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아이 홀로 집에 오는 길을 홀로. 이별 후, 집으로 혼자 돌아오는 길은 의외로 별 거 아니었다. 아프고 힘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고, 울고 불고 난리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길을 걸으면서 맑은 날씨에 감탄했으며 눈이 시리도록 파란 빛을 띈 하늘을 보고 작게 탄성을 뱉기도 했다. 유치원에 다녀오는지 노란 가방을 맨 자그마한 아이를 보며 인사를 건넸고, 손을 맞잡고 나란히 길을 걷는 노부부를 보고 미소지은 일도 있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았다. 텅 빈 방 침대에 홀로. 집에 돌아와서도 그 전과 같이 일상적인 일들의 연속이었다. 헤어지기 전의 어느 날 걱정했던 이별과 다르게, 오히려 그 때보다 머리가 맑아진 듯한 기분이었다. 이별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고,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니었기에 너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남기고 정리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설렘에 잠 못 이루던 때보다 훨씬 쉽게, 일찍 잠에 들 수도 있었다. 그게 끝인 줄 알았다. 너와의 기억에 홀로, 나 홀로 무뎌질 가슴 안고 추억 속에 살아 홀로. 방 안에서 깨면 홀로. 새벽 한 시 쯤 됐을까. 갑자기 눈이 뜨였다. 익숙하게 더듬은 옆자리는 차가우리만치 허전했고 눈 앞에 비친 건 새카만 어둠 뿐이었다. 문득 눈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후두둑 쏟아져내렸다. 울려고도, 참으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제멋대로 눈시울을 비집고 나왔다.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 목구멍을 치고 터져나왔다. 잠에서 깬 까만 방 안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문득 현실로 다가왔다. 낮 동안 멀쩡히 생활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홀로 울었다. 서럽게, 울었더랬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무렇지 않았던 게 아니라 실감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걸. 늘 있던 네가 없어. 익숙해지겠지, 나 홀로. 한참을 아이처럼 울고 나서 빨갛게 퉁퉁 부은 얼굴을 찬물로 씻어내렸다. 뒤늦게 찾아온 이별의 후유증이 하수구로 내려가는 수돗물에 모두 흘려간 줄 알았다. 그러나 침대에 몸을 눕힐 때 느껴진 너의 향이, 익숙하게 네 품을 찾아 뒤척이는 내 습관이 다시금 애써 막아둔 둑을 터뜨렸다. 눈을 뜨면 네가 보이는 것 같아 눈을 꼭 감고 아이처럼 울어댔다. 그런데, 눈꺼풀 안에도 네가 있었다. 너와 내가 우리란 말로 함께할 수 있었던, 그 때의 네가. 희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눈을 한껏 휘어뜨리며 웃던 네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 눈 안에 나만을 담으며 네 마음을 속삭이던 네가. 처음 날 만나서 설레었던 네가. 그저 날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네가 눈꺼풀 안에 있었고, 방 안에 보였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진이 다 빠질 때까지 울었다. 이러고 나면 익숙해지겠지, 네가 없는 나 홀로의 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