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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XX/이홍빈] 킬미힐미 02 | 인스티즈



02


철컥- 하고 잠기는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갑갑하게 느껴졌다.

나는 차 문고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안전 벨트" 그가 말했다.


"아-" 나는 깜빡 잊었다는 듯 탄식을 내뱉으며 이내 얼른 손을 뻗어 벨트를 맸다.


내 몸을 가로지르는 그 선은 순간 무한한 안정감을 실어주면서도 알 수 없는 구속감을 내뿜어댔다. 

쿡- 쿡- 웃는 그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렸다.

차 안에서는 아까 진료실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디로 갈까요" 하고 그가 물었다.


나는 얼른 주소를 핸드폰에 찍어 내비게이션을 켰다.

안내하는 기계의 목소리가 인위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잔잔한 숨소리를 내뱉었다.


"생각보다 고집이 세내" 그가 문득 말했다.


"네?"


"집 주소 아니잖아요" 여전히 앞을 응시한 채였다.


"아... 거기서부턴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어떻게 알았나 싶었다.


"그냥 집 앞까지 데려다줄게요"

그가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환자를 집 앞 슈퍼에 덜렁 내려다주고 갈 순 없지"


"...."


"명색에 의산데-"


그가 슬쩍 나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꽤나 장난스러운 말투, 그것과 꼭 들어맞는 목소리.

그리고 그 미소. 


"안 그러셔도 돼요" 하고 내가 대답했다.


"미안한데 은우 씨가 걸어가다 쓰러지면 그 책임 누가 져야 할 것 같아요?" 문득 그가 물었다.


"무슨..."


"은우 씨, 열 엄청 많이 나요" 그가 웃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아주 즐겁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잠깐, 순간적으로 붉은 여우의 털이 하얀 가면을 비집고 언뜻 보인 것만 같았다.

아주 붉고, 아주 부드러워 보이는 그 털이.


"내가 말 안 했나?"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그가 물었다.

"은우 씨 열 엄청 많이 납니다. 얼추 사십 도는 됐던 것 같은데..."


"네? 아까 왜 말씀 안 해주셨어요?" 타박하는 듯 내가 물었다.

그 온도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 정말 말 안 했구나 내가" 그가 웃었다. "봐요 이제 진짜 내가 책임져야 하잖아 그럼"


"선생님-"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불렀다.


"미안, 진짜 까먹었어"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싶어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미안해요" 그가 한 번 더 말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음에 안 들어.

전혀 마음에 안 들어.


진심이기는 해?


"그래도 걱정하지 마요, 단순 감기니까 해열제 먹으면 금방 열 내릴 거야"


"참 위안이 되네요" 내가 빈정거렸다.


그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한참을 기분이 상해서 입을 다물고 있자 문득 그가 다시 한 번 말을 걸었다.


"은우 씨는 무슨 일해요"


"그게 왜요"


"생각보다 중요한 질문이거든요 이거"


"어디가요"


"겨우내 감기에 시달리는 거 보니 면역체계가 기름종이보다 잘 뚫린다는 건데 그런 건 스트레스랑 관련이 있을 수도 있거든"


"..."


"그래서 묻는 거예요, 환자를 알아가는 거지"


"되게 그럴싸하네요"


"사실이니까"


"..."


"그래서 대답은?" 그가 다시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건설회사에서 일해요" 내키지 않는 듯 내가 답했다.


"그럼 스트레스 많이 받겠네"


"그걸 선생님이 어떻게 아세요?"


"아는 사람이 건설회사에서 일해요"


"아- 누구요?"


"말 하면 은우 씨가 알아요?" 그가 웃었다.


"그건 아니지만..." 괜히 멋쩍어져 말끝을 흐렸다.


"귀엽네요"


"네?"


"저기 저 강아지요, 산책 나왔나 봐요"


"아... 네 귀엽네요"


쿡- 쿡- 쿡- 그 웃음소리.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내심 편하기도 하고 또 어색하기도 해서 손끝만 바라볼 뿐이었다.


편하면서 불편하다.

아이러니해.


하지만 그는 그랬다.

그의 말투라던가 행동 하나하나는 생각해 보면 생각할수록

아주 자연스러웠으면서도 아주 의도적이었고,

매우 매혹적이었으면서도 매번 숨을 조여왔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는 이 어색한 동행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 클래식 음악에 더 귀를 기울였다.

아주 잔잔하고 또 아주 고급스러운 이 하모니에,

어쩔 때에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따라가기도 하고 

또 다른 날에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파고드는 이 음악의 선율에.


"은우씨 나 알아요?" 문득 그가 물었다.


"네?" 내가 놀라 대답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요" 다시금 그 예쁘장한 보조개를 뽐내며 그는 입술을 움직였다. "내 이름 아냐고요"


"그, 이홍빈 선생님 아니세요?"


"알고 있네-" 의외라는 듯이 그가 말꼬리를 늘렸다. "모를 줄 알았는데"


"아까 명찰 봤어요"


"음-" 그가 잔잔한 소리를 냈다. 그러다 문득 씩- 웃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나는 은우 씨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요?" 괜히 궁금해져 내가 물었다.


"궁금해요?" 부드럽게도 핸들을 돌리며 그가 말했다.


"..."


"그냥 오다가다 봤어요" 


생각보다 싱거운 대답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왜 실망스러웠던 걸까.


"실망했나 보네- 다른 대답 기대했나?"


"그런 거 아니에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서슴없이 물어오는 그 능글맞은 질문에 나는 놀라 서둘러 대답을 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나의 당황한 목소리를 들으며 뭐가 그리 우스운지 연신 즐겁다는 짧은 숨소리를 주기적으로 내뱉을 뿐이었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커져갔다.

내가 왜 이 사람의 차 안에 앉아 우리 집으로 가고 있는지도 의뭉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진짜로 내가 왜 이 사람 차에 앉아있는 거지?


"농담이에요 농담" 그가 말했다. "순진하시네요"


"칭찬은 아닌 것 같네요" 내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글쎄요" 그는 또 웃었다.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


참 잘 웃기도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분명 알고 있을 거야 저 남자는.

자신의 미소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래서 때문에 아주 교묘하고 아주 지능적인 방법으로 제 미소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저 말투.

솔직한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시험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넌 도대체 뭘 시험하려는 거지?


한 편으로 그를 평가하고,

또 한 편으로 그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나는 현재 생각보다 이 남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이건 좋지 않은 현상이라는 것도 나는 예리하게 자각하고 있었으므로

이내 집 앞에 슈퍼가 눈에 들어오자 다짜고짜 안전벨트를 풀고는 말했다.


"여기서 내릴게요"


"진심이야?"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물었다.


"이제 아까보다 덜 어지러워서 괜찮아요"


안전벨트를 다시 매라는 경보음이 차 안을 메웠다.

그는 그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속력을 낮췄다.

 

차가 완전히 정차하고 나자 나는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해요, 초면에 실례가 많았네요"


"뭘-"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자신해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대답 없이 의아하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부스럭 거리던 손은 잠시 멈춰 둔 채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그는 빙긋- 웃었다.


입안에서 작은 감탄이 새어 나올 것만 같은 것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나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가 잠갔던 차 문을 열었기에 손쉽게 문을 열고는 차 문을 닫기 전 다시 한 번 그를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 할 뿐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닫고는 이내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편하게 온 탓인지 아니면 열이 좀 내렸는지 

아까보다 걸음이 훨씬 더 가벼웠으므로 나는 무리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은우씨"


문득 들려오는 그 소리를 나는 애써 무시했다.

뒤 이어 들려오는 그 웃음소리도.


"이은우씨, 들은 거 알아요-" 그가 소리쳤다.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이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그를 바라봤다.


내려진 창문 사이로 보이는 그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당신은 뭐가 그리 즐거운 거야 지금.


"왜 부르세요" 내가 퉁명스레 물었다.


"내가 깜빡하고 말 안 한 게 있어서"

한 손으로는 여전히 핸들을 움켜쥐고 그는 슬쩍 고개를 숙여 나를 바라봤다.


"이번엔 또 뭔데요"


"약 삼 일치 밖에 처방 안 했어요, 약 다 떨어지면 다시 한 번 더 오세요"


"그 전에 나을 거예요"


그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닐걸요-"


"어떻게 아세요 그걸"


"의사잖아요, 그 정도 짐작은 쉽지"


"..."


"예약시간은 문자로 갈 거예요" 그가 말했다. "약 먹고 푹 쉬어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나는 이내 등을 돌렸다.

뒤에서 별로 미련 없이 떠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


대충 미음으로 식사를 때우고 약을 몇 알 삼키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뜬 눈으로 그러고 있자니 혼자 살고 있는 이 집이 더 허하게만 느껴졌다.

이내 피곤한 한숨을 내쉬고는 팔로 눈을 가렸다.


희한한 남자.

이홍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와 한 공간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대화를 했던 걸까 하는 의문이 마음속에서 요동쳤다.

너무 사적인 대화를 했던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직업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단단히 홀렸던 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분명 그 남자는 여우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의심이 솟구쳤다.


진짜 여우인지도 몰랐다.


아니... 아닐지도 몰랐다.


내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그럼으로 아주 낯선 남자였다.

솔직히 그의 외모에 감탄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건 아주 보편적인 견해였지 전혀 개인적인 감정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의 말투나 행동에 호감을 느꼈던 것도 아니었고 잠시 불쾌하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주 자연스러웠던 그의 행동과 언변에 나는 조금 혼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홀리다.


그래, 홀렸다고 말하는 것 밖에 마땅한 표현이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문득 괘씸하고 어리석은 마음이 들어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당겼다.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 남자가 신경 쓰였다.

보란 듯이 약이 떨어지기 전에 나아서 그 병원을 다시는 찾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다짐했다.

아니, 병원을 옮겨야 하나 생각하기까지 했다.


알 게 뭐야.


나는 옆으로 돌아누워 이내 몸을 웅크렸다.

눈을 꾹- 감으니 약기운이 몰려오는지 나긋나긋한 잠결의 노래가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것만 같았다.

아주 잔잔하고 또 따듯해서 막힌 코 덕에 입으로 내뱉는 그 숨결이 새삼 부드럽게만 느껴졌다.

나는 이 기분에 취해서 아주 깊은 겨울잠을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깨어나면 여우의 장난도, 한 겨울의 잔병도 다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런 꿈이었다.


꿈결에서 낮게 울리는 핸드폰 진동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


여전히도 꽉- 막힌 호흡기관에 괴로워하며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넘겼다.

미간을 한껏 찡그리고는 다시 한 번 그 문자를 읽어내려갔다.


이은우 환자님

11월 27일 금요일

오후 3시 예약

ㅇㅇ대학병원


그 글자들을 나는 꽤나 어이없다는 식으로 쳐다보다가 이내 혀를 찼다.

그에게 늘어놓았던 나의 으름장을 놀리기라도 하는 듯

간단 명료한 이 예약 문자에 나는 괜히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삼 일치 약으로는 턱도 없었는지 아니면 정말 그의 예언대로 된 것인지,

어느 쪽이든 간에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갈까 솔직히 고민해보았지만,

꾸준히 가던 병원에 그냥 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나마 제일 가까운 병원이었기에 별 선택권이 없어진 나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쌀쌀한 날씨에 한껏 코트를 여미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니 꽤나 짙은 구름이 깔려있었다.

곧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모양이었다.

진눈깨비처럼 추적추적- 길가에 흐트러질지 아니면 함박눈이 되어 쌓일지는 미지수였다.

채 햇볕이 닿지 않는 곳에 얼어붙은 얼음덩어리들을 피해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를 타기가 귀찮아져 택시에 올라타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 이상한 약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알싸한 냄새는 내 신경을 괴롭히기 마련이었다.

버릇처럼 발끝을 모으고 앉아있던 나는 연신 핸드폰을 바라보며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읽어내려갔다.

아직도 막힌 코 때문에 연신 거침 숨소리를 내며 나는 자리에 앉아있다가 이내 나를 호명하는 그 목소리에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진료실로 향하는 동안 괜스레 느껴지는 이 긴장감이 과연 그 남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쓸모없는 촉 같은 것이었을까.


드르륵- 드르륵- 가쁘게도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문득 비릿한 피 냄새가 막힌 코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소리가 이내 영영 멀어져버릴 때까지.


*


이 진료실은 무슨 마법의 회전문 이기라도 되는지 들어갈 때마다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나는 가운데 머리가 휑하니 비어있는 중년의 대머리 의사선생님을 멀뚱거리며 바라보다가 이내 자리에 앉았다.

그는 이홍빈이 그랬듯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다가 나의 진료 차트를 확인하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증상을 물었다.

이홍빈이 했던 것과 같은 아주 형식적이며 간단한 진료 후에 주사를 맞고 가라는 처방을 내리고는

그는 이내 나가봐도 좋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그를 응시하며 슬쩍 미소를 짓고 일어나다가

이내 밀려드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는 물었다.


"저번에 왔었을 때랑 선생님이 달라지셔서 놀랐어요, 벌써 두 번 째네요"


"아, 화요일에 오셨었나 봐요" 친절한 목소리고 그가 답했다.


"네"


"그때는 공석이어서 급히 다른 선생님이 잠깐 맞아주신 거였어요" 그가 푸근하게 웃었다. "이 선생이 맡았었나...?"


"네 맞아요, 이홍빈 선생님"


"별 다른 처방은 안 했죠?"


"뭐 그냥 약만 처방해 주시던데요?" 내가 대답했다.


"이 선생은 외과의이거든요. 하도 갑자기 사람이 부족해진 바람에 허허"


"아- 아-"


"고생했죠 뭐, 아주 오랜만에 쉬는 날이었는데"


"그러네요"


"뭐 다른 건 궁금한 것 없으십니까?" 그가 물었다.


"네- 없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미소를 보이고는 그렇게 인사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팔뚝에 주사 한 방을 맞고는 뻐근해진 기분에 어깨 근처를 문지르며 다시 코트를 여몄다.

약국에 가서 다시 한 번 삼 일치 약을 처방받고는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에 올라탄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안 챙겨왔기에 진눈깨비가 아니었으면 했는데

다행히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안심하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겨울에나 들을 법한 서정적인 노래가 귓가를 어루만졌다.


나는 오래된 노래들이 좋았다.


버스정류장은 전에 이홍빈이 내려주었던 슈퍼 앞에 있었다.

나는 슈퍼에 들어가 캔맥주 한 묶음을 사들고는 아파트로 향했다.

알루미늄 캔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애써 미끄러지지 않으려 발끝에 힘을 주고는 빙판을 피해 걷다

아파트 로비에서 머리와 어깨에 걸터앉은 눈송이들을 탈탈 털고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기다렸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나는 바닥을 바라보며 그 안에 올라탔다. 

9층- 애매모호한 그 숫자를 누르자 부끄럽기라도 하다는 듯 붉게 피어올랐다.

나는 닫히는 그 문을 아랑곳 않고 여전히 발끝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조그만 폐쇄적 공간에 나는 항상 갑갑한 느낌을 받기 마련이었다.

어린아이들의 막연한 공포심이라기엔 조금 더 성숙하고,

폐소공포증이라 하기엔 정도가 약한 이 갑갑함은

어쩌면 구속이라는 말과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나는 혼자 정의를 내리곤 했다.


나는 나의 생각에 아주 심취해 있었다.

주말이 끝나면 다시 시작될 장기 프로젝트에 관한 견적내용이라던가,

플래닝 팀에게 보내줘야 할 자료들,

어느 회사에 발주를 주어야 더 이익일지에 관한 복잡한 비교가 머릿속에 가득 찼다.


스트레스.


그래, 스트레스.


관둘까?


직장인은 누구나 사직서를 품에 쥐고 다닌다는 말을 사회 초년생일 때는 전혀 믿지 않았었는데,

연차가 늘어갈수록 그 말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나는 내심 씁쓸했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어찌 다른 소리가 귀에 들어올 수  있을까.


그래서 그랬다.

그래서 가쁜 듯 빨라지는 그 발소리도,

잠깐만 기다려 보라는 그 목소리도 나는 들을 수가 없었다.


정말,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 했다.


그러니까 지금 스르륵- 부드럽게 닫히는 이 문 사이를

갑자기 비집고 들어오는 차가운 하얀 손이 약간의 타박상이 의심되는 소리를 내며

탁- 하고 그 거대한 철문을 밀어냈을 때 소스라치며 고개를 들고는 그 원인을 바라본 거겠지.

귀에 꽂아두었던 이어폰 한쪽이 덜렁거리며 떨어져내렸다.


천천히 열리는 문틈 사이로 숨을 몰아쉬고 있던 그 달갑지 않은 차가운 손의 주인은 

마치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나를 놀라게 하고는

색- 색- 거친 숨을 내뱉으며 이내 작은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그 머리를 탈탈 털어내며 눈송이를 애써 떨궈내던 그 남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들어놓고 못 들은 척하는 게 혹시 이은우씨 버릇이에요?"


나는 그를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이내 허리를 반듯이 세우고는 한층 더 커진 키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게 아니라면 이비인후과 가서 정밀검사받아보는 게 어때요?" 


그가 활짝 웃었다.


*


또 만났네?


우연일까?


필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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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흐어ㅠ 작가님 신알신 구름 탑승합니다 :)
기다렸어요...♥

8년 전
스몰
구름♥벌써 들키다니...ㅋㅋㅋ 고마워요 사랑해요♥
8년 전
독자2
꼬이에요! 혼비니 같은 입주자 였던건가요 (두근) 그래서 막 원래 알았네어쨌네 근데 주치의라며..!거짓말쟁이 홍빈이네요@.@
8년 전
독자3
호에에에에에? 은우가 또 홍빈이를 만났네요 아 뭐지 홍빈이 정체를 모르겠다ㅜㅜ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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