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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T/이동혁] 파스텔
w. 2젠5
그러니까, 김시민 걔는 좀 묘했다. 그 흔하다는 스마트 폰도 없었고, 교복 셔츠에 새겨진 이름은 매일 바뀌었다. 물론 평범한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래, 그 애한테 관심있는 나였으니까. 그러니까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애가 왜 이동혁이랑 등하교를 같이하는지, 왜 김시민과 대화하는 나를 이동혁이 죽일 듯이 노려보는지. 난 다 알 수 있었다.
우연히 간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의 얘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 학교에 햇살 보육원에 있는 애들이 꽤 있다는 이야기, 고아인데도 엇나가지 않는다는 그런 모진 말들. 저기, 선생님. 나를 보자 환하게 바뀌는 표정이 역겨웠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약간은 두렵기도 했다.
야, 이동혁이 김시민 좋아하는 것 같던데, 점심시간에 앞 자리에 앉은 이민형이 소세지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넌 그 말에 담긴 짐이 얼마나 큰 지 모르겠지. 애써 미소 지었다. 넌 그걸 이제 알았냐, 앞 자리에 앉은 이민형이 된장국을 퍼먹으며 눈썹을 찡그렸다. 그걸 아는 새끼가 가만히 있냐? 사실 나는 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한 사람은 아니라, 내가 김시민을 좋아하는 건 공공연한 이야기였다. 제노야, 내가 대신 고백해줄까? 그렇지만, 김시민이의 친구가 내게 그렇게 이야기를 건네왔을 때 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내 마음이 그 애한테 짐이 되는 건 싫었다. 나와 함께 웃다가 이동혁을 보곤 표정이 안 좋아지던 그 애를 기억한다. 미안, 제노야. 내일 보자- 내게 손을 흔들어주고 나가던 그 애의 뒷 모습도 기억한다. 그리고, 날 나른하게 바라보던 이동혁의 눈동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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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시간, 김시민과 짝이 되었다. 이동혁이 알면 난리치겠다, 시민이 또 엄청 갈궈지겠네. 이동혁의 앞에서 시무룩해져있을 김시민을 떠올렸다. 절로 상상되는 귀여운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제노야, 비밀로 해줄거지, 왼 손에 배구공을 쥐고 그늘로 향하는 중이었다. 날 뒤따르는 김시민이의 조용한 발자국 소리를 느끼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김시민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그 애의 말에 뭐에 묶인 것 마냥 가만히 자리에 멈춰섰다. 그때 고아원에서 자길 본 걸 비밀로 해달라는 걸까, 김시민과 눈을 맞췄다. 김시민이 눈을 피했다. 이동혁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 안다. 데이트 할 겸, 그렇게 말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이동혁을 기억한다. 김시민 앞에선 하지도 못 할 말을 나한테 했다.
뭘 비밀로 해달라는거야? 괜히 모르는 척 김시민이에게 물었다. 네 눈이 혼란에 가득 차있더라. 그리고, 그런 네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내가 미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던 것 같다. 김시민이 고개를 저었다. 아, 내가 착각했나봐. 미안해. 내 손에서 공을 가져간 네가 괜히 공을 바닥에 튕겼다. 통, 통 하는 소리가 너와 내 사이를 좁혔다.
점심시간이었다. 야, 김시민이의 말을 떠올리며 깨작거리고 있었는데 이민형이 제 젓가락으로 내 식판을 쳤다. 잠깐 얘기 좀 해. 이동혁이었다. 인사는 하지 않지만 서로 이름과 얼굴을 아는 사이. 이동혁과 나는 딱 그런 사이였다. 점심시간이라 운동장이 한산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이동혁이 바닥을 보고 걷다가 고개를 들었다. 너 다 알지. 나지막히 말하는 이동혁의 목소리가 김시민을 대할 때와 사뭇 달랐다. 아까부터 계속 모르는 말 투성이다. 내가 알아봤자 얼마나 안다고. 너희 둘의 사이에 대해서, 너희의 이야기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이동혁이 가만히 자리에 서서 발로 운동장의 돌을 툭툭 건드렸다. 시민이 고아 맞아. 이동혁이 나와 눈을 맞췄다.
이동혁의 말에 고개를 떨궜다. 얼추 짐작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근데 그걸 이동혁 네가 나한테 왜 말해주는거지. 떨궜던 고개를 들었다. 이동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김시민 좋아하잖아. 너. 이동혁이 제 머리칼을 느리게 쓸어올렸다. 햇살이 이동혁의 머리칼에 비쳤다. 이동혁도 알고 있었구나. 주말 전까지만 해도 날 죽일 듯이 노려보던 이동혁이었다. 김시민 마음에 상처 주지 마라. 보는 사람 힘드니까. 이동혁이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두 사람의 마음이 같았다. 나는 막 달려가는 중이었는데, 이동혁은 그 옆에서 가만히 맴돌 뿐이었다.
5교시는 김시민이 제일 못 견뎌하는 윤사시간이었다. 자꾸만 책상으로 향하는 김시민이의 동그란 뒷통수때문에 수업에 통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가방에서 하늘색 체육복을 꺼냈다. 그러는 순간에도 김시민이의 고개는 쉬지 않고 책상을 향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김시민이의 책상 위로 체육복을 놓아주려고 했다. [김시민 졸려도 자지마. 너 밤에 잠 못자고 뒤척이면 나 못 자] 정갈한 필체로 쓰여진 쪽지가 김시민이의 하늘색 필통 위에 붙어있었다. 이동혁의 글씨였다. 제노야, 다음시간 체육시간이니? 체육복과 그 쪽지를 사이에 두고 너무 긴 고민을 했던건지, 윤사 선생님은 날 날카롭게 바라봤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체육복을 가방 속으로 넣을 수 밖에 없었다. 이동혁은 생각보다 훨씬 김시민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구나, 싶었다. 나는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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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해야겠다. 김시민을 좋아하는 나는 한참 이기적이었다. 막 움트기 시작한 마음이 너무나 커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애만 보면, 마음이, 마음이 막 아리는게 첫 사랑이었지, 싶다. 그래서 학교 끝나고 영화보러가자고 널 잡았다. 아, 동혁이한테 말해주고 올게. 곤란해하던 네 표정을 기억한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시원하게 차여도 내 마음을 전하면 된거지. 하는 마음을 먹었으면서도 왜 자꾸 망설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영화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스크린 불빛에 비친 네 얼굴이 너무 예뻐서였을까, 아니면,
괜히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객기를 부렸다. 괜찮아 제노야. 어색하게 미소짓는 네가 아팠다. 괜히 널 떠보려는 마음을 먹은 내가 미쳤지, 싶더라. 버스 정류장에 앉았다. 학교에서의 네 자리와, 내 자리의 간격 만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그 간격만큼 떨어져앉았다. 제노야, 오늘 같이 영화봐줘서 고마워. 네 폴더폰이 빛나고 있었다. 분명히 이동혁이겠지. 네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 사실 이동혁 말고 다른 애들이랑 영화 본 거 처음이거든. 이상하지. 머리를 긁적이는 널 안아주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난 다 아니까 편하게 말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김시민 마음에 상처주지 마라. 그렇게 말하는 이동혁과 김시민이 겹쳐보였다.
네가 타야하는 버스가 전 정류장에 있다는 알림이 떴다. 네가 가방에서 버스카드를 꺼냈다. 계속 뒤돌아서 내게 인사하는 네가 좋았다. 김시민, 신호등 너머에 네가 타야하는 버스가 서있었다. 널 불렀다. 응? 네가 뒤 돌았다. 검은 머리칼이 옅게 흔들렸다. 좋아해. 많이. 차마 널 볼 용기가 없었다. 버스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네가 타는 소리가 들렸고, 버스가 떠났다. 어두운 버스 정류장에 나 혼자 남았다. [미안해 제노야, 나 좋아하는 사람있어.] 너 다운 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