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음란한반찮
아련
"그래서. 그 할말이라는게 뭔데?"
준홍은 대현의 눈을 보지 않고 땅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현은 그게 화가 났다. 분명히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잘 따르던 아이가 그 후로부터 자신을 보지도 않는 다는 것, 그래서 참다참다 못해 화 한번 냈더니 그길로 눈도 안마주치고 짐같은것도 챙기지 않고 집을 나가버린 것, 그리고 현재 자신의 눈을 보려고 하지도 않은채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그 모든 준홍의 행동이 거슬리고 짜증이 났다.
"너 대체 나한테 왜그래? 불만있으면 속시원하게 털어놓던가 찌질하게 이게 뭐하자는 짓인데"
순간 준홍이 고개를 살짝 들어 대현을 보는가 싶더니 금새 내려버리고 말았다.
"정대현, 이제 그만 가."
준홍의 목소리가 떨리는 듯 느껴진것이 착각이라고 믿고싶었다.
폭발했다.
"최준홍. 이 찌질한 새기야. 그냥 터놓고 말하라고!!썅 대체 뭐가 불만인데!!"
준홍이 대현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는 흔들리는 눈으로 대현을 내려보더니 어깨를 꽉 붙잡고 흔들었다.
"정대현 넌!!!!!죽어도 내 맘 몰라. 너랑 나랑 생각하는게 다르다고, 알어?? 넌 씨발 내가 맨날 너 가지고 무슨생각 하는지도 모르잖아! 내 눈앞에서 얼쩡거릴때마다 내가 얼마나..!!!......................................하......됐다, 말을 말자."
대현은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듯했다. 도대체 준홍이 무슨말을 하는건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니까...맘을 모른다고 얼쩡거리고, 뭐 어쨌다고? 대현이 손을 들어 준홍의 팔을 붙잡고 진정시키듯이 위아래로 쓸어내렸다.
"준홍아, 니 맘 다 이해 하니까, 집에 가자. 여기서 무슨고생인데 너...읍"
입이 막혔다. 다가온 준홍의 입술이 대현의 말을 막고, 입을 막고, 숨을 막았다.
대현의 몸이 얼은듯 굳어버렸다. 준홍의 입술이 떨어졌다. 준홍은 아직 대현의 어깨를 잡은 채였고, 대현의 손은 준홍의 팔을 꽉 붙들고 있었다.
"정대현. 알겠어? 내가 집에 못들어가는 이유. 날 이해한다고? 나 너만보면 이래. 더러운 생각이 들어. 이것보다 더한거 맨날 꿈에 나왔어. 상상할수나 있겠어? 내가 너한테 항상 이러고 싶었다고, 근데 너는 아니잖아. 나랑 틀리잖아. 넌 나 이해 못해."
준홍이 미친듯이 지껄였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것같았다. 미친 사람처럼 희번덕거리는 눈은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대현의 어깨를 쥔 두 손이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대현은 눈을 차갑게 굳혔다. 준홍이 자신에게 이런 생각을 가지고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피는 섞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엄연한 형제였고, 게다가 같은 걸 달고태어났는데.
"너 게이야?"
대현이 못을 박듯 단호하게 물었다. 떨고있던 준홍의 손이 멈췄다.
"더러워"
준홍의 손이 주르륵 미끌어져 내려왔다.
"집으로 평생 들어오지 마라"
대현의 목소리는 한겨울 호수처럼 차가웠고, 햇볕에 잘 건조된 지푸라기처럼 메말랐다. 더러워. 그 한마디가 준홍의 심장에 파고들어 아프게 박혀들어 자국을 남겼다. 혐오스럽다는듯 노려보는 대현의 눈길이 아팠다. 대현이 휙 뒤돌아 떠나갔다. 그런 대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준홍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말하지 말 걸 그랬다.
집으로 돌아온 대현이 화장실로 뛰어가 입술을 박박 씻어냈다.
"더러운 새끼
씨발새끼
호모새끼..."
믿었던 동생의 배신에 치가 떨렸다. 그동안 자신을 그런눈으로 봐왔다니.. 안그래도 학교에서 자신에게 껄떡대는 놈 들이 있어서 얼마나 기분나빠했었는데, 심지어 그 얘기를 준홍에게 털어놓으며 짜증부렸었던 자신이였다. 그런 얘기를 들을때마다 그는 무슨생각을 했을까.
자신을 비웃었을까? 혼자 속을 곯고있었을까?
생각하기도 싫었다.
준홍은 정말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가 흐르고, 3일이 흐르고, 몇일이 더 흘렀다.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그 날,
집으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현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네 ㅇㅇ병원입니다. 최준홍씨 댁 맞나요?"
"맞는..데요"
느낌이 좋지 않았다.
"...지금 이쪽으로 와주셨으면 하는데요"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가 무겁게 들려왔다.
병원으로 급하게 달려간 대현이 주저앉은 그곳은 병원 지하에 있는 영안실이였다.
흰 천을 급하게 걷어내었다. 보기싫게 일그러진 얼굴때문에 불타는듯 빨간 머리가 아니었더라면 거의 못알아볼뻔 했다.
천을 다시 머리끝까지 올려놓았다. 멍해있는 대현에게 비수같은 말이 꽃혔다.
"부검결과 약물에 의한 자살입니다."
떨리는 대현의 손에 종이조각이 쥐어졌다.
"그리고 이거...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입니다."
종이를 펼치자마자 보이는 자신의 이름에 대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눈앞이 뿌얘져서 한글자도 보이지 않았다.
입술을 깨문 대현의 손안에서 종이가 갈기갈기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