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끝나고 나와보니, 예고없이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여름의 초저녁치고는 너무 어둡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투닥거리는 두드림이 윗층 교실 공사 소리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맞고가기엔 너무 세차게 쏟아지는 빗방울들에 마른 침을 한 번 삼켜 내었다. 아마 이 비를 그대로 맞고 집에 간다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할 지라도 지독한 감기에 걸릴 것이 분명했다. 양 옆으로 우산을 쓰거나, 포기하고 뛰어가거나, 가방을 뒤집어 쓰고 간다던지의 꽤 많은 아이들이 와르르 쏟아져 지나갔다. 몇 명이 어깨를 치고 뛰쳐 나가는 바람에 얼떨결에 밖으로 밀려났다가 비를 맞곤 놀래서 황급히 다시 서 있던 곳으로 뛰어 들어왔다. 잠시 맞은 비였는데 머리가 꽤나 얼얼했다.
나는 그 고통을 감수하며 감기에 걸려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의 패기가 없었으므로, 자리에 멀뚱히 서 있는 수 밖에 없었다. 감기에 걸리는 것은 싫었고, 그렇다고 우산이 있는 애를 붙잡아다 같이 쓰고 가자할 두꺼운 낯짝도 없었다. 어차피 아는 애도 없는데 무슨. 한숨을 폭폭 쉬다가 팔을 밖으로 뻗자, 차가운 빗방울들이 피부 위로 부딪혔다. 얼얼할 정도로 힘차게 부딪히곤 내 열에 미지근하게 식어서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팔 밑으로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넌 집 안 가냐?"
아. 갑작스레 치고 들어온 질문에 놀라서 심장이 쿵쿵 거렸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이미 내 입 밖으로 작은 소리가 튀어 나간 뒤였다.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저를 쳐다보는 나를 보며 옆 편에 삐딱하게 서 있던 남자 아이가 다시 비가 내리고 있는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짙은 눈썹이 약간 뒤틀렸다. 얼굴이 낯익은게 분명 우리 반에서 본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났다. 민…… 뭐였더라. 매일 본 건 아니었지만 가끔 눈에 들어올 때 봤던 걸로는 엎어져 있는 것 밖에 기억이 없다. 아까 수학시간 때는 아예 자리를 비우길래 양아치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팔교시까지 채우긴 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나도 누굴 평가 할 처지는 아니었다. 하루종일 잠에 빠져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비우고 다시 그 아이를 쳐다 보았다.
"우산 없어서 못 가고 있는 건가 보네."
그는 누군가 빤히 쳐다보는게 익숙한건지,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인지, 옆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내 쪽엔 한 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곤 연신 비가 내리는 바깥만 쳐다보고 있었다. 대답을 원하고 던진 질문은 아닌 듯 했다. 그의 왼 손에는 진한 남색의 우산이 들려 있었다. 딱히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어서 또 가만히 있는데, 이번엔 다시 내 쪽을 쳐다본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우산이 팡, 하고 시원하게 펴졌다. 우산을 이리저리 두 어번 의미없이 돌리던 남자 애는 고개를 까딱였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가 싶어서 가만 있었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제 쪽으로 오라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쟤랑 친하지가 않은 걸. 이름도 제대로 못 외운 애랑 같은 우산을 쓰고 간다는 것은 여간 낯 뜨거운 일이지 않는가. 심지어 우리는 오늘 처음 얘기를 해 본 사이이다.
"우산 없으면, 같이 쓰고 가던가."
이번에도 대답을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아, 정말. 짧은 투덜거림을 던진 아이가 휘적휘적 내 쪽으로 걸어와 우산을 씌워줬다.
"어디야."
"……어?"
"집, 어디야."
어딘지 알아야 데려다주지.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남자아이가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홀리듯이 내 주소를 읊었다. 살짝 젖어있던 머리카락이 어느새 말라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