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 좀 잡아주라....'
무슨 뜻이었을까...나 좀 잡아주라니 남우현이 나한테 그런 말을 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슬
픔이 깃들여 있었다. 5년 동안 난 남우현의 인형처럼 살아왔다.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고 남우현이 시키는 거라면 반항없이 다 했다. 처음에는 그저 몇 번
저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에 군말없이 따랐던 것이었는데 마치 점점 부풀어가는
풍선처럼 그 빈도는 점점 증가했고 결국 그 풍선은 터져버려 수습할 수조차 없
게 되어버렸다. 나는 이미 남우현의 인형이었고 남우현은 날 갖고 노는 6살짜리
꼬마아이가 되어있었다. 정말 제멋대로였다. 남우현은.
남우현을 처음 만났을 때 남우현은 많은 선배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다른 아
이들은 또래 친구들이나 부모님과 오는데 반해 그 학교를 비롯해 다른 학교의
선배들까지 대충 봐도 6명 정도 되보이는 선배들은 남우현을 지키는 경호원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면 욕을 짓껄여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쬐그
만 중학생들이 겁주는 모습이 우스웠을 것 같지만 그때 나는 그런 남우현을 부
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나이때는 한창 그런 게 부러워 보이고 좋아 보
일 때니까 그때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지마는. 하여튼 남우현은 중학교 3년을
선배들 덕에 편안하게 보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나는 남우현에게 죽어났지만.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남우현은 중학교 졸업식, 고등학교 입학식까지 늘 부모
님 대신 선배들이 왔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다. 그동안 난 남우현
옆에서 그렇게 셔틀짓을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상하다는 것을 못 느꼈을까.
하긴 그때 그 상태였으면 난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으니 남우현의 인생따위에 끼어들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
면 혹시 이것과 관계 되어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평소에 안 쓰던 머리를 갑
자기 굴릴려니 머리가 놀랬나보다. 결국 두통이 점점 심해져 선생님에게 보건실
에 가 있겠다고 한 뒤 옥상으로 향했다. 보건실보다는 옥상에서 찬바람을 쐬야
두통이 좀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옥상으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평소
처럼 가볍지가 않다.
역시나 내 예상은 틀리지가 않는다. 옥상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형체 하나와 낯
선 형체 하나가 바닥에 앉아서 투닥투닥 거리고 있다. 난 다시 문을 닫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런데 그런 날 발견한 명수선배가 큰소리로 날 부른다.
"야! 쭈구리 어디가냐?"
쭈...쭈그리....나보고 쭈구리라니. 난 시무룩한 얼굴로 명수선배를 쳐다보았다
. 처음 보는 선배로 보이는 사람도 날 쳐다보고는 푸하하 웃는다. 명수선배가
자기쪽으로 오라며 손짓한다. 난 하는 수 없이 문을 닫고 명수 선배 옆에 걸어
가 앉았다. 오늘따라 더 바닥이 차다.
"또 수업 땡깠냐? 이거이거. 완전 생양아치라니깐?"
"머리가 아파서 잠깐 바람쐬러 온거예요."
"개구라 즐."
선배가 그러더니 언제부터 먹고 있었는지 바닥에 놓여있는 피자판에서 남은 마
지막 피자 한조각을 집어들어 한입 베어문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선배가 명
수선배의 등을 찰싹 때린다.
"아, 개새끼야! 지 혼자 다섯 조각을 쳐먹어."
"원래 돈 낸 사람이 많이 먹는거야. 돈도 100원 보탠 게 지랄이야."
"돈 없는 게 죄냐?"
"야, 쭈구리. 근데 너 오늘 또 어디 터졌냐? 얼굴이 왜 그래?"
"얼굴 원래 이런데..."
사람 놀리는 데는 진짜 1등이다. 명수선배가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
다. 그리고 옆에 앉아있는 앉은키가 큰 선배는 날 한 번 훑어보더니 옆에 놓여
있던 콜라를 내게 건넸다.
"얼굴 안좋아 보이는데 이거 마셔."
아니, 내 얼굴 원래 이렇다니까... 난 몸을 반대로 돌려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콜라를 받아들었다. 내가 콜라를 한 모금 마시자 그 선배가 다시 내게 말을 걸
었다.
"너 이름이 뭐야? 난 여기."
선배가 자기 마이에 붙어있는 명찰을 두 손가락으로 살짝 잡아 보여준다. '이성
열'이라고 써있다. 난 '김성규요' 라고 소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 너 나 기억 안 나냐?"
"네?"
무슨 기억? 난 선배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 내려고 시도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 얼굴을 잘 잊어버리곤 했었는데 아마 이 선배도 내가 잊어
버린 사람들 중에 한 명인가 보다. 선배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기억 안 하는 게 좋을거다."
"....그게 무슨."
"야 이성열."
명수선배가 싸늘한 표정으로 성열선배를 쳐다본다. 성열선배는 말없이 내가 들
고있던 콜라를 뺏어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이 두 사람. 나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다. 명수 선배는 기분이 나빠졌는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낸다. 하지만 담
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낮게 욕을 짓껄이며 담뱃갑을 구겨서 바닥에 내동
댕이 쳐버린다. 난 이런 분위기가 낯설어 일부러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
다. 하늘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도 맑다.
"근데 쭈구리. 너 무슨 고민 있냐? 내가 딱 보면 그 사람 심리 상태를 알 수 있
거든. 넌 분명히 고민이 있어. 뭔데? 빨리 말해봐."
"…."
근데 이 형은 아까부터 계속 내 얼굴 가지고 난리다. 어쨌든, 난 이걸 말할까
말까 고민에 잠겼다.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될 문제 같지는 않은데 어디다 말할
데도 없고 그냥 말하려니 이 형들이 남우현을 알까봐 걱정이고 어떡하지? 내가
잠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나 보다. 명수선배가 내게 말했다.
"뭔데? 말해봐. 괜찮아."
명수 선배가 그러니 용기가 생긴다. 그래, 남우현이란 이름은 빼고 말하면 이
선배들도 모를 것이다. 난 용기를 내서 입을 뗐다.
"그러니까 제 친구 중에 약간 힘이 센 애가 있는데요."
"응."
"걔가 그러니까....오늘 음 저랑 다른 애랑 말다툼이 있었는데 걔가 갑자기 와
서 그 애를 때렸어요."
"오, 물건이네."
성열 선배의 리액션이 거슬렸는지 명수선배가 인상을 팍 쓰며 성열 선배의 뒷통
수를 빡-하고 때렸다. 성열 선배가 '왜때려!' 하고 화를 냈다.
"계속 말해봐."
"아, 개새끼!"
"그런데 걔가 제 옆을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나 좀 잡아주라...'"
"…."
"이렇게 말하고 나가버렸는데 안 와요."
".....씨발."
명수 선배와 성열선배의 표정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당황한 얼굴로 쳐다보자 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명수선배
가 날 내려다보면서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우현 지금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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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 무슨 스토리 구상이니 어쩌니 이런 거 생각하다보니 글이 안 써지네요 ㅠㅠ
원래 완결까지 다 써서 텍스트 파일로 한 번에 올리려고 했는데 또 이렇게 안 올리면 책임감이 없어져서
흐지부지 될까봐 올려요. 석류님,감성님 사랑하구요♡ 또 보이지는 않지만 눈팅해주시는 분들 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메모장에다 써서 붙여넣기 하니까 문단도 엉망이네요. 이해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