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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XX/이홍빈] 킬미힐미 04 | 인스티즈



04 


늑대의 울음으로 이 영화는 시작했다. 


배경은 추운 겨울이었고 나무는 가늘게도 말라있었다.


그날과 같은 하늘.


그날과 같은 날씨. 


*


'늑대의 밤'


유난히도 검은 밤, 달맞이 고개에 내리던 비는 붉은색이었고,

그곳에 네가 있었다 내가 말한다면 너는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내가 너를 보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그곳에 있는 너를 내가 바라보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내가 너의 숨을 간간이 살려주고 있던 거라면...


개의 목줄을 조이던 그 가느다란 쇠사슬이 녹슬어 풀려버린 그 순간,

내가 더 이상 개가 아닌 늑대라는 사실을 네가 깨달아버린 그 밤에,

사실 나는 그전부터 내가 늑대라는 사실을 너에게 숨기고 있었고,

사실 그 목줄도 끝에는 아무것도 달린 것 없던 공갈이었으며,

고개 위에 가만히 앉아 노래를 부르던 네 유약한 뒷모습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내가 일부러 모른 척 바라만 보다가 이제 와서야 네 목덜미를 핥고 있는 것이라면


너는 과연 어떤 눈으로 나를 바라볼까? 


모든 것이 사실은 너를 꾀어내기 위한 연극이었다면.

지금도, 내 발치에 쌓아둔 이 여우들도 다 너 하나만을 위한 장난이었다면

너는 과연, 과연 그럼에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를 쓰다듬어 줄까? 


만약 네가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또 어떤 방법으로 너를 옭아매야 하는 걸까.

어떤 방법으로 네 신경을 긁어내며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 


어떻게 너에게 상처를 주고,

어떻게 너에게 내기를 걸고,

어떻게 너를 꾀어내야 하는 걸까.


어떻게 네 목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슬을 걸 수 있을까. 


이제는 내가 늑대임을 알아버린 너를.


그리고 반대로 그럼에도 네가 나를 쓰다듬어 준다면,

그런 나를, 그런 나의 악질적인 만행들을 끌어안아 준다면,

나는 너의 영원한 사냥개가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모든 것을 다 떠나 나는 너의 영원한 사냥개가 되어주고 싶었다.


"여우들이 사랑하느냐 물었어?" 그녀는 아주 불안한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사랑하는가에 관한 질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지.


"응"


"당신은 뭐라 대답했어?"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게 다야?"


"그게 다야"


"...당신은 참 나쁜 사람이구나" 그녀가 서슴없이 말했다.


나는 달을 닮아 노랗게 빛나는 눈으로 어둠 속에 앉아있는 그녀를 응시했다.

알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점점 더 견고해져만 가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를. 


나는 그게 제일 두려웠다.

이전부터 그게 제일 무서웠다.

너의 흔들림 없는 견고함이,

무던하게 사랑하는 네가.

무던하게 사랑스러운 네가.


느슨한 듯 보이는 너의 틈이 사실은 얽기 설기 엮어놓은 그물이라는 것을

나는 항상 그 안을 뚫고 들어가 갇히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래, 나는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나는?" 그녀가 물었다.


"너는 뭐"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나는 사랑해?"


"당연한 거 묻지 마"


"이건 당연한 게 아니야"  


그녀가 단호히 말했다.

마치 다시 내 목줄을 채운 듯이.


"이건 당신의 다른 장난들처럼 간단한 게 아니야" 


나는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나는 그녀에게 향하고 있었다.

애써 감추고 싶었음에도 그럴 수 없는 그 날카로운 무기를

그녀에게 내비치며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안아줘.


나를 좀 안아줘.


잊지 마. 


*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이홍빈이 단 한 번도 기침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고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로 기다렸다는 듯이

음료를 삼키는 그의 입술을 바라보다가 나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인내심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아니면 오기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어땠어요?"


차차 불이 들어오고 있는 상영관 천장을 바라보는 내게 그가 물었다.


"재밌네요"


"그래? 난 좀 우울하던데"


"무겁기도 하고요" 내가 동의했다.


그가 기지개를 켜는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이내 천장에서 눈을 떼고는 가방을 정리했다.

빈 팝콘 통이라던가 다 마신 음료수 잔을 한 손으로 받아들며 이홍빈은 여전히 앉아있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줄 것 없는데" 내가 말했다.


"진짜 없어?" 그렇게 물으며 그가 웃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팝콘 값이라도 드려요?"


"아- 진짜 일부러 그러는 거죠 지금?" 그가 말했다.


"아니면 뭐.. 명함이라도 드려요?" 내가 답했다.


"됐네요-" 그는 이내 손을 거두더니 항복한다는 듯 들어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그를 바라봤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홍빈은 통로를 가로질러 계단으로 향했다.

의자들의 열 마지막 끝에 서 있던 그가 문득 나를 돌아봤다.

나는 가만히 서서 중심을 잡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잃어버린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며 불러들인 현기증. 


"나가자, 우리" 그가 말했다. 


*


나는 지금 매우 애매모호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저 남자와 둘만 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는데,

이제는 제 삼자까지 끼어버린 이 순간에 나는 아주 숨이 턱- 턱- 막힐 지경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벌써 수 백 번도 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뗐을 테지만,

출입문 바로 앞에 서서 살갑게 이야기를 나누는 저 남녀를 뚫고 지나갈 용기도 의지도 나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멀뚱거리며 가만히 서 있다가 나는 이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꽤나 러닝타임이 길었는지 어느새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일기예보에 오늘은 진눈깨비가 내릴 확률이 더 높다고 한 게 문득 생각이 나 나는 유리창 넘어 창문을 확인했다.

웬일로 일기예보가 맞아떨어질는지 하늘이 제법 흐렸다. 


이상하게 해가 길었던 그날과는 아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밤이 길어질 것만 같았다. 


달맞이 고개처럼.

 

붉은 그 눈동자와

잊지 말라던 그 낮은 속삭임.


무얼?


선남선녀가 따로 없다는 말을 이럴 때 하는 거구나 생각할 만큼

저 두 남녀는 꽤나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만지는 행동이라거나 말할 때마다 번지는 안면의 미소,

간단한 대화들도 감정적이게 만드는 그 목소리들로 하여금

일방이던 쌍방이던 아주 친밀한 관계라는 것이 언뜻 보였다. 


물론 나에게는 그런 걸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이홍빈과의 예상 못한 동행도 또 지금 나의 이 갑작스러운 동행의 와해도 나는 굳이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관한 것들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상상력에 물을 주듯 불어나기 마련이었고,

나는 그 생각들 후에 밀려오는 불안함과 위험에 대한 긴장감에 매번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홍빈을 생각하는 것도,

그를 짐작하는 것도,

또 그의 치명적인 무언가에 관한 상상도

어느 하나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 없었다.


벗어날 기회는 이쯤에서 잡아야 했다.

더 신경 쓰이기 전에.

더 신경 쓰기 전에. 


간과.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나를 못 봤는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기에

나는 생각보다 손쉽게 극장을 나올 수 있었다.

그 옆을 지나는 순간 느껴지던 매혹적인 향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가 뿌린 향수였을지,

아니면 깊은 유혹을 담아내던 일종의 감정 표현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독한 향에 미간을 살짝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녀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녀가 그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나는 왜 이런 것들을 궁금해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찬 바람이 나를 일깨우려는 듯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히 전해지는 찬 공기 속 숨은 습기에 나는 몸을 움츠렸다.

비가 오기 전에 집에 가고 싶었다.


더 이상 감기에 걸리고 싶지 않았다.


"이은우씨-"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이내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은우-"


내 이름 석자가 그렇게나 뜨거운 불덩이처럼 느껴지는 게 나는 처음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우뚝- 멈춰 선 나는 이내 몸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왜 반말이에요" 내가 말했다.


"내가 그랬나-?" 능글맞게 받아치며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빠르게 걸어왔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이내 그가 다가오기 전 몸을 돌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참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의 신체 구조라는 것이 이렇게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줄 진작 알았더라면

나는 조금이라도 더 키가 크기 위해 우유를 많이 마셨을지도 몰랐다.

기다란 다리로 걸어오는 그에게 어느새 따라잡힌 나는 은근 자존심이 상했다. 


"왜 그냥 가요-" 그가 물었다. 얕은 웃음소리가 베여있는 질문이었다.


"비 맞기 싫으니까요"


"비 맞는 게 뭐가 어때서"


"나는 감기 또 걸리고 싶지 않아요" 내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왜, 병원 가기 싫어서?" 약간 쉬어버린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이번에는 얕은 기침이 배어있는 질문이었다.


"네-"


"의사 앞에서 병원 가기 싫다 그러는 건 또 무슨 심보야-"


"그런 이 선생님은요, 의사가 감기에나 걸리고"


"의사도 사람이잖아" 그가 웃었다. "그리고 나는..." 


"외과의죠" 내가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홍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다른 의사선생님이 그러시던데요, 화요일만 대타 한 거라고"

괜히 찔리는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숨기며 나는 답했다.


"은우 씨가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고요?" 빙글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아닌데요" 애써 거짓말을 하며 이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쿡- 쿡- 웃으며 나를 뒤쫓아왔다.

찬 바람이 자꾸만 일어나서 내 폐를 찔러댔다.

얼마 전부터 이상하리만큼 자꾸만 아려대는 폐 때문에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러니까 한 번 열었던 그 부위를 닫기 전에 누군가가 무언가를 심어놓은 듯했다.


내가 애써 숨쉬기를 다시 시작했던 그날.


그날의 사고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그 흉터.


찬 바람을 들이킬 때마다 그저 시리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갑갑하게 막혀있는 느낌이 마치 그 속에 응어리라도 진 것 같았다.

아주 작은 알갱이에서 시작하던 그 이물감이 점점 자라나 어느새 내 폐를 감싸버릴 것만 같았다.

조그마한 눈의 결정이 가슴 가운데 콕- 박혀있다가 이내 제 자리를 점점 넓혀가는 기분이었다. 


너를 다시 처음 만난 그날부터 이 이질감은 시작되었다. 

다만 네가 누구인지 나는 모를 뿐이었다.


"이 선생님" 내가 문득 그를 불렀다.


"왜요?" 그가 다정하게도 대답했다.


"여기가 갑갑한 건 왜 그러는 걸까요"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주먹을 꼭- 쥔 손으로 가슴 가운데를 툭- 툭- 치다가 이내 나를 마주 보는 그 눈을 바라봤다.

어느새 다시 모자를 뒤집어쓴 그는 나와 내 손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아-"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기라도 한 듯 가벼운 탄식을 뱉어냈다.


그는 연신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떻게 갑갑한데-?" 그가 물었다.


"그냥 숨 쉴 때마다 좀 아파요" 아니, 이게 아픈 건가? 이걸 아프다고 해야 하는 건가?


"그리고?"


"그리고 뭐가 있는 것처럼 이물감이 느껴지는데..." 나는 말끝을 흐렸다. 문득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이내 나의 그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그저 빙긋- 웃으며 입을 열 뿐이었다.

 

"그럼 한 번 병원 와 봐요, 찍어보게"


"..."


"사진 찍는 거쯤이야 하나도 안 아프니까" 달래듯 그가 말했다.


"....진짜 뭐라도 있으면 어떡해요"


"빼내면 되지" 그가 간결하게 말했다.


"...."


"또 궁금한 건 없어요?" 그가 물었다.


"이젠 없어요"


"난 궁금할 것 같은데"


"뭐가요"


"그냥 나에 관한 것들?"


"제가요?" 나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그에게 되물었다.


그가 이내 상처받은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잘 생각해봐요, 나는 생각보다 은우씨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거든"


"..."


"불공평하다 생각되지 않나-?" 그가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내가 뒤따라갈 차례였다.


"그래봐야 환자 차트에 적힌 게 다잖아요"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요, 똑똑하네 은우씨"


"그런 칭찬이라면 됐어요"


"그러지 말고 뭐라도 좀 물어봐봐요" 이홍빈은 얘기했다.


나는 그 투정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나를 애써 신경 쓰게끔 만드는 그의 말들을 나는 무어라 불러야 하는 것일까.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니면 원래 장난스레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나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날 그에게 일부러 나에게 그러는 거냐는 질문을 했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입술 사이로 걸어나간 질문은 그보다는 더 얕았고 또 제법 어리석었다.


이건 다 자연스러운 그의 행동 탓이었다.

여우가 담 넘어가듯 스르륵-


"아까 그분은 누구예요?" 내가 물었다.


"누구요? 내가 극장 앞에서 얘기하던 사람?" 그가 제법 의외라는 투로 되물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병원 간호사요"


"아하-"


"뭐야 반응이 왜 그래요?" 그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기침을 했다.


"미인이시던데요"


"그렇죠, 병원에서도 제일 예쁘다 그러던데"


"잘 어울려요"


그가 키득키득 웃었다.


"왜 웃어요" 내가 물었다.


"그냥 되게 영혼 없이 대답한다 싶어서"


"들켰네요"


"생각보다 솔직하네, 상처받게"


"뭐... 엄청 궁금한 건 아니었으니까"


"은우 씨는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나 봐요"


"이 선생님은 저한테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순간 그가 피식- 웃었다.

그 바람 빠지는 소리에 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보기 좋은 그 보조개가 양 볼에 움푹 패어 있었다.  


도대체 누구를 홀리기 위해 저렇게 만들어진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이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파트 주차장을 가로질러 승강기가 있는 로비에 다다랐을 때 그가 문득 멈춰 서서는 나를 불렀다.


"은우 씨 그거 정신적인 걸 수도 있어요"


"뭐가요?"


"폐가 갑갑하고 아픈 거"


"네?"


"후유증일 수도 있다고"


나는 놀라 그런 그를 빤히 바라봤다.

찬 바람이 내 머릿결을 빗어넘기다 이내 차가운 눈물방울 하나를 콧잔등이에 떨어뜨렸다.


그가 손을 뻗었다.

부드럽게 말려올라가는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이가 보였다.

꽃이 자꾸만 눈앞에서 피어올랐기에 나는 애써 눈을 깜빡였다.

내 콧대에 내려앉은 빗방울인지 눈송이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리기 전,

그가 제 엄지손가락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쓱- 닦아냈다.

나는 몸을 움츠리다가 이내 왼발을 뒤로 슬쩍 빼내었다.


"진짜 비 오네" 그가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물었다.


"뭘?"


"나 수술한 거"


"환자 기록 보면 나와요" 


"..." 나는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교통 사고 때문에 한 거잖아요, 수술도 우리 병원에서 했고" 홍빈이 나지막히 말했다.


"..."


"너무 그렇게 보지 마요 그냥 생각나서 말해준 거니까-" 그가 제 볼을 꾹- 꾹- 눌러 보이며 나를 바라봤다.


"아 죄송해요" 그의 그 손짓에 나는 이내 잠깐 굳었던 표정을 풀고는 말했다. 뻣뻣해진 볼이 아려왔다.


"그래도 계속 갑갑하면 진짜 한 번 병원 와 봐요" 그가 그런 나를 보며 웃었다.


"네"


괜히 민감하게 반응했나 싶어 그에게 미안해지려는 참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가 당연히도 알고 있을 수 있는 사항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그와 함께 있으면 느껴지는 희한한 기분에 나는 조금 예민해졌는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그와 이야기를 할 때면 느껴지는 자꾸만 무언가를 빼앗긴다는 느낌.


그 느낌 때문이었다.


"누가 알아요 정말 뭐라도 들어있을지" 그가 농담하듯 말했다.


"그런 섬뜩한 이야기를" 나는 피식- 웃었다.


"아- 진짜 비 오려나보다" 잔뜩 먹구름 낀 하늘을 그가 올려다봤다.


Adam's Apple.


그 목선.


"비 싫어하시는 이은우 씨는 이제 들어가 보죠? 날도 추운데" 그가 천천히 무릎을 굽히며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이 선생님은 안 들어가세요?" 내가 물었다.


"나는 약속이 있어서-"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슨 약속요?"


"이제 내가 좀 궁금한 게 보네?"


"아니 그게 아니라..." 내심 뿌듯하다는 그 목소리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쭈뼛거리자 그는 그게 재밌다는 듯 웃으며 허리를 폈다.

이내 허리를 곧게 펴고는 야상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손에 아까 넣어둔 마스크가 잡히는지 연신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데이트" 불현듯 그가 말했다.


"... 이 날씨에요?"


"데이트를 꼭 밖에서 할 필요는 없죠" 의미심장하게도 그는 말했다.


"아..." 별다른 생각 없이 그렇게 수긍했다.


찰나의 탄식이 내 입술 사이로 새어나가는 것을 그는 들은 듯했다.

나는 눈알을 굴렸고 그는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쇠된 웃음을 뱉어냈다.


갈라져 허스키하게 변해버린 목소리였다.


"뭐, 그럼 좋은 사랑하세요" 내가 대충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킥- 킥- 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그는 참기 힘들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은 하는 거예요 은우씨는"


"그럼 뜨거운 사랑하시던가요"


내가 이내 뒤돌아서며 이야기하자 홍빈은 못 참겠다는 듯이 한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응원 참 고맙네요-" 그가 말했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 뒤에 대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가요 은우씨-" 


그리고 그 웃음소리도. 



차가운 걸 가슴속에 심어놨어.


네가 그런 거야.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그러니까 기억해 봐. 

찰나의 그 순간을. 


너와 나의 운명이 뒤바뀌던 그 달맞이 고개에서

네가 내게 했던 말을 너는 기억하니?


네가 늑대에게 했던 말들은 너는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죽었니?


살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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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33.161
와... 진짜 분위기 대박이에요ㅠㅠㅠ
홍빈이 뭐죠? 너무 세쿠시 앤 덴져러스ㅠㅠㅠㅠㅠ

8년 전
스몰
읽어줘서 고마워요♥
8년 전
독자1
와 분위기랑 브금이 너무 잘 어울려요8ㅅ8
작가님 필력은 오늘도 반짝반짝하네요...정말 문장 하나하나가 제 스타일이라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지금 날씨가 흐릿한게 딱 글이랑 어울리는 날씨라 그런가 되게 묘해지네요. 늘 응원하고 다음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8년 전
스몰
으어어어 9ㅅ9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8년 전
독자2
우아ㅠㅠㅠㅠㅠ얼룬다음편기다립니다 8ㅅ8
8년 전
스몰
감사해요9ㅅ9힝♥
8년 전
비회원235.21
연재되길기다렸었는대...하핳
이렇게가지고오셨네요bbbb

8년 전
스몰
어머....♥벌써 아는 이가 이리도 많다니0ㅅ0!
8년 전
비회원247.56
엉엉....하루만에 다 봐버렸어....다음편 어떻게 기다리죠....빨리보9105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홍빈이 진짜...하 너무 치명적이에요....심쿵...은우는 무슨 사고를 당했길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런걸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엉엉....작가님 사랑하구...다음편 기대할게요.....하뚜.....
8년 전
스몰
귀엽ㅋㅋㅋㅋ읽어줘서 너무너무 고마워요! 나듀 핫트<3
8년 전
독자3
브금도잘어울리고..홍빈이컨셉에몰입도도쩌러..헣
8년 전
스몰
브금 좋죠? 읽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8년 전
독자4
꼬이에요! 처음에 딱 들어오자마자 들리는 브금이 평소 너무 즐겨듣던 노래라 반가웠어요 달맞이고개에 뭐가 있는걸까요 기억하고 싶지 않다에서부터 옛날에 뭐가 있었나 싶었는데 수술.. 꽤 심각한 수술이었나봐요..!
8년 전
독자5
아ㅜㅜ 후유증이였구나ㅜㅜ 얼마나 큰 사고였으면 후유증까지... 아 브금 완전 좋아요 브금 덕분에 더 몰입도 잘 된것 같고! 홍빈이 정말 위험한 남자네요.. 절 홀리다니... 대단한 사람...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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