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창가를 때리는 빗방울소리에 머리가 아파왔다.
창밖엔 잊어버린 비바람이 다시금 너를 아프게 상기시켰다.
라디오에선 니가 즐겨부르던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픈 머리를 진정시키려 커피잔으로 손을 뻗었다.
탁자엔 이미 비어버린 커피잔 두 개가 놓여있었다.
커피잔은 분명 두 개인데, 외로워보이는 이유는 뭘까.
너의 빈자리.
너의 빈자리가 외로워 난 사람이 고팠다. 홀로 외로움과 싸우는것이 벅찼다.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생각해보니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비를 맞으며 거리를 휘청거리듯 헤메었다. 멀리서 눈에 확 들어오는 새빨간 우산 하나가 보였다.
새빨간 우산을 즐겨쓰던 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빗소리에 섞여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비가 멈추었으면 했다. 자꾸 비가 내리던 그날이 다시 반복되는것같았다.
설레기만 했었던 그날이 이제는 마치 악몽과도 같이 내 가슴을 후벼팠다.
젖은 운동화는 덜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무겁게 끌렸다.
익숙한 영화관이 보였다.
너는 영화를 참 좋아해서 우린 자주 왔었다.
항상 팝콘 하나, 콜라 두개를 샀었다.
팝콘을 우물거리는 너의 모습이 귀여워 나는 먹는 시늉만 하고서 너를 흘끔흘끔 훔쳐보았었다.
추억들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와 나는 그곳에서 도망쳤다. 채 몇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익숙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 남자 둘이 카페에서 무슨 할말이 있겠냐고 면박을 주었더니 너는 예의 그 맑은 웃음으로 나를 항복시켰었다.
그 후로 우리는 카페에 자주 들렀다. 항상 영화가 끝난 후에 넌 그 작은 손으로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었다.
카페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과 향긋한 커피향 사이로 나른하게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는 내 머릿속을 마비시켰었다.
눈물이 터져나올것같아 발걸음을 돌렸다.
젖은 옷이 찝찝하게 온몸에 휘감겼다. 너도 같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휘감았다. 너와의 입맞춤.
지금 내리는 이 비가 날 위로해줄까. 비에 씻겨지는 저 길처럼 너도 같이 씻겨진다면 좋을텐데.
널 자꾸 생각나게 하는 빗소리가 멈춰주었으면 했다.
니가 없는 자리를 가득 채운 빗소리, 뭘 해도 마르지 않아.
이런날 니가 생각나기엔 딱 좋아 난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