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산소
눈 깜짝할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정신을 잃었고 한참 후에 깨어났을땐 살아있었다.
"괜찮아?"
17시간 전 궂은 비를 맞으며 지친 몸을 버스에 싣고 창가에 머리를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있었다. 마침내 깊은 잠에 빠지려 할때 빗길에 미끄러진 버스가 앞에 있던 덤프트럭과 부딪혔다. 커다란 소음과 함께 버스 안에 있던 승객들은 이리저리 휘청이다 피를흘리며 쓰러졌고 곧이어 나도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죽는 줄 알았는데…
"정신이 들어?"
"누구…세요?"
깨어난 나에게 괜찮냐며 물어오는 낯선 남자에게 아픈 머리를 붙잡고 경계하며 물어보자 선한 웃음을 지었다. 한참 동안이나 내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은채 쭉 웃어보이다가 그대로 밖으로 나가려는 남자를 급하게 불러 세웠다.
"저기요!"
"네? 괜찮으세요?"
내 부름에 반응한것은 낯선 남자가 아닌 때마침 들어오던 의사와 간호사였다. 그렇게 남자는 사라져버렸고 남자를 쫓던 시선은 의사에게 돌렸다. 의사는 굉장히 큰 사고에서 어떻게 멀쩡한건지 기적이라며 내 상태를 체크하였고 내가 보기에도 팔, 다리에 있는 조그마한 상처외엔 아픈 곳이 없었다.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 쉬고싶었지만 혹시 후유증이 있을지모르니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에 말에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4인용 병실이였지만 나머지 3개의 침대는 비어있었기 때문에 나 혼자서 편안하게 쉴 수 있어 다행이였다. 조용히 천장을 바라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있을 때 누군가 스르륵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어때? 아픈데는 없어?"
"당신은 아까전에…"
"니가 심심할거 같아서 와봤어."
"도대체 누구세요? 절 어떻게 아시는거에요?"
"음… 글쎄 뭐라고 해야하지?"
"…네…?"
"너의 수호천사!"
"……"
"응? 반응이 왜그래?"
아뿔싸 미친사람이다. 환자복을 입고있지 않아서 외부인인줄 알았는데 환자였나 보다. 정신병이 있나? 뭐 망상증 이런거? 생긴건 멀쩡한데 머리가 안좋다니… 괜시리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남자를 연민의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내 반응이 맘에 안들었는지 금새 울상이 되었다.
"못 믿겠어?"
"아, 그게…"
"내가 하는 말은 너한테만 들려."
"그, 그래요?"
"물론 내 모습도 너한테만 보이고."
"그렇구나."
"곧 간호사가 와서 검사하러 데리고 갈거야."
대충 남자의 장단에 맞춰 대꾸를 해주다 정말로 간호사가 들어와 나를 검사실로 데려갔고 남자는 여전히 병실에 남아있었다. 찝찝한 기분에 간호사에게 내 병실에 있던 남자는 몇호병실 사람인지 물었지만 간호사는 무슨소리하는거냐며 나에게 되물어왔다.
"환자분 혼자 계셨잖아요."
아니 분명 내 옆에 있던 남자가… 다시 말하려 했지만 간호사의 표정이 점점 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열었던 입을 다물었다. 오랜 정밀검사가 끝이나고 모두 이상없이 정상으로 나왔다. 그제서야 나는 퇴원할 수 있었고 집에 돌아가 마치 잠시 외출했다 돌아온 사람처럼 바로 컴퓨터를 켜고 의자에 앉았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클릭하자 시작홈페이지로 설정된 익숙한 포털사이트가 열렸고 실시간 검색어엔 내가 겪었던 버스사고가 여전히 순위에 올라있었다.
"승객 1명 부상, 나머지 전부 사망…"
"너도 죽을 뻔 했었어."
"아아아악!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요?!"
"내가 말했잖아. 나는 너의 수호천사라구."
"수호…천사…?"
"나 아니였으면 이 기사 제목 '승객 전원 사망' 이였을걸?"
"그게 무슨…"
어느 새 내 옆에 서있는, 아니 붕 떠있는이 맞는 표현이려나. 남자의 어깨에 병원에서는 보지못했던 새하얀 날개가 정말로 수호천사임을 증명하듯이 빛나고 있었다. 혹시 꿈을 꾸고있는건 아닐까싶어 볼을 몇번이나 꼬집어 봤지만 빨갛게 부어오를 뿐이였다. 이게 정녕 사실이라고? 천사가 존재한단 말이야?
"아 배고프다. 뭐 먹을거 없어?"
"천사도 밥을 먹어요?"
"무슨 그런 당연한걸 물어봐?"
"아…"
어이없게도 너무나 뻔뻔하게 밥을 요구하는 수호천사에 기가 막혔지만 일단 내 생명의 은인이니 보답도 할겸 밥상을 차렸다. 늘 혼자 하던 식사였기 때문에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는게 어색해 묵묵히 젓가락질만 하다가 문득 천사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천사 아저씨."
"아저씨아니야 오빠라고 불러."
"아… 천사오빠는 이름이 뭐에요?"
"위에서는 미카엘이라고 불리긴 하는데 너는 그냥 준면이라고 불러."
"준면? 음, 준면오빠 왜 갑자기 나타난거에요?"
"니가 죽을 뻔 했잖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위험한일은 언제든지 많았는데요?"
"그 때도 항상 내가 지켜줬어."
"에이, 근데 왜 그 땐 안나타났어요?"
꽤나 입맛에 맞는지 가만히 밥을 먹던 준면오빠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계속되는 시선에 부담을 느껴 왜 자꾸 쳐다보냐며 짜증을 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왠지 볼이 화끈거리는게 얼굴이 빨개졌을게 틀림없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다 마침내 준면오빠와 눈이 마주쳤을 때, 오빠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그 때도 널 좋아했지만."
"네?"
"지금은 널 훨씬 많이 좋아하게 되었거든."
"좋아한다구요? 나를?"
"단 1분도 놓치지않고 니 바로 옆에서 너를 지켜주고싶어."
"항상… 그랬다면서요."
"아니, 이렇게 서로 마주보면서."
"……"
"니가 나를 봐줬으면 좋겠어."
"……"
"언제나 너의 곁에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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