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지만, 모든 것은 어떻게든 제자리로 돌아가려 하고
-밤열한시 中
백일몽(白日夢)
밤을 꼬박 샜다. 잠이 오지도 않을뿐더러 머리가 아팠다. 머리를 헝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미치겠네.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는 윤호의 말들과 승관의 웃는 모습은 자꾸만 겹쳐 울렸다. 어떻게 걔가. 아니, 이게 대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분명, 유학 가서 잘 지낸다고. 항상 편지도 보내왔으면서. 잘 지낸다고 그랬으면서 도대체 왜. 입에서 작게 욕이 튀어나왔다. 떨리는 손에 잡힌 병 하나를 벽으로 집어던졌다. 정신병원?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싶었다. 걔가 어디 가 아파서, 걔가 왜 정신병원에. 윤호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의 말을 조합하면 승관은 저와 헤어진 다음에 바로 돌림빵을 당했을 것이고 그 여린애는 무너졌을 테니까 학교에 못 나왔겠지. 그렇게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걸 어떻게 믿어야 할지, 확실한 이야기일지도 몰랐지만. 김민규의 말 한마디에, 그 모든 게 맞는다는 말 한마디에 허탈하고 또 허탈했다. 잠깐만 그러면, 유학 갔다며 보내준 편지는. 다.
"...김민규 씨발"
민규의 짓일 거다. 분명, 민규의 행동이었을 것이다. 부승관이 부탁했겠지 자기가 유학 간 거처럼 해달라고. 미련한 새끼. 계속해서 욕지거리만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책상 가득 올려져 있는 법전들을 물끄러미 보다 눈을 감으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법을 공부한다면서 제 사람 하나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막막했다. 아니, 승관이 다시 받아줄지도 고민이었다. 혹여 저를 잊었으면? 최한솔 안에 있느냐 복잡한 머릿속을 뚫고 들어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형이 보였다. 뭐, 왜. 툭 뱉어진 말에 형은 들고 있던 편지를 던졌다. 승관이한테 또 왔던데. 승관이라는 이름에 급하게 일어나 편지를 손에 쥐었다. 쟤가 왜 저래? 형이 고갤 갸웃하다 다시금 방을 나갔고 편지를 급하게 뜯은 내 손 위로 떨어진 건 자신이 언젠가 승관에게 선물했던 팔찌였다. 끊어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원 팔찌. 팔찌 옆들어있는 작은 쪽지를 꺼내들고 눈을 굴려 쪽지의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이제, 내 소원은 이루어졌으니까 필요 없을 거 같아서. 솔아, 잘 지내지? 나는 잘 지내. 앞으로는 편지 안 할 거야. 이걸 네가 받았다는 보장도 없지만 솔아 나는, 그때 너를, 정말로, 많이, 사랑했어. 이제 진짜 안녕. 짧은 문장들에 담겨있는 의미가, 어렴풋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미련한 걸까 너는. 도대체 왜, 그 몸으로 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런 편지를 쓴 걸까. 내가 너한테 뭐라고. 책상 위에 편지와 팔찌를 올려두고 핸드폰을 들었다.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몇 번의 연결음이 가 전화를 받은 상대에게 말을 이었다.
"병원 주소, 지금 바로 보내"
살려,주,세요, 싫,어 으으. 조용했던 병실 안에 승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는 승관이 시근땀을 흘리며 꿈을 꿨다. 숨이 막혀 옴에 눈을 뜬 승관이 일어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 끔찍한 꿈이었다. 잘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살려달라고 빌어야 하는 꿈. 급하게 빨간 버튼을 누른 승관이 이불안으로 들어가 몸을 감싸 안았다. 빨리, 누가 와줬으면 좋겠다고. 누군가 자기를 살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이 열리고 뛰어 들어온 지훈이 승관을 흔들었다. 승관아, 승관아? 승관이 들려오는 지훈의 목소리에 이불을 살짝 걷어내고 지훈을 보다 눈물을 터뜨렸다.
"선생니임"
"..."
"무서워요, 흐으, 무서워"
지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승관을 끌어안아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승관아 응? 뚝하자. 자신을 끌어안은 지훈의 품으로 더 파고들며 훌쩍이던 승관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지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무서워서, 그래서.. 지훈이 작게 한숨을 쉬다 헝클어진 승관의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괜찮아, 잘했어. 지훈의 말에 승관이 살짝 힘을 풀며 떨어져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 수면제 조금만 더 주시면 안 돼요? 흘러나오는 승관의 말에 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충분히 많은 양의 수면제에 의존하고 있는 승관이었다. 양을 늘린다면, 승관의 몸이 버티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안돼, 더는. 선생님.. 대신, 선생님이 옆에 있어줄게 그러면 되지? 지훈의 말에 고민하던 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금 침대에 누운 승관의 옆 보조의자에 앉은 지훈이 승관의 손을 잡아 주었고 승관은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선생님, 오늘 몇 월이에요?"
"....5월"
"아, 5월"
"...."
"선생님, 있잖아요"
"응"
"누군지는 모르겠는데요"
"...."
"누가 자꾸 보고 싶어요"
승관의 말에 지훈이 고갤 갸웃했다. 누가, 보고 싶다고? 지훈의 질문에 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억은 안 나는데 되게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어요. 옅은 미소를 띠는 승관의 눈에서 눈물이 다시 흘러 베개 위로 떨어졌다. 지훈이 말없이 그런 승관의 손을 토닥이다 민규의 말을 떠올렸다. 최한솔이라는 사람인가.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리다 눈을 감는 승관의 모습에 이불을 끌어올려준 지훈이 가만히 승관의 가슴을 토닥였다. 그 사람도 네가 보고 싶을 거야. 이제 나쁜 꿈꾸지 말고 자자. 지훈의 말에 승관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다 곧 다시 퍼지는 약기운에 천천히 잠의 나락에 빠져들었다. 새근새근 들려오는 숨소리에 지훈이 자리에서 일어서 수액 조절을 하고 병실을 나와 차트를 뒤적였다. 5월 18일, 누군가 생각이 났다며 보고 싶다고 말을 함. 적어둔 펜을 가운에 끼고 걸음을 옮긴 지훈이 제 연구실에 도착해서야 민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가지 않은 연결음이 끊기고 민규가 대답을 하자마자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 지훈이 말을 이었다.
"승관이가, 한솔이라는 사람.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거 같다"
어쩌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고 승관이 지금보다 더 잘 지낼 수 있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봄날의 달빛은 구름을 끌어와 잠이 든 승관을 비추던 빛을 가려주었다.
어색한 부분을 고치려 노력했으나.. 거의 그대로인거 같네요ㅠㅠㅠ 이제 다음편 부터는 다시 새로 써야겠죠ㅎㅎㅎ 오늘도 짧은 느낌이지만 항상 봐주셔서 감사해요! 많이 아낍니다. 암호닉 ; 승관아, 하리보 내님들 모두 사랑해요 아껴요 하트하트 뿅뿅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