉아 사무실을 둘러봤다. 티브이에서 본 것처럼 화려한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큰 기업 이사 다운 사무실이었다. 한솔이 시선을 마지막으로 둔 앞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제 이름이 써진 문서에 고개를 갸웃하며 서류를 들었을 때 승관이 급히 다가와 서류를 뺏어들었다. 보지 마요. ...아, 네... 하하, 일찍 왔네요? 승관의 질문에 한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남아서요. 서류를 다시 제 책상 위에 올려둔 승관이 걸려있던 재킷을 팔에 걸며 말했다. 오늘, 나랑 영화 봐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서는 한솔에게 다가선 승관이 곧 오늘 하루는 어땠냐며 쫑알거렸다. 답지 않게 애 같기는. 한솔이 생각하며 피식 웃음을 짓자 승관이 한솔을 손가락으로 콕 집으며 말했다.
"웃었다!"
"아닌데요"
"에에이, 내가 봤는데!"
"글쎄요, 저는 웃은 적이 없는데"
아닌데, 웃었는데! 승관의 말이 복도를 울리고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 옆에 바싹 붙은 승관을 떼어내려던 한솔이 곧 둘의 앞에 서는 승철의 모습에 행동을 멈췄다. 이사님. 승철의 목소리에 자연스레 시선을 돌린 승관이 무슨 일이냐는 듯 승철을 바라봤고 머뭇거리던 승철이 말을 이었다.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승관의 표정이 굳으며 몸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왜 그래요? 한솔이 조용하게 승관을 내려다보며 말하자 고개를 저으며 웃어 보인 승관이 다시금 승철을 바라봤다.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못 뵐 거 같다고 전해주세요. 이사님.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승관의 말에 가만히 승관을 바라보고 서있던 승철이 옆으로 물러나며 목례했다. 승관이 한솔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문을 닫았고 곧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층수를 바라보던 한솔이 물었다.
"괜찮아요?"
"...어, 어? 네, 괜찮아요"
"...."
"진짜로 괜찮아요"
승관이 옅게 미소를 띠어 보임에 한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는 건 실례겠지. 한솔이 입을 다물고 앞을 바라보자 곧 다시 말을 시작한 승관의 입에서 계속해서 질문이 흘러나왔다. 오늘 스케줄은 힘들지 않았냐는 둥 미팅은 어땠냐는 둥. 역시 승관이 보내준 게 맞나. 한솔이 다시금 살짝 웃어 보이다 괜찮았다, 좋았다 하는 대답을 내놓자 고개를 끄덕인 승관이 밝게 웃어 보였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리고 보이는 익숙한 순영의 모습에 한솔이 손을 들어 보이다 곧 딸려 올라오는 손에 시선을 돌렸다. 어... 아...! 승관 역시 들려지는 손을 바라보다 놀라며 급하게 손을 풀었고 멍하니 둘을 보던 순영이 헛기침을 하며 먼저 차에 가있겠다고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어, 우리도 가죠. 조금의 정적 끝 떨어진 한솔의 말에 승관이 고개를 끄덕였고 둘 모두 빠져나간 엘리베이터 안에는 어렴풋한 온기만이 남아있었다.
ㅌㅅㅌ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어색하기도 하고... 다시 들고 살을 붙이려니 또 어색하고 그렇게 또 망한 거 같고.... 늘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암호닉; 우리 하리보님 늘 사랑하는거 알죠? 하트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