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이 죽음에 또 한발자국 다가가고
택운이 반쪽세상을 잃고
재환이 스스로 제 반쪽을 포기하길 마음먹고
원식이 더 독해지려 마음먹고
홍빈이 스스로가 악을 향해 걸음을 내딛고
상혁이 순수를 잃은
폭풍같던 일주일이 지나고
이곳에도 새로운 오늘의 태양은 떠오른다.
*
일주일 사이 많이 긴 앞머리로 왼쪽 눈을 가린 택운은
여전히 제 옆에서 떠날 줄 모르는 재환을
억지로 문 밖으로 밀어내며
돌아가라 말했다.
"재환아. 이제 그만 돌아가."
"형. 나 그냥 형 옆에 있을래요."
"재환아."
"사실. 학연이형도 식이도 홍빈이도. 혁이도 볼 자신이 없어."
"왜 또 울어. 응? 재환아. 형 괜찮다니까."
"보면 내가. 울면서 다 말해버릴까봐. 나때문에 형이 다쳤다고 다 내 잘못이라고 빌고싶으니까."
"재환아. 이제 그 생각은 그만하자. 응? 너 안다친거 그걸로 됐어."
택운은 재환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거친손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내게 남은건 너네뿐이라,
너희들이 아프지않는다면 난 그거 하나면 된다고.
택운은 이리저리 눈물을 닦느라 정신없는 재환의 몸을 돌려 등을 밀어 문 밖으로 내보냈다.
"가서 동생들 잘 돌봐주고 있어."
택운은 재환의 손을 억지로 끌어내려 오른쪽 눈으로 재환의 양쪽눈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그만울자 이제. 내동생… 재환아."
문을 걸어닫고 택운은 돌아선다.
침대로 걸어간다.
분명 제대로 걸어갔는데
한쪽눈으로만 바라보는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택운의 앞길을 막는다.
이리저리 부딛힌다.
겨우 침대에 앉아 바짓단을 걷어보면
이미
멍투성이인 다리.
택운은 마른세수를 하면서 한숨을 내쉰다.
*
재환은 택운이 걸어잠근 문을 한참을 두들기다
문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와 기대어 앉는다.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뭍는다.
아직까지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은
흥건하게 묻어나온다.
꼬박 일주일을
밥도 제대로 먹지못하고
틈만나면 울어 허약해진 몸이
마치 이 눈물을 모두 쏟아내고 쏟아내서
녹아 없어져버리겠다는 듯.
"이재환"
낯선 목소리.
고개를 들어보면 이곳사람들 중 하나일
흰 가운을 입은 사람.
"돌아가라."
재환은 말을하고 돌아서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급히 뇌리를 스치는 말을 꺼내기 위해 목을 가다듬는다.
짓물러버린 눈가를 타고 흐르는 눈물들이
멈추지 않아 허둥대면서도 일주일동안 우느라 애쓴
목소리를 겨우 가다듬어 남자를 부른다.
"저기…!"
남자는 돌아본다.
이내 별볼일 없다는 듯 자기 갈길을 간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고 일어난다.
어느새 비틀거리면서도 남자를 따라잡은 재환은
남자의 흰 가운자락을 잡고 무너져내린다.
"택운이형 눈… 고칠 수 있죠? 있잖아. 당신들 뭐든 해내잖아요…"
남자는 흥미롭다는듯 팔짱을 끼고 재환을 내려다본다.
"그래서…?"
"도와주세요…제발…뭐든 할께요…!"
"뭐든…?"
"제 눈을 멀게해도 좋아요… 형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남자는 재환을 한참 쳐다보다 손을 들어
재환의 머리위로 올려놓는다.
움찔 감은 눈이 무색하게 남자는 재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다른사람들과는 다른 안쓰러움이
가득 묻어있는 눈동자.
처음이다.
"…그건 네 일이 아니야…"
"연구관님…"
"곧… 네가 원하는데로…"
남자는 쓰게 웃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재환.
니가 생각하는것 만큼 좋은일은 아닐텐데.
하나에 감사하려면
여긴 또 다른 희생이 필요한 곳인데
나이차도 얼마나지 않는
너희들을.
이런 너희들을 보는 내가.
다른의미로 나라의 개가 되어버린 내가.
생각해본다.
만약 평범한 세상에서
너희를 만났더라면.
이내 남자는 머리를 젓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 주지 말자.
"감사해요… 정말…"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재환은
그저 택운을 고쳐준다는 말 하나로
머리가 땅에 닿을만큼 인사를 했다.
쓴 표정을 감추지 못한 남자는
그저 인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재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미안…'
*
문을 열고 들어온 오랜만에 본 학연이형은
더 야위어있었고 더 초췌해져있었다.
그리고 곧 쏟아지는 그 몸을
정신없이 뛰어가 받아내고나면
느껴지는 옷에 가려 보이지않는
앙상한 몸이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만들었다.
옛날 그 어렸을때.
놀이공원에서 엄마가 내 손을 놓고 떠나가던 그때.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어릴때.
그때 이후 처음으로 비집고 나온 눈물에
나는 어쩔줄 몰랐다.
형은 정신을 못차리는 그와중에도
"혁아… 왜 울어… 형 괜찮아…"
힘없이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부들거리는 팔을 들어서 내 눈물을 훔쳐냈다.
뿌옇게 변하는 형의 얼굴을 바라보며
난 계속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여야만 하기에.
형들이 지켜주려했던 아늑한 내 새상을 위해.
형을 향해서 씩 웃어보였다.
"형이 너무 오랜만이여서… 너무 보고싶었어서 그런가봐요…"
거짓말
그저 형들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도
난 부러워만 했었다.
밖으로 나가서 얼마나 좋은걸 보고
얼마나 맛있는걸 먹길래
이렇게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느냐고.
형들은 날 안전한 새장속에서 보듬어주려
상처받는지도 모르고.
형은 내 웃음을 보고
안심한듯 그제서야 아슬아슬 붙잡고 있던
정신의 끈을 놓고
내 품에서 잠이들었다.
힘이 풀린 형의 손에서 툭하고 떨어진
이상한 모양의 물체.
그 중 하나를 집어들면
가끔 검사를 한다며 내 피를 뽑아가던
주사기 모양과 똑같이 생긴 물건.
하지만 늘 비어있던 그것과는 다르게
안에 채워져있는 액체.
주사기를 빙 둘러 붙어있는 스티커에는
그 옛날에 멈춰버려 쓰진 못하고 읽을줄만 아는 한글로
'마약(진통제)'
한참을 생각해보고 고민해봐도
마약이라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으니
알 방법이 없다.
*
갑자기 열리는 문에 당황해 등 뒤로 주사기를 숨긴
상혁은 문을 열고 들어온 재환을 보며 어색하게 말했다.
이미 다 알아버린 상혁이지만.
그래도 형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것을
보여줄 수 있을만큼 클때까지.
모른척하기로 했다.
등 뒤로 급하게 숨긴 주사위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감히 말할 수 없다.
밀려오는 불안감에 상혁은
재환 몰래 바지 뒷주머니로 주사기를 감춘다.
"택운이 형은요?"
대신 물어본다.
같이갔던 택운의 행방을.
재환의 눈동자가 떨린다.
뒷머리를 긁적인다.
"…늦게… 늦게 온대…"
상혁은 안다.
재환이 거짓말을 할때
뒷머리를 긁적이는것을.
불안할때. 걱정될때.
손톱을 물어뜯는것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제 다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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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ㅠㅠㅠㅠ 잠이 쏟아지네요ㅠㅠㅠㅠㅠ
내일은 월요일입니다ㅠㅠ 힘내서 일주일 잘 보내자구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