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산소
생각보다 훨씬 큰 아파트에 놀라 입을 떡하니 벌린 채 으리으리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던 파리가 내 입속으로 들어가려던걸 급히 막고 종이에 적힌대로 10층으로 올라가 문앞에 서서 떨리는 손으로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저… 가정부 구하신다고…"
"아, 네 잠시만요."
잠시 기다리라는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문앞엔 굉장히 익숙한 남자가 서있었다.
"엑… 엑소?"
"어제 연락하셨던 분이죠?"
"네? 아, 네."
"생각보다 많이 어려보이시는데."
"아니에요! 저 집안일 잘해요!"
"뭐, 그럼 됐구요."
놀랍게도 나를 맞이한건 티비에서만 봤었던 아이돌가수인 엑소의 수호였다. 깜짝 놀라 신기하게 쳐다보는 나를 별 내색없이 집안으로 안내한 수호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내가 할일과 주의할점 등을 알려주었고 나는 다른 멤버들이 없나 기웃거리며 찾기 바빴다.
"출근은 7시부터구요, 밤 10시에 퇴근하시면 되요."
"아, 네."
"그럼 일단 지금 방청소부터 부탁드릴게요."
"근데, 저기 다른 멤버들은…"
"아, 다들 연습중이에요. 저녁쯤에 돌아올거에요."
"아…"
"저도 가봐야해서. 좀 이따 뵈요."
수호가 나간 후 나는 아까 제대로 못한 집구경을 시작했다. 12명이 다같이 쓰는 집이라 그런지 거실 크기가 축구를 해도 될 정도로 굉장히 컸다. 먼저 가장 큰 방으로 들어서니 깔끔한 파란색 벽지와 한눈에 봐도 커다란 침대 두개가 놓여져 있었다. 남자들만 살아서 더럽거나 홀애비냄새가 날줄 알았는데 의외로 깨끗하고 평범한 방에 조금 놀랐다. 이어서 두번째, 세번째 방으로 가보니 이 곳 역시 차곡차곡 정리가 잘 되어있었다. 이럴거면 가정부는 왜 고용한거지… 수호의 부탁대로 방청소를 시작하려 했으나 딱히 청소할만큼 더럽다고 느끼지 않아 대충 청소기만 한번 쓱 돌리고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금방 끝난 청소에 허무함을 느끼고 세탁기 쪽으로 가보니 드디어 내가 할 일을 발견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옷들을 색깔별로 구분하고 먼저 색깔있는 옷부터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그러다 무심코 집어든 팬티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 다시 내려놓았다. 겉옷만큼이나 화려한 형형색색의 팬티들을 쳐다보다 차마 손빨래는 하지 못할 것 같아 세탁망에 집어넣어 그냥 같이 세탁기속에 골인시켜 버렸다. 또 할일이 없을까 하고 주방에 들어가 싱크대에 조금 있는 설거지까지 하고나니 곧 나른해졌다. 물묻은 고무장갑을 벗고 넓은 거실 쇼파로 가서 멍하니 앉아있다 나도 모르게 잠이들었다.
"저기요."
"저기 아줌마?"
"야 아줌마는 좀 너무했다, 누나?"
주위가 시끄러워 점점 정신이 돌아오며 잠이 한번에 확 깨버렸다. 깜빡 잠이 든 나를 엑소들이 빙 둘러 싸고있었기 때문이다. 티비에서만 보던 엑소가 내 눈앞에 있다니… 아니 그보다 지금 몇시지?
"누나 밥은요?"
"네? 바, 밥이요?"
"우리 배고픈데…"
"헐. 어떡해, 죄송해요. 지금 빨리 만들게요!"
"괜찮으니까 천천히 해요."
저녁밥 준비하는걸 새까맣게 잊고 잠이나 자다니. 서둘러서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여는데 디오가 옆으로 다가와 도와드릴게요. 라며 같이 냉장고를 뒤졌다. 최대한 빨리 그리고 쉽게 만들 수 있는건 역시 볶음밥이지. 김치 볶음밥을 하기위해서 김치를 꺼내고 양파와 햄 등 이것저것을 같이 꺼냈다.
"이름이 뭐에요?"
"ㅇㅇㅇ이요!"
"아, ㅇㅇ씨. 어려보이는데 왜 이런 일 해요?"
"사정이 있어서… 근데 저 디오씨보다 나이 많아요!"
"아 그래요? 그럼 그냥 편하게 경수라고 불러요."
"아… 네 경수씨."
디오, 가 아니라 경수와 얘기하다보니 요리가 왠지 더 빨리 끝난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만들어보지않은 12인분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볶음밥을 각자 그릇에 담아놓고 식탁에 올려놓은 뒤 멤버들을 불렀다.
"밥이다!!!"
"아 박찬열 시끄러워."
"경수야 나 숟가락 좀!"
"헐 야 엄청 맛있어."
"아 뺏어먹지말고 니꺼 쳐먹으라고!!"
눈앞에 펼쳐친 차마 말로 이룰 수 없는 엄청난 광경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누가 저 사람들을 무대위에 카리스마 있는 엑소라 생각할까… 뒤에서 조용히 엄마미소를 지으며 밥을 먹는 엑소를 지켜보고있는데 경수가 밥을 먹다 말고 말을 걸었다.
"ㅇㅇ씨도 같이 먹어요."
"맞아 누나 이리와여."
"아… 전 괜찮아요! 배 안고파요!"
"그래도 경수 말대로 같이 먹죠."
"진짜 괜찮아요. 수호씨 많이 드세요."
저 틈에 끼어서 밥을 먹다가는 체할게 분명했기 때문에 극구사양을했다. 엑소가 밥을 먹는동안 나는 거실로 가서 집에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한것도 없는데 괜히 피곤해져 쇼파에 기대앉았다. 그새 밥을 다 먹었는지 레이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이거 머거요."
"네?"
레이가 나에게 살며시 건넨 것은 미니쉘이었다. 초콜렛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감사히 받은 후 바로 입으로 집어넣었다. 맛있게 먹는 나를 보고는 씩 웃는 레이에게 괜히 설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직 식사중인 엑소를 향해 인사를 하고 현관으로가 신발을 신는데 경수가 쪼르르 달려와 배웅을 해주었다.
"ㅇㅇ씨 조심해서 가요."
"네 고마워요. 내일 봐요, 경수씨."
"누나 잘가요!!!"
"빠이빠이!!!!!"
마지막까지 시끄러운 인사를 받으며 집에서 나와 현관문을 닫았다. 아파트 건물을 빠져나오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 가정부일 제대로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